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21화 (21/524)

황금가 (21)

제강을 하다

“끙! 제길!”

금장생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지금 유적기와 함께 망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어깨에는 괭이 한 자루가 올려져 있었다.

“문주라는 녀석이 잘하는 짓이다.”

유적기는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한밤중에 금장생과 함께 망산을 오르는 이유는 시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가 시체를 필요로 하는 건 제강술 때문이었다.

책을 통해 제강술을 익히고 나무 인형에 주문을 적기는 했지만 실습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시체를 구해 제강술을 연습할 참이었다.

시체도 아무 시체나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고가 없고, 가급적 오래되지 않은 시체라야 했다.

“제가 조금만 움직이면 되는데 굳이 돈을 줘 가면서 사람을 부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사장이 직원에게 허점을 보여선 안 되는 겁니다.”

“무슨 허점을 보인다는 거냐?”

“사장의 기본은 제강술인데 저는 이론밖에 모르는 상태잖습니까. 직원들 몰래 익혀 놔야지요. 다 왔습니다.”

금장생은 바로 앞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봉토한 지 얼마 안 되는 무덤이 있었다.

“형님은 망이나 좀 봐 주십시오.”

“이런 으스스한 곳에 누가 온다고 망을 봐.”

유적기는 팔 상박을 슥슥 문질렀다.

“그럼 파겠습니다.”

금장생은 흙을 걷어 냈다. 그의 동작이 빨라지고, 잠시 후 거적이 나타났다.

“연고가 없는 시체라 관도 쓰지 않은 모양이네요.”

“네 논리에 따르면 관도 돈인데 낭비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이거나 좀 받아 주십시오.”

금장생은 괭이를 유적기에게 건네고 시체는 거적째 걸머졌다. 아직 부패가 진행되기 전인 듯 악취는 나지 않았다.

“가시죠.”

금장생은 아래로 내려갔다.

“살다 살다 시체 도둑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유적기는 투덜거리며 금장생을 따랐다.

“훔치는 건 제가 했고 형님은 망만 봤죠.”

“그래도 공범인 건 변하지 않아.”

“그렇긴 하죠.”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황상으로 돌아온 그와 유적기가 들어간 곳은 본관 지하였다. 그곳은 황상 문주가 연공하는 연공관이었다.

금장생은 시체를 단 위에 올려놓고 거적을 벗겼다. 시체는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사내는 죽기 전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염도 하지 바로 않고 묻어 버린 모양이었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느냐?”

“낡기는 했지만 최고급 천으로 지은 옷입니다.”

금장생은 시체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내 눈에는 넝마로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천을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내의 가슴에는 희미하게 문양이 남아 있습니다.”

“문양?”

유적기는 눈에 내공을 모았다.

그러자 희미하게 보였던 문양이 좀 더 명확하게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문양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옷은 연고자를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니까 따로 보관해야 합니다.”

금장생은 사내의 옷을 벗겼다.

곧 사내의 알몸이 드러났다.

알몸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온갖 오물로 범벅이었다.

“아깝네요.”

사내를 살피던 금장생이 혀를 찼다.

“뭐가?”

“이런 대물은 흔치 않거든요.”

금장생은 사내 하체를 가리켰다.

“대물? 그러니까 크다는 말?”

“네. 그리고 모양도 아주 좋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런 물건을 가진 사내는 부인과 사이가 아주 좋다고 합니다.”

“쪼그만 게 별걸 다 알고 있네.”

유적기는 슬쩍 시체의 하체를 보았다. 그가 보기에도 시체의 물건은 컸다.

“아무리 연고자가 없다고 해도 망자에 대한 예의가 있지 이런 상태로…….”

금장생은 혀를 찼다.

그는 바로 물을 떠 와 시체를 씻겼다. 몸을 덮고 있던 오물이 씻겨 나갔다.

“사망 원인이 뭔 것 같습니까?”

금장생은 시체를 살피며 물었다.

“독毒이야.”

“어떻게 장담하죠?”

“심장을 봐. 혈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지?”

“중독 증상인가요?”

“독왕뢰毒王雷란 독에 중독되면 저런 증상이 나타난다.”

“독왕뢰면 오대절독의 하나 아닌가요?”

“잘 아는구나.”

“최고급 비단옷을 입고 오대절독 중 하나에 중독된 무인이라…… 아무래도 시체를 잘못 주워 온 것 같은데.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자가 무인이라는 건 어떻게 아느냐?”

“제가 한때 인간의 육체에 심취해 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안 사실 중 하나가 무인의 몸은 살이 쪄도 온몸의 근육이 고루 발달해 있다는 거였습니다.”

“이자의 근육이 발달해 있다는 건 어떻게…….”

“이렇게 만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숨을 쉬지 못한 상태가 지속돼 근육이 힘을 잃기는 했지만 이자는 대근육은 물론이고 소근육과 속근육까지 고도로 발달해 있습니다. 이 정도 근육이면 절대 고수급입니다. 그리고…….”

금장생은 가슴 속에서 투명한 검을 꺼냈다.

그리고 사내의 복부를 일자로 그었다.

“너?”

유적기는 깜짝 놀랐다.

금장생이 죽은 자의 몸을 갈라 버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몸의 일부가 아닙니다.”

“몸의 일부가 아니라고?”

유적기는 눈을 껌뻑였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사체라고 해도 칼로 잘리면 좌우로 벌어지고 속살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칼이 지나간 자국만 있을 뿐 속살은 나오지 않았다.

금장생은 잘린 부분으로 손을 집어넣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사내의 배 부분이 떨어져 나왔다.

“그건…….”

“살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배에 붙이고 다녔던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색이 다르잖아요.”

“색?”

유적기는 금장생이 들고 있는 것과 시체의 피부를 번갈아 보았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붙어 있을 때 전혀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떼어 놓고 보니 같은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달랐다.

“살아 있었을 때는 구분하지 못했을 겁니다.”

금장생은 물건을 뒤집었다.

안에는 책 한 권과 패 하나가 들어 있었다.

금장생은 먼저 책을 집어 들었다. 겉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금장생은 책을 유적기에게 건넸다.

책을 받아 든 유적기는 책장을 넘겼다.

“끙!”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직접 봐.”

유적기는 책을 돌려주었다.

금장생은 유적기가 펼쳐 놓은 부분으로 시선을 주었다.

“훗!”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글은 고대에 사용됐다는 갑골문으로 씌어 있었다.

“갑골문이네요.”

“갑골문을 알아?”

유적기는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

“갑골문을 이렇게 쓴다는 것 정도만 압니다.”

“피부 속에 숨길 정도면 대단한 책 같은데 아쉽네.”

유적기는 입맛을 다셨다.

“이번 기회에 갑골문 공부를 하는 건 어때요?”

“싫어. 지금 머릿속에 있는 걸 정리하는 것도 벅차.”

유적기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뭔지 아세요?”

금장생은 책과 함께 있던 패를 내밀었다.

패는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고, 원형이었다.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글이 씌어 있었지만 그 또한 갑골문이라 알 수가 없었다.

―마魔……다.

‘응?’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나?’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책과 패를 한편으로 놓았다. 시체를 훔쳐 온 본래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였다.

금장생은 한편에 두었던 붓과 붉은 액체를 가져왔다.

“그거 피는 아니겠지?”

흥미로운 얼굴로 금장생을 지켜보던 유적기가 물었다.

“영사靈砂가 주요 성분이고 거기에 몇 가지가 더 첨가됐습니다.”

“그걸로 주술을 걸면 정말로 일어나?”

“저도 처음입니다.”

금장생은 붓으로 영사액을 찍어 시체 앞에 섰다.

“시체를 뒤집어 주십시오.”

“엎드린 상태로 해 달라는 거냐?”

“네.”

“주문을 쓰는 데도 순서가 있느냐?”

“죽은 자는 반대로 해야 하거든요.”

금장생은 시체 왼다리 앞으로 가서 정신을 집중했다.

한참 동안 붉은 액체가 묻은 붓을 바라보았다.

스윽!

이윽고 붓이 움직였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글자가 생겨났다.

발바닥을 채운 붓은 다시 영사액에 담겼다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발뒤꿈치부터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대단하네.’

지켜보는 유적기의 얼굴에 이채가 어렸다.

그가 알 수 있는 글자는 없었다. 주술 문자 같기도 하고 특수한 문양 같기도 했다.

상당히 난해한 문양을 쓰는데 단 한 번의 멈칫거림도 없다. 마치 수백 번을 써 본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왼 다리를 다 채우고 나자 이번에는 오른 다리에 주문을 채웠다. 방식은 왼 다리를 적을 때와 거의 같았다. 곧 오른 다리도 붉은 글로 채워졌다.

다시 영사액을 찍은 금장생은 팔에 주문을 썼다. 먼저 왼팔에 적고 그다음에 오른팔에 적었다.

“어?”

유적기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 다리에 써 두었던 주문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장생은 주문을 쓰는 데 집중했다.

유적기는 글이 지워졌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금장생이 워낙 집중하고 있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그사이 금장생은 등에 주문을 쓰고 있었다.

“휴우!”

엉덩이까지 전부 채워지자 한숨을 내쉬며 물러났다.

붓을 내려놓고 시체를 주시했다.

잠시 후 등에 썼던 주문도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금장생은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슴과 허벅지 부분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으차!”

기합과 함께 두 팔을 들었다. 그러자 시체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 상태에서 시체를 뒤집었다.

‘저건?’

유적기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은 지금 내공을 끌어 올린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몸 주위로 역장이 형성돼 있었다.

‘영력!’

유적기는 내심 소리쳤다.

그건 바로 영기에 의해 형성된 역장이었다.

“그대 죽은 자여! 나 그대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나니, 두 발로 딛고 일어나라. 대지의 힘이 그대 몸을 지켜 줄 것이다. 두려워 마라, 죽은 자여!”

금장생은 뭔가를 중얼거리며 주문을 적어 나갔다.

앞쪽을 쓸 때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역순이었다.

우뚝!

쉬지 않고 움직이던 금장생의 손이 멈춘 곳은 바로 시체의 단전이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금장생은 한숨을 내쉬고는 붓을 뗐다.

붓을 내려놓는 그의 전신은 목욕을 하고 나온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붓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도 역시 주문은 전부 사라졌다.

“주문이 사라지는 게 정상이냐?”

유적기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되느냐?”

“이혼대법을 펼쳐야 합니다.”

금장생은 시체 위로 올라가 걸터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이혼대법을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영기는 더욱 강해졌다.

휘이익!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헉!”

유적기는 비명과 함께 내기를 끌어 올리며 잔뜩 경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