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2)
“휴우!”
그의 입에서 한도의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바람만 불어닥쳤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의 손이 머물러 있는 곳은 강시의 머리였다. 머리에는 주문을 쓰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이혼대법을 펼치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자, 이제…….”
한데 모인 검지와 중지가 시체의 미간으로 향했다.
순간 유적기는 미간으로 노란 광채가 스며들어 가는 걸 보았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시체와 금장생을 보았다.
금장생은 시체 옆으로 내려와 섰다. 그 역시 유적기와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채 시체를 지켜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강시비전은 물론이고 천마구유이혼대법까지 거의 완성한 상태다. 그 상태에서 주문을 적었기에 금장생은 제강을 확신했다.
하지만 시체는 그대로였다.
‘실팬가…….’
“크크크!”
바로 그때 어디선가 괴소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유적기를 보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난 여자다.”
유적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 녀석밖에 없군요.”
금장생은 품속에서 노란 부적 하나를 꺼냈다. 동시를 제어하기 위해 만든 부적이었다. 그리고 혈종의 소리가 나도록 종추를 돌렸다.
그리고 시체를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번쩍!
시체의 눈이 열리더니 녹광이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벌떡!
금장생이 주먹을 쥐는 순간 시체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금장생과 유적기를 노려보았다.
“헉!”
유적기는 질겁한 얼굴로 금장생을 향해 뛰어가더니 팔을 잡았다.
하지만 금장생은 강시를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상체만이 아니라 완전히 몸을 일으켜야 제강이 되기 때문이었다.
“크아악!”
강시는 괴성을 내질렀다.
“네가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건 아니지?”
이제야 강시가 귀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적기가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탭니다.”
“그럼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그래야 하는데…….”
“크아아아!”
강시는 또다시 괴성을 내지르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다가 털썩 드러누웠다.
“제길!”
금장생 역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제강은 실패다.
몸속으로 스며들었던 주문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건 저절로 해강이 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유적기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술에 배가 부르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되는데.”
“시체는 첫술이지만 주문은 수천 번도 더 썼습니다.”
“수천 번도 더 썼다고?”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실전에 적용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실패하고 말았네요.”
“그럼 이렇게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실패한 원인을 찾아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겠지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을 떠 와 시체의 몸에 묻어 있는 영사액을 전부 닦아 냈다. 그리고 거적을 가져와 덮고 지하실을 나왔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가장 먼저 강시비전을 다시 들춰 보았다.
이미 머릿속에 완벽하게 들어 있는 내용이지만 잘못된 부분이 없었는지 다시 확인했다. 글자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그를 지켜보던 유적기는 잔다며 그의 방으로 갔다.
금장생은 강시비전을 다 읽고 나서 천마구유이혼대법을 읽었다. 그 두 권을 다 읽고 나자 주위가 환해졌다.
“밤을 꼬박 새운 게냐?”
이른 아침 금장생의 집무실로 들어온 유적기가 물었다.
“요새는 모아 두었다가 한 번에 자고 있습니다.”
악몽 때문이었다.
여전히 밤새 쫓겨 다니는 악몽을 꾸고 있고,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데도 공포는 여전하다. 그나마 며칠을 새우다가 몰아서 자면 좀 나았다.
“이 일이 너하고 맞지 않는 건 아니냐?”
“적성은 놀 때 따지는 거지 돈 벌 때는 따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직업이 되는 순간 무거운 짐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널 보면 돈을 벌기도 전에 말라 죽을 것 같구나.”
“적응이 되면 점점 괜찮아지겠지요.”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분야가 너무 다르구나.”
무공을 익히는 거라면 도움을 주겠지만, 제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격려를 해 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해야지요.”
금장생은 벌떡 일어났다.
“다른 걸 하기 전에 먼저 씻는 게 어떠냐?”
“냄새나요?”
금장생은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어젯밤에 땀으로 목욕을 했다는 걸 잊었느냐?”
“진동을 한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문 앞에 옷을 벗어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대화 상대가 사라지자 유적기는 할 일이 없었다. 무엇으로 무료함을 달래 볼까 하던 차에 강시비전이 눈에 들어왔다.
금장생이 두고 간 강시비전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이거 흥미롭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책을 읽어 나갔다.
전에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그땐 대충 읽었다. 그런데 집중하자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처음 대하는 분야라 그런지 상당히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강시의 기는 거꾸로 흐른다. 따라서 주문 또한 역으로 적어야 한다.”
유적기는 한 부분을 소리 내 읽었다.
문득 금장생이 실패한 부분이 이곳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때로는 소리 내 읽는 것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걸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유적기는 그 부분을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읽었다.
“뭐라고 했어요?”
그때 욕실 안에서 금장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적기는 대답 대신 방금 읽었던 부분을 크게 읽어 주었다.
갑자기 욕실 안이 조용해졌다.
“한 번 더 읽어 줘?”
유적기는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 대답이 없었다.
“저기…….”
“바로 그거야!”
벌컥!
문이 열리고 금장생이 뛰어나왔다.
“어머!”
유적기는 나직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밖으로 나온 금장생은 알몸이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을 잡아챈 건 하체에서 덜렁거리는 성기였다.
간밤에 보았던 시체의 성기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 자식!”
유적기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금장생은 자신이 옷을 벗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그는 한편 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인체도 두 장이 그려져 있었는데 하나는 앞면이고 하나는 뒷면이었다. 금장생이 선 곳은 뒷면 앞이었다.
금장생 오른편에는 붓과 붉은 액체가 든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금장생은 붓을 집어 들고 붉은 액체를 찍었다. 그리고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처음 주문을 쓴 위치는 왼 발바닥이었다.
그림의 왼 다리는 빠르게 주문으로 채워졌다.
“어젯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유적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보기에 주문은 간밤에 썼던 것과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또다시 금장생의 몸 주위에 영기에 의한 역장이 형성되었다. 금장생은 거의 신이 들린 것처럼 주문을 적어 나갔다.
“수천 번도 더 썼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네.”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단한 집중력이고.”
금장생이 쓰는 주문은 수백 자에 달한다. 그것들을 전부 다 적는 동안에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득 유적기의 시선이 금장생의 몸에 머물렀다.
장포를 입고 있을 때에는 약간 왜소한 느낌이 나는 몸이었다. 그런데 벗은 상태의 몸은 상당히 탄탄하다.
아니, 탄탄하다기보다는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는 게 맞을 듯하다. 창이나 검으로 찌르면 끝이 구부러지거나 튕겨 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흉터가 보였다. 흉터는 어느 한 부위에 집중돼 있지 않고 온몸 곳곳에 퍼져 있었다.
‘요혈은 다 피했네.’
그가 무인이 아니라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특이하게도 금장생의 몸에 나 있는 흉터는 치명적인 부분을 조금씩 비껴서 나 있었다.
‘만일 무인이라면 동귀어진을 주로 사용하는 자였겠네.’
오로지 무인의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가 아는 한 동귀어진 수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인은 자객이다.
물론 자객은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이용해 표적을 없앤다. 그들이 동귀어진 수법을 사용하는 건 기습에 실패한 다음이다.
정면 대결로는 표적을 제거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촉박하기 때문에 살을 주고 뼈를 받아 내는 동귀어진을 사용한다. 즉, 상대에게 요혈을 내주고 자신은 목숨을 취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때 요혈을 완벽하게 내주지는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몸을 틀어 한 치 혹은 두 치 정도 비껴 맞는다.
마치 금장생의 흉터처럼.
그러면 부상은 입겠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상대는 죽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유적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나저나 몸은 내가 본 사내들 중 최고네.”
유적기는 싱긋 웃었다.
벽을 다 채우고 난 금장생은 나무 인형에 주문을 적고 있다.
“됐습니다, 형님!”
금장생은 붓을 던지듯 내려놓고 지하실로 내달렸다. 여전히 알몸이었지만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옷을…….”
유적기가 불렀지만 금장생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진 후였다.
“아무튼!”
유적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금장생을 따라나섰다.
지하실로 들어간 금장생은 시체 앞으로 갔다.
시체는 간밤에 둔 상태 그대로였다.
그는 시체를 들어 뒤집었다. 그리고 영사액을 묻힌 붓을 들고 시체 발치에 섰다.
그리고 강시비전의 제강술을 떠올렸다.
제강술이 절정에 오르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돌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익숙해진 그 기운은 바로 영기다.
“시작한다!”
금장생은 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주문을 쓰는 순서는 간밤과 같았다. 왼 다리를 먼저 쓰고 오른 다리를, 왼팔을, 오른팔을 그리고 등에다 썼다.
“아!”
금장생을 지켜보던 유적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간밤과 다른 점을 이제야 찾아낸 것이다.
그건 바로 주문을 구성하는 각 문양의 위치였다. 금장생은 간밤과 반대로 주문을 쓰고 있었다.
‘스며드는 속도도 더 빨라졌고.’
더하여 또 달라진 점은 주문이 시체의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는 것이다.
그사이 금장생은 시체를 뒤집어 전면도 주문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전날처럼 올라타서 머리 각 부분을 양손 손가락으로 찍어 나갔다.
“영기 주입이네.”
강시비전에서는 저 작업을 영기 주입이라고 하였고 제강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휙!
노랗게 물든 금장생의 손가락이 시체의 미간을 찍었다.
순간 시체가 움찔했다.
“휴우!”
금장생은 한숨과 함께 내려왔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신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멋지네.”
유적기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땀으로 흠뻑 젖은 사내 몸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매력을 풍겼다.
“네?”
금장생은 유적기를 돌아보았다.
“아,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성공할 것…….”
파앗!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체의 눈에서 녹광이 쏘아져 나왔다.
허공을 뚫던 녹광은 금세 사라졌다.
벌떡!
그리고 전날처럼 시체는 상체를 세웠다. 이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꿀꺽!
금장생은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는 어제와 같은 상황이다. 여기서 두 다리로 일어서야 제강이 완성된다.
“성공이나 실패냐…….”
“크아앙!”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체가 벌떡 일어나더니 금장생과 유적기를 향해 쏘아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