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5)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금장생이 정신을 차린 건 반 시진 후였다.
물론 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으! 제길!”
금장생은 눈을 떴다.
바로 옆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금장생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귀신.
“……!”
금장생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있는 자를 보았다.
―귀신 맞아.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귀신 맞다니까!
“나무 관세음보살. 이 세상에 귀신은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귀신이라면 이 녀석을 보면 도망가야 합니다.”
금장생은 등 쪽에 넣어 둔 혈라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억!
사내는 비명과 함께 훌쩍 물러났다.
“마, 맙소사!”
금장생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혈라에 반응하는 걸 보면 귀신이 분명했다.
―귀신 맞아. 그러니까 제발 좀 믿어 주라.
“이런 젠장!”
금장생은 게거품을 게워 내며 풀썩 쓰러졌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한 식경 후였다.
자신을 귀신이라고 한 자는 일 장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아 금장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거기 있는 겁니까?”
처음보다 많이 안정이 된 듯 보였지만 금장생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그것 때문에.
귀신은 금장생 앞에 있는 혈라를 가리켰다.
“이게 무섭습니까?”
금장생은 혈라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귀신은 움찔했다.
―응.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게 내게 있으면 옆으로 못 오는 겁니까?”
―그것뿐만이 아냐.
“그럼?”
―네게는 우리가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물건이 여러 개 있어.
“그러니까 결론은 내 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거네요?”
―맞아.
“그나마 안심이네요.”
금장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귀신을 보게 됐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귀신이 다가오지 못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가만…….”
금장생은 급하게 천마구유이혼대법이 적힌 비급을 펼쳤다.
그리고 해강비전을 완벽하게 익히고 나면 특수한 능력이 생긴다.
“이거였어.”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아래쪽에는 한번 생긴 능력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해강비전을 익힌 부작용이 바로 귀신을 보는 눈인 귀안鬼眼을 얻는 거였다.
“당신을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몰라. 어?
귀신의 눈이 커졌다.
“저건?”
금장생도 귀신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귀신의 뒤를 보았다.
마치 꺼져 가던 촛불이 다시 커지는 것처럼 귀신 뒤편 공간이 천천히 밝아졌다. 그리고 통로처럼 보이는 것이 생겨났다.
―갈 시간이 된 모양이다.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저승이지 어디겠어. 아무튼 고마워.
“내가 해 준 게 있습니까?”
―내 마지막 소원이 살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거였거든.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해서 떠나지 못했던 겁니까?”
―응.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군요.”
―그런 걸 소원으로 빈다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냐?
“네.”
―친구가 많은 너희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평생 동안 친구 한 명도 갖지 못하는 게 얼마나 외로운 건지 말이다.
“친구가 없었나요?”
―그랬다.
“그럼 장례식 때는?”
―그때도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연락을 받았는데도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마누라는 날짜도 지키지 않고 내가 죽은 다음 날 이곳으로 와서 묻어 버렸지.
“그랬군요.”
―고맙다.
귀신의 몸이 빛을 향해 날아갔다.
“극락왕생을 빌겠습니다.”
금장생은 멀어지는 귀신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리고 조금 전 해강시킨 시체를 걸머지고 지하실을 나왔다.
“제길, 여긴 완전 귀신 천지네.”
황상 곳곳에서 귀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귀신, 어른 귀신, 노인 귀신, 처녀 귀신 등 다양했다.
몇몇 귀신과 눈이 마주쳤지만 금장생은 모른 척했다.
―내가 보여?
귀신이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금장생은 못 들은 척했다.
―보이는 거 알아.
‘귀신같은 놈!’
금장생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그는 공동묘지에 올랐다.
공동묘지에는 황상보다 귀신이 더 많았다. 황상의 귀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등장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나마 좀 낫네.”
금장생은 시체를 파냈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구덩이 안에 집어넣고 흙으로 덮었다.
―뭐 해?
호기심 많은 귀신인 듯, 무덤을 만들고 있는 금장생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지랖은…….”
금장생은 손을 탈탈 털고는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온 금장생은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을 열려던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탁자로 시선을 주었다.
탁자 위 찻잔 옆에는 강시에서 나온 책과 패가 놓여 있었다. 그는 탁자 앞으로 갔다.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금장생은 책과 패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해강을 하지 않은 동시는 망산에서 가장 음기가 강한 곳에 묻어 두었다. 이론대로라면 동시는 강시나 혹은 활시가 될 것이다.
“마전魔典이라…….”
금장생은 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적기에게 갑골문자를 모른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갑골문자를 배웠다. 그래서 양피지 책 제목이 마전이라는 것도 금세 알아보았다.
패에 새겨진 글자는 마가魔家였다.
“흠!”
그는 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공짜로 얻은 거라고 해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 * *
회색 무복을 걸친 자 열 명이 낙하 선착장에서 내렸다.
그들 중에는 여자 두 명이 포함돼 있었다. 두 여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여기가 낙양입니다.”
사내 중 한 명이 키 큰 여자를 보며 말했다.
“그분이 이곳에 계신다고 했느냐?”
여자가 물었다.
“네.”
“보고를 받은 게 언제냐?”
“한 달 전입니다.”
“오래됐구나.”
여자의 목소리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떠나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는 이곳에 계실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그분은 강합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서둘러라.”
“바로 마차를 구해 오겠습니다.”
사내는 동료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마차가 도착했다. 두 여자는 곧바로 마차에 올랐다.
“가자!”
사내가 나직하게 소리쳤다.
선착장을 떠난 마차가 멈춘 곳은 커다란 저택 앞이었다.
앞으로 나간 사내는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와 보는 사람은 없었다.
“들어가서 문을 열어라!”
사내가 소리쳤다.
“존!”
대답과 함께 몇 명이 담을 넘어갔다.
잠시 후 대문이 열렸다.
마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은 조용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았다.
“확인하라!”
사내는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돌아온 건 일각 후였다.
“안에 시체가 있습니다.”
“어떤 시체더냐?”
마차 문이 벌컥 열리고 키 큰 여자가 나오며 물었다.
“하인들로 보이는 자들입니다.”
“안내해라.”
“이쪽입니다.”
사내는 여자를 안내했다.
시체는 가장 안쪽에 있었다. 오래된 시체인 듯 악취가 진동했다.
지독한 냄새가 났음에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보다 먼저 명령을 내리던 자가 시체를 살폈다.
“응?”
사내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왜 그러느냐?”
여자가 물었다.
“적수赤手 흔적입니다.”
사내는 시체의 심장을 가리켰다. 시체의 심장에는 손바닥 형태의 장인이 남아 있었다.
여자는 시체 앞으로 갔다. 그리고 자세하게 살폈다.
“음!”
여자는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후마마!”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부축했다.
“아니다. 나는 괜찮다.”
여자는 손을 저었다. 그리고 사내에게 물었다.
“다른 시체는 어떠냐?”
“그들에게서도 적수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하면 여기 있는 이들이 그분을 공격했다는 거구나.”
“이 상황을 놓고 볼 땐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체들 중 아는 얼굴 있느냐?”
여자는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없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암습하던 자들을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쫓겼거나 아니면 돌아올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지금부터 흩어져서 그분의 흔적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후마마!”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 * *
금장생은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키는 보통 사람보다 작지만 머리는 평균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컸다.
‘대두!’
사내를 본 첫 느낌이었다.
‘바늘귀처럼 작은 눈, 산처럼 높은 코, 작은 입. 넓은 어깨.’
도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도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늘 그렇듯 금장생의 말투는 정중했다.
“대두네.”
“대두요?”
“뒤에 화상은 붙여도 되고 붙이지 않아도 상관없네.”
“화상이면 승려를 일컫는 말 아닙니까?”
“삼십 년 전에 쓰던 건데 버리기 아까워서 계속 쓰고 있다네.”
“삼십 년 전에 쓰던 거라면 그때는 중이었단 말씀입니까?”
“대가리 회전이 빠르다는 말 자주 듣지 않는가?”
“전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취직하러 왔네.”
“취직요?”
“도사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면접을 보러 오는 시간이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금장생은 대두 사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사는 강시를 운송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부적을 사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돌발 상황이 일어나거나 부적이 효험이 없을 때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강시를 운구하는 자는 반드시 도사를 대동한다.
하지만 곧 자정이다. 취업할 사람이 사장과 면접할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전 문주와도 함께 일했네.”
“그랬군요. 그런데 보수는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운송비의 이 할을 받았네.”
“그렇게나 많이 받았습니까?”
“팔 할을 받은 문주에 비하면 내가 받은 이 할은 아무것도 아니지.”
“강시를 운송하는 데 도사가 굳이 없어도 된다는 걸 아십니까?”
“시체가 훼손되면 두 배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아는가?”
“…….”
금장생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운송 중 시체를 훼손하면 두 배로 보상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바로 그 때문에 강시는 대표가 아니면 운구가 불가능한 거라네.”
대두화상은 승자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 부로 하지요.”
“엥?”
대두화상의 눈이 더욱 작아져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그는 금장생이 수락할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 이 할은 최저가일 뿐 금장생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삼 할까지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기는커녕 오히려 사분의 일로 줄이겠단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과거의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함께 일했으면 좋겠지만 맞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겠죠.”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건가?”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는 삼 부를 제시할 참입니다.”
“끙!”
대두화상은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그만…….”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 보게……!”
대두화상은 다급한 얼굴로 금장생을 부르며 일어났다.
“손님을 만나고 올 때까지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싫으시다면 다른 사람을 구해 봐야 하니까요. 그럼.”
금장생은 묵례를 하고 방에서 나갔다.
문을 닫는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얹혔다.
“협상에서는 절대 끌려가지 마라. 특히 임금 협상은 한번 밀리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무조건 깎되,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은 좀 더 생각해 줘라.”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