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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5화 (5/524)

황금가 (5)

금선달의 가게에 도착하자 네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두 명씩 따로 온 자들이었다.

“나 좀 봅시다.”

금선달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들 중 한 명이 낚아채듯 한편으로 데리고 갔다.

금장생은 딴짓을 하는 척하면서 금선달과 손님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내가 하겠소.”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망忘을 말하는 겁니다.”

망루라고 하진 않았지만 ‘망’ 자만 들은 걸로도 어떤 가게를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게, 다른 분도 있어서…….”

금선달이 말끝을 흐리며 슬쩍 금장생을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얼마를 낼지 몰라도 나는 거기에 백 냥을 더 얹겠소.”

“알겠습니다. 일단 이야기를 끝내야 하니까……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꼭 부탁하겠소.”

손님은 금선달의 손을 잡고 흔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나머지 두 사람도 금선달을 따로 만났다. 정확한 금액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그들 역시 거래하고 싶어 하는 건 망루였다.

금장생은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물론 그가 가진 돈을 전부 털어도 이백 냥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루를 꼭 인수하고 싶었다.

“저기…….”

“계약합시다.”

금장생은 계약을 서둘렀다.

그러자 금선달은 자리에 앉으며 서류철처럼 보이는 걸 펼쳤다. 그리고 물었다.

“얼마까지 내실 수 있습니까?”

“그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탁!

서류철 닫는 소리에 금장생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돈이 부족한 모양이군요.”

“조, 조금 부족합니다.”

“정확하게 말해 주십시오.”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일천 냥입니다.”

“그러니까 이백 냥을 깎아 달라는 겁니까?”

“네.”

금장생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 냥이 넘는 가게를 천이백 냥에 사면서 거기서 이백 냥을 더 깎아 달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돈이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진 게 그것뿐이라서…….”

“없던 일로 하지요.”

“이거 보시오.”

금장생은 금선달의 소맷부리를 잡을 만큼 다급해졌다.

하지만 금선달은 냉정했다. 그는 돈이 만들어지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끙!’

금장생은 신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금장생보다 먼저 상담을 했던 자들이 한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돈을 전부 현금으로 만들려면 한 달은 있어야 해.”

“아까 그 사람들도 현금이 없는 것 같으니까 최대한 서둘러 보자고.”

“혼자 온 젊은이는…….”

“그 사람은 돈이 부족해.”

“그럼 현금만 만들어 오면 그 가겐 우리 소유가 되는 거네?”

“우린 부자가 되는 거지!”

“빈둥거려도 되는?”

“그렇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 들렸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빈둥거려도 된다.’는 거였다.

“현금이라…….”

금장생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전장으로 향했다.

금장생이 금선달 가게로 간 건 다음 날이었다.

“이것과…….”

먼저 돈 자루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이거면…….”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뽑아 돈 자루 옆에 놓았다.

“뭡니까?”

“이건 현금 일천 냥이고, 이 반지는 이백 냥 가치가 충분할 겁니다.”

“다른 손님이 백 냥을 더 얹어 주기로 했습니다만.”

금선달은 금장생이 내려놓은 돈 주머니를 흘끔 보다가 반지를 집어 들어 살폈다. 그러고는 탁자 위로 툭 던졌다.

그의 얼굴엔 별것 아니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격을 후려칠 모양인데 어림없다.’

금장생은 내심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자들은 현금을 동원할 여력이 없는 걸로 압니다.”

“어?”

금선달의 눈이 커지는 걸 보고 금장생은 쾌재를 불렀다. 허를 찔린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하루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가게 주인이 원하는 금액은 일천이백 냥입니다. 하지만 손님이 낸 돈은 일천 냥뿐입니다.”

“이 반지가 있잖습니까?”

“보통 반지는 살 땐 고가지만 팔 때는 절반도 받지 못합니다. 게다가 저건 반지 표면에 온통 흠이 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쳐준다고 해도 쉰 냥이 한곕니다.”

“그러니까 못 팔겠다는 겁니까?”

“못 팔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돈을 가지고 가셨다가 내일 다시 오십시오.”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돈 자루를 걸머지고 금선달의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객잔으로 향했다.

그가 머물고 있는 객잔은 근처에서 가장 싼 곳으로, 좁고 으슥한 골목을 이십 장이나 걸어가야 한다.

‘어?’

중간 정도 갔을 때 험상궂게 생긴 자들이 앞을 막아섰다.

금장생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앞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뒤편에도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 손에는 앞이 일자로 잘린 도刀가 들려 있었다. 도의 길이는 한 자 반가량이었다.

“제게 볼일이 있습니까?”

금장생은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네게는 볼일 없고 등에 지고 있는 자루에 볼일이 있어.”

두 사내 중 오른편 사내가 도 면으로 손바닥을 탁탁 치며 말했다.

“이 자루 안에는 내 팔 년 삶이 들어 있는데요.”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고 사라지면 앞으로도 오늘 아침처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점심상은 저승에 가서 먹게 될 거야.”

“지금 날 죽이겠다고 협박하신 겁니까?”

“응.”

“혹시 멍텅구리 배가 뭔지 아십니까?”

“멍텅구리 배?”

“그 배에서 일 년을 버티면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악바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이 년을 버텼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들이 나를 악귀라고 부르더군요. 동영의 멍텅구리 배에서는 말입니다, 악귀는 전설입니다.”

“웃기고 있네, 자식. 죽여 버렷!”

파앗! 파앗!

사내의 외침이 떨어지자 뒤편의 두 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악귀를 건들면 큰일 나는데…….”

쇄액!

도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금장생은 왼편 무릎을 꿇고, 빙글 돌면서 오른편 다리를 쫙 폈다.

퍼억!

오른 다리 오금에서 둔탁한 느낌이 왔다. 그 순간 다리를 접으며 잡아당겼다.

“억?”

당황한 비명이 들려왔다.

“당황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내 돈을 탐냈던 사람들 전부 다 같았으니까요.”

금장생은 그 앞으로 넘어진 자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명치에 강한 충격을 주는 걸로 충분하다.

“커억!”

사내는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금장생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도 한 자루가 바람을 가르며 금장생의 머리를 쪼개 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뒤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발바닥을 합쳐 도 면을 잡았다.

참고로 금장생은 멍텅구리 배만 탄 게 아니었다. 동영을 떠난 후 조선으로 갔고, 그곳에서 이 년을 머물렀다. 그때 각저라는 다리기술을 배웠다.

물론 각저에는 발바닥으로 도 면을 잡는 기술은 없다. 하지만 늘 강조하지만 응용이라는 게 있고, 객지 생활 팔 년이면 임기응변의 도사가 된다.

발바닥으로 잡은 도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사내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 순간 오른발을 떼서 접어 사정없이 튕겼다.

퍼억!

“커억!”

사내의 동작이 우뚝 멈춘다.

방금 오른발 발끝이 파고든 낭심 역시 명치와 마찬가지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자리다.

금장생은 두 다리를 빙글 돌려 재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싱거운 자식들!”

앞을 막아섰던 둘은 저만치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둘이 아니라 네 명이었다. 새로 합류한 둘은 금선달의 가게에서 보았던 자들이었다.

“내 돈을 노렸다는 건, 지금 있는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거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돈을 노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대박이 터질지도.”

금장생은 싱긋 웃고는 숙소로 들어갔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 날 금선달은 반지를 포함한 현금 일천 냥에 가게를 넘기기로 했다.

공증을 선 자는 망루 총관이었다.

망루 총관은 전날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얼굴을 확인해 두었다. 물론 금선달은 금장생이 총관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른다.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금장생만의 방법이었다.

매매계약서를 쓰고 서류를 확인하는 데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금선달의 가게로 들어가고 반 시진 뒤, 금장생은 집문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망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총관은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금장생은 금선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숙소로 향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짐이라고 해 봐야 봇짐 하나가 전부였다.

봇짐을 걸머지고 망루로 향했다.

망루는 여전히 손님으로 넘쳐 났다.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을 보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금장생은 손님들이 나간 자리의 그릇을 정리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손님!”

탁자에 떨어진 음식을 그릇 안으로 집어넣고 있던 점소이가 다가왔다.

“왜?”

금장생은 점소이를 보았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아래위를 훑어보는 점소이 눈에 경계하는 빛이 가득했다.

아마도 점소이는 금장생이 점소이 자리를 구하려고 온 걸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자식! 네 자리 걱정 마라. 내 자리는 점소이가 아니라 사장이다.’

금장생은 싱긋 웃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총관 좀 불러 주겠나?”

“총관요?”

점소이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응! 총관.”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 총관은 왜?”

급기야 점소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탁자를 치우다가 이제는 총관까지 찾으니 취직하러 온 사람이라 확신한 게 분명했다.

“네 자린 걱정 마. 나는 전 사장 밑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근무자를 자르는 악덕 업주가 아니니까.”

“네?”

점소이의 눈이 커졌다.

금장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금장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이 집 신임 사장이야.”

“새, 새로운 사장님요?”

“응. 그러니까 가서 총관 데리고 와.”

“아,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황급히 안으로 갔다.

금장생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차림표를 훑어보았다.

전에는 돈을 주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소면을 먹었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다. 왜냐고? 공짜니까.

“제가 총관입니다만…….”

“나 왔습…….”

아마도 누군가 금장생을 보았다면 눈이 찢어지는 줄 알았을 것이다.

금장생은 불타 없어진 그의 집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눈으로 총관을 보았다.

“당신이 총관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언제 바뀌었습니까?”

“저는 여기서 십 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 기춘근은 누굽니까?”

“기춘근요?”

“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자는 그제와 어제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군요. 어제와 그제는 제가 복통으로 인해 결근한 날인데.”

총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내가 이 가게를 샀습니다.”

금장생은 총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요?”

역시 금장생의 예상대로 총관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총관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총관과 함께 나왔다.

“내가 이 집 주인 유만복입니다. 그런데 내 집을 샀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주인은 정중한 얼굴로 금장생에게 물었다.

“이걸 보십시오.”

금장생은 계약서와 문서를 주인에게 내밀었다.

주인은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주인의 얼굴에 측은지심이 역력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가게 이름이 같지만 주소가 다릅니다.”

“주소가 달라요?”

“여기 나온 주소는 북망산 근첩니다. 북망산 근처에 망루란 이름의 가게가 있는가?”

주인이 총관에게 물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용했던 가겝니다. 여기와 이름이 같아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내,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겁니까?”

금장생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 팔 년 동안 산전, 수전, 공중전, 수중전까지 모두 겪었다.

그런데 사기를 당했단다.

사기를!

‘내 돈 일천 냐아아아아아앙!’

금장생은 머리를 감싸 쥐고 무너지듯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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