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3)
“……?”
금장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몇 번을 비비다가 손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그의 집이었다. 아니, 집이 있던 자리가 맞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 눈을 감고 십오 장을 걸었다. 익숙한 곳이 아니라면 눈을 감은 채 그 거리를 갈 수가 없다.
집 뒤의 산도 그대로고 집 앞을 흐르던 개울도 그대로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고향.
금장생 그가 태어난 곳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십오 년 동안 빈둥거렸던 저택이 보이지 않았다.
한두 채도 아니고 쉰다섯 채에 달했던 모든 건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참!”
머리를 긁적여 보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일 년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황금전가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건 일 년 전이다.
사업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장소는 여기가 분명한데…….”
그는 대문이 있던 곳으로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검게 탄 흔적들이었다.
“불도 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이 났다면 그 자리에 다시 지으면 된다.
황금전가는 새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재력을 지녔다. 그런데도 새집을 짓지 않았다는 건, 거의 파산 상태에서 어떤 일을 당했다는 걸 뜻한다.
아니면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어떤 사정이 있거나.
그는 공을 들여 불탄 잔해를 꼼꼼하게 살폈다.
“저건?”
타다 만 통나무 아래에서 뭔가가 보였다. 그는 얼른 그 통나무를 치웠다.
“검이…….”
녹이 슨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물통을 꺼내 검 표면에 부었다. 그런 다음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깨끗했던 물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손끝으로 물을 찍어 맛을 보았다. 녹 맛과 함께 비릿한 맛도 느껴졌다.
“이건 피네.”
검을 내려놓고 허리를 폈다.
“……?”
갑자기 뒤통수에 쏘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 뒤를 보았다.
자색 장포를 입고 전립戰笠을 쓴 자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사내의 목소리는 상당히 묵직했다.
‘무인은 아니고, 처음 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자라면? 관리네.’
관리가 아니라면 할 말이 없지만 일단 그렇게 느껴졌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걸 보면 문관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사내가 쓰고 있는 전립은 무관 전용이다.
무관이 착용하는 전립을 쓰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관복 형태의 장포를 걸쳤으니까, 동창이나 금의위 둘 중 한 곳에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
곱살하게 생긴 얼굴로 보면 동창에 어울릴 것 같지만 굵은 목소리와 툭 튀어나온 목젖으로 볼 때 금의위 쪽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금장생입니다.”
금장생은 이름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금의위 관리로 보이는 자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굳이 관리들과 엮어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금장생? 그러니까 댁이, 실종됐다던 황금전가 셋째?”
“실종?”
금장생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몰랐던 모양이군.”
“알았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진작 알렸겠지요.”
“정말 금장생이 맞는가?”
사내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내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한두 해도 아니고 팔 년 만에 나타나서는 내가 금장생이오, 하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쉽게 믿지 못할 것이다.
“팔 년 전에 가출당한 금장생이 맞습니다.”
금장생은 사실대로 말했다.
“가출당했다는 건 무슨 소린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집 밖으로 내쳐졌으니까, 당한 거 아니겠습니까?”
“금장생이 확실한 것 같군.”
“그런데 당신은…….”
“나는 자운영이라고 하네.”
“머리에 쓰고 있는 그건 근무처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금장생은 자운영의 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금의위에서 일하고 있네.”
“그렇군요. 그러면 직책이…….”
“진무사네.”
“우와!”
금장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진무사면 금의위 이인자다.
맨 위에 영반이 있고 그 아래로 경락사와 진무사가 있으며 진무사는 다시 북진무사와 남진무사로 나뉘지만, 통상적으로 금의위 이인자는 북진무사를 꼽는다.
사내가 북진무사인지 남진무사인지 모르지만 대단한 직위를 가진 자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진무사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곳은 진무사의 근무처인 북경과는 수천 리 떨어져 있다. 황금전가가 중원삼대상단 중 한 곳이라고 해도, 진무사가 나와 조사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불탄 흔적으로 보건대 일 년도 더 지난 게 분명하다.
“자네 행동을 보니까 가문이 몰락한 걸 몰랐던 것 같은데 맞는가?”
“그렇습니다.”
“어디 있었기에 자기 집이 몰락한 것도 몰랐다는 건가?”
갑자기 날카롭게 변한 자운영의 눈빛이 금장생의 온몸을 훑었다.
그건 금장생이 위험인물이라 그런 게 아니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눈빛조차도 조사를 하는 것처럼 비치는,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었다.
‘……?’
자운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묘한 불협화음이 느껴지는데 그게 뭔지 꼬집어 낼 수가 없었다.
“그렇군.”
잠시 후 자운영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그제야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어울림’이 주는 위화감이었다.
보통 사람은 불탄 잔해 속에 서 있으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더구나 불이 난 잔해는 수백 장이 될 정도로 넓다.
벌판에 혼자 서 있어도 이상하게 보이는데 수백 장 넓이의 폐허에 혼자 서 있는 건 벌판에 서 있는 것보다 더 이상하고 어색하다.
그런데 금장생은 어울렸다.
마치 원래부터 폐허의 일부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상한 느낌의 정체는, 어울려서는 안 될 두 존재가 하나처럼 보이는 데서 오는 이질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죽은 땅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금장생에게서는 특별한 점이 없다. 그렇다고 그의 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풍기는 것도 아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통은 살아 있는 사람과 폐허는 한 화폭에 넣을 수 없는데…….”
“저는 폐허와 어울린다는 겁니까?”
“그러네.”
“내가 이 폐허와 어울리는 건 내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네.”
자운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금장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를 아십니까?”
금장생은 폐허를 가리켰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건 어떤가?”
“제게서 어떤 혐의점이라도 발견했습니까?”
금장생은 웃으며 물었다.
“순수한 호기심이네.”
“이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겁을 먹어야 하는 건가요?”
“황제 폐하께 역심을 품지만 않으면 겁먹을 필요가 없지.”
“그럼 영광으로 생각해야겠군요.”
“따라오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일각 정도를 걷자 객잔이 나왔다. 황금전가로 들어갈 사람들이 대기하는 객잔이라고 해서 대루待樓라고 불리던 객잔이다.
자운영이 들어간 곳이 바로 그 대루였다.
“여기!”
자운영의 일행인 듯, 손님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여자?’
금장생의 눈이 살짝 커졌다.
뜻밖에도 손을 든 사람은 여자였다. 그것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흠이라면 약간 중성적인 목소리였는데, 얼굴이 워낙 아름다워 그 단점을 메우고도 남았다.
자운영은 여자 앞으로 가 앉았다.
“누구죠?”
여자는 금장생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금장생이네.”
자운영은 이름을 말하고 찻잔을 들었다.
“금장생이라고요?”
여자의 커진 눈에서 반짝 빛이 일었다.
“응.”
“정말 금장생 맞아요?”
여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네.”
자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장생에게 여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동창 제일첩형 권말남이네.”
“풋!”
금장생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토했다.
여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사내였던 것이다.
“왜 웃는 거지?”
권말남은 금장생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얼굴과 이름이 너무 맞지 않아서요.”
“그러니까 권말남이란 이름이 웃긴다 이거지.”
“이름이 웃긴다는 게 아니고 얼굴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금장생은 정색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호호호!”
날카로운 교소가 권말남의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생긴 것과 다른 건 또 있었다. 그건 극도로 방정맞은 웃음소리였다.
권말남의 웃음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이 뚝 그쳤다. 권말남의 웃음은 가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복잡 미묘했다.
“입이 제법 번지르르하구나.”
“비교적 솔직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장생은 자운영을 보았다.
“황금전가 몰락 사건의 전말을 알고 싶다는 건가?”
“네.”
“조사 당사자가 아니라서 내가 특별히 해 줄 말은 없네. 권 첩형 자넨 어떤가?”
자운영의 시선이 권말남에게로 향했다.
“누군가가 공격을 하였고, 불은 그자들을 막기 위해 내부에서 낸 걸로 알고 있어.”
“공격한 자들은 밝혀졌습니까?”
금장생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전혀.”
권말남은 고개를 저었다.
“짐작 가는 곳도 없습니까?”
“왜? 가르쳐 주면 복수라도 하려고?”
“내 것도 아닌데 복수는 무슨…… 궁금해서 그런 거지.”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자네 게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인가?”
이번에 질문을 한 사람은 자운영이었다.
“상속받기 전까지는 아버지 소유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황금전가는 장자상속의 원칙이 있고요.”
“셋째인 자네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건가?”
“부자들이 재산을 갖기 위해 싸우는 건 북경 관리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그래서 가주는 자식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역할을 정해 줍니다.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걸 조금이나마 줄여 보기 위해서지요.”
“자네가 맡은 역할은 뭔가?”
“가문의 재산을 지키는 무천위武天衛가 되는 겁니다.”
“무천위면, 무인이 돼야 한다는 건가?”
“우리 가문은 자식들이 무공을 익히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면 어떻게 가문을 지킨다는 건가?”
“돈이죠.”
“돈으로 무인을 산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남의 힘으로 자기 집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진무사께서는 황제 폐하의 친척입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월 일정 금액을 받고 그분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그 일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요.”
“풋! 그렇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물론 황금전가에 고용된 무인들과 금의위 진무사인 자신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자신은 돈이 아니라 황제 폐하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금의위 위사가 됐으니까.
하지만 깊이 파고들면 돈을 받고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용된 자들에게 충성과 사명감을 심어 주는 건 고용주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황금전가의 무천위는 무공의 절대 고수가 돼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데 고수가 돼야 한다는 게 금장생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건 뭐지?”
듣고 있던 권말남이 금장생의 가운뎃손가락을 가리켰다. 자운영의 시선이 금장생의 왼손 손가락으로 향했다.
금장생은 녹주석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보통 반지가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새끼손톱 크기의 녹주석은 차치하고라도 금으로 만든 반지에 무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았다.
누가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지만, 최고의 장인의 솜씨인 건 분명했다.
“선물로 받은 겁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년은 됐을 것 같은데, 맞아?”
권말남은 다시 물었다.
“감정도 하십니까?”
금장생은 되물었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으면 물건을 보는 안목이 저절로 생기거든.”
“골동품들이 많이 들어오나 보죠?”
“선물이나 혹은 뇌물로 골동품만 한 게 없잖아.”
“그렇군요.”
“맞아?”
권말남은 다시 물었다.
“맞습니다. 정확하게 일천이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겁니다.”
“보석은 녹주석綠柱石(에메랄드)이네?”
“보석에 대한 식견도 높군요.”
“보석도 많이 들어오거든. 그런데 녹주석 안에 다른 게 또 들어 있는 것 같은데?”
권말남이 금장생의 반지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붉은 점 같은 게 들어 있어, 녹주석은 햇빛을 받을 때마다 묘한 광채를 흘렸다.
“붉은색을 띤 보석이 들어 있는 건지 녹주석이 그 부분만 붉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특이한 게 들어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반지에 대해 아십니까?”
“너는 몰라?”
“우연히 얻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겁니까?”
“하도 오래돼서 지금은 잊었어. 전에 본 적이 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이야.”
“이 녀석에 대해 알 기회였는데 안타깝네요.”
“그런데 자넨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군.”
자운영이 기묘한 눈빛으로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집안이 망하고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이 전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가족들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는 건가?”
“적의 공격을 받고 내부에서 불을 질렀다면 피할 시간을 얻기 위해서였을 테니까 살아 있겠지요. 현시점에서 적정해야 할 건 그들이 아니라 졸지에 비빌 언덕을 잃고 거지가 된 접니다.”
금장생은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흣!”
“쿡!”
권말남과 자운영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북경에 계셔야 할 두 분이 이 외진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자넨 남경을 외진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운영이 웃으며 물었다.
“두 분의 활동 주 무대인 북경에 비하면 외진 곳이지 않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우리가 남경에 온 건 사상死商 때문이네.”
“사상요?”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