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73화
기문병기.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기가 아닌,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고 특이한 무기를 이르는 총칭.
쉽게 말해서 비주류 무기들을 의미했다.
무림에서는 사실상 검과 도, 창과 봉이 아니고서야 죄다 기문병기인 만큼 수백 개가 넘는 기문병기가 존재했다.
“사, 사슬 낫? 사슬 낫이 여기서 왜 나와?”
그런데 지금.
당지천이 기문병기 중 하나인 사슬 낫.
쇄겸을 들고나오자, 상대방이던 73번 참가자는 물론.
예선전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했다.
“아, 아니, 쇄겸이라니? 당가에서 쇄겸도 썼던가? 그런 소문은 들은 적 없다만?”
기문병기는 특유의 이질적인 생김새 때문에 운용 방식과 수련법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기문병기를 익힌 고수가 있으면 대부분 유명세를 타곤 했는데, 관중석에 있는 사람 중 당지천이 기문병기를 익혔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없다만, 혹시 모르지. 당가가 봉문했을 때, 쇄겸을 쓰는 기예를 익혔을 수도 있잖는가.”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잖은가.”
“내가 보기엔 암기에도 제약이 생겼으니 한쪽을 투척할 수 있는 쇄겸을 가져온 것 같네.”
상정 외의 상황에 사람들이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의뭉스러운 눈을 한 채 당지천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건 감독관도 마찬가지였기에 당지천에게 물었다.
“44번 참가자. 그건 왜 가져온 것이오?”
“쓰려고 가져왔습니다.”
“쇄겸을? 흠…….”
침음성을 흘리는 감독관.
뒤에서 암기 대신 쓰려 한다는 헛소리가 나오긴 했는데, 그게 그리 쉬울 리 있겠는가.
어떤 무기든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오랜 기간 수련해야 함은 당연한 거고, 그에 맞는 무공도 배워야 한다.
“정말 써도 괜찮은 거요?”
“손에 익은 정도는 아닙니다만, 쓸 만합니다.”
“…….”
수족처럼 부려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손에 안 익었다고 할 정도면 차라리 버리고 맨손으로 상대하는 게 낫다.
그래서 감독관이 염려스러운 눈으로 보자, 당지천은 정말 괜찮다는 듯 사슬 낫을 빙글빙글 돌려 보이며 말했다.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알겠지만, 걱정 말고 하시죠.”
걱정일랑 말고 얼른 시작이나 하라는 당지천의 말에 감독관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다른 곳도 아니고 용봉지회다.
대쪽 당할 생각으로 나온 게 아닌 이상 못 다루는 무기를 들고 나왔을 린 없을 테니, 그냥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양측, 준비하시오.”
감독관의 허가가 떨어지자, 당지천이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수식을 취했다.
한눈에 봐도 사슬 낫을 제대로 다룰 거라 기대되지 않는 모습.
그걸 본 일호대주는 얼굴을 굳히며 팽구용에게 물었다.
“단주님. 정말 괜찮은 겁니까?”
“뭐가?”
“자세만 봐도 뭔가 이상하잖습니까?”
“뭐가 이상한데?”
“…….”
팽구용이 자신의 물음에도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며 당지천을 한참을 쳐다보자, 일호대주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당 공자가 되게 엉거주춤한 자세잖습니까?”
“엉거주춤한 자세라니? 아, 저거?”
일호대주가 뭘 말하는지 이제야 깨달은 팽구용은 당지천을 보며 껄껄껄 웃어대더니 일호대주의 어깨를 쳤다.
“아직 쇄겸 다루는 녀석을 본 적이 없구나? 잘 봐둬. 저게 완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어렴풋이 따라 한 정도는 되니까.”
“예? 따라 하다니…….”
“그런 게 있으니까 잘 봐둬.”
“예…….”
이번에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잘 봐두란 말에 일호대주는 다소 찝찝한 얼굴로 팽구용의 답변을 곱씹어댔다.
‘어렴풋이 따라 하다니? 용봉지회가 그렇게 만만한가?’
독과 암기를 쓰지 못하니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무기를 들고 와서 대충 흉내 낸다?
아무리 기문병기가 생소함과 특이함으로 승부를 보기에 동 실력 대에 비해 유리하다고는 하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 73번 참가자가 당 공자를 이기려고 하면 당 공자의 공격을 받아치는 게 제일 좋은 전략이다. 그런데 여기서 쇄겸을 들어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한다면?’
73번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2가지.
그냥 계속 맞으면서 버티거나, 혹은 스스로 거리를 좁히는 것.
전자는 사실상 시합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기에 스스로 거리를 좁히는 행위가 강제되는 거였다.
‘당 공자가 머리를 아주 잘 썼구나. 단주님은 그걸 바로 꿰뚫어 본 것이고.’
“단주님. 이제 이해했습니다. 역시 단주님이 칭찬할 만큼 머리를 잘 쓰는군요.”
“뭐?”
“이런, 다른 인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데 눈치 없이 말할 뻔했군요. 죄송합니다.”
“……?”
자신은 가만히 있었음에도 일호대주가 혼자서 감탄하고, 혼자서 사과하니, 팽구용으로선 뭐 잘못 먹었나 싶어 유심히 일호대주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하나 일호대주는 그런 팽구용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히려 팽구용이 자신을 기특해하는 거로 생각해 더 단단히 착각했다.
당지천의 앞에 있던 73번 참가자도 착각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사슬 낫? 사슬 낫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애초에 저거 제대로 다룰 수나 있는 거야? 시작하자마자 땅바닥에 버려두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원래 73번 참가자가 당지천을 상대할 때 계획한 전략은 당지천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틈을 노리는 방법이었다.
한데, 당지천이 사슬 낫을 들고 나와서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사슬 낫을 상대로 가만히 있으면 일방적으로 공격당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좁히자니 나만 좋을 게 없잖아? 끄응…….’
상정 외의 사태에 어찌할 줄 몰라 몸을 굳히는 73번 참가자.
당지천이 머리를 잘 쓴 건 참 대단했지만, 하필이면 자신이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 골치가 아팠다.
‘어떡해야 하지? 시작하자마자 거리부터 좁혀? 아니면 일단 공격부터 막고 틈을 노려? 그것도 아니면…….’
내색하진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전략을 세우던 찰나.
“73번. 준비하시오.”
감독관이 생각할 시간도 안 주고 준비하라고 하자 입술을 깨물며 기수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당지천의 자세.
‘자세가 많이 어정쩡하잖아?’
한눈에 봐도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않은 듯한 당지천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고,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거 잘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겠어.’
왠지 모르게 약해 보이는 당지천의 모습에 긴장도 풀리고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래서 다시금 의지 충만한 손놀림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던 때.
감독관의 손이 내려갔다.
“시작!”
감독관이 시작 선언을 하는 동시에 당지천은 사슬 낫에 달린 추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곧장 추를 던졌다.
-차라랑.
청명한 음을 내며 날아가는 쇄겸의 추 부분.
‘예상대로야.’
꽤 빠르긴 하지만, 생각보다 느린 속도에 비릿한 미소를 흘린 73번 참가자는 추를 검으로 쳐냈다.
-챙!
“큭…….”
매섭고 묵직하게 날아오는 추였던 만큼 쳐내자 손아귀에 진동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걸로 잠깐 틈을 벌었다고 생각해 사슬을 잡아채려 했는데…….
-차라랑.
“뭣?”
당지천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추는 힘을 잃지 않았고, 당지천은 사슬을 한 번 꼬아 반대로 한 바퀴 돌리면서 73번 참가자를 꽁꽁 묶었다.
“으헉!”
마치 실을 감듯 73번 참가자를 돌돌 말며 올라간 쇄겸의 추가 끝내 73번 참가자의 얼굴을 때렸고.
73번 참가자는 곧 쓰러지며 기절했다.
“…….”
어이가 없다 못해 이상한 시합.
평소엔 보기 힘든 괴기스러운 시합 내용에 모두가 입을 다문 채 눈만 끔뻑이고 있었고, 감독관도 사슬에 둘둘 말린 73번 참가자를 멍하니 쳐다만 봤다.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어, 어…… 44번 승!”
-차라랑.
승리를 확언받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슬을 풀고는 대기석으로 향하는 당지천.
좀 돌돌 말아서 들고 갈 법도 하건만, 모두에게 보여주겠다는 듯 일부러 질질 끌고 가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당지천이 대기석에 돌아가 자리에 앉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둘 감탄하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쇄겸을 다룰 줄이야. 이거 독과 암기가 없다고 얕볼 게 아니었군.”
“보아하니 손에 익지는 않아도 제법 다룰 줄 아는 모양이니 본선까지 쉽게 가겠어.”
“그건 동의한다만……. 결국 요행이잖은가. 예선에 나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이라면 몰라도 본선에 진출할 이들에겐 상대가 안 될걸세.”
“맞네. 지금에야 수준 차이 때문에 통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호적수를 만나면 통하지 않을걸세.”
감탄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회의적인 시선들.
독과 암기만 다룰 줄 알았던 당지천이 기문병기를 들고 나온 건 확실히 의외였고, 상대를 손쉽게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요행은 요행일 뿐, 결국 비슷한 수준의 적수를 만나면 쇄겸은 놔줘야 할걸세.”
하나, 그것도 한두 번인 요행.
예선전에서 만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진짜배기들과 만나게 된다면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을 거라 단언했다.
“결국 암기 없이는 본선도 힘들단 이야기군.”
자신들이 평가관이라도 된 듯 당지천이 암기 없이 본선 진출은 못 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쇄겸은 당지천이 다룰 수많은 무기 중.
고작 하나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 * *
당지천이 쇄겸으로 첫 상대를 무너뜨린 사실은 한 시진도 안 돼서 널리 퍼졌고, 순식간에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뭐? 쇄겸? 당가의 소가주가 그걸 들고 나왔다고?”
독과 암기가 없으니 고작해야 권이나 장.
그것도 아니면 조법을 펼칠 거라 예상했는데 사슬 낫이라는 독특한 무기를 쓴다고 하자, 당지천의 다음 시합을 보러 몰려왔다.
그런데…….
“……그건 또 무엇이오?”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건곤권입니다만.”
“건곤권?”
쇄겸은 일회용이었다는 듯 무기를 바꿔 온 당지천.
건곤권이라는 특이한 기문병기를 들고 나왔다.
“……설마 투척할 생각이오?”
“투척한다면 실격 처리해도 좋습니다.”
“알겠소. 양측 준비하시오.”
심지어 투척 용도도 아니고 사용하려고 가져온 것으로, 당지천은 건곤권을 사용해 시합을 이겼다.
“아니, 쇄겸도 모자라서 건곤권도 쓸 줄 안단 말인가?”
기문병기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다룬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
그렇기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있을 무렵.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듯 당지천은 기행을 이어갔다.
“쇄겸을 시작으로 건곤권, 검편, 낭아봉, 장창도 모자라서 이젠 단필까지? 도대체 당가에선 뭘 가르치는 거란 말인가?”
“그래도 여기까지일걸세. 제아무리 담이 크다고 한들, 한 번만 더 이기면 본선 진출인데 현리명인을 상대로 기행을 벌이겠는가?”
파죽지세로 이기며 예선전 마지막 시합까지 왔다고 한들, 이번 상대는 제갈세가의 기재인 제갈천.
어린 나이임에도 현리명인이라는 별호로 불릴 만큼 뛰어난 지혜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기문병기의 장점이 독특함과 특이함이라고 한들, 꿰뚫어 볼 식견이 있다면야 엉성한 무기로 전락해 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현리명인이 기재 중 무력이 제일 약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기에 말이지?”
“맞네. 그러니 백독멸악도 이번엔 단단히 준비하고 나오겠지.”
“44번! 17번! 앞으로!”
“때마침 부르는군.”
당지천과 제갈천이 호명되자, 기대 어린 시선으로 시합장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저마다 이번엔 당지천이 어떻게 나올까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봤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눈에는 황당함이 서렸다.
왜냐면 시합장으로 향하는 당지천의 손에는…….
“고, 고금?”
음공을 쓸 때나 볼 법한.
철로 된 고금이 들려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