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9화 (19/524)

황금가 (19)

개업

악몽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금장생은 자는 게 두려웠다. 할 수 없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천마구유이혼대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걸로 밤을 새운 건 나흘이 한계였다.

닷새째 되던 날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악몽이 시작되었고, 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났다.

악몽과 함께였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자 다시 날을 새울 힘이 생겼다. 그는 천마구유이혼대법을 익히며 밤을 새웠다.

“이러다 완전히 익히겠네.”

금장생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천마구유이혼대법이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내용은 머릿속에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아니, 자리 잡은 정도가 아니라 갈라지고 나뉘고 다시 합쳐지기까지 했다.

“이걸 다 익히면 특수한 능력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해강비전을 거의 익힌 것 같은데 특수한 능력이 생겼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 난 특수한 능력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접니다, 사장님.”

그때 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이 열리고 천야가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금장생 건너편으로 앉았다.

“얼굴이…….”

천야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을 좀 설쳐서 그런 겁니다.”

“혹시 악몽을 꾸시는 겁니까?”

“악몽은 무슨. 공부하는 시간도 부족해 죽겠구먼.”

금장생은 전혀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개업식 날짜를 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날은 받아서 해야지 아무렇게나 정할 순 없잖습니까?”

“받아요?”

“제가 이 모양 이 꼴로 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요?”

천야는 뜨악한 얼굴을 했다. 금장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두 형은 작명소에서 지었는데 나는 오래 살라고 생生으로 지어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실력 있는 사람에게 가서 날을 받아 왔으면 해서요.”

“그러려면 돈을 줘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 돈은 어차피 손님들이 지불할 거니까 상관없습니다.”

“손님들이 지불한다는 건…….”

“돼지머리 옆에 시주함을 하나 놓도록 하세요.”

“시주함요?”

“그냥 통 하나만 덩그러니 놔두면 뭐 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 아닙니까. 하지만 시주함이 있으면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서는 돈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

천야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음식은 욕먹지 않게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저하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장상문 문주와 천당사 사주에게는 초대장을 보내야 할지 그게…….”

“아무리 경쟁업체라고 해도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인데 초대해야지요.”

“알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강시비전은 좀 익히셨습니까?”

“직접 확인하십시오.”

스릉!

금장생은 묵야를 뽑아 수평으로 들었다.

우웅!

검이 우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묵야가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노란 광채를 뿌려 댔다.

“맙소사!”

천야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금장생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묵야는 본인의 해강 능력에 따라 네 가지 색으로 변한다.

그걸 무공에 빗대어 일성 흑黑, 삼성 적赤, 육성 벽碧, 구성 황黃, 십이 백白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금장생은 묵야를 잡은 지 며칠 만에 구성 황黃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물론 성취도는 내력과 상관없이 오직 영력에 의존한다고 하지만, 금장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어쩌면 전설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아닙니다. 해강은 그렇다 치고 제강은 어느 정돕니까?”

문득 강시를 만드는 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저기 있습니다.”

금장생은 오른편에 있는 단을 가리켰다. 단은 붉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 앞으로 간 천야는 천을 걷었다.

단 위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 모형이 누워 있었는데, 온몸에 붉은색 글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동시로 제강하는 주문이었다.

앞을 확인한 천야는 나무 인형을 뒤집어 뒤를 보았다.

“해강보다 더 성취가 빠르군요.”

천야는 혀를 내둘렀다.

금장생이 쓴 주술은 단순히 글이 아니었다. 글에는 상당한 영력이 내포돼 있어, 만일 나무 인형이 아니고 진짜 시체였다면 벌떡 일어났을 게 분명했다.

“소질이 있는 겁니까?”

“정말로 이 일이 처음입니까?”

천야는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재능이 있는 겁니까?”

“이 정도면 천부적이라고 해야 합니다. 타고났단 말입니다!”

천야는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좋은 거나 좀 타고날 것이지는…….”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시체를 다루는 일이 최고 적성이라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금장생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야는 활짝 웃었다.

“개업식 준비나 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천야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똑똑똑!

천야가 나가고 잠시 후 다시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볼일이 남았나?’

“들어오세요.”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천야가 아니라 유적기였다.

“손님을 들여놓고 제대로 접대도 못 하고, 죄송하게 됐습니다.”

금장생은 사과의 말을 했다.

비록 초대해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집안으로 들였으니 주인 된 입장에서 살폈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치여 유적기가 아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처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다. 그리고 나는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에 더 가깝지 않느냐. 그런데…….”

유적기는 금장생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금장생을 본 게 며칠 전이다. 그런데 금장생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퀭한 눈에는 핏발이 서 있고, 눈 아래는 그을린 것처럼 검다.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입술은 쩍쩍 갈라졌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자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금장생의 전신은 어떻다고 정의할 수 없는 특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몸에 문제라도 있는 게냐?”

그는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되물었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네가 변한 것 같아서 그런다.”

“이것들 때문일 겁니다.”

금장생은 암왕칠구 중 묵야와 사백, 혈종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이것들은…….”

유적기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이 꺼내 놓은 물건에서 강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건 결코 내기가 아니었다.

“총관 말로는 영기라고 하더군요.”

“영기라면…….”

“귀신이 쓰인 것 말입니다.”

“에구머니나!”

귀신이란 말에 유적기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하하하!”

금장생은 웃음을 터뜨렸다.

숨 막힐 정도로 폭발적인 몸매를 옷으로 혹은 알지 못하는 수법으로 감추고 있고 목소리 또한 남자나 다름없으며 행동도 남자 같아, 그와 대화를 할 때면 여자라는 사실을 까먹곤 한다. 그런데 방금 놀란 모습을 보니 비로소 그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저, 정말 귀신이 쓰인 물건이란 말이냐?”

유적기는 여전히 여자 목소리로 물었다.

“유 대협도 귀신을 싫어하는 모양이군요.”

“어? 험!”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유적기는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숨겼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귀신은 무슨.”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귀신입니다.”

“나는 저, 절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귀신을 무서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싫습니다.”

“암! 싫은 것과 무서워하는 건 완전 다르지.”

유적기는 맞장구를 쳤다.

덜컹!

“억!”

“어맛!”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바람 소리였나 봅니다.”

“그,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은 손을 놓고 자기 자리로 앉았다.

“그런데 이 밤에 어쩐 일이십니까?”

“작별 인사 하려고 왔다.”

유적기는 팔이 다 나았다는 뜻으로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며칠 있으면 개업식을 할 건데 그때까지만 머물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개업식?”

“무림 문파로 말하면 개파대전 같은 걸 말합니다.”

“개업식에도 손님이 오느냐?”

“관청에 있는 분들부터, 객잔 주인처럼 입소문 내기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부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도 보냈고요.”

“어느 정도나 올 거라고 생각하느냐?”

“천야 말로는 백 명 이상 올 거랍니다.”

“내가 어울리는 자리라고 생각하느냐?”

“유 대협이 어울려서 그런 게 아니고, 저는 가족이 없거든요.”

“고아였더냐?”

유적기는 측은한 얼굴로 물었다.

“가족이 어디 살고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고아는 아닙니다.”

“가족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건 무슨 뜻이냐?”

“모처로 팔려 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팔려 가?”

“멍텅구리 배를 이 년 타고 일 년 동안 인삼을 뽑았습니다.”

“멍텅구리 배, 인삼?”

유적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걸 다 설명하려면 하루도 부족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개로 산 세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로 산 세월이라고?”

“인간이 아닌 개로 살았단 말입니다.”

“아!”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주시겠습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그렇게 하마.”

잠시 생각하던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금장생은 유적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남자로 꾸밀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거냐?”

“그날 유 대협은 분명 옷을 벗었지만, 여자의 상징인 가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가슴은…….”

유적기는 처음에 옷을 입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 후 철전혼이 옷을 벗자 그 역시 상의를 벗었다. 그때 본 그녀의 가슴은 밋밋했다.

“진식이다.”

“진식이라고요?”

금장생은 뜨악한 얼굴로 유적기의 몸을 훑었다.

신체를 가리기 위해 진식을 사용한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서역에서 온 기술이라 엄밀하게 따지면 진식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구나. 진식으로만 알아 둬라.”

“모르는 건 설명해 줘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건 뭐지?”

유적기는 한편에 놓여 있는 강시비전을 가리켰다.

“제 일과 관련 있는 서적입니다.”

“네 일?”

“주업은 장의지만 시체 운구도 해야 하거든요.”

“시체는 마차나 혹은 수레에 실어 오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일을 하는데 굳이 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묻는 말이었다.

“시체를 운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썩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 발견할 당시 모습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는 거냐?”

“이해가 빠르네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건…….”

“궁금하면 보십시오.”

“봐도 되느냐?”

“네.”

금장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적기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책이 끌려왔다.

그는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제강술이구나.”

책을 읽던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면 시체를 훼손 없이 운구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좋은 방법이네.”

유적기는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금장생을 보았다.

“또 부탁할 게 있는 얼굴 같은데 맞나요?”

“혹시 네 숙소엔 욕실이 따로 있느냐?”

“욕실요?”

“전부 바빠서 그런지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구나.”

“아!”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유적기가 남자 행세를 해, 알아서 씻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물가에서 벗고 목욕을 한다고 해도 남자처럼 보이니까 누가 보든 상관없지 않나요?”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 황상에 여자 일꾼은 없었다.

“거기서 난 바지는 벗지 않았다.”

“혹시 진식인가 하는 걸로 바꿀 수 있는 게 가슴뿐인가요?”

“맞다.”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따라오십시오.”

금장생은 유적기를 욕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욕실 문을 열어 준 금장생은 유적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훔쳐볼지도 모릅니다.”

“훔쳐본다고?”

유적기는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거든요.”

“훔쳐보는 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정말로 훔쳐봐야 한다. 만일 들키면…….”

유적기는 손바닥을 금장생 앞으로 내밀었다.

웅!

작은 소리와 함께 투명한 구체가 손바닥 가운데, 즉 장심에서 솟아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응축된 내기였다.

“얼른 들어가십시오.”

금장생은 유적기를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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