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6)
집무실을 나온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천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됐습니까?”
금장생이 다가오자 천야는 물었다.
“다른 도사를 한번 알아보십시오. 요구 사항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함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 실력을 갖춘 분을 찾는 건 쉽지 않은데…….”
“돈이 없는 거지 실력자가 없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가족도 없는 사람이 욕심은 많아 가지고. 더군다나 불제자인 적도 있다면서……. 그건 그렇고 누가 찾아왔다고 하던데.”
“손님입니다.”
“장례 때문에 온 사람이 아닙니까?”
장례 문제라면 천야 선에서 처리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요.”
“하긴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이 있죠. 사장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만나 줘야 합니다. 가시죠.”
“네.”
천야는 금장생을 데리고 찾아오는 손님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찾아올 손님이라고 해 봐야 장례 상담을 하는 사람이 전부인 탓에 접객실은 무거운 느낌이 났다. 실내의 밝기 또한 약간 어두컴컴했는데, 그 역시 분위기와 맞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듯했다.
안에는 탁자 세 개가 일 장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다.
그중 한 탁자에 위아래 전부 검은 옷으로 걸친 자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강자!’
사내의 등을 본 첫 느낌이었다.
단순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임에도 검은 옷을 입은 자의 등은 상당한 위화감을 풍겼다.
아울러 약간 어두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녹아들어 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고도의 수련을 쌓은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험!”
천야는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검은 옷을 입은 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
금장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뜻밖에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여자였다. 얼굴 또한 상당한 미인이었다.
“내가 여자라서 놀랐나요?”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라서 놀란 게 아니라 우리 가게와 너무 어울려서 놀란 겁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여자 앞으로 다가갔다.
금장생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는 금장생을 훑었다. 곧 그녀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는 금장생의 말투에서 상당한 고수의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가게와 어울린다는 건 무슨 뜻이죠?”
“여긴 장의사잖습니까.”
“죽음과 어울린다는 건가요?”
“아직 거기까지 간 건 아닌 것 같고, 지금은 어둠 정도로 보입니다.”
“……!”
여자의 눈에 약간 놀람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곧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는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수어린이에요.”
“혹시 별호도 있습니까?”
“사접死蝶이란 별호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유명인은 아니에요.”
“별호까지 있을 정도면 상당한 강자라고 하던데.”
“무림에 대해 잘 알아요?”
“한때 손바닥에 못이 박이도록 검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무인을 꿈꿨다는 건가요?”
“네.”
“그랬군요.”
“그런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금장생은 본론을 꺼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문주와 나만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야를 보았다.
“전 나가 있겠습니다.”
천야는 밖으로 나갔다.
“제 주인께서 문주께 일을 맡길 생각이에요. 물론 문주가 허락해야 하겠지만요.”
“장의사에게 맡길 일이라고 해 봐야 장례밖에 없는데…….”
“제강도 하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시체를 운구하는 일입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나머지는 함께 가야 들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요?”
수어린이 물었다.
“‘고객의 요구는 어명처럼’이 저희 가게의 철칙입니다.”
“호호! 좋군요. 그럼 바로 가도록 하죠.”
수어린은 방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에는 수어린이 타고 온 마차가 서 있었다.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였는데, 짐마차처럼 보였다.
마차 내부도 다르지 않았다. 딱딱한 나무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그것도 원래부터 달려 있던 게 아니고 이번 일에 사용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듯했다.
“출발해요.”
자리에 앉은 수어린은 전면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마부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마차는 곧 출발했다.
“죽은 사람은 엉덩이나 등이 배겨도 괜찮겠죠?”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바닥의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수어린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전면만 바라보았다.
‘돌부처네.’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마차 벽에 등을 기댔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를 달린 마차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금장생은 마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수어린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마차는 창문도 열지 않고 휘장을 내린 채 달려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물어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굳이 말을 걸 이유가 없었다.
‘엄청 부자네.’
엉덩이에 전해져 오는 진동은 바닥의 상태를 알려 준다.
그런데 지금은 흙바닥을 가는 것과 달랐다. 딱딱한 땅, 즉 돌 종류가 깔린 곳을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원에 벽돌을 깔아 비가 오는 날에도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는 집이라면 부자밖에 없다. 그것도 상당한 부자.
게다가 집도 엄청나게 넓다.
대문을 지난 지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계속 달리고 있다.
지금까지 달려 온 거리는 삼백 장.
이 정도면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대부호라고 해야 할 듯했다.
‘낙양에서 이 정도 부자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 후로도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문밖은 실내였다.
“철저하군요.”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며 말했다.
“이해해 주세요.”
“기분 나빠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안에는 선객이 와 있었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네 명이 앉아 있었는데 두 명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장상문 문주 장귀 이추혼과 천당사 사주 천귀 구육상이었다.
“문주도 오셨군요.”
“어서 오시오.”
이추혼과 구육상은 금장생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아무래도 고객께서 먼저 시험을 볼 모양이군요.”
금장생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추혼과 구육상 옆에도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무인이 앉아 있었다.
금장생은 빈자리로 가 앉았다.
그와 수어린이 앉자 문이 열리고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나왔다.
“저는 석관영입니다.”
사내는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금장생은 이추혼을 보며 아는 사람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이추혼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먼저 이걸 받으십시오.”
석관영은 각 탁자에 봉투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일행은 의아한 얼굴로 석관영을 보았다.
아직 이곳으로 부른 이유에 대해 듣지를 못했던 것이다.
“방금 세 분께 나눠 드린 봉투 안에는 지도와 초상화가 한 장씩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도에 나와 있는 장소로 가서 초상화 속 인물을 발굴한 다음 제강하여 이곳으로 데려오면 됩니다.”
“금액은 얼맙니까?”
이추혼이 물었다.
“이번 일은 일종의 시험입니다. 비용은 이천 냥이고, 가장 뛰어난 점수를 얻은 분은 이십만 냥짜리 일을 맡게 될 겁니다.”
“지금 이십만 냥이라고 하셨습니까?”
이추혼이 물었다.
그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평생을 이 바닥에서 일했지만 이십만 냥짜리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십만 냥짜리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십만 냥이라니.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렇습니다.”
석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군요.”
구육상 또한 이추혼과 마찬가지였다. 이십만 냥이란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흠!”
하지만 금장생은 달랐다.
얼마 전 사기를 한번 당한 탓에 그런 듯, 석관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자신은 몰라도 이추혼이나 구육상은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시험한다는 건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금장생의 내심을 눈치챈 듯 석관영이 물었다.
“이런 일의 계약금은 보통 절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금장생은 슬쩍 떠보았다.
“계약금이 아니라 일종의 시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석관영은 받아쳤다.
“우리 셋 중 한 명만 선택하겠다고 하였으면 그게 바로 계약 조건이 되는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잘못 생각한 겁니까?”
석관영은 할 말이 없었다.
금장생의 말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일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면 두 일은 별도의 건수가 아니라 하나로 봐야 한다. 따라서 계약금은 총금액인 이십만 냥에서 책정돼야 한다.
“그래서 이번 일을 못 하시겠다는 겁니까?”
석관영이 할 수 있는 건 갑의 직위를 내세워 금장생의 입을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못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약금이 너무 적다는 걸 지적했을 뿐입니다.”
“이번 일은 처음 말씀드린 대로 시험으로만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석관영은 못을 박았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일은 언제 시작합니까?”
“출발 날짜는 알아서 정하십시오. 단,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직원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저 문 밖으로 나가십시오.”
석관영은 출입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꾼을 데리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겠군요.”
금장생은 다시 물었다.
“도사를 한 명 데리고 가는 건 허락됩니다.”
“둘이서 간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나머지 인원은 우리 측에서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여러분을 데리러 간 분입니다.”
“그럼 이 지도는 왜 준 거요?”
이번에는 이추혼이 지도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안내인까지 댈 정도면 굳이 지도를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지도는 만일에 대한 대비일 뿐, 가는 길 안내는 우리 측 안내자가 할 겁니다.”
“그렇군요.”
이추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하실 분은 나가실 때 돈을 수령해 가시면 됩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돈을 받는 순간 계약은 성립되며 중간에 그만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만일 돈을 수령하고도 계약을 파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여러분은 집에서는 최고의 가장이고 남편이겠지만 우리가 판단한 가치는 이천 냥을 넘지 않습니다.”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석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낙장불입이란 말인데…….”
“그래서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겁니다. 그럼.”
석관영은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금장생은 지도를 펼쳐 보았다.
지도에는 글이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목표 지점으로 보이는 곳이 붉게 표시가 돼 있을 뿐이었다.
“아십니까?”
금장생은 수어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가 알고 싶은 건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였다.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그리고 나도 잘 몰라요.”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흠!”
그는 지도를 한쪽 방향으로 돌려 보았다.
지도가 분명한데 어느 쪽으로 봐야 똑바로 보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지도를 집어넣고 이번에는 초상화를 펼쳤다.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초상화의 주인은 노인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졌는데 눈은 커다랗고 코는 오뚝했다.
“중원인 맞습니까?”
금장생은 초상화를 수어린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맞지 않을까요?”
“모른다는 말로 받아들여야겠군요.”
“네.”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함께 갈 건가요?”
“아뇨.”
수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혹시 말 한 필 빌릴 수 있을까요?”
“말은 왜…….”
“돌아갈 때 타고 가려고요.”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돌아가는 마차는 내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수어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금장생은 포권을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그는 이천 냥을 받아 들고 망루로 향했다.
망루에서는 천야, 도패, 양대곤, 오보추가 기다리고 있었다.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럼 얼마짜리인지라도 알려 주십시오.”
“이번 건은 이천 냥짜립니다.”
“일상적인 금액인데…….”
천야는 말끝을 흐렸다.
이천 냥은 어느 정도 부자라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 정도 돈을 주고 일을 시키면서 비밀 운운하는 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일은 다음 일을 위한 일종의 시험입니다. 정말 큰 건은 이번 일이 끝난 훕니다.”
“그건 얼마짜립니까?”
도패가 물었다.
“이번 일의 백 뱁니다.”
“이, 이십만 냥이란 말입니까?”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바닥에 뛰어든 지 오십 년이 넘었지만 한 건에 이십만 냥 보수는 처음이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상문이나 천당사는…….”
“그들도 참석합니다.”
“진짜 시험이군요.”
“네. 이십만 냥짜리 일은 세 곳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과 체결하겠다고 합니다.”
“평가 기준 같은 건 나왔습니까?”
도패가 물었다.
“없습니다.”
“비슷한 실력이라면 장주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하겠다는 뜻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정체도 모르는 자들의 일이고 비밀 유지가 우선이라 찜찜한 감이 없진 않지만, 이십만 냥이라는 거금이 걸렸는데 포기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아무튼 내일부터 출장이니까 망루 일은 네 분이 상의해서 처리해 주십시오.”
“망루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청명진인은…….”
“청명진인은 누굽니까?”
“사장님을 찾아왔던 그 머리 큰 도사가 청명진인입니다.”
“자기는 대두화상이라고 하던데요?”
“대두화상은 전에 암자에 있을 때 이름이고, 지금은 청명진인입니다.”
천야가 웃으며 말했다.
“오 부에 할 거면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절대 안 할 겁니다.”
“그럴까요?”
“청명진인은 전 문주께 보수를 이 할 오 부로 올려 주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오 부에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그럼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지요. 혹시 주변에 추천할 만한 도사 없어요?”
있다고 말하세요.
금장생은 얼른 탁자 위에 물로 글을 썼다.
“괜찮은 도사를 알고 있습니다.”
천야는 금장생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하겠네, 내가 한다고!”
문이 벌컥 열리고 대두화상, 아니 청명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두화상.”
금장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