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8화 (18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8화

플루오린화 수소(불화수소).

이전에 한 번 언급한 적 있는 고농도의 불산으로 한 방울 닿는 것으로도 조직 깊이 침투해 뼈를 포함한 신체 온 부위를 파괴하는 초강산.

당지천이 주로 보여주기식으로 위협할 때 주로 써서 그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긴 했지만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었다.

왜냐면 조직에 스며드는 속도가 빠른 건 물론이고, 빠르게 뼈를 파괴한다는 점부터 골치 아픈데, 해독하는 방법은 오직 당지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지천이 암혈대를 향해 독병을 던지자, 암혈대 인원들은 자연스레 틈을 만들어 독병을 건네받았다.

이어서 곧장 자신들의 무기에 플루오린화 수소를 묻혔다.

“허 참,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몰라도 독이라니. 이거 우습게 보여도 단단히 우습게 보였나 보오.”

강시들은 기가 차다는 얼굴로 당지천을 노려 봤다.

지성을 잃지 않았다고 한들, 강시다.

극독을 중독시킨다고 해도 이미 죽은 몸이라 영향이 없고, 고통 또한 느끼지 않으니 의미가 없었다.

한데, 그걸 뻔히 알 당지천이 무슨 회심의 일격을 가하듯 암혈대에게 독을 주자, 도발당했다고 생각한 강시들은 화를 냈다.

“놔두시게. 눈 뜬 장님인가 보지.”

“아니, 내 선배로서 친히 예의를 알려주지 않고선 못 배기겠소. 도와들 주시오.”

“그렇게까지 원한다면야…… 내 특별히 도와드리겠소. 대신 확실하게 하는 거 잊지 마시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강시 하나가 손에 든 단검을 바닥에 버리고 손가락을 곧게 세우며 힘차게 암혈대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음화불위지.”

고작 손가락 하나임에도 거대한 송곳 같은 기세로 뻗어 나가는 손가락.

어차피 다시 되살아날 걸 알기에 방어를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공격에만 치중한 무공을 펼쳤고, 그 탓에 모든 공격을 잘 막던 암혈대의 호위진도 이번만큼은 아주 미세한 틈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고맙소!”

아주 미세한 틈에 불과했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강시 하나.

당지천을 혼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위풍당당하게 당지천에게로 가는 모습을 본 강시는 암혈대에게 재밌다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요?”

“…….”

암혈대는 강시에 도발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저 하는 거라곤 연신 실이 나오는 오른손을 까딱거리는 것뿐, 그 이외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야, 이거 미안하게 화풀이도 안 돼서 어쩌나. 화난 건 알겠는데, 어차피 아까처럼 되살아나면 그만이거든.”

그런 암혈대의 모습을 보고는 화가 났다고 판단한 강시가 껄껄껄 웃어대며 도발하자, 주위에 있던 강시들이 하나둘 암혈대를 비웃기 시작했다.

“아까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뒤에 도련님이 준 독으로 뭣 좀 해보지 그러지?”

“어이, 그렇게들 가만히 서 있지 좀 마. 자꾸 그렇게 서 있으면 누가 시체인지 구분이 안 가잖아. 안 그래?”

“…….”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서 있는 암혈대원들.

호위진을 뚫은 강시가 한달음에 당지천에게 달려가는 걸 보고도 묵묵히 서 있는 것이 강시들은 암혈대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가만히 서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내 무림의 법도를 직접 가르쳐 주마!”

“저기 봐. 도련님 이제 죽겠는데?”

“에이구, 빨리들 갔어야지. 이젠 뭐 하고 싶어도 늦었잖아.”

“뭐, 저들이라고 어쩔 수 있겠소? 여기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경거망동할 수 없잖소.”

“자, 다들 사담은 거기까지 나누고, 어서 처리합시다.”

잠깐 망설인 탓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지경이 되었기에 거의 이겼다고 생각한 강시들이 이제는 암혈대를 포위하며 옥죄어왔고.

뒤편의 강시는 아무 방해 없이 당지천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강령대가 당지천을 잡나 싶던 순간.

이변은 그때였다.

“박(縛).”

암혈대가 일제히 한 단어를 합창하며 오른손을 까딱거리자, 갑자기 우뚝 멈추는 강시들의 몸.

암혈대 앞의 강시들은 물론이고, 당지천 앞에 강시까지 일순간에 모든 행동을 멈췄다.

-치이익.

그리고 일제히 들려오는 뭔가가 타들어 가는 소리.

강시들을 포박한 암혈대의 실에서 처음 맡아보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자신들의 몸이 화상을 입자, 독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란 걸 깨달았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파(破).”

강시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암혈대가 한 번 더 오른손을 까닥이자, 수십의 강시들이 제각기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며 요란스럽게 흩뿌려졌다.

“…….”

우세했던 상황이 한순간에 뒤집혀 버린 상황.

강령대주 제일 급수가 높은 혈강시는 아꼈다고 하나, 지금 도륙된 이들 또한 과거 무림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던 자들이었기에 강령대주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쓸모없는 놈들. 너희는 대계가 끝나면 곧장 처분이다. 일어나라.”

“…….”

강령대주가 혈옥을 들어 올려 명령했음에도 묵묵부답인 강시들.

말 그대로 시체가 된 듯 바닥에 흩뿌려진 채 기묘한 소리만 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치이익.

여기저기 고성이 오가는 선명하게 들리는 기묘한 소리.

그 소리는 강령대주에게도 잘 들렸는데,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강령대주는 그저 혈옥을 들어 올리며 다시 한번 명령할 뿐이었다.

“일어나라!”

“…….”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시체들.

일어나 조립되기는커녕, 기를 넣어줄 혈옥조차 미동하지 않자, 그제야 강령대주는 뭔가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설마 독?”

문득 아까 전, 당지천이 암혈대에게 독병을 건네던 모습이 떠올라 시체를 유심히 쳐다본 강령대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 읊조렸다.

“뼈를 녹여 매개를 없앤다라……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직위가 직위인 만큼 교주에게서 당지천의 위험성에 대해 들은 강령대주다.

당지천이 독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특한 수작을 부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들었었는데, 설마하니 강시에게도 통하는 독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방심했었다.

“방심했군.”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강령대주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혀를 찼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미리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아.”

어차피 처음부터 전면에 나선 강시들은 당연하게도 수준이 낮은 혈강시들.

당지천이 꽤 분발하며 처리했지만, 안타깝게도 강령대주의 옆에서 뒷짐 지고 있는 다섯 구의 수라혈강시에 비하면 한낱 쓸모없는 것들에 불과한 녀석들이었다.

“대주. 아무래도 아랫것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나서면 되겠소?”

“그래야 될 것 같다.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저 독에 맞으면 되살아나지 못할 테니 유의해라.”

“알겠소.”

강령대주가 주의를 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바람같이 뛰쳐나가는 수라혈강시들.

한달음에 저 앞으로 튀어 나가는 수라혈강시를 보면서 강령대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무리 별거 아닌 전력이라고 해도 나름 공들여서 만든 물건들이다. 그걸 부쉈는데 곱게 보내줄 순 없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강령대주가 양손으로 혈옥을 쥐더니 손에 기운을 집중해 공중에 띄우며 읊조렸다.

“■■■■■■■…….”

강령대주가 정신을 집중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내뱉기 시작하자, 점차 진동하는 혈옥.

-웅, 웅, 웅.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지 선홍빛 핏빛이 소용돌이치며 돌더니, 이내 수천 개의 얇은 선이 튀어나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로 향했다.

“시체를 되살릴 수 없게 만든다면 시체 그 자체로 공격하면 그만. 내 물건을 부순 대가는 그 목숨으로 치르게 해주마.”

암혈대가 시체를 사방에 흩뿌려 준 만큼 제대로 갚아주겠다고 다짐한 강령대주가 힘차게 시동어를 외치려고 했다.

“■■ ■■■…….”

하지만 그때였다.

한 마리의 나비가 혈옥을 향해 날아든 것은.

-쾅!

* * *

당지천이 그간 혈교를 상대하면서 배운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혈교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다는 점이었다.

‘산 사람도 폭발하는데 시체가 폭발한다는 건 상식이지.’

언제나 승기를 잡았다 싶으면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황을 뒤집었던 혈교도다.

그러니 강시를 못 살린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시체를 폭발시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고, 당지천은 암혈대를 믿고 처음부터 그걸 경계하고 있었다.

-쾅!

그렇기에 예상대로 강령대주가 혈옥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순간, 비접을 날려 혈옥으로 깨버렸고.

뒤이어 비접이 강령대주의 어깨를 스쳐 독시와의 독을 묻혔다.

“비, 빌어먹을…… 이교도 놈이…… 쿨럭.”

그러자, 욕지거리를 내뱉는 강령대주.

평소라면 빠르게 대처해 제독했겠지만, 내상을 입었는지 각혈하느라 제때 반응하지 못해 독시와의 독에 중독되어 버렸고, 얼마 안 가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대, 대단하십니다. 공자님. 혈교도를 수싸움에서부터 찍어 누르다니 처음부터 이걸 다 계획하신 겁니까?”

암혈대가 강시들을 도륙한 덕에 당지천의 곁으로 돌아온 흑풍대주.

그는 당지천이 수싸움에서 완전히 혈교를 찍어 누른 걸 보고 허를 내두르며 당지천을 대단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당지천은 굳은 얼굴로 강령대주를 예의 주시하며 말했다.

“지금까진 그랬습니다만, 하지만 아직 좋아하긴 이릅니다. 강령대주야 손쉽게 처리했지만, 사실상 제일 중요한 이들이 남아 있거든요.”

강령대주가 강령대의 진정한 전력이 수라혈강시임을 단언하듯, 당지천도 그들이 진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 이겼다고 볼 수 없었다.

“누구 하나는 강령대주를 지켜야만 하기에 많아 봐야 둘이나 셋. 그 정도 인원이 나올 거라 추측했습니다. 한데 다섯이 전부 몰려오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계획은 천일염이 저들을 상대하는 동안 당지천이 암혈대와 함께 강령대주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한데, 아예 5명이 전부 몰려와 버리니 이쪽에서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공자님. 성가신 강령대주가 없으니 오히려 잘됐습니다. 처리하고 갈 테니 먼저 가시죠.”

“아니, 두세 명도 아니고 다섯인데 버틸 수 있겠어?”

아까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명백히 다르다.

이미 본신부터가 한 명, 한 명이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일 게 분명한 상황이다.

그래서 애초에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두세 명을 천일염에게 맡기려던 건데, 무려 다섯을 상대로 버틴다니 당지천은 우려를 표했다.

“공자님. 하나 착각하신 듯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시간을 벌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

“다섯 전부. 금방 처리하고 따라가겠습니다.”

“…….”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고수들을.

무려 다섯이나 되는 고수들을 금방 처리하고 가겠다는 오만하고 현실성 없는 발언.

예전부터 항상 되는 건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라고 확실하게 말하던 천일염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발언을 하는지 당지천은 알고 있었기에 입술을 짓씹으면서도 등을 돌렸다.

“먼저 갈게. 꼭 빨리 와.”

“금방 가겠습니다.”

당지천이 먼저 발을 옮기고, 암혈대도 곧장 당지천의 호위를 위해 움직이자, 그제야 천일염도 발을 옮겨 앞의 수라혈강시들을 마주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뭘, 그런 거 가지고. 괜찮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광경이잖소. 제 주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다니.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 아닌가. 물론, 그 뒤에 주인의 밥으로 던져주는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지만 말일세.”

“하하하, 난 그 반대가 더 좋네. 호위가 지키려던 주인을 씹어 삼켜야 하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잠깐, 저 행색을 보아하니 무정검 아닌가? 저 검, 저 장갑. 확실하게 낯이 익는군.”

“뭐? 무정검이라고? 그런 자가 이교도는 왜 지키는 거지?”

“난들 알겠나. 뭐, 그래도 궁금하긴 하지 않나? 무정검이라 불리는 자가, 지키려던 이의 육신을 씹어 삼킬 때도 저 얼굴을 유지할지 말일세.”

가히 인간성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추악한 이야기.

계속 듣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막을 법도 하건만, 천일염은 그런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할 뿐, 그들을 말리진 않았다.

그저 끝에 가서 그들의 착각을 지적할 뿐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하하하, 뭘 말이냐?”

“난 공자님께 거짓을 고한 적이 없다.”

“뭐? 그럼 너 혼자 우리 다섯을 전부 상대하겠다? 이거냐?”

“그렇다.”

“하하하! 화가 단단히도 났나 보구나!”

“천하의 무정검이 화를 내다니 이거 우리 말재간이 참으로 뛰어난가 보구나!”

“맞다. 나는 지금 화를 내고 있다.”

“뭐?”

-스릉.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빼 드는 천일염.

그와 동시에 잠겨 있던 봉인이라도 푼 듯, 한순간에 기도가 바뀌어 버리자, 태연하게 농을 건네던 수라혈강시들도 긴장하며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들며 천일염을 예의 주시했다.

“대, 대체 뭐냐? 이 기운은?”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냐?”

“숨기고 있던 건 아니다. 그저 분노에 옛 실력을 되찾은 것이지.”

“……뭐?”

수라혈강시의 반문에 묵묵히 삿갓을 벗어 던진 천일염이 제 얼굴을 드러냈다.

“감히 내 앞에서 지천이를 모욕한 죄. 그 목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는 말 끝나기 무섭게 매서운 기세로 검을 치켜세웠다.

……아주 흉포하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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