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7)
내가 처음 강시를 연구하게 된 건 전쟁 때문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체를 남겼고, 그 시체들의 부모 형제는, 설사 죽은 시체라고 해도 자식을 혹은 형제를 찾고 싶어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쟁터에서 시체를 찾아 부모 형제 옆으로 가져다주는 거였다.
한겨울에는 괜찮았다. 그런데 봄이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운구 도중에 시체가 썩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름이 되자 절정에 달했는데, 시체가 고향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부모는 물론이고 부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에 나는 어떻게 하면 썩지 않은 시체를 운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강시대법을 창안했다.
즉, 대법을 통해 썩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대법을 나는 강시비전이라고 명명했다.
첫 번째 강시를 나는 동시動屍라고 이름 지었다. 동시는 이름 그대로 움직이는 시체를 말한다.
동시를 제강하는 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주문이다.
주문은 시체의 몸통 전체에 새기게 되는데, 붓으로 쓰는 것과 무공을 이용하여 새기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두 번째는 이혼대법이다.
즉, 떠도는 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불러들인 혼은 육신과의 결합력이 아주 약하다. 가느다란 실보다 더 약해 쉽게 끊어지게 되는데, 끊어지면 혼백은 바로 떠나고 만다.
세 번째는 부적이다.
부적은 혼백이 떠나지 못하도록 잡아 준다.
강시의 첫 번째 특징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극한의 적개심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살아 있는 사람만 보면 무조건 공격한다.
두 번째 특징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다.
살아생전에 쌀 반 가마를 들어 올렸다면 강시 상태에서는 서너 가마는 공깃돌 들듯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혹시 강시와 싸울 때 팔이나 다리를 잘랐다고 마음을 놓지 마라. 마음을 놓는 순간 강시에 의해 머리가 뜯겨 나가니까.
움직이는 시체를 동시라고 한다면, 그 동시를 일정 기간 약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훨씬 강한 피부를 가진 전사가 탄생한다.
일반적으로 강시殭屍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세 번째는 활시活屍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활시는 강시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존재들인데,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사람처럼 움직이는 강시라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거의 금강불괴지신이 된다. 강기가 어린 무기가 아니면 잘리지 않는다.
네 번째는 생시生屍다.
내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생시에 대한 정의다.
생시는 몸은 강시, 즉 거의 죽은 상태지만 머리는 살아 움직인다. 그런 존재를 과연 강시라고 불러야 할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인시人屍다.
감히 단언컨대 인사는 더 이상 강시가 아니다. 시작은 강시였지만 강시 상태를 극복하고 최강의 무인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인시는 모든 게 가능하다. 먹고, 싸고, 잔다. 심지어 성관계도 가능하다.
다만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생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지만 인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인시는 더 이상 강시가 아니다. 강시의 몸을 극복한 그는 이제 절대자라고 불러야 한다.
“그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면 사람으로 봐야지 다른 존재로 볼 이유가 없다.
금장생은 책장을 넘겼다.
일단 강시를 제강하여 원하는 곳으로 운송했으면 이제 해강을 해야 한다.
원래는 해강하는 방법을 따로 발췌하여 해강비전으로 기록하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한데 묶었으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해강비전을 완벽하게 익히고 나면 특수한 능력이 생긴다.
그 능력은 한번 생겨나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능력이 이 책을 읽는 그대를 망칠 수도 있다. 익히기 싫다면 여기서 책을 덮어라.
“궁금증을 실컷 유발해 놓고 덮으라고 하시면 덮겠습니까?”
금장생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어떤 능력이 생겨나는지 보겠습니다.”
금장생은 책장을 넘겼다.
해강비전解殭秘典
강시는…….
“칠성검이나 이걸 사용한다는 거지.”
금장생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폈다.
그는 해강하는 방법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해강비전은 제강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익혀 둬야겠지.”
금장생은 마지막 장까지 전부 읽었다.
강시라는 것이 워낙 생소한 분야라 쉽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무슨 능력이 생긴다는 거지?”
책을 전부 읽고 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절반 정도를 이해한 상태면 미세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징후는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연히 겁먹었잖아.”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가 정자를 나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다시 원상 복구돼 있었다.
“저건 뭡니까?”
금장생은 책장 위에 놓은 보자기를 가리켰다.
“황상의 문주신물들입니다.”
“‘들’이라고 하는 걸 보면 한 가지가 아닌 모양이군요.”
“풀어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책상 앞으로 가서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 안에는 책 한 권과 기물로 보이는 물건 일곱 가지가 들어 있었다.
금장생은 먼저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강시비전殭屍秘典이었다.
그는 책장을 펼쳤다. 강시비전은 주로 동시를 제강하고 해강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었다.
“강시를 만드는 법인가 보죠?”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그가 두 번째로 집어 든 건 종이었다.
아래쪽은 일상적인 종과 같았지만 손잡이가 있고, 손잡이 끝은 삼지창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총길이는 일곱 치였다.
“그건 도교에서는 제종帝鐘이라고 하는 법기지만 우리 황상에서는 혈종血鐘이라고 합니다. 강시와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색이 붉은색이라서 그런 겁니까?”
혈종은 피처럼 붉었다.
표면에 선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는 것 같은데 오랜 세월이 이유인지 만들 때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지어진 연원은 저도 모릅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세 번째로 집어 든 건 검이었다.
검은 쇠로 돼 있었는데 양쪽 검면에 푸른색 보석이 북두칠성 형태로 박혀 있었다. 날은 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뎠다. 길이는 두 자 정도였다.
“칠성검으로, 강시를 해강할 때나 귀신을 없앨 때 쓰입니다.
“귀신이라고요?”
“네.”
“있어요?”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귀신 말입니다.”
“네.”
“있……다고요?”
금장생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한 번도 본 적 없습니까?”
“맙소사, 정말 있군요.”
급기야 금장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천야는 황당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황상의 문주는 강시를 다뤄야 한다. 그런데 귀신을 무서워하다니.
덩치로만 보면 금장생은 귀신도 씹어 먹게 생겼다. 그런 그가 떠는 걸 보니 우습지도 않았다.
“시체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금장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장님은 강시를 부리고 묵야墨夜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기물도 귀신을 퇴치하는 힘을 지닌 법기들입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설사 진짜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도 절대 접근하지 못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절 믿으십시오.”
“믿겠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이름이 묵야입니까?”
“네.”
“그래서 검면부터 손잡이까지 전부 검은색이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묵야라는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검은 뭡니까?”
금장생이 묵야를 내려놓고 집어 든 건 특이한 검이었다.
총길이는 한 자가량인데, 손잡이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검의 끝부분은 둥글며, 직경이 한 치가량 되는 손잡이 끝에는 용의 수염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양쪽 수염에는 금색 방울이 하나씩 끼워져 있었다.
사실 날이 있어 검이라고 했을 뿐 검보다는 장신구에 더 가깝게 보였다.
“사백死白이란 이름을 가진 무검巫劍입니다.”
“무검이면 무당이 쓰는 검인가요?”
“도교에서 사용하는 법기 중 하납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것도?”
금장생은 측면에 북두칠성이 새겨진 뿔피리를 집어 들었다. 뿔피리는 길이는 한 자가량으로, 황금색이었다.
“도교에서는 용각龍角이라 부르는 법기 중 하나로, 이름은 금소金簫입니다.”
“어떤 용도로 쓰입니까?”
“용각은 원래 신내림이나 마귀 퇴치용으로 사용되는 법깁니다. 하지만…….”
“강시를 다루는 우리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말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황상의 사장이 된 이상 알아야 한다?”
“네.”
“그렇게 하죠, 뭐. 그럼 이 녀석은 뭡니까?”
금장생은 소고처럼 생긴 물건을 들어 올렸다. 소고와 다른 점은 손잡이에 북채 끝이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손잡이를 쥐고 돌려 보십시오.”
“어떻게 돌리는 거죠?”
“손목을 트는 식으로 해서 좌우로 움직이면 됩니다.”
“이렇게요?”
금장생은 손목을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
뎅! 뎅!
순간 깊은 음색의 징소리가 울려 퍼졌다.
“징 소리와 같네요.”
“도교에서는 혼자 소리를 낸다고 해서 단음單音이라고도 하고 동으로 만든 징이라고 해서 동라銅鑼라고도 합니다. 우린 혈라血鑼라고 부르고요.”
“이 녀석의 용도는…….”
“모릅니다.”
“그렇군요.”
금장생은 혈라를 내려놓고 폭 세 치, 길이 일곱 치 정도의 패牌를 들어 올렸다.
“어?”
그의 눈이 커졌다.
패를 잡는 순간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끄러미 패를 내려다보았다. 푸른색이고, 앞면에는 오뢰호령五雷號令, 뒷면에 총소만령總召萬靈이라 새겨져 있고 외곽에는 천지만물도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까지 본 기물들 중 가장 신비한 느낌을 주는 녀석이었다.
“뭡니까?”
그는 천야를 보았다.
“도교에서는 영패令牌라고 합니다. 신령을 부리고 뇌신을 사역시켜 마귀를 퇴치하는 법기라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네.”
“이 녀석도 이름이 있나요?”
“뇌령雷靈입니다.”
“이름도 마음에 드네요.”
금장생은 싱긋 웃고는 뇌령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물을 집어 들었다.
그가 집어 든 건 일 장 길이의 편鞭이었다. 전체가 황토색이었는데 손잡이부터 편에 팔괘도가 조각돼 있었다.
“천승天繩이라 합니다.”
“혈종, 묵야, 사백, 금소, 혈라, 뇌령, 천승이라…… 사장신물치곤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요?”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름은 거창한 것 같지만 여기 있는 일곱 가지는 도교에서 의식을 할 때 사용하는 법기를 그대로 본떠 만든 겁니다.”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만든 거라는 건가요?”
“도교에서 사용하는 법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겠네요. 전 사장들은 모두 착용하고 다녔나요?”
“아닙니다, 전 문주님들은 혈종과 묵야만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장님께서도 묵야와 혈종만…….”
“아닙니다. 나는 전부 지니고 다닐 겁니다.”
“전부요?”
“귀신이 무서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
천야는 빙긋 웃었다.
“아니라니까요!”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