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1)
하지만 금장생의 얼굴은 태연했다.
아니, 뉘 집 개가 짖느냐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는 악교교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자기 몸 상태가 어떻다는 걸 잊은 건가 보죠?”
“내 몸이라고…… 끙!”
악교교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공을 끌어 올리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
“이젠 앞장서시겠습니까?”
금장생은 다시 오른팔로 안쪽을 가리켰다.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나는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악교교는 차갑게 말했다.
“무인들은 의외로 소심하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악교교도 따라 들어갔다.
조각상 안쪽은 협곡이었다.
협곡과 협곡 사이는 돌로 만든 다리로 이어져 있었는데, 어둠 때문에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아 길이는 알 수 없었다.
전방뿐만 아니라 좌우측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을 감안한다고 해도 상당히 길다는 뜻이었다.
다시 다리로 시선을 주었다.
다리의 폭은 한 자 정도로 아주 좁았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조각상 엉덩이 아래쪽을 더듬었다.
그르릉!
잠시 후 열렸던 석문이 닫혔다.
“신중한 놈이구나.”
다시 문을 닫는 건 누군가가 쫓아오는 걸 막기 위해서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덤 속에서 그렇게 태연하게 행동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중한 게 아니고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겁니다.”
“정말 처음 온 게 맞느냐?”
악교교는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무공도 없는 자가 너무 태연하다. 아무래도 두어 번 들어와 본 자 같았다.
“이런 곳을 굳이 몇 번씩 들어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굳이 혹을 달고 갈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
악교교는 할 말이 없었다. 금장생의 말이 옳기 때문이었다.
“앞장서시죠?”
“네가 먼저 가라.”
“여전히 반말이군요.”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다. 반말을 듣기 싫으면 너도 말 놔라.”
“저도 맘은 굴뚝인데 반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앞장서겠습니다.”
금장생은 다리 끝을 발로 굴러 보았다. 중간에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전 체중을 실어 쿵쿵 뛰었지만 까딱없었다.
금장생은 곧바로 진입했다.
그런 금장생의 등을 악교교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금장생의 등을 바라보는 눈빛은 꽤나 복잡했다.
다리는 상당히 길었다. 게다가 떨어져 나간 곳도 간간이 있었다.
십 장을 넘게 온 것 같은데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삼 장 위쪽에 천장이 보였다. 저 천장은 조각상 옆에 만들어져 있던 석실 여섯 개의 바닥을 이루고 있다.
“얼마나 깊은지 한번 볼까요?”
금장생은 고개를 돌려 악교교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안다는 거냐?”
“이게 있거든요.”
금장생은 들고 있던 걸 악교교 앞으로 내밀었다. 주먹 크기의 돌멩이였다.
그는 옆으로 손을 뻗어 돌멩이를 놓았다. 그리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툭!
정확하게 다섯까지 세고 나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지면 죽겠네요.”
“깊이를 안다는 거냐?”
“이십오 장가량 됩니다.”
“이십오 장?”
“다섯까지 셌거든요.”
“하나를 셀 때마다 오 장씩 떨어진다는 거냐?”
“이런 장소에서는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점점 네 정체가 궁금해지는구나.”
“정체라는 말은 수상한 자들에게 쓰는 걸로 아는데, 제가 수상해 보입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다.”
“말씀을 하시면 답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무공이 없는 자치고 너무 태연하다.”
“멍텅구리 배를 이 년 타고, 인삼밭에서 일 년 동안 인삼을 캐고, 산전, 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다 겪고 나면 겁먹을 것도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인생 경험이 많다는 거냐?”
“이제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육십 먹은 노인네가 한 명 살고 있습니다.”
“스물셋이라고?”
“그렇게 보이지 않나 보죠?”
“그게, 말투나 행동이…….”
“제가 좀 삭긴 했죠. 그리고 또 뭐가 수상합니까?”
“걸음을 옮기는데 발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처럼 걷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누가 저처럼 걷는데요?”
“자객이다.”
“와! 대단한 안목이네.”
금장생은 정말 놀란 것 같은 얼굴로 악교교를 보았다.
“정말 자객이더냐?”
악교교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제가 자객이라면 누구를 없애기 위해 왔을까요? 소저 곁에 붙어 있는 걸 보면 목표물이 소저인 것 같은데, 왜 지금까지 행동을 하지 않은 걸까요?”
“아니란 말이냐?”
“그건 나보다 악 소저가 더 잘 알겠지요.”
금장생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다리 끝에 도착했다.
다리 끝은 석실로 이어져 있었다. 석실 위쪽엔 천수총天手塚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진짜 무덤인 모양이네요.”
금장생은 악교교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리고…… 악!”
악교교의 발이 쑥 빠지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드디어 천수총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발을 잘못 디딘 것이었다.
휙!
금장생은 급하게 손을 뻗어 악교교의 손목을 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놓지 마!”
악교교는 겁먹은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왼손은 다리 아래쪽 고리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갈등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치부인 얼굴을 본 금장생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여기까지 함께 온 건 금장생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이대로 오른손을 당기면 금장생은 다리 아래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아직은…….’
악교교는 금장생의 손을 힘껏 잡았다.
“놓치면 안 됩니다.”
금장생은 손에 힘을 주고 끌어 올렸다.
잠시 후 악교교는 다리 위로 올라왔다.
“휴우!”
악교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던데…….”
금장생은 악교교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
“저 아래로 떨어지면 온몸이 부서져 죽게 될 거란 말입니다.”
금장생은 다리 아래를 가리켰다.
“내가 널 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악교교는 물었다.
“네.”
“궁금하구나.”
“첫째는 중원 최고의 알몸과 얼굴을 훔쳐본 죄고, 두 번째는 제가 없으면 보물을 혼자 차지할 수 있고, 세 번째는 소저가 보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적룡, 무극, 사흉에게 숨길 수 있지요.”
“새로운 걸 알게 해 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나는 널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구나. 그러니까…….”
“앞장서라는 건가요?”
“잘 아는구나.”
“그러죠.”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천수총이란 글이 쓰인 석문 앞에 선 금장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할 겁니다.”
“뭘 말이냐?”
“멍텅구리 배를 탈 때 내 별명은 ‘악귀’와 ‘뒤끝’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멍텅구리 배라면, 배를 탔더냐?”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악귀는 알겠는데 뒤끝은 무슨 말이냐?”
“내 뒤통수를 치고 무사했던 자는 아직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격이 아주 더럽다는 뜻이네?”
“네.”
“하지만 나는 무인이다.”
“지금은 아니죠.”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악교교는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벌써…….”
“중독되면 죽음에 이르는 독이라고 해도 다 죽는 건 아니다. 어떤 자는 죽지만 어떤 자는 살고, 또 어떤 자는 처음부터 중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금 해독됐다는 건가요?”
“질문은 내가 먼저 했다.”
“그러니까 지금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알아맞혀 보라는 거군요.”
“맞다. 그리고 명심할 건, 내가 무공을 회복한 상태라면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목숨을 걸라는 거네요?”
“해 보겠느냐?”
“소저가 무공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데 내 머리를 걸겠습니다. 하지만 시험은 하지 않겠습니다.”
금장생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석문을 밀었다.
그르릉!
석문은 쉽게 열렸다.
파앗!
먼저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환한 빛이었다.
내부는 커다란 석실이었는데, 벽에 특이한 물체가 달려 있었다. 석실 내부를 환하게 밝힌 건 바로 그 물체였다.
물체는 등처럼 생겼는데, 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런 등이 아니었다.
“저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금장생은 벽면에 걸린 등을 가리켰다.
“등 아니냐.”
악교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천수만장이 언제 사람이죠?”
“이백 년 전…….”
악교교는 자기 대답에 어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백 년 전 사람이 밝혀 놓은 등이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악교교는 등 앞으로 갔다. 등은 바닥에서 일 장 높이에 붙어 있었다.
“저건?”
그녀의 눈이 커졌다.
야명주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환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석실은 이백 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겁니다.”
“천수만장이 만든 석실이 아니라는 거냐?”
“그는 남이 만들어 놓은 석실을 자기 무덤으로 꾸몄을 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저길 보세요.”
금장생은 오른편 벽을 가리켰다.
악교교의 시선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거기엔 커다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는 특이했다. 팔걸이에는 처음 보는 동물이 조각돼 있고, 체구 작은 사람은 두 명이 앉아도 충분할 정도로 컸다. 등받이에도 처음 보는 동물들이 조각돼 있었다.
“의자 말고 벽을 보라는 겁니다.”
악교교는 시선을 들었다.
벽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글이었다.
금장생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처음 보는 글이었다.
“저건 알겠네.”
금장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모르는 글 아래쪽에 익숙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건 천수만장 귀운자가 남긴 글이었다.
천 년을 헤맨 끝에 드디어 그분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흔적뿐이다. 이제 무엇으로 그들을 막는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무기가 완성되면 강호로 나가 시험해 볼 것이다.
부디 내 무기가 통하길 바라 본다.
(……)
총 열 개의 무기를 만들었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귀운자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 있었다.
“시기가 다르네요. 적다가 그만둔 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걸 뜻하고…….”
글을 읽고 난 금장생이 말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느냐?”
“친구나 손님이 무덤 속으로 찾아올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글을 적다가 말았다는 건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뜻합니다.”
“그럼?”
“밖에서 누군가가 쫓아 들어왔다면 저기로 가진 못했을 테니까…….”
금장생은 자신들이 들어온 곳을 가리켰다.
“안으로 들어갔을 거란 말이구나.”
“가시겠습니까?”
“나는 천수십병을 얻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가겠다는 거군요. 나는 여기를 찾아볼 테니까 소저는 안쪽을 찾아보십시오.”
“뭘 찾으라는 거냐?”
“이 석실을 나갈 수 있는 통로요.”
“……알았다.”
악교교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안쪽으로 갔다.
그사이 금장생은 의자로 올라갔다. 먼저 글자처럼 보이는 걸 살펴볼 참이었다.
의자 위로 올라서서 손을 뻗자 비로소 맨 위에 쓰인 글자가 손에 닿았다.
그가 먼저 글자를 주목한 건 동영에 있을 때 글자를 이용하여 기관 장치를 숨기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금장생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따라 썼다.
찌르르!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