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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5화 (18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5화

-쿵!

애써 날려 버리려던 독을 당지천이 찍어 누르며 가라앉히자, 무인들이 당황한 얼굴로 당지천을 봤다.

“왜? 왜 멈추라는 거요? 우리야 피독주를 가졌기에 잠시라도 버틸 수 있겠지만, 독을 계속 방치한다면…… 서, 설마 그쪽도 혈교의……?”

말끝을 흐린 무인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당지천을 보며 우뚝 멈춰 서자, 그를 따라서 하나둘 멈추는 무인들.

수호각과 혈살단의 인원들을 물론이고, 군사가 섭외한 고수들까지 일시에 행동을 멈추자, 다른 무인들도 덩달아 행동을 멈추고 당지천을 쳐다봤다.

그러자, 당지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전 팽 대협 부탁으로 용봉지회에 참여한 겁니다!”

“아하하…… 그렇겠지요. 이거 참,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변명은 됐습니다. 그보다 이 독. 절대 시합장 밖으로 내보내선 안 됩니다. 절대로 말입니다.”

“예? 군사님은 독무부터 날려 보내라고 명령하셨는데…….”

기존에 군사에게 받았던 명령과 상반되는 당지천의 말에 인원들이 당황했다.

무시하고 군사의 명령을 수행하자니 어차피 당지천이 찍어버릴 게 분명했고, 그렇다고 안 날리자니 항명하는 게 되어버려서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유라도 물어보려던 찰나.

“팽 대협! 팽 대협! 어디 계십니까!”

당지천은 급하게 팽구용을 찾았고, 상황을 지켜보던 팽구용과 군사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당 공자. 저 시독이 대체 뭐길래 날려 보내지 못하게 한 겁니까?”

땅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이유를 물어오는 군사.

독에 대해서만큼은 당지천을 따라올 자가 없다는 걸 팽구용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작금의 상황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고 심각한 얼굴로 당지천에게 이유를 물었다.

“두 분 모두 잘 들으십시오. 이 시독은 공기보다 무거워서…… 그러니까 가만히 놔두면 점차 가라앉는 성질이 있습니다. 밖으로 멀리 날려 보냈다간 이제 막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하면 안휘에 있는 사람 모두가 죽게 될 겁니다.”

“아니, 가라앉는다니…… 독무는 언젠가 위로 날아가는 거 아니더냐?”

“대다수 독무는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 시독이 그런 부류 중 하나고 말이죠.”

당지천의 전생에는 육불화황(SF6) 가스가 대표적인 공기보다 무거워 가라앉는 기체였다.

물론, 이번 시독과는 밀도만 비슷할 뿐, 육불화황은 무색, 무취, 불연, 무독인 기체로 위험하진 않은 물질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바로 날려 버리는 건 악수겠군요. 그럼 양민들의 대피가 끝나면 그때 한쪽으로 치우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안 됩니다.”

군사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당지천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듯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시독은 독성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나, 넓게 퍼진다고 해도 독성이 줄어드는 독이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원래 독무는 퍼질수록 독성이 약해지지 않느냐?”

“평범한 독이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시독은 다릅니다. 사람을 잡아먹으며 만들어진 일종의 고독이니까 말이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듯 작은 침을 꺼내 든 당지천이 약지를 따서 피 한 방울을 맺게 한 뒤 공중에 있는 시독에 가져다 댔다.

-쓰으으으…….

그러자 기묘한 소리와 함께 끓어오르는 독들.

메뚜기가 먹이를 집어삼키듯 참으로 게걸스럽게도 피를 집어삼키며 자신의 몸집을 불렸다.

“이게 무슨…….”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시독은…… 아니, 혈독은 사람의 피와 닿으면 증식하듯 늘어납니다.”

독은 결국엔 물질이라 소모품이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양이 줄어드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 혈독만큼은 예외.

혈교에서 무슨 술수를 부려놨는지 작은 피 한 방울에도 증식하여 예의 독성을 되찾았다.

“이런…….”

그걸 확인하자마자 군사는 입술을 짓씹었고, 동시에 잠시간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자신을 자책했다.

“제가 오판했습니다. 다른 분들께 혈교를 결코 얕봐선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음에도 스스로가 혈교를 얕보고 있었다니…… 기가 찬 일이군요.”

“아니, 군사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에 생각한 허황된 예상이 맞았습니다.”

“처음에 했던 예상이라면…… 설마 일망타진을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혈교를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현실은 반대였군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군사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기도 잠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내렸다.

“혈살단주님. 혈교가 안휘에도 이것과 비슷한 혈진을 설치했을 겁니다.”

“뭐? 이것과 같은 혈진들을?!”

“예, 독무를 쓰면 우리가 날려 보낼 것을 앎에도 이러한 독을 뿌렸다는 건 애초에 밖으로 내보내야 쓸모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 공자는 그걸 한순간에 꿰뚫어 본 것이겠죠.”

“허어…….”

군사와 팽구용이 감탄 어린 눈으로 당지천을 쳐다봤다.

허나, 이내 상황을 깨닫고는 다시금 얼굴을 굳혔다.

“그럼 밖은 이미…….”

“불행 중 다행으로 혈교가 만들어낸 혈옥의 개수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이곳과 달리 양질의 제물도 충분치 않기에 혈진을 작동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러니, 신속히 가서 막아주셔야 합니다.”

“……상황은 알았습니만, 이전의 계획대로라면 이후 혈교의 본대가 들이닥칠 텐데, 그에 대비해 인원들을 남기자니 잘못하면 때를 놓칠 것 같고, 그렇다고 데려가자니 이쪽이 불안하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믿을 만한 이들이 많지 않잖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태천검께서 계시니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피해 규모는 커지겠지요.”

“그건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팽구용과 군사가 심각한 얼굴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자, 당지천은 뭘 그리 고민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인원이 없긴 왜 없습니까. 여기 있잖습니까.”

이어서 당지천이 태연하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자, 팽구용은 무슨 의미냐며 당지천을 바라보다가 이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조금 밖에 없는 호위 인력을 전부 빼라는 거냐?”

“어차피 혈독이 나온 이상 호위는커녕, 방해만 됩니다. 그러니 더 유용한 데 쓰시죠.”

공들여 기른 혈살단이 방해된다는 말이 뼈아프긴 했지만, 엄연히 맞는 말.

혈교에선 이때를 위해 극독의 사용은 철저히 배제한 채 혈술로만 혈살단만 상대했기에 피독주만 들고 있을 뿐,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제겐 일염이가 있잖습니까. 그리고 독공에 국한한다면 저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알겠다. 인원들을 물리마.”

조금밖에 없던 호위 병력까지 전부 뺀다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결정한 이상 망설일 틈이 없었다.

그래서 팽구용이 재빠르게 남을 인원들과 데려갈 인원들을 분류하는 사이 당지천이 사칭범의 등을 떠밀었다.

“이장아. 너도 따라가라.”

“고, 공자님. 저는 공자님의 호위를…….”

“광범위하게 시독을 쓸 정도면 네가 가진 피독주로는 오래 못 버텨. 그리고 솔직히 전면전에선 너 별 도움 안 되는 거 알잖아.”

“…….”

“그리고 너 팽 대협 밑에서 인맥이든 실력이든 간에 뭐든 쌓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그러니 냉큼 가라.”

“감사합니다. 공자님.”

“아 참, 흔유도 데리고 가. 그거 못 부수면 나도 위험하니까 협조해 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공자님.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감독관의 얼굴을 치우고 본모습을 보인 강이장이 깊게 허리를 숙이자, 당지천이 어깨를 두드리고는 강이장을 보내줬다.

“당 공자. 위험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미끼를 해달라고 부탁한 건 저였으나, 상황이 바뀐 건 당 공자가 제일 잘 알잖습니까. 당가가 무림맹에 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줄 이유는…….”

“군사님. 당가에게 독이란 어떤 의미인 줄 아십니까?”

염려하는 군사의 말을 끊은 당지천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독은 당가의 무기인 동시에 당가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 혈육이라고 할지언정 독으로 양민을 학살한다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하니, 누군가 독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하려 하는 상황에 당가의 소가주로서 가만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서 사출기에 암기를 하나씩 채워 넣은 당지천은 품속을 한 번 더 점검하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전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어차피 이 혈독, 저 아니면 못 막기도 하고요.”

팽구용와 군사가 바쁘게 대책을 생각하는 동안, 당지천은 혈독을 제독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이 이 혈독을 막는 건 오직 당지천 자신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당 공자.”

“시간은 쓸 만큼 쓴 것 같군요. 독이 번질수록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겁니다.”

불과 독의 공통점.

그건 바로 사고가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점이었다.

한데, 독이 불보다 치명적인 게 있었으니 그건 진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틀어막지 못하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혈독은 여기서 막는다.’

제일 중요한 건 초기 진압.

피를 매개로 하는 만큼 사람 하나를 집어삼킬 때마다 혈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당지천은 이걸 어떻게 제독하고 처리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답을 찾아냈다.

“지금부터…….”

“군사님! 저, 저기 좀 보십시오!”

그래서 당지천이 뭔가를 요청하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보자,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게 뭐야?”

새하얗게 물든 시합장 바닥이 칼로 자른 듯 매끄럽게 좌우로 갈라지더니 이내 도무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무, 무적지근?! 그리고 광운휘 도장까지?!”

어딘가 낯이 익은 사람들이 말이다.

현세를 떠난 자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기이한 상황에 모두가 침음성을 삼키며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자,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나오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길을 만들었다.

“모시겠습니다. 대주님.”

뒤이어 그들의 인도하에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색 피풍의의 인원들.

숫자 자체는 되살아난 혈교도들에 비해 적은 고작 백 정도밖에 안 됐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교주 직속 강령대…… 말로만 들었지 실존했을 줄이야…….”

“그게 뭡니까?”

“강시임에도 냄새가 나지 않으며, 생강시도 아닌 것이 혼을 가지고 있으며, 뼈만 남아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는 물건들. 심지어 지성까지 그대로인 물건들입니다.”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어떻게 만들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라면 지금 나타날 게 아니라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쓰이거나 무림맹의 최중요 인물을 척살할 패로 사용할 거라 예상했습니다만…… 잠깐 최중요 인물이라면 설마?”

말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꽉 쥔 군사가 사자후를 터뜨리며 명령을 내렸다.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가용한 인원들 전원 총력을 다해 당지천을 지키십시오!”

“기존의 계획은…….”

“전부 폐기합니다! 움직이십시오! 당장!”

“예, 예!”

군사의 다급한 외침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무인들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에 마주하듯 혈교의 강령대주는 치렁치렁한 사슬을 꺼내 늘어뜨리며 혈교도들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에게 뜻깊은 대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허나! 그 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악랄한 이교도가 나타났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인도자님께서 결코 용서치 않으실 사안이다! 그러니…….”

일그러진 얼굴로 사슬에 묶인 오른손을 올려 당지천을 가리킨 강령대주는 고성을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대계를 막아서는 저 간악한 이교도를 우리의 품에 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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