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8)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것들을 착용하는 위치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일어서 보십시오.”
천야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위치가 따로 있어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옷을 살피다가 암왕칠구暗王七具를 장착할 위치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이것들을 암왕칠구라고 부르는 모양이죠?”
“네. 그리고 사장님이 입고 계신 이 옷은 염왕묵의閻王墨衣라고 부릅니다.”
“장의사 옷치곤 좀 거창한 감이 없진 않지만 어울리긴 하네요.”
“사실 이 염왕묵의는 천여 년 전 모양 그대롭니다.”
“그래서 이렇게 촌스러웠던 거군요.”
“클클클! 시체를 다루는 사람이 입는 거라 그런지 아무도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고요. 특히 역대 문주님들, 아니 사장님들 중 사장님의 옷걸이가 가장 좋습니다.”
“옷걸이요?”
“뽀대가, 아니 가장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것들로 치장하면 더 그럴싸해질까요?”
금장생은 암왕칠구라고 부른다는 물건들을 가리켰다.
“물론입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해 볼까요.”
“알겠습니다. 먼저 이거 보이십니까?”
천야가 가장 먼저 집어 든 건 천승이었다. 천야는 천승의 뒤쪽 끝을 가리켰다.
“돌기네요?”
손잡이를 보며 금장생은 대답했다.
천야가 들고 있는 손잡이 끝에는 반 치 길이의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구멍이 있습니다.”
천야가 보여 준 곳은 천승의 끝부분이었다.
“요댄가요?”
천승을 허리에 둘둘 감으면 요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구멍에서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대 맞습니다.”
천야는 천승의 손잡이를 금장생 허리에 대더니 채찍 부분을 감아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천승에 나 있는 구멍에 돌기를 끼웠다. 그러자 황토색 요대가 생겨났다.
“그런데 천승 이놈은 어디에 쓰죠?”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귀신을 포박할 때 쓴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또 귀신과 관련이 있네요.”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 물리치는 도굽니다.”
“알았습니다.”
“묵야의 위치는 등입니다.”
천야는 묵야를 들고 금장생 뒤로 갔다.
금장생의 등에는 양쪽 어깨와 양쪽 허리 부분에 아래쪽이 뚫려 있는 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폭은 한 치 반 정도고 높이는 세 치가량이었다. 옷을 지을 때 그 부분을 염두에 둔 듯 꿰맨 자국은 따로 없었다.
“오른손잡입니까?”
“네.”
금장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야는 오른편 어깨 위로 검 손잡이가 튀어나오도록 검을 아래가 뚫린 주머니 안으로 끼워 넣었다.
“묵야를 뽑아 보십시오.”
천야의 말에 금장생은 오른편 어깨 위를 흘끔 보았다. 그리고 묵야의 손잡이를 잡고 뽑았다.
스릉!
검은 부드럽게 뽑혔다.
“나쁘지 않네요.”
금장생은 묵야를 좌우로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그러고는 오른발을 내밀며 쭉 찔러 넣었다.
슉!
“어?”
천야의 눈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초보자들이 찌르기를 하면 검 끝이 흔들리고 속도도 일정하지 않다. 그런데 금장생이 찌른 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즉, 초속보다 종속이 더 빨랐다는 뜻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순간이었지만 허공이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좋네요.”
천야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장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철컥!
검집을 집어넣는 것 또한, 보지도 않고 대충 던져 넣은 것 같은데 검은 정확하게 검집을 찾아들어 갔다.
“그거…….”
천야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는 멍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놀란 얼굴이네요?”
금장생은 빙그레 웃으며 천야를 보았다.
천야를 보는 그의 얼굴엔 그럴 줄 알았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무인이십니까?”
천야는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한때 무인을 꿈꾸었던 적이 있습니다. 손에 못이 박이도록 열심히 노력하기도 했고요.”
“그럼 방금 보여 준 건…….”
“실패의 산물입니다.”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노력했지만 안됐다는 거군요.”
“네. 이건 어디에 찹니까?”
그가 들어 올린 건 무검 사백이었다.
“사백의 위치는 오른편 옆구립니다.”
금장생은 옆구리를 보았다. 그곳에는 옷이 일자一字로 갈라져 있었다.
금장생은 무검을 그곳으로 집어넣었다. 날 부분은 전부 들어가고 손잡이만 외부로 드러났다.
금소라 불리는 용각의 위치는 왼편 허리의 요대 아래쪽이었다. 그곳에 금소를 끼우는 고리가 달려 있었다.
금소 반대편, 즉 오른편 허리에는 혈종을 걸었다.
“걸어 보십시오.”
천야가 말했다.
금장생은 걸음을 옮겼다.
뎅! 뎅!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종소리가 특이했다. 자신의 다리에서 나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곳에서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러는 거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옥마종地獄魔鍾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지옥에서 치는 종소리가 이 녀석을 통해 난다는 건가요?”
“네.”
“무섭네.”
금장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혈종을 풀어 탁자 위에 놓았다.
“왜…….”
“굳이 지금부터 차고 다닐 필요 없잖아요.”
“이 녀석을 오른편으로 돌리면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천야는 혈종 안쪽의 종추를 오른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종추가 측면으로 달라붙었다.
그 상태에서 손잡이를 잡고 흔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싶을 땐 종추를 왼편으로 돌리면 됩니다.”
“혈종을 만든 사람도 나처럼 종소리를 별로 듣고 싶지 않았나 보네요.”
“그런가 봅니다. 아무튼 혈종이 없으면 강시를 부리는 게 불가능하니까 차고 계십시오.”
천야는 다시 혈종을 염왕묵의의 본래 자리에 끼워 주었다.
“혈라의 위치는 어딥니까.”
금장생은 붉은 징을 들어 올렸다.
“등에 혈라 넣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금장생은 허리 위를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주머니가 잡혔다.
그 안으로 혈라를 집어넣자 손잡이 부분만 약간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남은 건 뇌령이라 부르는 영패 하나였다.
“뇌령의 위치는 심장 앞입니다.”
천야는 뇌령을 들어 금장생 심장 앞쪽에 있는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굳이 여기로 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암왕칠구를 몸에서 떼어 놓으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천야를 보았다.
“전통입니다.”
“전통치고는 좀 괴이한…….”
“한 달은 암왕칠구가 문주님의, 아니 사장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제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건 무슨 뜻이죠?”
“암왕칠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법기라고 부르는 기물들입니다. 녀석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이 가해져야 합니다. 한 달은 사장님의 영혼과 암왕칠구가 친해지는 기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설마 내가 온몸에 착용한 암왕칠구가 영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가지고 있습니다.”
“그, 그러니까 귀신에 씌었다고요?”
금장생은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리 강하진 않습니다. 정말로 강했다면 기물이 아니라 보물이라 불러야 할 테고, 장의사가 아니라 이름난 도관에 가 있겠지요.”
“아주 미약하다는 건가요?”
“아주 없으면 강시를 다룰 수 없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거네요?”
“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네.”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불편하진 않습니까?”
“착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일곱 개의 무구를 착용했으면 불편할 만도 한데, 착용하기 전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행이군요. 아무튼 그것들은 한 달 동안 착용하고 계십시오. 그 뒤에는 굳이 차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악몽을 꾸더라도 너무 놀라진 마십시오.”
“악몽요?”
“꾸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끙!”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쉬십시오.”
천야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공연한 짓을 한 건가?”
금장생은 허리에 감고 있는 천승으로 시선을 주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오백 냥은…….”
문득 이미 오백 냥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을 찾으려면 싫어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 말고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뭐.”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헉! 헉헉헉!”
금장생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온몸은 땀에 젖고 다리는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겁다.
그는 흘끔 돌아보았다. 어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휴! 이제…….”
“게 서라, 이놈!”
앉아서 쉬려는 순간 살기 어린 외침과 함께 일곱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갖가지 무기를 들었는데, 무기와 입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제길!”
금장생은 다시 달렸다.
“제발!”
그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데도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반면에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은 바람처럼 달려왔다.
어느새 거리는 십 장도 채 남지 않았다.
“드디어 잡았구나, 금장생!”
가장 앞서 온 자가 검을 번쩍 쳐들었다.
“사, 살려 줘!”
금장생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잘 가라, 놈!”
새카만 검이 허공을 갈랐다.
둥실!
그러자 금장생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아악!”
금장생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내지른 비명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니, 비명만 들려오는 게 아니었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몸통도 보였다.
머리가 없는 몸통에는 일곱 명이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들은 몸통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위아래로 머리를 움직이던 자들이 동작을 멈추더니 일제히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아악! 으악! 아아악!”
기절할 듯 놀란 금장생은 비명을 계속 내질렀다.
이편을 돌아보는 자들의 입가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지금까지 고개를 처박고 몸통을 뜯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일곱 명이 동시에 금장생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아악! 으아악! 아악!”
금장생은 쉬지 않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그가 내지른 비명은 선명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