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7화
대련하다 말고 들려온 호각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기도 잠시.
“뭐? 시체?”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도 아니고.
시체가 있다는 소리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텅!
그건 호각 소리를 들은 감독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일제히 튀어나와서 물었다.
“어느 쪽이야!”
“저, 저쪽입니다.”
참가자가 골목을 가리키자, 감독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갔다.
그리고 뭔가 하고 있었는지 한 발자국 뒤늦게 나온 감독관들은 인원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통제했다.
“시체? 시체가 있다고?”
그때, 삼풍객잔 내에서 걸어 나오는 감독관.
다른 감독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삼풍객잔에서 나온 감독관만큼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예, 수호각주님. 현재 시체가 발견됐다고 해서 확인 중입니다.”
“결과는?”
“발견했습니다!”
수호각주라 불린 사람이 묻자마자 골목에서 튀어나온 감독관이 수호각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외부인이 아닌 참가자인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사인은?”
“저 그게…….”
잠시 이쪽을 바라보는 감독관.
왠지 모르게 나를 한 번 훑듯이 보더니만 이내 조금 조용하게 말했다.
“독살입니다.”
“독살?”
독살이 거론되자, 한순간에 쏠리는 시선들.
분명 아까보다 작게 말했음에도 오히려 또렷하게 귀에 박힐 정도로 크게 울렸다.
그래서 그런지 참가자는 물론, 감독관을 비롯해 수호각주라 불리던 사람까지 다들 나를 쳐다봤다.
“…….”
엿 됐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엿 된 느낌이다.
아니, 무림에 독을 쓰는 가문이 많지도 않거니와 수준 높은 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사천당가의 소가주가 눈앞에 있으니 의심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일단 쟁탈전 중지시켜. 차후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작은 다툼이라도 벌이면 죄다 실격 처리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수호각주에게 고개를 숙인 감독관은 곧장 예의 종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외쳤다.
-땡, 땡, 땡.
“현 시간부로 쟁탈전을 잠시 멈추겠소. 차후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작은 분란이라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실격 처리할 테니 주의하시오!”
시끄럽게 종을 쳐대며 사방에 소식을 뿌리러 다니는 감독관.
한달음에 다른 이들의 수십 보를 가는 신묘한 보법에 다들 놀라서 쳐다볼 법도 하건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모두의 시선은 내게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
대체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거 까닥 잘못해서 소문 한번 잘못 나면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게 될 거다.
그래서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 파악을 위해 기다리고 있자, 골목에서 감독관이 한 명 더 튀어나왔다.
“수호각주님. 독살에 쓰인 물건을 찾았습니다.”
“가져와라.”
수호각의 명령에 냉큼 다가온 감독관이 손에 들린 물건을 조심히 내밀었다.
“아…….”
그러자, 내 입과 모용집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왜냐면 지금 감독관이 들고 온 주머니는 다름 아닌…….
“수십 개의 합격패가 든 주머니입니다. 참가자들의 이름으로 보면 대부분 만호객잔의 참가자들입니다.”
모용집이 가져오고, 내가 던져 버렸던 그 주머니였으니 말이다.
“이런…….”
절로 나오는 탄식.
안 그래도 의심 대상 1순위가 나다.
그런데 독살에 쓰인 물건이 내 손을 거쳤던 주머니다?
이거 오해를 풀기 이전에 구설수에 찍혀 눌릴 가능성이 더 컸다.
‘무작정 부인하기엔 괜히 의심만 살 게 분명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주머니의 원주인인 모용집이 보증을 서준다면 의심을 완전히 지우진 못해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허나, 안타깝게도 인성 하나만큼은 독보적인 녀석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나서서 도와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감독관들을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나.’
지금 아무것도 안 한 채 해산하게 되면 사실과 관계없이 10할.
아니, 100할 정도 확률로 이야기가 과장되고 내가 독살했다는 구설수가 돌 거다.
‘완벽히 결백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결국 구설수는 돌 테니 최소한 심각한 내용만큼은 만들지 말아야 해.’
그런 각오로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수호각주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당지천은 독을 쓰지 않았다.”
“……?”
아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 까진 아니고, 한두 번 본 게 전부인데, 내 편을 들어주는 수호각주.
내 편을 들어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인데, 갑자기 이러니까 심히 당황스러웠다.
“애초에 니들 바보냐? 얘가 사람들 눈 떡하니 뜨고 있는데 독 쓰게? 우리가 퍽이나 다른 사람 의심하겠다.”
수호각주는 모두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보거나 말거나 다른 이들에게 내 결백을 주장하며 내가 하려던 말을 그대로 쏟아냈다.
“게다가 다른 놈이라면 모를까. 쟤…… 크흠, 봉변을 당한 고인분을 노릴 이유가 있겠어? 모용집도 이기는 애가?”
합격패를 원했으면 그냥 뺏으면 되는 일이다.
굳이 죽일 이유는 없다는 의미.
“사람을 죽이려 했으면 대량학살을 했지,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처리할 리가 없다.”
또,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으면 좀 더 많은 이들을.
들키지 않을 방법으로 했을 거라 단언했다.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혹, 실수로 묻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너 당가랑 안 싸워봤지.”
“예? 예.”
“하긴, 그러니까 그딴 소리를 지껄이지.”
수호각주의 면박에 눈살을 절로 찌푸리는 참가자.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을 찌푸린 수호각주는 참가자에게 물었다.
“너는 잘 싸우다가 실수로 검 떨어뜨리고 그러냐?”
“그러진 않습니다만…… 그거랑 이거랑은 엄연히 다르잖습니까?”
“다르긴 뭐가 달라. 당가가 독 안 쓰면 대체 뭘 쓰는데?”
“…….”
“그리고 정말 만약에 당지천이 독을 썼다면 그걸 관리하지 못한 감독관의 책임도 있을 터. 삼풍객잔의 감독관은 나이니 나 천살검 남궁호자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맹에서 탈퇴하겠다.”
“처, 천살검?!”
수호각주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천살검 남궁호자.
젊은 나이에 무림오검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태천검 다음가는 남궁세가의 최고 고수로, 태천검을 뛰어넘을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무인.
그러면서 대외활동엔 얼굴을 잘 비치지 않아 신비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천살검이 일개 감독관을 맡고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천살검 남궁호자?”
물론, 나 또한 놀랐다.
감독관인 만큼 나보다 강한 사람일 거라 생각은 했다만, 설마하니 천살검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그런 대단한 사람이 인맥 없는 나를 위해 나서줬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수, 수호각주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만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가 일어나면 탈퇴하는 거지.”
염려하는 감독관의 말을 칼같이 잘라 버리는 천살검.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을 연대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단번에 묶어서 소문이 돌더라도 안 좋게 돌 여지를 완전히 틀어막아 줬다.
“천살검이 나서서 보증을 서다니? 천살검이 당가에 연이 있던가?”
“개인적인 연이 있는 게 아니겠소? 한데, 그렇다고 한들 어지간한 연은 아니겠구려. 자신의 명예를 걸 정도이니.”
예상했던 대로 독살 사건보다 다른 쪽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
무림맹에서 누가 죽는 사고가 났다고 한들, 이름 있는 문파의 제자가 아닌 이상 천살검에 비하면 작은 화젯거리였다.
그렇기에 어느샌가 모두의 관심이 천살검에게로 옮겨가자, 천살검은 골목을 향했다.
“자, 그럼 확인해 보러 가자고.”
보고하러 온 감독관들을 데리고 골목으로 향하는 천살검.
그런데 골목으로 향하다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뭐 해? 안 따라와?”
“저 말입니까?”
“너도 참여해야지.”
“전 용의자잖습니까.”
“약은 의선문에게, 독은 당가에게. 세 살짜리 꼬마도 아는 이야기야. 무림맹에서도 조사할 예정이지만, 네 결백은 네가 증명해야지.”
“…….”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괜히 이상한 오해를 사는 게 아닐까 싶어 불편했다.
거기다, 천살검이 나를 도와주는 건 좋았으나 왜 도와주는지 예상이 안 갔다.
그래서 조금 경계심 어린 얼굴로 골목으로 향하자, 천살검이 물었다.
“입구에서 적색 호루라기 받았지?”
“예, 받았습니다.”
“청색 호루라기는 감독관을 부르는 것이고. 적색 호루라기는 나를 부르는 거다. 즉, 감독관들조차 버거운 상대를 만났을 때 부르는 거지. 내가 왜 이걸 챙겨줬을 거 같냐?”
“평이한 실력의 감독관보단 제가 강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3할은 그래.”
“반도 아니고 3할입니까?”
“3할은 태상 가주님 때문이고, 4할은 네가 일절이 조카라서다.”
“예?”
아니, 태천검은 그렇다 치고, 삼촌의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남궁일자. 그게 내 옛날 이름이다.”
“남궁일자…… 아, 외삼촌의 친우분이시라던…….”
남궁일자.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가 싶었더니 외삼촌이 건네준 그 커다란 두루마리의 수령인이었다.
“그래, 그 무식하게 큰 두루마리는 잘 받았다. 어제 밤새워서 읽어보니 9할 5푼이 쓸모없는 이야기더구나.”
“하하하…… 삼촌께서 좀 그러시죠.”
“그러게, 옛날엔 하루에 한마디 할까 말까 했던 녀석인데 말이야.”
“하루에 한마디? 한마디를 하루 동안 한다는 걸 잘못 말하신 게 아니고요?”
천살검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뭐,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내가 도와주는 이유는 알겠지?”
“예, 한데 개명은 왜 하신 겁니까? 일자라는 이름은 평범하지 않습니까?”
“네가 맨날 일자무식이라고 놀림 받아 봐라. 개명 안 하고 버티는지.”
“아…….”
저런.
얼마나 무식했으면 일자무식이란 별명이 생겼을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 나름 똑똑했어. 교육을 공자 형님이랑 같이 받아서 상대적으로 멍청해 보인 거지.”
“뇌의 님과 친하십니까?”
“어렸을 땐 꽤 친했지. 지금은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참, 그러고 보니 네가 공자 형님의…… 도착했구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잠깐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골목 안쪽.
감독관들이 모여서 경계를 서고 있는 안쪽엔 골목 한편에 곱게 기대져 있는 시체가 보였다.
“수호각주님. 그 인원은…….”
“사천당가의 소가주다. 독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지.”
용의자가 사건 현장에 오자, 당황하는 감독관.
하지만 내가 유력한 용의자인 걸 천살검이 모를 리 없다는 걸 알기에 감독관들은 그냥 물러났고, 천살검도 내게 주머니를 건네주며 시체를 가리켰다.
“조사해 봐라.”
일단 시체를 보기 전에 먼저 주머니에 발린 독의 냄새를 맡고 조금 훑어 먹어봤다.
‘생아몬드 냄새, 그리고 얼얼한 매운맛. 청산가리인가?’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예상가는 건 청산가리.
전생에는 독살의 대명사로 불리며 언제나 먼저 떠오르는 물건이지만, 무림에서는 당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독이었다.
물론, 독성은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이거면 웬만한 독학자들도 전혀 못 알아보긴 하지.’
대신 저명한 독학자가 오지 않는 이상에야 알아볼 수 없는 독이었기에 혼란을 주기엔 좋은 독이었다.
“뭔지 알겠냐?”
“예, 일단 시체부터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머니를 다시 천살검에게 맡기고 유심히 시체를 살펴보자, 보란 듯이 나타나 있는 청산가리 중독 증세.
손톱과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한 게 내질식으로 사망한 게 확실해 보이는 상황.
그러나 딱 하나 이상한 게 있었다.
‘일반적인 독약이라면 모를까, 청산가리는 입술의 색깔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청산가리.
사이안화포타슘은 쉽게 혈액 내 산소 운반을 막아 내질식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독이다.
즉, 산소가 생산되긴 하나, 운반이 안 되는 거라 산소가 굳어지기 때문에 색깔이 유지가 되어야 하는 거다.
‘분명 참가자에게 주머니를 건네준 건 오래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피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색깔이 변하는 건…… 잠깐 피?’
문득 뇌리를 꽂는 가설에 품에서 단도를 꺼내자, 황급히 물어오는 천살검.
“왜 그래? 뭔가 알아냈냐?”
“예. 알아냈습니다. 근데 그 전에 하나 정정해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이거 독살이 아닙니다.”
“뭐?”
천살검의 반문과 함께 한순간에 쏠리는 감독관들의 시선.
나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시체의 팔을 그었다.
“뭐 하는…….”
냅다 시체를 훼손하자 당황하는 감독관 하나.
허나, 잠시 뒤.
그는 물론이고, 천살검을 포함해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피가…… 안 흘러?”
왜냐면 유감스럽게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이 시체에서는.
단 한 방울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