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0)
개업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왔다.
목재소와 각 용품을 사는 가게 사장들부터 시작해서 관청에 있는 이들과 경쟁업체 사람들 그리고 무관을 경영하는 무인들까지, 참석자는 무려 백오십여 명에 달했다.
연회실로 들어온 자들은 대부분 실소했는데, 그건 바로 상 위에 놓인 돼지머리와 돼지머리 바로 옆에 놓인 시주함 때문이었다.
활짝 웃는 돼지머리 코에는 금액을 알 수 없는 전표가 둘둘 말린 채 꽂혀 있고,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시주함에는 ‘대박 기원’이란 글이 크게 씌어 있었다.
‘생색은 돈으로’라는 뜻이 분명했다.
게다가 앞서 온 몇 명이 돼지머리를 향해 절을 한 다음 시주함에 돈을 집어넣자 뒤따르던 자들 또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시주함에는 은자를 집어넣는 구멍과 전표를 집어넣는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다.
“개업식을 하기도 전에 돈을 버는군요?”
약간은 비아냥대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비쩍 마른 중년인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신지…….”
금장생은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장상문의 문주 이추혼이오.”
“아! 그러셨군요. 처음 뵙습니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이추혼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추혼은 비쩍 마르고 코가 크며 얼굴은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내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팔을 내린 금장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원래 개업식을 하게 되면 장례에 사용되는 물건을 전시하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군요.”
오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온 이유는 관 등을 비롯한 장례용품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보고 싶은 건 하나도 없고 돼지머리와 돈 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금장생의 철면피 같은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보는 눈들이 많아 돈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물건들은 늦게 볼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굳이 전시하여 좋은 기분 망칠 이유가 없겠지요.”
“하하하! 장 문주 말이 맞는 것 같소. 비록 우리가 장의업을 하지만 이런 장소에까지 관을 가져올 필요는 없지 않겠소.”
중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이 웃으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그가 천당사의 사주 천귀天鬼 구육상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갑소, 나는 구육상이오. 남들이 꺼리는 직업인데, 젊은 사람이 대단하구려.”
구육상은 금장생을 살폈다.
‘더 음흉한 사람이네.’
금장생은 내심 중얼거렸다.
구육상은 서글서글한 인상 속에 차가움과 날카로움을 숨긴 전형적인 모사형 인간이었다. 오히려 대놓고 비아냥대는 이추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자였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지 모르지만 돈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하하! 그건 장사꾼의 피를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인데. 아무튼 대박 나기를 빌겠소. 그런데…….”
구육상의 시선이 금장생 옆으로 향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유적기가 구육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분은 유적기 대협으로, 무림에서는 무극이란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장생의 목소리가 컸던 탓인지 안쪽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중인은 놀란 눈으로 유적기를 보았다.
―이걸 노린 게냐?
유적기는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이런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금장생은 어깨만 으쓱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유적기 대협이십니까?”
검을 찬 무인 한 명이 다가오며 물었다.
유적기는 무인을 보았다.
“저는 낙양에서 오악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만섭으로, 별호는 비검만리飛劍萬里입니다.”
무인은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비검만리 유만섭 대협이시군요. 나는 유적깁니다.”
유적기 역시 포권을 취했다.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대협. 설마 유 대협 같은 분을 여기서 뵐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녀석과 친분이 있어서요.”
유적기는 금장생을 가리켰다.
“사실 저도 초대장을 보내면서 유 대협이 직접 오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금장생이 슬쩍 끼어들었다.
―도둑놈!
유적기는 금장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자신은 금장생 가게 개업식에 바람잡이가 된 것이었다.
금장생은 유적기의 귀로 입을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제게 뭔가를 부탁하면 목숨을 걸고 들어 드리겠습니다.”
전음을 사용하지 못해 귀에 대고 속삭인 거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금장생과 유적기가 상당히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금장생을 바라보는 이추혼과 구육상의 얼굴엔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네게 부탁할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래서 목숨까지 걸겠다고 한 겁니다.”
―사기꾼 녀석.
유적기는 피식 웃었다.
금장생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게 분명하고 그 사실을 아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젊은 녀석이 처세술이 좋네.’
문득 그게 금장생의 처세술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이왕 도와준 거 확실하게 해 주지 뭐.’
유적기는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 주기로 했다.
“안녕하시오, 유 대협. 나는 낙양부에서 일하는 동지同知 주육성이오.”
살이 뒤룩뒤룩 찐 사내가 다가와 유적기에게 포권을 취했다.
“아! 동지께서도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유적기는 얼른 포권을 취했다. 동지는 낙양부의 이인자였다.
“장 문주와는 어떻게…….”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장 문주에게 구명지은을 입었단 말입니까?”
주육성은 깜짝 놀랐다.
구명지은이라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말이다. 무림십패의 일인인 유적기가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런 그를 구해 준 사람이 금장생이었다는 건 더 놀라웠다.
“네, 그 인연으로 해서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유적기는 금장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랬군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와 술 한잔 어떻습니까?”
“그럼 제가 영광이지요. 먼저 가 계시면 따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육성은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낙양부 이인자는 장의사 개업식까지 찾아다니는 모양이구나.
출렁거리는 주육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적기는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금장생은 다시 입을 유적기의 귀로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관리들 중에는 유독 돈 냄새에 민감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럼 저자는?
“상납을 받을 수 있을지, 여건을 타진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돈을 줄 거냐?
“그런데 저와 나누는 대화는…….”
―다른 자는 듣지 못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전부터 조마조마했습니다. 한 냥을 투자해서 석 냥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줘야지요.”
―뇌물은 불법이라고 아는데.
“불법이긴 하지만 때론 일이 잘 풀리게 해 주는 기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나처럼 적당히 이용하겠다는 뜻이구나.
“이용이 아니고 저 시주함을 준비한 것처럼 서로 상부상조하는 겁니다.”
―됐어, 이 녀석아!
유적기는 버럭 소리치고는 주육성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무림십패의 일인인 유적기가 가져온 효과는 컸다. 마지못해 참석해서는 음식만 축내고 있던 자들이 일부러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대박을 기원한다며 시주함에 돈을 집어넣었다.
개업식은 그 어떤 잔치보다 더욱 풍성했고, 자정이 다 돼서야 끝이 났다.
금장생은 대문 앞에서 서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연회실 안으로 들어갔다.
일꾼들은 음식을 치우는 중이었다.
“여기다.”
의자에 앉아 있던 유적기가 손을 들었다.
금장생은 그 앞으로 가 앉았다.
“다 끝난 거냐?”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죠.”
“그렇구나.”
유적기는 피식 웃었다.
“잘되기를 바라마. 그리고 이건 대박을 기원하는 잔이다.”
유적기는 금장생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습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고개를 들었다.
“잘되면 입 씻지는 않을 거 아니냐.”
“물론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죽게 되면 최고급으로 모시겠습니다. 강시로라도 살고 싶다고 하시면 제강도 해 드리고요.”
“……!”
유적기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끝났습니다, 사장님.”
그때 천야가 다가와 보고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그만 퇴근들 하세요!”
금장생은 크게 소리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꾼들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퇴근을 하는 거냐?”
유적기의 눈이 커졌다. 일꾼들이 퇴근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밤에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까?”
“받기는 했지만 장의사라 그런 줄 알았지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전 사장은 직원을 전부 상주시켰다고 하는데 저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즉 밤에 사람이 죽었을 때 일을 처리하기 위한 최소 인원만 남기고 전부 퇴근시키고 있습니다.”
“왜?”
“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거든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퇴근을 시킨다는 거구나.”
“데리고 있으면 저녁과 아침을 먹여야 하잖습니까. 그 돈도 무시 못 합니다.”
“독한 녀석!”
“독한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겁니다, 형님.”
“형님?”
“조금 전 주육성 동지께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형님이란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내 이름을 여기저기 팔고 다니진 않겠지?”
“명예에 누가 되는 건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의형제를 맺도록 하자.”
유적기는 금장생과 자신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잔을 번쩍 들었다.
금장생도 술잔을 들어 올렸다.
“천지신명께 고하노니 나 유적기와 금장생은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피보다 더 진한 우애로 형제가 되었습니다. 나 유적기는 오늘 맺은 우애를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며, 맹세를 어기면 어떤 벌이라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나 금장생은 오늘 맺은 우애를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며, 어기면 어떤 벌이라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유적기에 이어 금장생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챙!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술을 마셨다. 한 병을 비우고 나자 다른 탁자에 있는 것까지 가져와서 전부 마셨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유적기와 금장생의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유적기의 목소리도 어느새 본래 여자 목소리로 돌아왔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건 뭐지?”
유적기는 물었다.
“그건 비밀인데요.”
“형제끼리 비밀은 무슨. 말해 봐.”
“비밀을 지켜 준다고 약속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별명이 조개야.”
“조개요?”
“한번 닫히면 절대 열리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말해 봐.”
“돈입니다.”
“…….”
유적기는 두꺼비처럼 눈을 껌뻑거렸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돈입니다. 돈은 제 삶의 활력소고 원천이며 목푭니다.”
“정말?”
“네.”
고개를 끄덕이는 금장생의 얼굴에서는 장난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