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80화 (18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80화

“마, 만사빙귀? 그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배, 백독멸악이 빙궁의 혈통이었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삼촌의 별호를 입에 올리자, 큰 충격에 빠지는 사람들.

한때 무림을 뒤집어놨다던 삼촌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사람들이 벙 찐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뭣?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벙 찐 얼굴로 되묻는 운현.

냉기를 풀풀 뿌리며 삼촌의 존재를 언급하자,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내 얼굴을 한 번, 검신에 나풀거리는 냉기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봤다.

“안타깝지만 설명은 여기서 끝이오. 이야기를 나눌 만큼 나눴으니 이젠 검을 나눠야 할 때 아니겠소?”

하지만 굳이 더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보면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전 준비됐습니다.”

감독관을 향해 옅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자, 감독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곧장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준비.”

“자, 잠깐 기다려…….”

“시작!”

운현이 뭐라 하며 시간을 달라 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감독관은 무시하고 진행했고.

그 덕에 선공권을 쥐게 된 나는 주저 없이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자 그럼 잘 보시오.”

처음은 초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벼운 검격이었다.

몇 번 연습했다곤 하나 원래 검을 쓰지 않던 만큼 엉성하기 짝에 없는 검놀림으로 운현의 팔을 노렸다.

“이 무슨…….”

그러자, 황급히 검을 피해내는 운현.

한눈에 봐도 매화검법을 완벽히 펼쳐내는 게 아님에도 자신보다도 더 빠른 속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검을 제대로 다루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런 속도를 내는 것이오?”

“그야 당연히 빨리 휘두르니 가능한 것 아니겠소?”

“……?”

“쉽게 말하면 그냥 수준 차이라는 의미요!”

서투른 솜씨가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러 대자, 운현이 당황한 채 검을 피해내기 바빠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운현은 엉성한 검을 쳐내며 화를 버럭 냈다.

“우리 화산의 검을 그리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따라 한다고 말해놓고선 이런 볼품없는 검격이라니! 이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오!”

모욕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을 너무 심하게 하네.

“안타깝지만, 난 한 번도 쉽게 따라 할 거라 생각한 적 없소.”

매화검법은 대체로 변초가 많고, 각 초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라 따라 하기 힘든 검법이었다.

그러니 따라 한다고 한들, 숙련도가 높지 않아서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 검법이었고, 당연하게도 제대로 모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걸 보여주는 이유는 명확히 존재했다.

“한데 왜!”

운현이 울분을 표하듯 힘차게 검을 휘두르자, 검에서 피어난 수십의 꽃잎이 매섭게 바람을 타고 내게 날아들었다.

“허어, 매화만개를 저리 펼치다니! 천화검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먼!”

“힘에서 밀린다고 한들, 저 정도의 환검이라면 백독멸악도 방법이 없을 걸세!”

운현의 수준 높은 검격을 알아본 관중들이 저마다 감탄을 흘리며 내 패배를 예상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것이라곤 손에 잘 익지 않은 매화검법뿐이었으며,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의도뿐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저 환검을 찍어 누를 힘이 없는 이상에야, 내 패배는 확정됐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허나, 내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검을 들고 나왔겠는가?

당연히 이것도 계산 범위 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의 이목을 끌기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삼촌처럼 완전히 베끼지 못하니 그저 흉내 내기만 한 검격으로는 혈교의 이목을 끌 수 없어.’

어지간하게 특이한 검이 아닌 이상에야 검을 흉내 내는 건 검 좀 다뤄봤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의 깃든 묘리를 깨우치지 못하기 때문.

그저 형을 따라 하는 데 그치고,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묘리를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나아가 아예 파훼해 버릴 수 있다면?

필시 이목을 끄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그러니 파훼해서 이목을 끌 수밖에!’

검을 쥔 손에 힘을 줘 검이 빠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한 채 운현의 검을 노려봤다.

한눈에 봐도 매섭고 빈틈없어 보이는 수준 높은 환검.

과연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유가 있는 날카로운 꽃잎의 폭풍을 보게 되니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그와 동시에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왜냐면 나에게만큼은.

그 폭풍의 약점이 명확히 보였기에.

‘지금!’

-챙!

단 한 번에 찌르기에 급소를 찔린 듯 막혀 버리는 운현의 공격.

수십 개로 나뉘어져 휘날리던 꽃잎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있었고, 그 정 가운데에는 내 검에 막힌 검 한 자루만 덩그러니 멈춰 있을 뿐이었다.

“…….”

결코 쉽게 막힐 공격이 아님에도 쉽게 파훼되자 운현이 한참 동안 멍하니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그러길 잠시.

“……대, 대체 어떻게?”

단 일 합.

고작 일 합 만에 내가 묘리를 꿰뚫고 있음을 깨달았는지 그제야 운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봤고.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화산파의 고수들도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봤다.

“아니, 운현이의 검을 단 일 합에 파훼하다니?”

“사형, 우연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 아이가 화산의 검을 파훼하다니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래, 내가 잠시 당황해 오판했나 보구나.”

설마하니 파훼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젓는 화산파의 고수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게 분명함에도 믿고 싶지 않은지 현실을 외면했다.

“분명 우연일 테니 지켜보자꾸나.”

“예, 사형.”

바로 옆에서 팽구용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음에도 보지 못했는지 화산파의 고수들은 착잡한 얼굴로 운현을 내려다봤다.

‘역시 한 번으로는 안 되나…… 뭐, 믿기지 않는다면 한 번 더 보여주면 그만이지.’

한 번은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수 번 반복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니 이번엔 확실히 보라는 듯 냉기를 풀풀 뿌리며 검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내 분명 말했잖소. 삼촌께 배웠다고 말이오.”

“……그게 정녕 사실이었단 말이오?”

오늘 하루 종일 놀라놓고서 지치지도 않는지 또 놀라는 천화검.

공격해 와도 모자랄 판에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 듯하여 이번엔 내가 선공을 하기로 하였다.

“보면 알지 않겠소?”

넘실대는 냉기를 뿌리던 검의 사방에서 눈꽃이 한 송이, 한 송이 맺히더니 이내 스무 개가 넘는 꽃잎이 피어났다.

“맙소사…….”

그 광경을 보고서 침음성을 삼키는 운현과 화산파의 고수들.

자신들의 무공이 파훼당한 것만으로 충격이 이만저만 아닌데, 설마하니 다른 이의 손에서 꽃이 피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어, 어떻게 매화를…….”

그건 운현도 마찬가지였는지 한껏 냉기를 머금은 설화가 수려하게 피어나는 광경을 매화로 착각할 정도였다.

“힘 좀 쓰니 되었소.”

다룰 수 있는 음기가 극히 제한적인 만큼 이 공격 한 번에 모두 때려 박아야 했지만, 빙공을 쓰는 것도 아니라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

오히려 보여주기식인 만큼 이쪽이 더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었다.

“매화빈분.”

초식명을 읊음과 동시에 운현에게 쏟아지듯 뻗어 나가는 스무 개의 눈꽃 잎.

완벽한 초식을 선보이기보다는 화려함에 치중했던 만큼 신비하고 몽환적인 움직임으로 운현의 시야를 어지럽혔고,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선 난리가 났다.

“저, 저건! 매화빈분! 아까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쓴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단 말이야?!”

“아니, 사천당가의 소가주라는 자가 화산파의 검을 익혔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만사빙귀…… 만사빙귀의 재림이야…….”

검에 실린 힘은 덜하지만, 매화가 아닌 설화를 피어내어 천화검보다 더 화려한 검격을 펼쳤다.

이건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이가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큭…….”

그걸 운현도 모르지 않았기에 심히 열 받고 당황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익힌 무공이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막아내었다.

“이런 화려함에 비해 쉽게 막혔구려.”

퍽이나 아쉽다는 얼굴로 물러나며 말하자 인상을 뻑 쓴 운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소. 뒷감당은 둘째 치고 나를 바보로 만들려는 것이구려.”

그러더니 운현은 난데없이 검을 집어넣더니 포권을 취했다.

“처음부터 다시 하겠소. 대화산의 일대제자 운현이오. 사용할 무공은 이십사수매화검법.”

이어서 기도를 완전히 정리한 운현이 천천히 검을 뽑으며 선언했다.

“화산의 이름에 걸고 내 본때를 보여줄 것이오.”

완전히 사람이 뒤바뀐 듯한 운현은 형용할 수 없는 고수의 냄새를 풍겼고, 그에 걸맞은 굳은 얼굴로 천천히 발을 내디디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피지 않은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매화점점.”

처음엔 단 하나.

날카롭긴 하나, 큰 힘이 실리지 않아 막기 쉬운 검을 쳐내자, 빙그르르 한 바퀴 돈 운현이 처음과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허나, 이번엔 둘.

어느샌가 하나가 더해진 두 개의 검이 양쪽에서 급소를 노리며 다가오길래 이번에도 가볍게 두 개 다 쳐냈다.

그러자, 이번엔 넷.

또다시 아까보다 두 배로 늘어난 검은 예리하게 급소를 점하려 들었고, 이번에는 조금 집중해서 쳐내야만 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여섯.

매화가 번지고 번진다는 초식명이 심히 어울릴 만큼 운현의 검은 막아내면 막아낼수록 증식하듯 번졌다.

하나를 막으면 둘이.

둘을 막으면 넷이.

넷을 막으면 여섯이.

어린애가 산수를 하듯 운현의 검에 점차 피어나는 매화를 보고 있자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거 아시오? 우리 삼촌께서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전부 펼치지 못하셨지만, 딱 매화점점까지는 보여주셨소.”

“…….”

“그래서 그런지 더 매서워 보이는 것 같구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검인지 아니까 말이오.”

“…….”

공방을 나누는 동안 말을 걺에도 이전과 달리 작은 대꾸조차 없는 운현.

진심을 보인다고 했던 만큼 무아지경에 빠져서 못 듣는 건가 싶을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공방을 유지했다.

“한데, 그거 아시오?”

“…….”

“삼촌께서 보여주셨던 매화점점에 비하면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소.”

눈을 어지럽히고, 감각을 속이며 수많은 변초를 만들어내는 검법.

화려하면서도 상대와의 수준 차이가 클수록 압도적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환검은 필연적으로 약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허초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만 있다면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닥치시오.”

운현은 차마 이 말까지 무시할 순 없었는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입 닥치라는 듯 스무 개의 매화 잎을 피워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이 적기임을 깨닫고 운현을 바로 무너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 열 올리지 마시오. 내 당장 증명해 보일 터이니.”

시작은 간단했다.

그저 제일 약한 검을 쳐내며 크게 한 걸음 걷는 것뿐.

-챙.

스무 개의 매화 잎 중 가장 작고 느린 잎을 완전히 쳐내면 그만이었다.

“…….”

당연하게도 동요조차 하지 않는 운현.

스무 개의 꽃잎 중 고작 하나 쳐내졌다고 호들갑 떨 무인은 없는 만큼 평정을 유지하고 열아홉 개의 매화 잎을 피워냈다.

하지만 뒤이어진 공방에서 운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챙.

“큭…….”

이번에도 아까와 똑같이 제일 약한 잎을 쳐내자, 운현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까진 이상한 점을 느끼진 못했는지 금방 평정을 되찾고 다시금 열여덟 개의 매화 잎을 피워냈다.

-챙.

“……?”

뒤이어진 세 번째 공방.

이번엔 그저 한 개가 아닌 세 개를 동시에 쳐내 버리자 운현의 얼굴엔 의문이 떠올랐고, 나는 비릿한 미소로 화답하며 앞으로 크게 발을 내디뎠다.

-챙. 챙. 챙.

그렇게 검을 맞댈수록 하나씩 줄어드는 꽃잎의 숫자.

열여덟이 열다섯으로.

열다섯이 열로.

열이 넷으로.

넷이 둘로.

그리고 결국엔 하나로.

“하아…… 하아…….”

결국 시합장의 끝에 몰린 운현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봤고.

마찬가지로 떨리는 오른팔을 보고선 고개를 푹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내가 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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