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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화 (2/524)

황금가 (2)

내 이름은 금장생

황금전가의 가주는 반드시 아들 셋을 두어야 한다.

상속자인 장남은 장차 상단의 총괄이 되며, 직위는 상단주라 한다.

차남은 수입과 지출에 대한 모든 것, 재무를 총괄하며 직위는 재정총괄이라 한다. 재정총괄은 수입에 대해서는 일괄 보고해도 되지만 지출은 동전 일 문이라 할지라도 즉시 상단주에게 보고한다.

삼남은 상단을 수호하며 무천위라 한다.

상단주는 가급적 많은 자식을 낳아 가문을 번창시켜야 한다.

내가 태어난 황금전가의 제일수칙이다.

세 아들을 둬야 하는 건 황금전가 가주가 가져야 하는 가장 신성한 두 가지 의무 중 하나다. 물론 첫 번째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 가문의 셋째인 나는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었다. 합금이 아니라 순금 수저를.

황금전가 셋째가 순금 수저를 물고 나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니, 금수저를 물지 않으면 그건 반칙이다. 황금전가는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세 가문 중 한 곳이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륙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은 대륙황가大陸皇家다. 대륙황가는 전국에 있는 기루와 주루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돈이 많은 가문은 상천금가上天金家다. 상천금가가 부를 축적한 원천은 군납과 객잔 운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 황금전가黃金戰家다.

여기서 이름만 보고 오해들을 하는 게 전戰 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싸움을 아주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언컨대 우리 황금전가는 싸움과는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상단이 무공을 들이는 순간 망한다는 신조를 가지며, 우리 가문의 율법과도 같은 상도삼십육략의 제일계는 ‘절대 무공을 익히지 마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戰’ 자가 들어 있는 건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돈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집의 주요 사업은 유통, 장의사, 사창 세 가지다.

유통은 전국 주요 지점에 거대한 창고를 두고 그곳까지 물건을 운송한 다음 창고 주변 가게에 상품을 전달해 주는, 생산과 판매의 중간 과정을 통틀어 말한다.

아울러 몇 번의 단계를 거치느냐에 따라 상품 가격이 결정되고, 많은 단계를 거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유통을 완벽하게 장악하면 상품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가격의 조정은 곧 시장의 장악으로 이어진다.

유통업체가 생산자나 판매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장의사와 사창은 다들 잘 아니까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두 업종은 많은 이들이 꺼리는 혐오 사업이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지 못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업종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만일 장사를 해야 한다면 장의업이나 사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튼 태어날 때 물었던 금수저 덕분에 나는 벌모세수를 했다.

벌모세수는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

신화경에 이른 고수가 최소한 세 명은 있어야 하고, 무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영약도 준비해야 한다.

자린고비 중 상 자린고비인 우리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것도 첫째나 둘째도 아닌 셋째에게 벌모세수를 해 준 건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었는데 벌모세수 정도는 우습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착각하지 마시라.

그건 지극히 일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 즉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는, 아니 황금전가 역대 가주는 자식을 절대로 분신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식들은 황금전가 발전을 위한 ‘신성한 노동력’ 중 하나다. 여기서 ‘신성한’이란 말을 더한 건 하인이나 노비보다 낫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일 뿐, 정말로 신성하다는 뜻은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게 벌모세수를 해 준 건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거다.

옷 사는 돈이 아까워 한 벌로 때우는 사람이 우리 아버진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아버지가 벌모세수를 해 준 이유는 약한 내 몸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절맥을 안고 태어난 나는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팔자였다.

아울러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워낙 난산이었던 관계로 넷째를 가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만일 아버지가 넷째를 갖자고 했다면 나는 내 생일 근처 달에 아버지 제사를 지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손에 맞아 죽으셨을 테니까.

여하튼 나는 황금전가의 마지막 셋째 아들이 됐고, 아버지는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 날 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절맥에 걸린 나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법은 바로 벌모세수였다.

물론 특이한 체질의 여자를 구해 합방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 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아직 여물지도 않은 갓난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치료 수준이 너무 높았다.

그 벌모세수 덕분에 나는 세 살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을 거역하고 살아남았다.

물론 많은 불치병들이 그런 것처럼 완치 여부는 알 수 없다. 육십, 칠십까지 장수한다면 완치된 거고 그러지 못하고 이십 대나 혹은 삼십 대에 요절한다면 치료하지 못한 걸로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완성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강한 신체를 이뤘다는 거다.

여기서 건강한 신체라는 건, ‘공부는 못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고 할 때의 그 건강과는 완전 다르다.

우리 아버지 관점에서 건강한 신체는 ‘돈을 벌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아프면 드러누워 있어야 하고, 드러누워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업무를 볼 수 없다. 고로 돈을 벌지 못한다.

‘건강하지 못한 자, 부자가 될 수 없다.’

우리 아버지의 절대 신념이다.

아무튼 그 신념 덕분에 나는 살아남아, 이 험한 세상에 던져졌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는 한 가지가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셋째 아들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 지났음에도 이름을 짓지 않았던 건 내 생사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을 테다.

우리 아버지는 이름은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큰형과 작은형의 이름도 유명한 작명소에서 지으셨다. 내 이름 역시 당연히 작명소에서 지으려고 했다.

아니, 절맥에 걸리지만 않았다면 한 돌 전에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셋째 아들의 절맥 때문에 경황이 없어 이름 지을 생각을 못 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짓지 않은 건, 돈을 주고 이름을 지었는데 내가 죽어 버리면 닷 냥을 허공에 날리게 꼴이 되고 마는 게 아니겠는가. 즉, 돈이 아까워서였다.

내가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작명소로 가지 않고 다섯 냥을 절약했다.

대신 내 이름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라는 의미의 장생長生으로 결정되었다.

생김새는…… 나는 나름 내 얼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어쩌면 내 몸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점이 다른 유일한 곳이 얼굴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금장생金長生.

십장생도 아니고 금장생이 바로 내 이름이다.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그 이름.

“이제 저기만 돌아가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아니, 열다섯 생일 때 가출을 당했고 ―내가 가출을 당했다고 하는 건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집에서 내쫓겼기 때문이다― 지금 스물세 살이니까 정확하게 팔 년 만이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우리 금씨 가문에는 자식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 되면 무조건 집에서 나가야 하는 전통이 있다.

세상과 사람과 돈을 배우는 시간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마지막 시간이다.

출가에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오직 황금전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결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런 악습을 우리 집에서는 출가出家라고 한다.

여기서 출가는 세속을 떠나 절로 들어가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집을 떠나 세상으로 들어가는 걸 말한다.

출가할 때는 한 달 정도 살아갈 수 있는 밥값을 쥐여 준다. 그걸 다 쓰고 나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 큰형이 출가하고 그로부터 삼 년 후에 작은형이 출가했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났을 때 내가 쫓겨났다.

내가 쫓겨났다고 하는 건, 나는 집을 나갈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열다섯 살 생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지 않고 버텼다.

생일날 아버지가 은자 두 냥이 든 주머니와 옷 한 벌이 든 봇짐을 선물로 주었지만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진수성찬이 나오는 이런 천당 같은 곳을 버려두고 나갈 이유가 없었다.

전통?

개나 줘 버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아버지를 피해 한적한 곳에 숨어서 빈둥거렸다.

물론 공식적으로 나는 황금전가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밥 같은 건 없다. 즉 굶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 나를 챙겨 주시는 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시비를 통해 음식을 보내 막냇자식이 굶지 않게 돌봐 주셨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시비가 가져온 음식을 기분 좋게 먹었다.

그날 유달리 기분이 좋았던 건 음식과 함께 온 비단 주머니 때문이었다.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불쌍했던지, 어머니가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라며 용돈을 보내온 것이다. 주머니 안에는 백 냥이 들어 있었다.

황금전가 아들에게 백 냥은 푼돈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사정이 달랐다.

열다섯 살 생일이 지나자 밥뿐만 아니라 용돈도 끊겼다. 그래서 내 수중에는 땡전 한 푼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백 냥은 거금이었다.

나는 얼른 그 돈을 아래쪽 깊숙이 숨겼다.

그리고 포만감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왈칵 구토가 치밀었고, 속이 매슥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조금 뒤척이다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는 황금전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귓전으로도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비비고 주위를 살폈다.

맙소사!

세상에!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건 망망대해였다.

유람 갔을 때 본, 저 너머 강둑이 보이는 그런 강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망망대해.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씨불, 좆됐다.’였다.

나는 급하게 품속을 뒤졌다.

곧 작은 첩지 하나가 잡혀 나왔다.

잘살아라!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개악필. 그건 아버지가 쓴 글이었다.

나는 지나가는 선원을 붙들고 이 배가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동영으로 가는 것도 모르고 배를 탄 거요?”

사색이 돼 있는 나를 보고는 선원이 말했다.

“니미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훗날 들은 말이지만 아버지도 그 배가 동영으로 갈 줄은 몰랐다고 하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버지가 나를 동영으로 가는 배에 태우지는 않았다. 산동성으로 가는 짐 속에 나를 처박아 두었는데 그 짐이 동영으로 가게 된 것이다.

“제기랄! 조또!”

망망대해를 쳐다보자니 계속해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욕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챙겨 주셨던 백 냥과 집을 내보낼 때 쥐여 주는 두 냥도 보이지 않았다. 더욱 암담한 건 뱃삯이 백 냥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뱃삯은 백 냥입니다!”

험상궂게 생긴 자가 다가와 말할 때는 간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선원의 허리춤에는 동영 무사들이 사용하는 도刀가 걸려 있었다.

“없는데요?”

“……네겐 두 가지 길이 있다. 저기로 뛰어들든지, 백쉰 냥어치의 일을 하든지.”

선원의 말투는 바로 반말로 바뀌었다.

“이, 일을 하겠습니다.”

개고생의 시작이었다.

당장 뱃삯을 벌고 밥을 먹기 위해, 잡부가 돼 막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뱃삯은 고사하고 동영까지 가는 동안 밥값도 대지 못했다.

결국 동영에 도착해서 팔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망망대해의 배였다. 일명 멍텅구리 배라고 부르는 새우잡이 배.

이 년을 보낸 후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후 동영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중원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다시 이 년의 세월을 조선에서 보내고 중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삼 년.

원래 황금전가 자식들의 출가 기간은 오 년이다. 그런데 나는 삼 년을 더해 팔 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장생아,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보통 황금전가 자식들은 출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거의가 작은 가게의 주인이 돼 있다. 즉, 규모가 크건 작건 사장님이 돼 있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엄청난 효도지, 사장은 개뿔이. 나보다 효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자린고비 아버진 내 말에 절대 찬성하지 않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아무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로 들어가 죽은 듯이 푹 잘 것이다.

‘그런 다음 마음껏 빈둥거릴 거야. 등에 곰팡이가 낄 때까지 마음껏.’

마지막 모퉁이를 돌기 전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빈둥거릴 집과 좀 더 감격적인 만남을 그려 보았다. 우리 집을 완전하게 볼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번쩍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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