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2화 (182/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2화

남궁예화와의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려던 직전.

예전에 비동을 떠날 때 줬었던 해결사의 표 비슷한 걸 꺼내 보여주자, 남궁예화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해결사는 잠정 폐업이에요. 원래 화들짝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못 하게 됐네요. 대신 이거라도 드리고 갈게요.

뭔가 덤이라도 얹어주듯이 남궁예화는 품에서 작은 서책을 하나 건네줬고, 이후 바쁜 일이라도 있었는지 곧장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었다.

만약 서책에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면 이렇게 주진 않았을 터.

그렇기에 별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 생각해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책을 열어봤는데…….

“약간 덤으로 얹어준 느낌이라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설마하니 이런 걸 주고 갔을 줄이야.”

웬걸.

서책 안에는 내가 다음에 만나게 될 상대들의 정보들과 결선에서 보게 될 무적지근 소청휘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정말 신경 많이 써줬네.”

찬찬히 서책을 둘러볼수록 남궁예화의 정성이 느껴졌다.

왜냐면 서책에는 한 명 한 명의 평범한 행적부터 성격과 버릇.

강점과 취약점까지 낱낱이 분석되어 있었고,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상대하는 게 좋을지 남궁예화의 개인적인 사견까지 써 있었으니 말이다.

[무적지근 소청휘의 경우 승부욕이 강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하며 이른 시일 내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시 어떤 수라도 쓰는 인물임. 이전 쟁탈전 도중 벌어진 참가자 독살 건을 조사한 결과, 소청휘의 행적이 심히 의심 가는 상황이며 범행 동기는 당지천에게 독살의 누명을 씌워 실격 처리시키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됨. 따라서 혈교에 투신했다고 확실시된 지금 결선에서는…… 당지천 홀로 이목을 끌게 된다면 생존율은 1할 미만으로 사료될 것으로 파악되고…….]

특히나 혈교에 입교했을 거라 의심 가는 소청휘에 대해서는 서책의 반을 할애할 정도로 방대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담아놨다.

“일염아, 네가 보기엔 어떤 거 같아?”

“부분부분 정제되지 않은 곳이 있고 공자님의 실력을 제대로 모르니 공자님에 대해선 거의 다 틀렸습니다. 수호각주가 신화문에 대한 정보를 누락하고 알려준 것 같으니 그 부분도 동일하고요. 허나, 그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정보면 아주 정확한 겁니다.”

“그치?”

남궁예화가 팽구용과 남궁호자에게서 모든 사실을 들었다고 했으나, 신화문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전하지 않았는지 남궁예화의 정보는 신화문에 대해 고려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내 실력도 제대로 공개한 적 없는 만큼 부정확하긴 했지만, 그 외의 것을 본다면 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안 봐도 알겠다.

“……나중에 꼭 크게 보답해야겠네.”

그러니 이 책을 건네준 남궁예화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꼭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혈교를 때려잡고 나서 말이다.

* * *

무림맹의 인원들과 혈교를 때려잡은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날들.

운현의 뒤에 이어진 비무에서도 나는 자비 없이 상대를 철저히 부쉈다.

“당지천 승!”

감독관의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나같이 고개를 떨구는 상대방들.

운현 때와는 달리, 내가 그들이 쓰는 무공을 쓸 걸 알았으니 충분히 대비했을 텐데, 다들 무력하게 파훼당해 고개를 못 들었다.

그리고 위에선 사전에 약속된 대로 군사가 사람들을 막아줬다.

“군사! 분명 내게는 은밀히 못 나오게끔 수를 쓰겠다고 약속했잖소! 그래서 교화각에 군사의 편에 서달라고 보내놨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흐음…… 이상하군요. 저는 약속대로 하려 했습니다만, 어디서 듣고 왔는지 저 아이가 제발 백독멸악을 내보내 달라 하길래 당연히 문파와 이야기가 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는 거 군사가 더 잘 알잖소! 대체 무슨 속셈인 거요? 설마 제갈세가는 진작에 떨어져서 볼일 없다 이거요?”

“그럴 리 없잖습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오늘 교화각 안건으로 올려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백독멸악이 승인되지 않은 비겁한 수를 썼고, 그러니 오늘 벌어진 시합은 무효 처리해야 한다’라고 말이죠.”

군사는 매번 ‘일단 진정하고 교화각에 안건을 회부합시다’라고 꼬드긴 다음, ‘문제가 있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같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최대한 시간 벌이를 하고 있었다.

-치밀하게 짜놓은 계획이 없기에 나중에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전략입니다만, 지금 무림 곳곳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해 보면 혈교의 침공은 9할 9푼 이상 확실합니다. 그러니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만, 그게 그리 쉽게 되겠습니까?

-두 번만 꼬드기면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지는 문제없을 겁니다. 다들 자기네들만 당하는 건 억울해할 테니까 말이죠.

-악랄하시군요.

-극찬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뒤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맘 편히 후기지수들을 뚜드려 팬 결과.

드디어 대망의 그 날이 다가왔다.

“지천아, 오늘이다.”

결전의 날인 만큼 직접 방에 찾아온 팽구용.

결의에 찬 두 눈으로 나를 보며 직접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는 게 이전에 볼 수 없었을 만큼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제 준비는 마쳤냐? 혹 부족한 건 없었고?”

“예, 어제 다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 보아라.”

팽구용이 속에 서린 불안을 잠재우고 싶은지 꼼꼼하게 확인할 걸 요구했고, 나는 그 불안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에 군말 없이 하나씩 점검하는 걸 보여줬다.

“사출기부터 하겠습니다. 손목, 팔꿈치, 허리, 무릎…….”

이전에 오해를 받을까 싶어 벗어놨던 사출기들.

오늘은 다시 독과 암기를 써야 하기에 한 군데도 빠짐없이 착용했고, 하나하나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사출기는 문제없구나.”

“예, 그리고 이쪽. 독과 암기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쪽은 빠뜨릴 만큼 허투루 교육받지 않았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팽구용이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독기만큼은 느낄 수 있을 거기에 쫙 늘어놓은 독들.

천독림에서 가져온 독시와(독화살개구리)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독들이 앞에 늘어져 있었고.

뒤에는 천열운무보에 사용한 리신과 옛날옛적에 동귀어진용으로 만들어뒀던 폴로늄 같은 독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암기도 마찬가지.

당가에서 가져온 비접이나 자모환 등과 삼촌이 만들어주신 형상기억합금 암기가 놓여져 있었다.

“그래, 알겠다.”

독과 암기를 늘어뜨려 일일이 보여주니 그제야 팽구용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지만…… 내가 너에게 과중한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걱정되는구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지 한숨을 푹 쉰 팽구용은 얼굴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군사님께 들었겠지만, 혈교의 습격이 확실한 상황이다. 맹은 물론이고, 내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고수들을 모았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들 또한 최대한 사 왔다. 군사님이 말하길 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도 아이들만큼은 충분히 지킬 수 있겠다더구나.”

말을 잠시 끊은 팽구용은 다시 한숨을 푹 쉬더니 지쳐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만큼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

“시간이라도 넉넉했으면 당가나 빙궁에 도움을 청했을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수호각주와 나도 제대로 된 도움을 못 줄 테니 결국 도움을 줄 수 있는 데라곤 신화문뿐이니 우리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것과 다름없잖냐.”

고수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무림의 전장에서는 고수 한 명이 빠지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팽구용과 남궁호자가 빠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군사가 내놓은 방안이 혈살단 인원들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혈살단 인원들을 붙여주기로 하셨잖습니까.”

“내 부하들이긴 하나…… 솔직히 혈교 놈들 때려잡을 줄만 알지 지키는데 별 재주가 없는 놈들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그리고 지키는 거라면 제겐 일염이가 있잖습니까…… 거기다. 이 녀석도요.”

주머니를 뒤적여 주먹만 한 생물체를 꺼내자,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작게 우는 생물체.

-삐익!

곤히 잘 자고 있었는데 대체 왜 깨웠냐며 노려보는 생물체는 팽구용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삐익이였다.

“아무리 혈교의 고수라고 해도 만년혈독신조에 비하면 우습지 않겠어요?”

-삐익!

“알았어. 성내지 말고 들어가서 자고 있어.”

분위기도 모르고 울부짖는 삐익이를 놔주자 도로 주머니로 돌아가 버리는 삐익이.

자기 둥지처럼 아늑한 느낌이 드는지 밥 먹을 때 빼고는 항상 주머니 속에서 잠만 자는 중이었다.

“사실 얘까지도 필요 없고, 신화문 선에서 정리될 겁니다.”

일염이를 바라보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화문은 결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잊었던 분노를 깨우쳤으니 문제없다.”

“분노를 깨우쳐…… 설마 색유를 쓸 수 있다는 건가?”

“1초식뿐이지만 쓸 수 있다.”

“잘됐군. 정말 잘됐어.”

일염이가 색유를 언급하자, 한시름 덜었다는 듯 팽구용이 좋아했다.

일전에 언급해서 들은 적은 있다만 색유가 대체 무슨 무공이길래 겨우 1초식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색유를 아십니까?”

“그럼 알다마다. 무림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이들은 다 아는 무공이다. 왜냐면 무정검을 건드리면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니까.”

“예? 그렇게 유명한가요?”

“몰랐느냐? 색유는 꽤 유명한 무공이다. 무정이라 불리는 이들이 쓰는 유정의 무공. 위력은 둘째 치고 유명하지 않겠느냐?”

“그렇긴 하겠죠.”

“한데, 색유는 위력까지 무림에서 손꼽히는 무공이라 아주 유명하다. 색유를 완전히 펼칠 수 있다면 천하제일인이 될 거란 말까지 있을 정도거든.”

“이상하네요. 제가 무림에 대해 알아볼 때 그런 정보는…… 있을 리가 없긴 하죠.”

정보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누락했으니 있을 리가 있겠는가.

일염이를 빤히 쳐다보며 왜 뺐냐고 물어보자, 일염이는 변명하듯 한마디 툭 뱉었다.

“그래서 알려 드렸잖습니까.”

“……그래. 고맙다.”

참 일찍도 알려준다.

“뭐, 어쨌든, 일염이가 그런 것도 쓸 수 있으면 진짜 안전하겠죠. 그러니 걱정은 접어두시고 얼른 시합장으로 가시죠. 걱정 많은 게 탈모의 주원인이거든요.”

장난삼아 머리털을 한 움큼 뽑아내는 척하며 팽구용을 보자, 팽구용이 미소를 씨익 지으며 화답했다.

“암, 푸로패시아 개발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 명심하마.”

한결 나은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던 팽구용은 천천히 감았다 뜨며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를 지웠고.

이내 잘 벼려진 도와 같은 기세를 뿌리며 방을 떠났다.

“자, 그럼 팽 대협도 가셨고, 우리도 가볼까?”

팽구용에게 보여주기 위해 깔아놨던 독과 암기를 빠르게 정리해 몸 곳곳에 집어넣고, 사출기들의 잠금장치를 모두 해제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후…….”

두렵다고 해서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는 안 되는 싸움.

본격적인 혈교와의 싸움을 앞두고 나 역시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옅은 한숨에 모두 털어내고 힘차게 말했다.

“가자. 일염아.”

그렇게 나는 일염이를 대동한 채 결선이 벌어질 시합장으로…….

아니, 혈교의 침공이 예정된 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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