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5)
“총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천야를 불렀다.
“네!”
천야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그도 밤을 꼬박 새운 듯,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떠난 줄 알았습니다.”
천야는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팔고 가면 모를까 그냥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망루의 주인이 되기로 한 겁니까?”
천야는 금장생의 등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망루를 운영하기 위해 시체를 메고 온 거 아닙니까?”
“시체요?”
“상당히 고급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까 잘사는 집안 자제 같군요. 관은 최고급으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수의도 마찬가지고요. 크게 찢긴 곳은 없는 것 같으니까 염은 대충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시체를 본 탓인 듯 천야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시체가 아닙니다.”
“네?”
“이 사람은 시체가 아니고 부상을 입은 상태라고요.”
“팔이 그렇게 늘어졌는데…….”
“잠이 든 상태이니 늘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지 말고 바로 영업 시작하는 건 어떻습니까.”
“영업을 시작해요?”
“기절한 상태니까 눕혀 놓고 코에 물수건만 대면, 우린 첫 손님을…….”
“영감님!”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
“농담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좀 해 보셨습니까?”
천야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까짓것 한번 해 봅시다.”
“허허허! 아주 잘 생각했습니다, 문주님.”
천야는 활짝 웃었다.
“일단 좀 자야겠습니다.”
“졸리십니까?”
“어젯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오백 냥짜리니까 접대 잘하세요.”
“오백 냥이라고요?”
“네.”
“어떻게 된 겁니까?”
천야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설명해 주고 싶지만 졸려서 안 되겠어요. 물이나 한 잔 마시고 들어가 자렵니다.”
금장생은 유적기를 건네주고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목이 말랐다.
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커다란 바가지로 물을 한 가득 떠서 벌컥벌컥 마셨다.
“이런…….”
그러다 잘못해서 물을 쏟아 가슴이 흠뻑 젖고 말았다.
그는 얼른 책 두 권을 꺼내 주방 선반에 올려놓았다.
“자야 하니까…….”
장신구 같은 검이 들어 있는 검집도 풀어 책 위에 놓았다. 그런 다음 남은 물을 전부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는 금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몰랐다.
그가 일어난 건 잠이 깨서가 아니라 허리에서 오는 통증 때문이었다.
“아이고!”
금장생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침대에서 떨어지다니 별일…….”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어젯밤에 분명 침대에서 잤고,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침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방 안에서 없어진 건 침대뿐만이 아니었다.
침대 왼편에 있던 옷장도 없고, 오른편에 있던 책상도 없고, 차를 마시는 탁자와 의자도 없었다.
“도둑이 든 것도 아닐 테고. 이 가루는 다 뭐고 나는 왜 발가벗고…….”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벌떡 일어난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학!”
느닷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끙!”
금장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명을 내지른 자는 유적기였다.
그는 얼른 손으로 아래를 가렸다. 그리고 천야를 불렀다.
“네.”
천야는 대답과 함께 올라왔다.
“그게…….”
“옷 좀 가져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건지 아십니까?”
천야는 유적기를 보며 물었다.
“나도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소.”
“그랬군요.”
천야는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옷 한 벌을 가지고 금장생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다 뭡니까?”
천야는 깜짝 놀랐다.
“내가 묻고 싶은 겁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습니까?”
“지난 사흘 동안 제가 들은 거라고는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사흘이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사흘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잤다는 건가요?”
“꼼짝도 하지 않았으면 이 안에 있는 물건이 없어질 리가 없겠지요.”
천야는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금장생이 가구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문주님의 코 고는 소리였습니다.”
“제가 코를 골았어요?”
“아래층까지 들렸습니다.”
“코를 곤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는데…….”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그 소리 때문에 올라와 보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십니까?”
“그렇다니까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가루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모릅니다.”
“혹시 외박한 날 뭔가를 드셨습니까?”
“용 모양의 버섯을 먹긴 했는데…….”
“용 모양의 버섯이라고요?”
“네.”
“설마 용령지균龍靈芝菌을 드신 겁니까?”
천야는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용령지균이 뭡니까?”
“공청석유는 아십니까?”
“한 방울만 있어도 수십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영약이 용령지균입니다. 그런데 크기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새끼손가락만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보다 열 배 이상 컸지만 줄여서 말했다.
“용령지균은 손톱 크기로 자라는 데 백 년이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손가락 크기면 천 년 이상짜리라는 건데……. 혹시 뿌리 같은 건 없었습니까?”
“뿌리요?”
“뿌리까지 달린 녀석을 상천용령지균이라고 하는데 복용하면 바로 신선이 된다고 하더군요.”
“엄청난 건가 보네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아무튼 문주님 방이 이 모양이 된 건 그 용령지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 영약을 복용했으니까 저는 무병장수하는 겁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주십시오.”
금장생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아직 알몸이었던 것이다.
“아, 참! 옷!”
천야는 가져온 옷을 내밀었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그거 용령지균 부작용입니까?”
“뭘 말하는 건지…….”
“거기 아래쪽에 있는 걸 말하는 겁니다.”
금장생은 천야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하체였다.
“별 시답잖은 소리.”
그는 피식 웃었다.
“시답잖은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천 명도 더 염을 했지만 문주님 같은 명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됐으니까 그만하세요.”
금장생은 얼른 옷을 입었다.
그런데 옷이 좀 특이했다. 도복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복도 아닌, 두 종류의 옷을 반반씩 섞어 만든 것 같았다.
“거기에다 이걸 쓰면 완전한 복장이 됩니다.”
천야는 도사들이 주로 쓰고 다니는 모자, 즉 도사관을 내밀었다.
“꼭 이런 복장을 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복장을 하지 않고 시체를 운송하면 도둑이라고 오해받습니다.”
“시체를 훔쳐 가서 어디에 쓰게요.”
“아직 이런저런 이유로 인골이나 인육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많으니까요.”
“미친놈들.”
“아무튼 시체를 운송할 때는 반드시 입어야 합니다.”
“그럼 일 나갈 때나 주면 되지 지금 주는 건 또 무슨 경웁니까?”
“지금 가진 옷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새로 옷을 사 올 때까지만 입고 계십시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지 않습니까?”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금장생은 배를 슥슥 문질렀다.
“식당으로 가시죠.”
천야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금장생과 천야는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노인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세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금장생에게 인사를 했다.
“일하는 분들인가요?”
금장생은 천야를 보며 물었다.
“가장 오른편에 있는 저놈은 도패로, 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문주님. 도팹니다. 저는 다섯 명을 데리고 일합니다.”
얼굴에 길게 흉터가 나 있는 노인이 금장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금장생은 답례를 했다.
“중간에 있는 저놈은 상조 물품을 담당하는 양대곤입니다. 스무 명을 데리고 있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저놈이 소개한 대로 양대곤이고, 경력은 오십 년입니다.”
“반갑습니다.”
양대곤은 상당히 비대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식당 주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저 말라깽이는 오보추라고, 상여를 담당합니다. 데리고 있는 인원은 열 명이고요.”
“처음 뵙습니다, 문주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분들과 방금 말한 그분들이 전붑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무덤을 정리하는 일꾼 열 명이 있고, 강시를 운송하는 일꾼도 다섯 명 있습니다.”
“직책은 있습니까?”
“저와 이놈들 셋은 도두導頭라고 하고 도두가 내리는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자를 차두次頭라 합니다. 차두는 세 명입니다.”
“그럼 총 쉰일곱 명이 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급료는 어떻게 받았습니까?”
“도두는 열 냥, 차두는 일곱 냥, 나머지는 닷 냥을 받았습니다.”
“한 달 인건비만 삼백열한 냥이군요.”
“그렇습니다.”
“절반으로 줄여 보십시오.”
“절반으로요?”
천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열 냥을 받는 자신들이야 절반으로 줄인다고 해도 다섯 냥이니까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티기 힘들다.
“네.”
“닷 냥의 절반이면 두 냥 반인데 그걸로는 한 달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입장입니다. 즉,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전처럼 일이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긴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급료를 반으로 깎거나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겁니다.”
“인원을 줄이라고요?”
“제가 돈을 융통할 수준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 역시 신용과 관계가 있는 겁니다. 천야도 알다시피 이곳 지리도 모르는 초짭니다. 빌려줄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이 사업체를 담보로 돈을 빌려야 한다는 건데, 융통해 줄 전장이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으음!”
천야는 신음을 내뱉었다.
금장생의 말이 맞다. 금장생에게 돈을 빌려줄 전장은 없을 것이다.
빌려준다고 해도 아주 고리가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수입보다 이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파산은 불 보듯 뻔하다.
“내보낼 사람을 선택하기 힘들면 신상명세서를 작성해서 가져다주세요.”
“문주님이 직접 하시겠습니까?”
“천야가 못 하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리고 문주라는 호칭은 앞으로 쓰지 마십시오. 문주는 이런 사업체를 열 개 이상 보유했을 때나 써야 하는 거잖습니까?”
“그럼?”
“주인은 그렇고, 사장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사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시켜 주세요.”
“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칩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진시辰時에 회의를 할 테니까 그렇게들 아십시오.”
“진시면 정확하게 몇 시를 말하는 겁니까?”
천야가 물었다.
“지금부터는 십이시十二時가 아니라 이십사시二十四時를 사용할 겁니다. 이십사시는 공식적인 문서에서 사용하고, 우리는 이십사시도 초와 말로 구분해서 사용할 겁니다.”
“하루를 사십팔 분할해서 사용한다는 거군요?”
천야가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식사합시다.”
“사장님 식사는 따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따로?”
“손님도 아직 식전입니다.”
“어딥니까?”
“옆방입니다.”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