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3화 (23/524)

황금가 (23)

귀신을 보는 눈, 귀안

“억!”

“헉!”

유적기와 금장생은 질겁했다. 설마 시체가 그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금장생은 유적기를 안고 왼편으로 몸을 굴렸다.

슈악!

두 사람의 신형이 넘어진 순간 강시의 두 손이 조금 전 두 사람이 서 있던 허공을 갈랐다.

한 바퀴를 구른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났다.

유적기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부수면 안 됩니다, 형님!”

금장생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크아아!”

시체는 다시 괴성을 내지르며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거 강시 맞아?”

유적기는 금장생의 손을 잡고 피하며 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걸 보면 강시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 강시가 아니라 동십니다.”

“나도 강시비전을 읽었는데 동시는 저렇게 강하지 않아!”

유적기는 다시 피하며 소리쳤다.

“강시비전에 나와 있는 방법 그대로 제강한 거니까 동시 맞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부적이 있어야 합니다.”

“부적이라면…….”

“제 옷 주머니에 들어 있습니다.”

“나보고 가져오라고?”

“네.”

“저 녀석은?”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어떻게…….”

휙!

유적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장생이 몸을 날렸다.

강시 앞에 선 그는 강시의 두 팔을 잡고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몸을 밀착했다.

“크앙!”

강시는 금장생의 목을 물려고 입을 벌렸다. 금장생은 상체를 이리저리 틀어 강시의 입을 피했다.

퍼억!

느닷없이 강시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금장생이 머리로 강시의 얼굴을 박아 버린 거였다.

“입 냄새가 너무 심합니다.”

“저런 괴물 같은 녀석.”

유적기는 피식 웃었다.

둘 다 알몸 상태라 누가 강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뭐 하세요!”

“알았다.”

유적기는 위로 뛰어올라 갔다.

부적은 금장생의 옷 주머니에서 삐죽 나와 있었다. 그걸 하나 뽑아 들고 아래로 내달렸다.

퍼억! 퍼억!

지하실에서는 여전히 금장생과 강시가 머리로 싸우고 있었다.

유적기는 금장생 옆으로 몸을 날려 갔다.

“여기 부적.”

그리고 노란 부적을 내밀었다.

“이마에 붙여 주세요.”

“그냥 붙이면 붙어?”

“일단 이 녀석을 진정시킨 후에 붙이면 됩니다.”

“어떻게 진정시킨다는 거지?”

“이렇게요.”

금장생은 힘껏 박치기를 했다.

퍼억!

“크앙!”

괴성과 함께 강시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유적기는 재빨리 강시의 이마에 부적을 댔다.

사실 부적을 대면서도 정말로 붙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부적을 이마에 대자 거짓말처럼 강시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거 놔도 돼?”

유적기는 금장생을 돌아보며 물었다.

“책에 놔도 된다고 나와 있던데요?”

“그래서 놓아도 된다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일단 한번 놔 보세요.”

“그러다 떨어지면?”

“제가 이 녀석을 잡고 있을게요.”

“강시를 놓으면 안 돼.”

자신이 무림십패의 일인이란 사실을 잊은 듯 유적기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손을 완전히 뗐음에도 불구하고 부적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강시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이네.”

유적기는 활짝 웃었다.

“그러네요.”

금장생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축하해.”

유적기는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세워 놓고 보니까 저 강시도 훌륭한 몸매의 소유자네?”

몸매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또한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네요. 잘생겼지, 조각 같은 몸매를 가졌지, 저 정도 조건이면 물건이라도 왜소해야 하는데 다른 사내들 기 팍팍 꺾이게 대물이지. 완전 신의 자식이네요.”

“사내들은 물건이 큰 걸 보면 기가 죽어?”

“여자들은 자기보다 더 큰 가슴을 보면 위축되지 않나요?”

“나는 그런 적이 없어서…….”

“그거야 형님은 신의 자식이라서 그런 거죠.”

“나도 신의 자식에 들어가는 거냐?”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럼 너도 신의 자식에 들어야 하는 거 아냐?”

“제가 저 녀석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데요?”

금장생은 강시를 가리켰다.

“그거.”

유적기는 금장생의 하체로 시선을 주었다.

“이거요…… 헉!”

아래로 시선을 내렸던 금장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맙소사!”

그는 화살처럼 위층으로 내달렸다.

“호호호!”

유적기의 입에서 여자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간해서는 듣기 힘든 여자 웃음소리였다.

“내가…….”

유적기도 놀란 듯 얼른 웃음을 그쳤다.

몸을 일으키는데 올라갔던 금장생이 내려왔다.

“진작 좀 말해 주면 어디 덧납니까?”

금장생은 유적기를 흘겨보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자신이 발가벗은 상태라는 걸 꿈에도 알지 못했다.

“사내 알몸을 바로 앞에서 보는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았거든.”

“혹시 변탭니까?”

“여자가 사내 옷 입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변태적인 기질이 있다고 봐야지.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유적기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성적 취향으로만 보면 나는 변태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아무튼 아줌마들은.”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아줌마라고 하는 거지?”

“어쨌거나 저보다는 많잖습니까.”

“너는 너보다 나이가 많으면 전부 아줌마냐?”

“네.”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

“저는 단순한 게 좋습니다.”

“됐어, 녀석아. 저도 내 걸 다 봤으면서 되게 난리네.”

“그때완 상황이 다르잖아요.”

“다르긴 뭐가 달라, 그때는 내가 벗었고 지금은 네가 벗었다는 것만 다를 뿐 벗었다는 것 자체는 같잖아. 그러니까 비긴 걸로 해.”

“끙!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혈종을 빼 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흔들었다.

딸랑!

홱!

혈종 소리가 들려오자 강시는 고개를 돌렸다.

“이리 와!”

금장생이 나직하게 말했다.

퉁! 퉁! 퉁!

그러자 강시는 두 발로 뛰어 금장생 앞으로 왔다.

“그래, 착하지.”

금장생은 앞까지 다가온 강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기로 가서 누워.”

그리고 단을 가리켰다.

강시는 다시 퉁퉁 뛰어 단으로 가서는 누웠다.

“좋아.”

금장생은 활짝 웃었다.

아직 해강은 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완벽하다.

“해강은?”

금장생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 듯 유적기가 물었다.

“해강은 이 녀석 말고 다른 녀석으로 할 겁니다.”

“왜?”

“한번 해강을 하면 다시 제강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한번 강시가 됐다가 해강된 시체는 부패 속도가 더 빠릅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 시체를 보존하겠다는 거냐?”

“이건 예감인데 대물 저 녀석은 왠지 썩게 버려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잘못하면 네게 화가 될 수도 있다.”

“잘되면 복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냥 두겠다?”

“그보다는 만일 이 사람이 믿었던 누군가에게 당한 거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맙다.

“뭐라고요?”

금장생은 유적기를 보았다.

“무슨 소리야?”

“방금 고맙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유적기는 고개를 저었다.

“또 환청이 시작됐나 보네.”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환청이라니 무슨 말이냐?”

유적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이상한 소리라는 건…….”

“목소립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게 전음을 보낸 것처럼 머릿속으로만 들려오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처한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과 맞아떨어져?”

“이를테면 방금 제가 저 녀석의 억울함을 풀어 줘야 한다는 의미의 말을 했잖습니까.”

“그런데?”

“그럼 ‘고맙다!’라는 환청이 들린다는 겁니다.”

“정말 누군가가 네게 전음을 보낸 거라고 생각해?”

“여기 있는 사람이라고는 형님뿐이잖습니까. 그런데 형님은 제게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환청이라는 거구나.”

“네.”

“잠을 못 자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겁니다. 환청도 악몽과 함께 시작된 것 같으니까요. 악몽이 끝나면 환청도 같이 멈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

“개업이나 뭐다 해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거지 보약 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만 나가죠.”

금장생은 전날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책과 패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러자꾸나.”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집무실로 들어가자 천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천야는 인사를 했다.

“푹 쉬었습니다. 다들 출근했나요?”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들어온 거 있습니까?”

“총 다섯 건 들어왔습니다.”

“다섯 건씩이나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천야를 보았다.

“이게 다 유 대협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도움이 됐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겠군요.”

유적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게요?”

금장생은 유적기를 보았다.

“푹 쉬었으니까 이제 가야지. 할 일도 있고.”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설사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형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나도 그래.”

유적기는 웃으며 금장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식사는 하고 가실 거죠?”

“아냐, 지금 갈 거야.”

“지금요?”

“이별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어. 아무튼 성공하길 빌게. 그리고 내게 빚진 거 있지 마.”

“빚진 거요?”

“나중에 내가 부탁하면 목숨 걸고 들어주겠다고 한 약속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 약속은 뼈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거라도 있어?”

“천수십병은 찾았습니까?”

문득 궁금했다.

“아니.”

유적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안에는 천수십병이 없었어.”

“누군가가 먼저 가져갔다는 건가요?”

“응. 그것도 이백 년 전에.”

“그랬군요.”

“그럼 잘 있어.”

유적기는 발을 가볍게 굴렀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십 장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파앗!

그리고 허공을 박차고 나아갔다.

“안녕히 가십시오!”

금장생은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엄청난 무공이군요.”

허공답보 신법을 아무렇지 않게 펼쳐 사라진 유적기의 무공에 천야는 혀를 내둘렀다.

“무림에서 가장 강한 열 명 중 한 사람인데 저 정도는 돼야겠지요. 아무튼 유 대협 덕분에 자리는 빨리 잡을 것 같은데 천야 생각은 어때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제부턴 나도 본격적으로 일을 배워야겠네요.”

“사장님은 장의일보다 제강술을 먼저 배우십시오.”

“제강술요?”

“조만간 큰 건이 하나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래요?”

“우리뿐만 아니라 장상문과 천당사도 노리고 있는 일입니다.”

“그럼 열심히 제강술을 익혀야겠군요.”

“해강은 몰라도 제강은 가능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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