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4)
“흐흐흐! 내가 어젯밤 대박 꿈을 꾼 모양이구나.”
인도생은 음흉하게 웃으며 유적기에게로 다가갔다.
걸음을 옮기던 그는 일 장 앞에서 멈췄다.
유적기를 노려보는 그의 양손은 내기를 잔뜩 끌어 올린 상태였다. 유적기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곧바로 출수할 참이었다.
한참을 서 있었지만 유적기는 움직이지 못했다.
“흐흐흐! 많이 다친 모양이구나.”
인도생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주먹을 가볍게 그러쥐더니 천천히 잡아당겼다.
찌이익!
그러자 유적기의 상의가 찢겨 나갔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풍만한 가슴이 나타난 것이다.
“오오!”
인도생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많은 여자를 접했지만 상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풍만한 가슴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크기만 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인도생은 피가 급격하게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무극 유적기가 여자였다니 하늘도 놀랄 일이구나.”
인도생과 유적기 사이의 거리는 반 장으로 좁혀졌다. 인도생은 여전히 유적기를 경계하고 있었다.
“죽여라!”
유적기는 모든 걸 포기했다.
그녀는 금장생이 공격을 시작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가슴이 전부 드러났는데도 금장생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건 곧 벌써 떠났다는 뜻이다.
“나는 아름다운 걸 감상하지도 않고 파괴하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여자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게 될 테니까.”
인도생은 유적기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유적기가 무공을 펼칠 내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다.
유적기를 내려다보는 그의 숨이 가팔라졌다.
그는 유적기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헐! 이건 명품 중에서도 최고 명품이구나.”
인도생은 활짝 웃었다.
유적기의 가슴은 크기만 한 게 아니었다. 크면서도 탄력적이고,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개자식!”
뾰족한 여자 목소리가 유적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유적기는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전혀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흐흐흐!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천당의 황홀감을 보여 주마.”
인도생은 서둘러 유적기의 하의를 벗겼다.
“세상에, 넌…….”
인도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상체뿐만이 아니었다. 엉덩이와 다리 또한 최고였다.
그 상태에서 지풍을 쏘아 유적기의 단전, 즉 관원혈과 그 아래쪽에 있는 중극혈을 점혈했다. 그 두 곳을 점혈해 두면 설사 내공이 돌아온다고 해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인도생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급하게 요대를 풀었다.
팔 전체에 모아 두었던 내기는 이미 단전으로 돌려보낸 지 오래였다.
요대를 풀자마자 바지를 내렸다.
그의 성기는 이미 한껏 경도를 높인 상태였다.
“젠장!”
인도생은 욕설을 내뱉었다.
아침저녁으로 입고 벗는 바지가 발에 걸려 벗겨지지 않았다. 그는 상체를 숙여 바지를 잡고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검은 절벽 위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는 몸을 숨기고 있던 금장생이었다.
‘살기?’
역시 인도생은 고수였다.
마음을 완전히 놓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금장생의 공격을 바로 알아차렸다.
“어림…… 헉!”
인도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내기를 끌어 올리긴 했는데 두 손은 아직 바지를 잡은 상태였다. 무게중심이 바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등에 전 내공을 집중하여 방어막을 치고 곧바로 상체를 폈다.
슥!
그 순간 금장생이 그의 전면으로 내려섰다.
왼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오른손이 손목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허, 허초였단 말이냐?”
인도생은 황급히 양팔을 내밀었다.
푸욱!
퍼억!
“컥!”
“윽!”
나직한 비명과 함께 금장생은 두 걸음 물러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져, 졌단…….”
유적기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졌다.
사실 금장생은 인도생보다 바위에 기대앉아 있던 그녀가 먼저 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금장생이 워낙 절묘한 순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도생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쓰러진 자는 금장생이다.
“네, 네놈이…….”
인도생은 손을 들어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당할 거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털썩!
인도생의 신형이 벌러덩 넘어갔다.
“다행히 내가 이겼네요.”
금장생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 그랬구나.”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인도생처럼 그녀 역시 꿈을 꾸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탭니까?”
유적기 앞으로 간 금장생이 물었다.
“아, 아니다.”
유적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옷을 입을 수 있겠군요.”
“옷……이라고?”
유적기는 시선을 내렸다.
‘헉!’
그녀의 눈이 커졌다.
위쪽은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아래는 벌거벗겨진 상태인 데다 다리는 벌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졌다.
“저는 검을 회수할 테니까 옷을 입고 계십시오.”
금장생은 쓰러진 인도생에게로 갔다.
인도생은 하늘을 보는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몸을 뒤집자, 삼분의 이가량 튀어나와 있는 소검이 보였다.
소검을 뽑아 피를 닦아 내고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적기를 보았다. 유적기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유적기를 보았다.
“그게…… 혹시 점혈당한 사람을 해혈해 본 적 있느냐?”
“아뇨.”
“그럼 내가 주입해 준 내기는 아직 남아 있느냐?”
“벌써 일각이 지났습니다.”
“그렇지. 그럼 어쩔 수 없구나. 가까이 와라.”
금장생은 유적기 앞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유적기의 알몸을 보자 인도생이 왜 그렇게 급하게 바지를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유적기는 사내를 짐승으로 만드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관원혈을 아느냐?”
“배꼽에서 세 치 아래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중극혈은?”
“관원혈에서 한 치 아래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잘 아는구나. 내가 제압당한 곳은 그 두 곳이다. 몸이 마비된 상태는 아니지만 스스로 해혈을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됩니다.”
“여기와 여기를 힘껏 쳐야 한다.”
유적기는 관원혈과 중극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느 정도 세기라야 합니까?”
“내가 비명을 지를 정도는 돼야 한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유적기 오른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편에서 혈도를 내리치는 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저건 뭐죠?”
금장생은 왼편을 가리켰다.
“어떤 걸…….”
유적기의 고개가 왼편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 그녀의 단전에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
유적기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너?”
유적기는 금장생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기습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예고한 후에 때리면 몸을 피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한 번에 끝내기 위해 그런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어딥니까?”
“여, 여기다.”
유적기는 중극혈을 가리켰다.
배꼽에서 네 치 아래라고 하였지만 성기 바로 위다. 여자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위치일 수밖에 없었다.
금장생은 유적기의 중극혈을 바라보았다.
유적기는 음모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보통 중극혈은 음모로 덮인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깨끗했다.
음모는 그보다 한참 아래 부분에서부터 나 있었는데, 그나마도 얼마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퍼억!
고개를 돌리자마자 통렬한 통증이 중극혈에서 왔다.
“아악!”
유적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풀렸나요?”
“그, 그런 것 같다.”
유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옷을…….”
“나는 오른팔이 부러진 상태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악교교처럼 날 죽일 건가요?”
금장생은 먼저 유적기의 하의를 입히며 물었다.
“한 가지 약속을 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게다.”
“어떤 약속인지 모르지만 무조건 지키겠습니다.”
바지를 다 입히고 나서 상의를 여며 주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어도 되느냐?”
“장사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이 바로 신용입니다. 신용은 신뢰에서 비롯되고요.”
“장사를 하는 게냐?”
“네.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고맙다.”
“걸을 수 있겠습니까?”
“네게 얻어맞기 전에는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구나.”
“그럼 때린 거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네요.”
금장생은 유적기 앞에 등을 댔다.
유적기는 두 팔로 금장생의 어깨를 잡고 업혔다.
몸을 일으킨 금장생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나가는 길은 아느냐?”
“모릅니다.”
“그럼?”
“공기가 흐른다는 건 통로가 있다는 뜻이고, 가다 보면 나오지 않겠습니까.”
“낙천적이구나.”
“정 안되면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면 되니까요.”
“지금은 왜 돌아가지 않는 거냐?”
“아직 사흉의 세 명이 남아 있고, 악교교를 만날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구나. 그런데 어떤 장사를 하느냐?”
“그건 왜…….”
“할 수만 있으면 팔아 주고 싶어서 그런다.”
“제집에서 팔아 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하다는 거냐?”
유적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시체 치우는 게 제 일이거든요.”
“시체를 치운다고?”
“장의업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협께서 제게 도움을 주려면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부모님이나 친척의 장례를 부탁해야 하는데, 거리상 불가능할 거 아닙니까?”
“풋! 그렇구나.”
유적기는 피식 웃었다.
참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가는 길이 있어야 할 텐데…….”
사실 금장생도 걱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공기는 작은 구멍만 있어도 흐른다. 사람이 들락거릴 통로가 있을지, 그건 알 수가 없었다.
‘돌아가면 되지, 뭐.’
그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쉬지 않고 걷던 어느 순간 앞이 환해졌다.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나타난 것이다.
금장생의 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후 그는 출구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 밤을 꼬박 새운 모양이었다. 새벽안개와 함께 강물이 그를 반겼다.
“반대편으로 나왔네.”
금장생은 강물을 보았다. 누런 물은 망산 북편을 타고 흐르는 황하였다.
“목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는 한데…….”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유적기를 보았다. 유적기는 잠이 든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가는 게 낫겠네.”
곧바로 몸을 돌려 망산을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전날 들어갔던 무덤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한참을 돌아가느라 거의 두 시진이 지나서야 망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