황금가 (30)
“죽었습니다.”
도인 한 명이 무량진인에게 보고했다.
“도둑이 확실하냐?”
“이자의 몸에는 창허각 냄새가 남아 있습니다. 도둑이 분명합니다.”
창허각은 경전을 비롯한 곤륜의 보물로 분류되는 것들을 보관하는 서고 이름이었다.
“몸을 뒤져 보았느냐?”
“네.”
“천도경은?”
“없습니다.”
“천도경이 없다는 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느냐?”
“다른 보물들이 수두룩한 곳에 침입하여 천도경만 훔쳐 갔다는 건 그것만 필요했다는 걸 뜻합니다. 중간에 버리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공범에게 건네주었을 거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가 곤륜산에서 만난 사람은 없다.”
“없는 게 아니라 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 강신술사 일행을 말하는 거냐?”
“네.”
“도둑놈들이 그렇게 대담하게 불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무량진인이 그냥 지나친 가장 큰 이유는, 강신술사의 대답에서 읽어 낸 진정성도 있지만 불을 피우고 있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것 때문에 우린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렇군. 가자!”
무량진인은 몸을 날렸다.
“일월태극문 폐허로 간다! 도둑이 거기 있다!”
곧이어 보고하던 자가 소리치고, 주변에 흩어져 있던 곤륜파 도인 수십 명이 몸을 날렸다.
한 식경 후 일행은 일월태극문 폐허에 도착했다.
도인 일행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걸로 봐서는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모닥불을 살피던 자가 보고했다.
“신호탄은 가지고 있느냐?”
무량진인은 문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가지고 있습니다.”
“흩어져서 놈들을 찾는다!”
“존!”
곤륜파 제자들은 크게 소리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문제는 천도경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건데…… 문주님은 알려나 모르겠네.”
휙!
무량진인은 곧 자리를 떴다.
사라지는 무량진인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눈동자의 주인은 수어린이었다.
수어린이 숨어 있는 곳은 일월태극문 폐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동굴 안이었다.
수어린은 곤륜파 문도를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절벽 위에 있는 동굴을 택했다.
사실 이 동굴은 아래쪽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어린 또한 박쥐가 날아들어 가는 걸 보지 못했다면 동굴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량진인이 자리를 뜨자 그녀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더니 아래쪽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들이 숨어든 동굴은 천연 동굴이 아니라 인공 동굴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동굴을 만든 자들은 일월태극문 문도들이었다. 일행은 동굴 안에서 시체와 다수의 책을 발견했다. 시체는 일월태극문 문도였다.
“부상을 입은 상태로 이곳으로 들어와 숨을 거둔 것 같습니다.”
시체를 살피고 난 금장생이 말했다.
“남긴 글은 없던가요?”
“보시다시피 바닥이 바위라…….”
금장생은 시체 옆을 가리켰다.
“아쉽네요. 일월태극문의 멸망 이유를 알 수도 있었는데.”
“그러게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가?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시선을 돌렸다. 동굴 오른편 어두컴컴한 곳에 도사 복장을 한 중년인이 서 있었다.
도사의 복부는 흘러내린 피로 인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금장생은 머릿속으로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듣기 싫다고 해도 난 말해야겠네.
‘내 말이 들려요?’
금장생은 다시 머릿속으로 물었다.
―그러네.
‘세상에.’
―뭐가 말인가?
‘귀신 맞죠?’
―나도 내가 귀신이 될 줄은 몰랐네.
‘정말 귀신이군요.’
금장생은 진저리를 쳤다. 또다시 귀신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내가 보이는가?
‘네.’
―자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가?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군. 나는 지박령이네.
‘지박령이면?’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네.
‘계속 이 동굴에만 머문단 말입니까?’
―자네에게 내 사정 이야기를 하고 나면 어쩌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르네.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는 건 한 때문입니까?’
―내가 전에 공부하기론 그렇다고 알고 있네.
‘그런데 어쩌다가…….’
“불침번을 서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수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수어린을 보았다.
“곤륜파 문도들이 이곳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경계를 서야 해요.”
“이곳에 얼마나 머물러야 할까요?”
“최소한 이틀은 머물러야 할 거예요.”
“내가 먼저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금장생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한편에 서 있던 귀신이 그를 따라왔다.
‘지박령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귀신이라고…….’
금장생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자리가 아니고 장소네.
‘장소요?’
―이 동굴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여 다닐 수 있단 말이네.
‘그렇군요.’
위쪽에 도착한 금장생은 시장에서 산 모피를 내려 걸치고 벽에 기대앉았다.
그가 구입한 건 검은색 곰 가죽이라 동굴 벽에 기대앉자 어둠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그런데 여기로 도망쳐 온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쫓기는 중입니다.’
―누구에게 쫓긴단 건가?
‘곤륜파 도인들입니다.’
―곤륜파 도인들이 왜 자네들을 쫓는단 말인가?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나, 혹은 누군가가 지닌 물건을 찾는 건가 보군.
‘머리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겠군요.’
―일월태극문 최고 기재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
귀신은 싱긋 웃었다.
‘윽!’
금장생은 신음을 내뱉었다.
귀신 본인이야 가볍게 웃는다고 웃었겠지만 보는 그는 아니었다. 입꼬리가 좌우로 길게 찢어지면서 입 위쪽과 아래쪽이 분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광경이 그렇게 섬뜩했다.
―내 웃음이 별론가 보군.
‘가급적 웃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그래도 생전엔 잘생겼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 얼굴로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면 저는 송옥, 반안이겠군요.’
―…….
‘농담입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건가?
‘제 복장을 보면 생각나는 직업이 없습니까?’
―복장? 아! 자네 강신술사구먼. 온몸에 상당한 힘을…… 헐! 그게 다 뭔가?
‘뭘 말씀이십니까?’
―자네 몸에 두르고 있는 것들 말이네.
‘강신술에 필요한 물건들입니다. 귀신도 쫓아 주고요.’
―자네 문파에 내려오는 물건들이란 말인가?
‘문파는 무슨, 작은 구멍가겐데.’
―구멍가게에서 그런 엄청난 법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네.
‘이것들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입니까?’
―내가 보기엔 그러네.
‘그래 봐야 강시를 부리는 물건이겠지요. 왜 그렇게 된 겁니까?’
이번에는 금장생이 질문을 했다.
―우리 일월태극문 말인가?
‘네.’
―보물 때문이었네.
‘보물이라면…….’
―우연히 우리 일월태극문에 고대의 비서인 태극혼원천선기太極混元天仙氣라는 책이 들어왔네. 태극혼원천선기는 선천지기를 연마하는 최고의 비서였네. 백 년을 노력해야 하는 걸 십 년이면 가능하게 해 준다고 하더구먼.
‘엄청난 거였군요’.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선천지기는 후천지기보다 세 배 이상 강하다는 게 정설이다. 즉, 백 년의 내공을 쌓으면 일반 내공 삼백 년을 가진 것과 같은 위력을 낸다고 하였다.
선천지기의 효험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젊음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주안의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부상을 입었을 때 더 빨리 낫게 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선천지기를 익히고 싶어 하지만 비법도 모를뿐더러 또 성취가 더뎌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네. 지니고 있던 후천지기마저도 선천지기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네.
‘그럼 보물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간 겁니까?’
―아니네.
‘그럼?’
―반란이 일어났다네.
‘반란요?’
―부문주와 그를 추종하는 문도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싸움이 일어났다네.
‘반란을 일으키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의 명분은 강한 일월태극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거였네.
‘‘곤륜파를 타도하자’ 뭐 그런 겁니까?‘
―잘 아는구먼.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더 강한 문파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곤륜파 멸문을 원했네. 그리고 중원으로 진출하고 싶어 했네.
‘그런데 실패했군요.’
―아니네. 성공했네.
‘그런데 왜?’
―부문주는 일월태극문을 더 강한 문파로 만들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었네.
‘조금 전에 말한 그 비급을 얻기 위해 추종자들을 이용했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그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던 문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네.
‘그럼 도사님은 그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여기로 들어온 겁니까?’
―아니네. 나는 반란을 일으킨 자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게 아니고 그들을 없앤 쪽에 서서 싸웠다네.
‘그게…….’
―나는 반란을 일으킨 무리의 이인자였다네. 내 몸에 검을 찔러 넣은 자를 평생 추종했고, 부모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여겼지.
귀신은 자기가 배신당한 사연을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귀신을 보았다.
설마 귀신이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들 중 한 명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자의 별호는 태극존자太極尊子고 도명은 영무, 속명은 헌원소야네.
‘어떻게 해 달라는 겁니까?’
―내 복수를 해 달라는 건 아니네. 그자의 행태로 보건대 지금도 중원에 수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을 거네. 중원을 위해서 그자를 없애 주게.
‘제가 무슨 수로 그자를 없앤다는 겁니까?’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대신 자네가 가진 법기를 깨우는 방법을 알려 주겠네.
‘법기를 깨워요?’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법기는 현재 봉인된 상태네.
‘그건…….’
금장생은 황당했다.
암왕칠구를 준 천야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봉인된 상태라니.
아니, 설사 봉인이 풀린다고 해도 강시를 제강하거나 해강하는 물건일 뿐이다.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약속해 주겠는가?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생활신조 중 하나가 ‘오지랖 부리지 말자.’였다.
산 사람 부탁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죽은 사람의 부탁까지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럼 원하는 걸 말해 보게.
‘없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있을 거 아닌가.
‘도대체 왜 헌원소얀가 하는 자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겁니까? 도사님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 일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그만 저승으로 떠나십시오.’
―저승으로 가고 싶어서 그런 거라네.
‘네?’
금장생은 뜨악한 얼굴로 귀신을 보았다.
―내 마음대로 귀신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이곳을 떠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네.
‘어떻게 해야 떠날 수 있는 거죠?’
―원한이 풀려야 하네.
‘그러니까 제가 헌원소얀가 하는 자를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면 저승으로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네.
‘알겠습니다. 없애 드리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인가?
귀신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제 아버지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약속을 지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산 사람과의 약속이라면 반드시 지켜야겠지만, 귀신은 저승으로 가면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날 게 없었다. 오히려 귀신을 저승으로 보내 주는 일이니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선한 거짓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태극선의太極仙衣를 찾게. 그리고 본 관의 태극 문양 안쪽에 있는 두 점을 동시에 누르면 비밀 창고가 열릴 거네. 그 안에 보면 책 한 권과 자네가 가장 좋아하는 게 들어 있네.
갑자기 귀신 뒤편에서 밝은 빛이 나타났다.
‘이름이 뭡니까?’
문득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소리쳤다.
―장우네.
귀신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금장생의 눈앞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