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8)
북망산
공짜.
참으로 달콤한 말이고 금장생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찍이 자린고비 중 상 자린고비였던 금장생의 아버지는 공짜로 얻거나 얻어먹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늘 강조하셨다. 단, 공짜를 위해 구걸을 하는 순간 거지가 된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 영향인 듯, 금장생도 공짜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공짜가 생겼다.
땅은 천 평이 넘고, 건물은 세 채나 된다.
게다가 금장생은 잠을 잘 집도 없는 상황.
곧바로 수레를 끌고 계약서에 나온 장소로 향했다. 물어물어 가다 보니 계속 북쪽이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병풍처럼 펼쳐진 언덕 비슷한 산과 마주했다.
황토로 이루어진 저 산이 후한의 광무제, 북위의 효문제를 비롯한 여타 황제들과 그 밑에서 아첨하던 자들 그리고 방귀깨나 뀐다는 고관대작들이 묻혔다는 망산이다.
원래 이름은 망산인데 낙양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망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
“살아서는 소항蘇沆이고 죽어서는 망산邙山이라는데…….”
많은 황제와 영웅호걸들이 묻힌 산이라 대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그의 집 뒷산보다 못했다.
“저런 곳이 뭐가 명당자리라고…….”
금장생은 혀를 찼다.
망산에 묻힌 자는 왕후장상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양민들도 이곳에 무덤을 썼다.
그들 중에는 낙양에 살았던 사람보다 연고도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명당이 아닌 곳에 왕후장상이 무덤 자리를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즉, 오로지 명당에 묻기 위해 수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으로 와서 무덤을 쓰고 갔다.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수레에서 흘러나왔다.
오는 도중에 태워 준 노인이었다.
노인을 만난 건 주소를 묻기 위해서였는데 마침 자기도 거기로 가니까 태워 달라고 하여 동행을 하게 되었다.
“오죽하면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왜 명당자리에 무덤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고 생각하십니까?”
“잘살아 보기 위해 망산에 무덤 자리를 쓴다는 겁니까?”
“잘 아는군요.”
“일리가 있네요.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십여 장쯤 가면 교차로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가면 됩니다.”
노인의 말대로였다.
십여 장 정도 가자 망산과 나란하게 나 있는 길이 나왔다.
금장생은 오른편으로 길을 잡았다. 그렇게 이백여 장 정도를 가자 장원이 나타났다.
높이가 반 장이 채 되지 않는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안쪽에 세 채의 건물이 ‘ㄇ’ 형태로 서 있었다.
망산을 등진 건물은 가장 큰 본관이고 좌우측에 약간 작은 건물 두 채가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수레는 대문 앞에 멈췄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망루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계약서에 나온 집이 여기 맞나요?”
노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야라고 합니다.”
“천야요?”
“제 이름입니다.”
“아, 그렇군요.”
금장생은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부석에서 내려 대문을 열었다.
“농사를 지어도 되겠네.”
정원을 본 첫 느낌이었다.
대문에서 본관까지 거리가 삼십 장은 돼 보였다. 좌우 폭 또한 비슷했다. 대문과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한 본관은 망산을 뒤로하고 서 있었다.
건물은 생각보다 웅장했다. 앞에는 사찰의 대웅전처럼 커다란 기둥들이 지붕을 떠받치고 서 있었다.
“저 건물을 황상전皇喪殿이라고 합니다.”
“너무 큰 거 아닌가요?”
대문에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바로 앞까지 오자 광활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넓었다. 이런 거대한 건물에서 혼자 산다는 게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전만 해도 쉰 명이 넘게 살았으니까 크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뭐 하는 곳인데 쉰 명이나 살았다는 거죠?”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십니까?”
“일반 장원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 생각이 맞나요?”
“이런 곳에 장원을 지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긴 한데.”
다른 곳도 아니고 뒷배경이 공동묘지인 이곳에 장원을 짓는 건 정신 나간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긴 장원이 아니라 상조업을 하는 문파 중 한 곳입니다.”
“상조 문파라고요?”
놀랍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물론 금장생 집안에서도 상조업을 했다. 하지만 장례를 지내 주는 걸로 돈을 버는 줄 알았지 이렇게 문파까지 있는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네.”
“그런 문파도 있어요?”
“상조업을 하는 대표적인 문파로는 장상문葬喪門, 천당사天堂社 그리고 황상皇喪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그 황상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일 년 전에 문도 수가 쉰 명이었다면 지금은 망했다는 건데,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모기업이 몰락하면서 함께 망한 겁니다.”
“모기업이라면?”
“황금전가가 모기업이었습니다.”
“…….”
금장생은 어이가 없었다.
하고 많은 사업체 중 그의 가문에서 운영하던 곳의 주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가 황금전가 셋째 아들이란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먼저 불을 켜겠습니다.”
천야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실내가 환해졌다.
금장생은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문 안쪽은 대전이었다. 정방형의 대전은 한 변의 길이가 십 장에 달했는데, 기다란 탁자 네 개가 ‘십十’자 형태를 이루며 놓여 있었다. 각 탁자는 의자 열 개를 나란히 놓을 정도로 길었다.
대전 좌우측은 중앙에 복도가 나 있고 복도 좌우측으로 방이 있었다. 거의 일 년 동안 방치된 곳 같지 않게 내부는 깔끔했다.
“문주님 방은 이 층에 있습니다.”
“단층 건물이 아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대전 한편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금장생은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도 넓기는 일 층과 다르지 않았다. 대전이 있고 복도가 있고 방이 있었다. 그리고 깨끗했다.
다만 방들의 크기가 일 층보다 더 컸다.
“문주님은 이쪽을 전부 사용하셨습니다.”
천야가 가리킨 곳은 대전 오른편이었다.
“방이 많네요.”
“여긴 침실, 손님방, 집무실, 서재, 휴식 공간, 접객실, 욕실, 화장실까지 총 여덟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완벽한 집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도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금장생은 천야를 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여기를 어떻게 그리 잘 아시죠?”
“일 년 전에 여기 총관이었습니다.”
“아! 그럼 여기가 이렇게 깨끗한 게…….”
“정기적으로 한 건 아니고 북망산에 올 일이 있으면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건물의 주인이 됐습니다.”
“그럼 황상이 다시 문을 여는 겁니까?”
천야는 기대에 찬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사업을 해 본 적도 없고 또 할 생각도 없습니다. 원래는 여기 살까도 생각해 봤는데 직접 와서 보니까 혼자 살기엔 너무 크고, 가능하다면 팔아 볼 생각입니다.”
“파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가 네 번째 주인인 걸로 아는데요?”
“두 번째 주인이 돈을 빌려주었던 전장이었고, 세 번째 주인은 전장에서 내놓은 지 십일 개월 만에 나타났는데 그분이 바로…….”
“내게 팔았던 자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영감님이 사서 운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주 싸게 드릴 용의가 있는데.”
금장생은 슬쩍 떠보았다.
솔직히 적성 여부를 떠나 장의업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돈이 벌릴지 그것도 의문이었다.
“인수할 돈도 없지만 사업을 하기엔 제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살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
“네.”
“오백 냥만 내면 문서를 바로 내 드릴 수 있는데…….”
“전장에서 팔 때 금액이 백 냥이었습니다.”
“백 냥이라고요?”
“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놈 새끼. 백 냥에 사서 내게는 천이백 냥을…….”
갑자기 뜨거운 것이 불쑥 치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저었다.
걸음을 옮기던 그는 서재로 들어섰다. 서재에는 제법 많은 책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일 년 전에는 장사가 좀 됐나요?”
책 한 권을 뽑아 들며 물었다. 장례 예절에 관한 내용의 책이었다.
“장부가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장부요?”
“네.”
“일단 한번 보죠.”
“이쪽으로 오십시오.”
천야는 금장생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천야는 곧바로 촛불을 켰다.
환해지면서 내부가 드러났다.
“집무실인가 보죠?”
금장생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한가운데에 책상과 의자가 있고, 뒤편에는 커다란 창이 있다. 좌측에는 책장이 있고, 오른편 벽에는 진열장으로 보이는 가구가 놓였다. 진열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크기에 비해 가구가 적긴 하지만 집무실 배치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천야는 책장 앞으로 갔다.
잠시 책장을 더듬던 그는 칸막이 하나를 잡아당겼다.
철컥!
자물쇠가 물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르릉!
그리고 책장이 구십 도로 회전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비밀 창고로 보이는 공간에는 몇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천야는 그중 한 권을 꺼내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금장생은 책을 받아 들고 의자에 앉았다.
책은 입출금과 수입을 기록한 결산 장부였다.
결산은 하루, 열흘, 한 달, 일 년 단위로 돼 있었다.
금장생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순수입만 보았다.
“엄청나네요.”
금장생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한 달 순수익이 무려 오백 냥이나 되었다.
일 년이면 육천 냥, 십 년이면 무려 육만 냥이나 된다.
이거 하나만 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만일 전국에 수백 개의 지점을 낸다면…….
“돈에 깔려 죽겠군.”
“늘 그렇게 버는 건 아닙니다. 월 오백 냥 수입이 나는 건 가장 좋을 때 이야깁니다.”
“일 년 중 가장 잘될 때가…….”
“팔월입니다.”
“가장 더울 때란 말이군요.”
“추위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되지만 더위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거라도 있습니까?”
“네.”
“아무거나 물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수입이 좋은 사업인데 왜 임자가 나오지 않은 거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죠?”
“식당이나 주루업 혹은 숙박업을 하는 경우엔 건물을 매입하거나 신축한 후 광고를 통해 아무 일꾼이나 모집하면 되지만 이쪽 계통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이쪽 계통에서 일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건가요?”
“일한 정도가 아니라 최소 십 년은 굴러먹어야 비로소 일할 준비가 됐다고 합니다.”
“완전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거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직종은 실수했을 때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예컨대 음식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손님이 주문한 음식이 잘못됐을 경우 먼저 사과를 하고 보상하는 의미에서 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합니다. 그럼 대부분의 손님은 만족하고 좋은 느낌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장례식은 다릅니다. 한 번 더 한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경사보다는 흉사를 치르는 데 더 엄격합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약간의 실수도 웃으며 넘어가지만 흉사는 다릅니다. 부모님의 장례를 잘못 치르면 불효를 했다고 여기고, 자식의 장례를 잘못 치르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은 장례를 주관했던 자들을 없애기도 하고요.”
“그 정돕니까?”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장례 예식이 엄격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
“섬뜩하네요.”
“아무튼 그게 첫 번째 이유라면 이유고, 두 번째는 업종이 가지는 위상 때문에 진입을 꺼리게 됩니다.”
“천한 업종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돈이 없는 자는 전문성이 없어서 진입하지 못하고 가진 자는 천한 업종이라 자신이나 혹은 집안의 명예가 추락하기 때문에 꺼린다는 거군요.”
“이 업종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욕을 먹어 가면서까지 할 이유가 없지요.”
“그렇죠.”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금장생은 천야를 보았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매월 수입에 보면 운구라는 항목이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장지까지 가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운구에 의한 수입은 상당했다. 심지어 건당 수천 냥 하는 것도 있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운구라고 적기는 했지만 장지로 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럼 뭘 말하는 겁니까?”
“객지에서 죽었을 경우 고향으로, 혹은 장지로 가지고 오는 걸 말합니다.”
“단순히 짐수레로 실어 오는데 수천 냥씩이나 준다는 겁니까?”
“여기서 말하는 운구는 짐수레에 싣고 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죽은 상태 그대로, 가급적 아무런 훼손 없이 원하는 곳으로 데리고 오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썩지 않게 가져와야 한다는 건가요?”
“네.”
“그게 가능해요?”
금장생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시간이 흐르면 시체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하지만 부패를 멈추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훼손 없이 가져오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 혹시 무공을 사용하는 건가요?”
문득 극한의 빙공으로 얼려서 가져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꽁꽁 언 상태를 짧게는 열흘, 길게는 몇 달 동안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빙공의 대가라야 하는데, 그런 고수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일리가 있군요. 그럼 어떻게 해서 데리고 오죠?”
“강시殭尸로 만들어 데리고 옵니다.”
“강시요?”
“네!”
“허!”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천야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