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6화
길거리에서 시작된 당지천과 모용집의 쟁탈전.
한쪽은 무림의 후기지수 중 2번째로 강하다는 모용집이고, 다른 한쪽은 이름깨나 날렸지만, 실력에 비해 과도하게 명성이 높은 당지천이었다.
그렇기에 그걸 지켜보는 대다수는 당연하게도 모용집이 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다.
당지천의 주먹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혈룡파천권 투쇄.”
-펑!
당지천의 주먹과 모용집의 검이 맞닿자,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모용집의 검이 크게 튕겨 나갔다.
-타다다닥.
순간 검을 놓칠 뻔한 모용집은 검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반탄력을 줄이고, 자연스레 뒤로 세 걸음 물러나 당지천에게 검을 겨눴다.
“…….”
그 광경에 침묵에 빠지는 인원들.
모용집이 성공적으로 방어해 내긴 했으나, 그 모용집이 무려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대다수 참가자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경악한 얼굴로 당지천을 쳐다봤다.
“그 해천회검이 세 걸음이나 물러나다니…….”
“방금 내지른 권은 또 뭔가. 분명 백독멸악의 무공 실력은 볼품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산 정보에도 독만 없으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 되어 있었네. 개방의 정보력을 생각하면 모를 리 없었을 테니 필시 우리를 속인 거겠지.”
“해천회검이 세 걸음 물러난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아니, 저 의미를 모르다니? 자네 그러고도 무림인인가?”
“정보도 없이 지금까지 버틴 걸 보면 실력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아니지. 오히려 실력이 꽤 괜찮다는 의미일 터인데, 혹시 어디 산에서 수련하다 내려왔나?”
“그렇긴 한데……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모를 수야 있지. 허나, 현 무림은 정보화시대. 그 어느 때보다 정보가 중요한 시대라네. 산속에서 수련하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무림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나.”
“그런 의미에서 설명해 줄 테니 잘 듣게나. 모용세가의 검술은 이화접목을 근간으로 하며 동시에 이화접목의 극치를 담고 있다네. 당연히 해천회검도 그 무공을 익혔지.”
“그게 어쨌다는 거야?”
“해천회검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겐 결코 물러나는 법이 없네. 선공을 양보하고 막기만 하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가 돼서야 반격해 쓰러뜨리는 취미가 있거든.”
팽구용이 모용집을 보고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부르는 이유.
그건 그냥 무학을 익히는 선배들을 무시하는 행동 때문도 있지만, 상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 마음을 꺾어버리는 잔학무도함 때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물러났다는 소리는…….”
“맞네. 백독멸악이 해천회검보다 약하지 않다는 의미지.”
몰랐던 참가자는 물론이고, 알던 참가자들도 대단하다는 눈으로 당지천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상한데? 백독멸악이 강한 거야 봐서 알겠다만, 해천회검 쪽은 그냥 명성이 부풀려진 거 아니야?”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그와 동시에 의외로 모용집의 명성이 허명이 아닐까 싶어 둘의 대련을 좀 더 주목했다.
“…….”
모두가 관심 깊게 모용집을 내려다보자, 모용집은 보이지 않게 입술을 짓씹었다.
‘빌어먹을…… 대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모용집이 당지천을 찾아온 건 순전히 근처 객잔이어서.
청성파의 백현을 일격에 쓰러뜨렸다길래 기고만장하고 있을 얼굴에 먹칠해 주려고 온 거다.
결코 당지천의 위명을 들어봤다거나, 요주의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찾아온 게 아니었단 말이다.
‘분명 안에서는 이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런데 웬걸.
얼굴에 먹칠을 당하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닌가?
합격패를 던져주는 이해 못 할 행동을 할 때는 당황했을 뿐.
자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서 막을 수 있던 거라 생각했다.
보법이야 당가의 보법이 빠르기로 정평 나 있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연격을 퍼부었다면 바로 끝났을 수도 있다.’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참가자들은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방금 모용집이 돌면서 세 걸음 물러나는 동안 한순간이나마 중심을 잃었었다.
당지천이 보고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바로 연격을 퍼부었다면 승기가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초장부터 절초를 쓴 거냐. 아니면, 그게 진짜 실력이냐?’
모용집이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한 기색으로 당지천을 바라보자, 당지천은 무표정하게 모용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심해서 제대로 못 받은 거 같은데, 다음은 없어.”
“…….”
간파당했다.
한순간이나마 자세가 흔들린 걸 들켰다.
그걸 깨달은 시점부터 모용집의 자세가 변했다.
‘제길…… 호적수라고 부를 만한 건 그 녀석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원래라면 용봉지회 본선에서 처음 선보이려던 검법이다.
하지만 지금 어중간한 검법으로 당지천을 상대했다간 예선 탈락.
아니, 대기 기간에 탈락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게 분명했기에 꺼낼 수밖에 없었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이 내가 진심을 보이는 건 손에 꼽는 일이니.”
“영광이라…….”
피식 웃음을 지은 당지천이 다시금 기수식을 취하며 물었다.
“그거, 섬광분운검이지?”
“!!!”
기수식만 취했을 뿐인데, 이번에도 간파당한 모용집.
무림에서야 아는 이들이 꽤 된다고 해도, 설마 사천에서 온 당지천이 알고 있을지 몰라서 심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한 번 본 적 있어. 제대로 된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당지천은 그때를 회상하듯 잠깐 딴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모용세가의 가전무공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거창한 이름값을 하는 검법이었지.”
섬광분운검은 섬광이 구름을 가를 정도로 빠른 쾌검.
비록 그걸 재연해 주던 천일절이 완전히 따라 하진 못했어도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끔 만들어 극심한 피로를 유발하는 특이한 검이었다.
“그걸 쓴다고? 이거 기대되는데?”
천일절과의 대련은 고통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쉬지도 못하고 해서 그런 것.
이렇게 만전을 기한 상태에서 모용세가의 사람이 펼친다니 당지천은 심히 기대되는 얼굴로 모용집을 쳐다봤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고.”
이번에는 선공을 양보한다는 듯 당지천이 왼손을 까딱였다.
“오만한 놈.”
허나, 그런 의도와 달리, 모용집에게는 도발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모용집은 검을 꼬나 쥔 손에 기를 불어넣으며 당지천에게 달려들었다.
“흡.”
짧은 기합과 함께 뻗어지는 모용집의 검.
-챙.
순간 둘의 경합을 보던 참가자들이 검의 위치를 놓쳤을 정도의 쾌검.
등골이 절로 오싹해질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검이었지만, 당지천은 여유롭게 막아내며 장을 뻗었다.
“어딜.”
모용집은 왼손으로 당지천의 손을 쳐냄과 동시에 검을 회수해 다음 수를 준비했다.
-챙!
다시금 쏘아진 빛살 같은 검격.
이번에 당지천은 검을 막지 않고, 사출기로 검의 투로를 뒤틀며 모용집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왼쪽 옆구리.”
이어서 모용집의 왼쪽 옆구리를 노렸는데, 춤추듯 검을 회수한 모용집은 재빨리 권을 막아냈다.
“큭…….”
처음과 달리 온전히 힘을 분산시키지 못해 주르륵 밀려나는 모용집.
충격이 어지간히도 상당했는지 바닥에 늘어진 선은 상당히 길었고, 공격을 막은 검이 한동안 진동할 정도였다.
‘젠장, 이러면…….’
아주 무방비한 상황.
절초도 아니고, 공격 하나 제대로 흘리지 못해 잠시 밀려났다.
이는 다른 이들은 몰라도 당지천과 모용집 수준에서는 공격을 한 번 허용할 만한 시간이고.
특히나 암기를 쓸 수 있는 당지천은 무조건 우위를 가져갈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모용집은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 문득 이상함을 감지했다.
‘헌데, 왜 공격을 안 하지?’
암기를 날리기는커녕 가만히 서서 쳐다보는 당지천.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음에도 의미심장한 얼굴로 모용집을 쳐다봤다.
“흐음…….”
지금이 겨우 2번.
겨우 2번 검을 겨뤘을 뿐인데, 모용집은 전혀 맥을 못 추지 못했다.
당연히 당지천의 기대에는 심히 못 미치는 상황이었고, 당지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쓰읍, 실망인데.”
당지천이 생각한 섬광분운검은 이게 아니었다.
분명 천일절을 상대할 때는 자신의 수준이 더 높았음에도 숨이 턱턱 막히고 마치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모용집을 상대하는 동안 그런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문젤까? 성취는 이쪽이 더 높은 거 같은데 뭔가 약하네.”
모용세가의 사람이니 성취는 당연히 모용집이 좋을 수밖에 없다.
허나, 그 이외의 부분은 전부 천일절에 비하면 모자란 느낌이었기에 당지천은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을 했다.
‘생각보다 모용집이 약한 걸까? 그러진 않고선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진 않을 테니…… 맞겠지?’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한 당지천은 결국 모용집이 생각보다 많이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당지천이 상대한 천일절은 한때 무림삼귀에 들 정도로 경지에 비해 강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점이었고.
아무 경험이 없던 처음과 달리, 지금의 당지천은 천일절에게 극한의 교육을 받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예의도 없는 놈. 사람을 앞에 두고 약하다는 소리를 지껄여?’
당지천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모용집은 대놓고 약하다는 소리에 화가 끓어올랐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감히 날 보고?’
모용집이 평소에 하던 짓이 마음껏 공격하게 해놓고 완벽하게 막아서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그러고는 끝에 가서 ‘약한 놈 상대하느라 시간만 버렸네’라고 한마디 보태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걸 당지천에게 당하고 있었으니.
그것도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당하고 있었으니 화가 끓어오르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래도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법.
명문가의 모용세가의 일원으로서 결코 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에 검을 치켜세우며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섬광분운검의 4초식을 준비하며 말했다.
“감히 모용의 검을 보고 실망을 해? 좋아. 이것까지 막으면 내가 인정하마. 그러나 하나만 기억해라. 여기서 설령 내가 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모용의 검이 약한 게 아닌. 오롯이 내가 약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모용집이 인성은 몰라도 가문에 대한 모욕은 참을 수 없는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자, 심히 무인다운 자세에 감복한 당지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말 단단히 기억할게.”
당지천이 모용집에게 실망하긴 했으나, 무인다움만큼은 인정했다.
하여 최선의 수는 아니더라도 강한 수를 준비했다.
“간다.”
그렇게 모용집의 신호와 함께 서로의 수가 얽히려던 순간.
-삐이이이익!
갑자기 난 호각 소리에 둘의 행동이 멈췄고.
기다렸다는 듯이 골목에서 호각을 문 사람이 하나 튀어나와 골목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여, 여기! 여기 시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