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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6화 (18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6화

당지천을 척살하려는 혈교도들과 지키려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얽히고설킨 상황.

“뚫지 못하게 막아!”

“하나가 될지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인 상황에 혈독을 차츰 지워 나가려던 당지천은 발이 묶여 버렸다.

“군사님. 혈교도들이 혈독을 얼마나 가졌을지 모르지만, 고독의 일종인 만큼 양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쪽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를 도와줄 여건이 안 될 겁니다.”

이미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혈독부터 해결하는 게 맞는 상황.

당연히 관중석에서 뒷짐 지고 있던 고수들도 다들 나서서 당지천을 도와야 할 상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혈교도가 쏟아져 나온 건, 시합장뿐만이 아니었기에.

“저기! 뭔가가 튀어나온다!”

시합장의 혈진이 진동하던 시각.

마찬가지로 진동하던 하늘에 있던 혈진도 매끄럽게 좌우로 갈라지더니 이내 범람하듯 혈교도들을 뱉어냈다.

“저게 뭐야?!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그것보단 수가 말이 안 되잖아!”

“흩어지지 마라! 최대한 뭉쳐야 산다!”

“방진을 펼쳐!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틴다!”

셀 수 없이 많은 압도적인 숫자와 거부감이 드는 외형.

그런 혈교도들을 마주한 무인들이 재빨리 서로를 등진 채 방진을 짰고, 어떻게든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겠단 생각으로 혈교도들을 막기 위해 예의 주시했다.

“영접을 준비해라!”

허나, 그런 무인들의 생각과 달리,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무릎부터 꿇는 혈교도들.

누구에게 공격을 받든 말든, 자신의 목숨은 경원시한 채 오직 예를 다하는 모습만 보이며 관중석의 혈진을 향해 무릎을 꿇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미쳤어…… 진짜 미쳤어.”

응당 사람이라면 가졌을 생존본능이 거세당한 듯한 모습.

목이 달아나고 심장이 꿰뚫림에도 혈교도들이 그저 환희에 찬 미소만 짓자, 되레 무림맹의 무인들이 겁을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이 겁을 먹을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저기 보십시오!”

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리는 관중석의 혈진.

그곳에서는 혈교에서 가장 강한 이들과 그들이 경배해 마지않는 존재가 등장했다.

“혈교주…….”

적색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묘령의 여인.

무림의 만 혈교도를 수족처럼 부리고, 사람 목숨을 벌레 보듯 본다는 그 잔악무도한 여인.

천하제일인인 태천검과도 능히 동수를 이룰 거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혈교주가 드디어 무림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미천한 종이 지고하신 인도자님의 첫 번째 추종자를 뵙습니다.”

혈교주가 자신과 같은 가면을 쓴 사도들과 함께 혈진에서 걸어 나오자, 혈교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땅에 박았고, 다른 무인들은 침음성을 삼켰다.

안 그래도 전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혈교주가.

한눈에 봐도 수준이 다른 강한 혈교도들을 다수 데리고 나오는 걸 보니 사기가 땅바닥으로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히 그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노인이 한 명 있었으니…….

“하, 고작 이 정도 수준을 가지고 감히 나와 비등하다고 이야기하다니 어지간히도 허풍을 좋아하는 녀석들이구나.”

그는 다름 아닌 천하제일인인 태천검 남궁전유였다.

“네놈이 눈짓 한 번에 사람을 죽이고, 손짓 한 번에 사람을 살린다는 그 녀석이냐? 음…… 그렇다고 보기엔 실력이 영 별론데?”

남궁전유는 내심 상대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음에도 대수롭지 않은 척 행동했다.

계획이 딱딱 들어맞아서 아군이 방심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사기가 곤두박질친 상황이라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나 혈교주 또한 그런 점을 잘 알기에 고개를 저으며 태연하게 받아쳤다.

“목살지생이란 말은 인도자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그분보다 미천한, 그저 가장 먼저 은총을 받았기에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운 좋은 이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인도자? 그놈이 혈교의 수장이냐?”

“한낱 이교도 주제에 인도자님을 그리 부르다니 불경하구나. 내 친히 널 벌하겠다.”

“혈교도 주제에 감히 나를 벌한다라…… 심히 불경하지만 내 넓은 마음으로 한 번 용서해 주마. 그러니 어디 한번 해볼 수 있다면 해보거라.”

퍽이나 가능하겠다는 듯 입꼬리를 한껏 비튼 남궁전유가 서서히 검을 빼 들자, 주변의 고수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병기를 빼 들었다.

“불경한 것도 모자라서 오만하기까지 하구나.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리 짖어대는 걸 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무기를 빼 드는 당소예와 사도들.

다들 일관성 있게 비슷한 가면을 쓰고 나왔지만, 막상 쓰는 병기들은 전부 가지각색으로 통일되지 않은 채였는데, 그럼에도 한마음 한뜻으로 일시에 같은 동작으로 검을 뽑는 걸 보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꼽냐? 꼬우면 덤비든가.”

“…….”

하지만 역시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남궁전유가 상대를 도발하자, 혈교주는 잠시 말없이 남궁전유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전원 이교도를 처단하라.”

“존명!”

“저 광신도들 쓸어버려라!”

“가자!”

그렇게 시작된 사도들과 고수들의 싸움.

군사가 공들여 초청한 덕에 누구나 이름을 알 법한 고수들이 전면에 나서서 혈교에게 달려들었고, 마찬가지로 가장 짙은 색의 가면을 쓴 사도들이 그들을 상대했다.

“비켜라! 휩쓸려도 책임지지 않겠다!”

“다들 비키거라. 내 오늘 이교도에게 직접 진리에 대해 가르쳐 줘야겠구나.”

그리고 그들을 가르며 서로에게로 날아가는 두 사람.

현재 양측의 최고 전력이 처음부터 강하게 맞붙었다.

-쾅!

검과 주먹의 충돌.

그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굉음이 울려 퍼지자, 한순간 싸움이 멎었고 양측 다 본능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쾅! 쾅! 쾅!

뒤이어지는 공방.

이전의 굉음은 물론이고, 주먹과 검이 맞닿은 충격파로 인해 관중석이 깨져 나갔고 그 밑에서 싸우던 고수들은 그 충격파조차 이용해서 무공을 펼쳤다.

도무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별들의 싸움.

수준이 높다 못해 제대로 이해 못 할 무공들의 향연에 사람들이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변하지 않자 무림맹의 무인들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밀어내지 못하는 것이지?”

군사부에서 혈교와의 전력을 비교했을 때, 전체적인 인원수는 밀려도 고수의 수는 무림맹 측과 비등하다고 했고, 무엇보다 실력은 무림맹 쪽이 우위라고 했다.

한데, 막상 싸움이 벌어진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비등비등한 게 아닌가?

무엇보다 혈교는 버티면 된다는 식으로 뒤에 사도 한 명을 주축으로 한 채 방진을 짜고 있었다.

“혹시 저 사람이 인도자인 건 아니오?”

“혈교도의 성향상 그랬다면 절부터 하지 않았겠소? 그러니 그건 아닐 것 같소.”

“한데, 저기서 뭔가 빠져나온다만…… 독충? 저거 독충을 뿌리는 것 아니오?”

혈교가 지키려는 사람에게서 독충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딱 봐도 뭔가 노림수가 있을 거란 생각에 무인들이 저마다 의문을 품고 예의 주시하자, 독충은 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시합장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재앙.

“커어어억…….”

독충들이 무인들을 기습해 직접 독을 주입하자, 하나둘씩 쓰러지는 무인들이 나왔고.

뒤이어서 따라온 독충에게 닿자, 무인이 한 줌의 독으로 녹아내리며 독무로 변했다.

“저, 저게 뭣이오?”

독충을 이용해 사람을 집어삼키고, 독무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사람들.

뭔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는 모습에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독충! 독충부터 막아야 하오!”

“아니, 혈교에 둘러싸여 있는데 어찌 막으라는 소리요! 지금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오!”

“그럼 그냥 죽자는 거요?!”

고수들은 밀리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압도하지도 않는 상황.

지원이 언제 오기는커녕, 당장 승리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방진을 짠 무인들의 사기는 팍팍 꺾여 나가기 시작했고.

그건 당지천의 옆에 있던 혈살단의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야 피독주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만약 이대로 시간이 끌린다면 우리는 끝이야.”

“제길…… 출세 좀 하나 했더니만, 이럴 줄 알았으면 양보하는 건데…….”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쉼 없이 독무가 늘어나는 상황.

날려 보낼 수도, 그렇다고 정화할 수도 없는 독이 사람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키운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절망하자.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당지천은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군사님. 뒤는 맡기겠습니다.”

“아니, 당 공자. 지금 어딜 가시겠다는 겁니까?! 방진에서 나가는 순간 저희는 당 공자를 못 지킵니다!”

“도와줄 여건이 안 된다면 직접 가는 수밖에 없잖습니까.”

“당 공자! 당 공자!”

당지천이 품에서 암기를 꺼내며 근처에 있던 무인의 어깨를 밟고 방진을 넘어서자 군사는 물론이고, 방진을 짜던 혈살단원까지 아연실색한 채 당지천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본 혈교의 강령대는 당연하다는 듯 달라붙었다.

“이교도가 스스로 뛰쳐나왔다! 이교도를 척살하라!”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한순간에 뒤바뀐 전황에 혈살단원들의 반응이 조금 더뎠기에 강령대의 강시가 먼저 당지천의 앞에 목도했다.

“이교도를 품에 안으라!”

강시의 칼끝이 당지천의 목젖을 향해 솟구치는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미리 이럴 줄 알고 있던 당지천은 품에 준비했던 암기를 연달아 꺼내 던졌다.

“어딜.”

처음엔 예리한 실을 묶은 암기.

비접의 끝에 실을 달아 감각을 교란하며 움직임을 봉했고, 뒤이어 니티놀 암기로 머리를 날려 버렸다.

“일단 하나.”

하나를 잡은 당지천은 뒤이어서 똑같은 암기를 던졌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지성을 겸비했다고 한들, 못 본 것까지 알 수는 없는 법.

본능적으로 암기를 피하려던 강시는 순간적으로 투로가 변하는 형상기억합금 암기에 속아 똑같이 머리를 내줬고, 순식간에 둘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다음 셋, 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손쉽게 잡아낸 건 둘뿐.

세 번째 강시는 앞서 강시들이 머리가 터지는 걸 보고서 비접에 몸을 내주는 대신 실에 몸이 걸리지 않게 했다.

“지성도 같이 잃었으면 쉽게 잡았을 텐데 아쉽네.”

소수 정예로 보이는 강령대의 숫자를 많이 줄일 기회였던 만큼 당지천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혈살단원들이 보조해 줄 시간을 충분히 벌었기에 만족했다.

“당 공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독공을 모르긴 하지만, 제독도 시간이 걸려서 발목 잡히기 쉽지 않습니까?”

혈살단원으론 무리라고 판단했을까.

지휘를 맡던 흑풍대주가 직접 검을 든 채 주변의 강령대원을 쳐내며 당지천에게 묻자, 당지천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대부분 사람이라면 그랬겠죠.”

“한데 왜?!”

“하지만 전 다릅니다.”

-쿵!

흑풍대주 말에 대답하듯 당지천이 힘차게 발을 내딛자, 흑풍대주는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지천을 쳐다봤다.

허나, 이내 조금 떨어진 곳에 독무가 몰려오듯이 당지천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고는 경악하며 물었다.

“이, 이건?”

“천열운무보. 이 난장판을 정리해 줄 제 독문무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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