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4)
망루
“모르는가?”
자운영은 물었다.
“무인입니까?”
“사상은 자객이네.”
“자객요?”
“자객이면서 무림십패에 속해 있는 절대 고수이기도 하네.”
“무림십패는 뭡니까?”
“지난 이백 년 이래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 열 명을 부르는 호칭으로, 일왕이검이도일창이장일류일살이 그들이네. 일왕은 제왕帝王 초무극이고 이검은 환수각幻獸閣의 각주인 천사天邪 척사랑과 무적無敵 고독혼을 말하고 이도는 해림海林의 림주 단천斷天 파운양, 마원魔院의 원주 패도覇道 천파고, 일창은 무극無極 유적기, 이장은 운성雲城의 성주 적룡赤龍 철전혼, 천야교天夜敎의 교주 소수素手 방가려, 일류는 혈류血流 추밀, 일살은 사상 암야네.”
“다섯 명은 각 세력의 수장이군요.”
“그러네. 각 세력의 수장 다섯 명은 드러난 반면 나머지 다섯 명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네. 그들 중 특히 사상 암야는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네.”
“그건 당신네 금의위 사정이고, 우리 동창에서는 파악했어요.”
“어떤 걸 파악했다는 건가?”
“나이는 이십 대 초반이고, 키는…….”
잠시 말을 끊은 권말남은 금장생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 녀석만 해요.”
“동창에서는 막연한 추측을 증거로 사용하나 보구먼.”
“추측을 통해 증거를 찾아내는 거예요. 그리고 막연한 게 아니라 정확도가 구 할 이상이고요.”
“무슨 근거로 정확도가 구 할 이상이라는 건가?”
“내가 근거로 내세우는 건 냄새예요.”
“냄새?”
“사람은 나이대에 따라 냄새가 다르거든요.”
“나이대?”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가 다 다르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그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는 거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십 대의 가장 큰 특징은 풋풋함이에요.”
“풋풋함을 맡을 수 있다는 건가?”
“보통 사람들은 절대 안 되지만 나는 가능해요.”
“그럼 이십 대는?”
자운영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이십 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정액 냄새예요.”
“정액 냄새?”
“일생을 통해 가장 왕성한 때가 이십 대거든요. 목욕을 하면 없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없어지지 않아요.”
“그럼 삼십 대는?”
“삼십 대부터는 퀴퀴한 냄새와 여자 냄새가 뒤섞여 있어요.”
“여자와 관계를 갖기 시작한다는 건가?”
“네.”
“이십 대에도 여자와 관계를 갖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래서 미묘하다고 한 거예요.”
“그럼 사십 대는?”
“본격적으로 썩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하지요.”
“썩은 내?”
“가장 배신을 잘하는 시기거든요.”
“쿡!”
자운영은 피식 웃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신을 잘하는 것과 썩은 내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배신을 잘하는 것과 썩은 내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이네요?”
“잘 아는구먼.”
“사십 대가 되면 자신이 살았던 삶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거 아세요?”
“지어낸 말 아닌가?”
“아니에요. 그 말이 맞아요. 사십 대가 되면 과거 삶이 그대로 얼굴에 그려져요. 그건 화려한 옷이나 비싼 보물로도 절대 가려지지 않아요. 냄새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향을 뿌려도 본인이 가진 냄새는 그대로 남게 돼 있어요.”
“좋아, 그렇다 치고. 오십 대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오십 대는 썩은 내와 죽음의 냄새가 뒤섞여 있고, 육십 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죽음의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해요.”
“죽음의 냄새도 맡을 수 있는가?”
“고루시마 기억나요?”
“놈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당연히 기억하지.”
“그놈과 싸울 때 냄새 못 맡았어요?”
“냄새라…… 특이한 냄새를 맡은 것 같기도 하고…….”
자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워낙 경황이 없었던 터라 싸운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놈뿐만 아니라 공동묘지로 가도 비슷한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음산하다고 느끼는 걸 나는 냄새로 맡아요.”
“혹시 그거 무공인가?”
“글쎄요.”
권말남은 빙그레 웃었다.
“하면 이 친구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자운영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게…… 아무 냄새도 안 나요.”
권말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 이론대로라면 이십 대 초반이니까 정액 냄새가 진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하는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요.”
“냄새가 없는 사람도 있는가?”
“고도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면 다 있어요.”
“어떤 훈련을 말하는 건가?”
“자객 훈련요.”
“그럼 이 친구가 자객이라는 건가?”
자운영은 금장생을 가리켰다.
“그래서 나도 좀 당황스러워요.”
“그런데 사상을 왜 쫓는 겁니까?”
듣고 있던 금장생이 물었다.
“병부상서 육구남과 좌군도독 이벌계, 동창 제삼첩형 윤구를 살해했네.”
“그랬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어떻게 할 건가?”
“살길을 찾아봐야지요.”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머무를 건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황금전가를 공격했다면 가주의 아들인 나도 무사할 리가 없잖습니까. 당연히 떠나야지요.”
“그렇구먼.”
“차 잘 마시고 갑니다.”
금장생은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운영과 권말남은 멀어지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특이한 녀석이네.”
권말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도 그렇게 느꼈는가?”
자운영이 물었다.
“당신도?”
권말남은 자운영을 보았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묘한 느낌을 주는 자였네. 그래서 자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데려온 거고.”
“특이하긴 하지만 관심을 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무공을 모른다는 건가?”
“이야기를 하면서 총 네 번에 걸쳐 확인을 했는데 한 번도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어요. 그 정도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봐야 해요.”
“그렇군. 우리도 그만 일어나세.”
자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갈 거죠?”
권말남이 물었다.
“먼저 지부로 가서 보고를 받은 후 행선지를 정하도록 하세.”
“그러지요.”
파앗! 파앗!
두 사람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 * *
먹고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취직을 하는 거고 둘째는 장사, 즉 조금 있어 보이는 말로 사업을 하는 거다.
취직은 종잣돈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하고, 사업은 종잣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특별한 안목이 있어야 하고 적성도 맞아야 하지만 그런 것들은 종잣돈을 만들어 놓은 후에 생각해 봐도 늦지 않다.
두 가지 중 금장생의 선택은 후자였다.
지난 팔 년 동안 고생 고생 해서 모은 돈이 금장생에게는 있었다.
사업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업종 선택이다. 업종에는 식당과 같은 전통 업종이 있는가 하면 요즘 유행하는 유행업, 많은 이들이 꺼리는 하구류업 등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다.
요식업을 하고 싶다고 해도 종잣돈이 부족하면 불가능하다.
물론 부족한 돈을 전장에서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엔 신용이 필수다.
더불어 사업을 시작하여 자리를 잡을 때까지 육 개월에서 일 년 정도는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데 돈까지 빌려서 시작하면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고 만다.
따라서 사업장을 얻기 위한 총금액은 자기가 가진 돈 중 최소 육 개월을 수입 없이 버틸 여지를 남겨 둔 금액이라야 한다.
그 돈을 일상적으로 총금액의 이 할로 잡는다.
금장생이 가진 총금액은 일천 냥.
그중 이백 냥은 남겨 둬야 하니까 나머지 팔백 냥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지난 이레 동안 금장생은 상권 파악을 위해 낙양 곳곳을 쏘다녔다.
유서 깊은 도시답게 실제 인구도 많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단점이라면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상당히 많이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무인은 고객임과 동시에 껄끄러운 존재다.
일반 손님의 몇 배나 되는 매상을 아무렇지 않게 올려 주기도 하지만 가게 내 기물을 부수기도 한다. 아주 나쁜 자가 아니라면 수리비를 주고 가지만, 수리를 하는 동안 영업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기도 하다.
그사이 금장생은 거간꾼도 만났다. 어떤 사업이 유망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권하는 제일사업은 식당업이었다.
그들이 식당업을 꼽는 덴, 유동 인구가 많은 것도 있지만 굳이 사장이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었다. 즉,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사장이 아니라 주방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아주 싼값에 나온 괜찮은 자리가 있다며 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금장생은 충동적인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좀 더 알아본 후에 다시 들른다며 그곳을 나왔다.
혼자서, 그것도 초행길에 가게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간비를 주더라도 거간꾼을 통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금장생은 다시 거간꾼을 찾아갔다.
“또 오셨군요.”
거간꾼은 웃으며 금장생을 맞았다.
금장생이 다른 거간꾼을 제쳐 두고 금선달이란 이름의 이 거간꾼을 다시 찾은 건, 성이 같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차분하고 신뢰성 있어 보이는 얼굴과 책상 한편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책 때문이었다.
“생각은 좀 해 보셨습니까?”
또 한 가지는, 금선달은 다른 거간꾼과 달리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에 얼마라고 했죠?”
금장생은 금선달이 준 차를 마시며 물었다.
“일천이백 냥입니다. 급하게 나온 거라 그 정도지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이천 냥에서 삼천 냥까지도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가겝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가겝니까?”
“건물은 총 세 채고, 건물에 딸린 땅이 천 평 정도 됩니다.”
“천 평이나 되는 땅을 어디에 쓰죠?”
“어디에 쓰기는요. 나중에 장사가 잘돼서 유명해지면 수십 채의 마차가 들어올 텐데.”
“마차 보관소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거기를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주인을 직접 만나는 건 불가능합니다.”
“왜 못 만난다는 겁니까?”
금장생이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장사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물론 보고 들은 게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지식이 풍부하다. 하지만 세상이 이론처럼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장사 또한 다르지 않을 터였다.
전 재산을 투자해 시작하는 사업이니만큼 신중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인을 만날 수 없다고 하자 불현듯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좋지 않은 일에 연루돼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일 때문에 급하게 가게를 내놓은 거고요.”
“그럼 가게에 가 볼 수는 있습니까?”
“네.”
“지금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가시죠.”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장생이 이렇게 서두르는 건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만일 거간꾼이 당황하면 사기일 가능성이 높으니 발을 뺄 참이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오!’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간꾼의 모습에 금장생은 살짝 안심이 되었다.
식당은 낙양의 중심 상권에 위치해 있었다.
식당의 이름은 망루忘樓였다.
“무슨 식당 이름이…….”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망루라면 모든 걸 잊는 집이라는 뜻이다. 식당보다는 장의사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주인 말로는 모든 걸 잊고 음식에 몰두하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석하니까 괜찮네요. 그래도 내가 주인이라면 망루라는 이름은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단골이 아주 많은 가겐데 이름을 바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까?”
“제가 사장님이라면 심사숙고하겠습니다.”
“아직 내 가게도 아닌데요, 뭐.”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저녁 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꽤 있었다.
“조용한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손님들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그럼 저기로 가지요.”
금선달이 가리킨 건 창가 자리로, 바로 옆에는 삼남 일녀가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금장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선달보다는 손님들의 평가를 듣고 싶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식당의 음식 맛을 알려면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걸 먹어 봐야 해.”
문득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소면.”
금장생은 가장 싸고 흔한 소면을 시켰다.
“나도 같은 걸로.”
그러자 금선달도 소면을 주문했다.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맛 괜찮지.”
바로 옆 탁자에서 손님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응! 이 근처 식당 중에서 가장 나아. 값도 싸고.”
“몇 달 전만 해도 점심때나 저녁때도 쉽게 먹었는데, 요샌 시간 맞춰 오지 않으면 재료가 다 떨어져서 먹지를 못해.”
“입소문이 많이 났나 보네?”
“말도 마. 내가 돈만 있으면 얼마를 주더라도 이 식당을 사 버릴 거야.”
“이런 식당은 얼마나 할까?”
“아무리 적게 줘도 삼천 냥은 줘야 할걸.”
“그야말로 꿈이네.”
“그러게. 그냥 돈벼락이나 한번 맞았으면 좋겠다.”
“돈벼락 맞으면 그냥 먹고살지 이걸 왜 사냐?”
“그래도 사야 해.”
“왜?”
“빈둥거리며 놀아도 돈이 굴러들어 오잖아. 간혹 점소이들에게 호통만 치면 수백 냥을 버는 이런 곳이 또 어디 있냐?”
“큭!”
“풋!”
“상상만 해도 즐겁다.”
“아무튼 이 집 음식 더럽게 맛있다니까.”
“그러게.”
“한 그릇씩 더 먹을까?”
“그러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금장생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자신이 이 집 사장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곧 소면이 나왔다.
소면이 나오는 속도 또한 빨라서 마음이 들었다.
“갑시다.”
몇 젓가락 뜨던 금장생은 벌떡 일어났다.
“아직 음식이 남았는데 벌써 가시게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자리에서 일어나는 금선달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얹혔다.
하지만 금장생은 그 미소를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