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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65화 (16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5화

“…….”

벙찐 얼굴로 입을 다무는 모용집.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되물었다.

“……뭐?”

“말귀도 못 알아먹어? 싸가지 없는 놈아. 여기 왜 왔냐고.”

“…….”

재차 묻는 물음에 면박을 주자, 모용집은 황당해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아까 전 대화를 나눴던 참가자가 나를 보곤 아연실색한 얼굴로 뻐끔거렸다.

(아니,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 거요? 다른 이라면 몰라도 해천회검, 모용세가의 모용집이잖소.)

전음을 쓰진 않아 말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뭔가 불안함이 뚝뚝 묻어나는 입 모양.

괜히 고래 싸움에 자신의 등이 터질까 봐 무서워 그러는 것 같았고, 그걸 증명하듯 다른 참가자들은 하나씩 자리를 피했다.

“허 참.”

한참을 가만히 있던 모용집은 대뜸 기가 찬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백현 같은 녀석 상대하면서 꽤 기고만장해진 거 같은데 아직 진짜 고수를 안 만나봤구나.”

이어서 모용집이 내 식탁 위에 무슨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여태껏 모은 합격패다. 네놈이 이 객잔에서 제일 강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눈치는 그 소면에 같이 말아 먹었나 보지? 비루한 너에게 내 친히 가르침을 주겠다는 뜻이다.”

내가 자신의 아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지 모용집은 한껏 깔보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참으로 불쾌하기 짝에 없는 상황.

하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웃기지?”

모용세가는 무림 문파이기 이전에 무림 최고의 명문가다.

싸가지가 없을지언정 고풍스럽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눈앞의 모용집은 그닥 고풍스러워 보이지도 않았고, 별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듯했다.

“너 바보야? 아니면, 자신감이 과하다 못해 넘쳐서 그런 거야?”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뭐긴, 뭐겠어. 이렇게 하려는 거지. 야, 받아.”

모용집이 준 합격패 주머니를 내게 말을 걸었던 참가자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어어……?”

그러자 얼떨결에 합격패 주머니를 받은 참가자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나와 주머니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는 이내 상황을 파악했는지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난데없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버린 참가자는 경악한 채 주머니를 떨어뜨렸고, 그와 동시에 모용집이 검을 빼 든 채 참가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모용집은 일반적인 참가자와 격이 다른 걸 증명하듯 단 한 걸음에 거리를 반으로 좁혔다.

“무슨 짓이긴! 이런 짓이지!”

그러나 내가 눈뜬장님도 아니고 순순히 보내주겠는가.

나는 모용집보다 더 큰 한 걸음을 내디뎌 단번에 모용집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일초지적도 안될 놈이!”

모용집은 어지간히도 화난 듯 언성을 높이며 기를 담아 검을 휘둘렀다.

-챙!

하나, 모용집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검 한 번에 나를 처리하긴 커녕, 작은 암기 하나 안 든 주먹에 막혔다.

“안타까워서 어쩌냐. 일초지적은 되는 거 같은데.”

“이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놈이…….”

검이 너무나도 손쉽게 막히자, 한껏 일그러지는 모용집의 얼굴.

나를 한껏 얕잡아 보던 것과 달리, 검이 제대로 통하지 않자 곧장 검을 회수하고는 힘있게 찔렀다.

“아무리 얕잡아 본다고 해도 추검은 너무하지 않아?”

왼발을 반보 정도 왼쪽으로.그와 동시에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검을 피하고 손목을 잡아채려 했다.

“어딜 그 더러운 손을 대려 해!”

그러자 모용집은 검을 한 바퀴 돌리며 내 손을 견제함과 동시에.

튕겨 나온 검을 회수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허어, 이것이 진짜 귀재들의 싸움이란 말인가…….”

“역시 해천회검…… 격이 다르군.”

찰나에 이뤄진 수 번의 공방.

가히 범인들의 눈으로는 쫓기조차 힘든 공방을 눈앞에서 직접 목도하게 된 참가자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걸 듣고 있던 나는 답답하다 못해 속이 꽉 막힌 기분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야! 그렇게 한가하게 감상할 때야? 멍하니 보지 말고 갖고 튀어! 이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그렇지.”

참가자는 여태껏 멍하니 감탄하다가 자신이 뭘 받았는지 떠올린 듯 떨궜던 합격패 주머니를 집어 들며 말했다.

“고맙소! 당 소협!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그러고는 부리나케 일어나 객잔의 뒷문으로 튀어 나갔다.

“자, 잡아!”

“저것만 있으면 상위 10명에 드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러자, 그 뒤를 따라 나가는 참가자 몇.

수십 개의 합격패에 완전히 눈이 돌아간 건지 모용집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바삐 뒤를 쫓기 바빴다.

“…….”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모용집.

아까 전 발광하던 때와 달리, 용케 곱게도 보내줬다.

“뭐야? 안 따라가?”

“됐다. 품위 없게 뛰어다니는 건 아랫것들이 하는 일이다.”

“아까는 잘만 뛰더니만 이제 와 고상한 척하기는.”

“…….”

명백한 사실을 말하자 입을 다물어버리는 모용집.

아무리 싸가지 없다고 한들, 뻔뻔함까지 갖추진 못했는지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

“네놈의 무례함에 잠시 어울려 줬을 뿐이다. 어차피 패는 도로 되찾으면 그만이다.”

“너 진짜 머리 나쁘구나? 어중이떠중이들 말고 다른 놈 손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이곳에서 내 상대가 될 만한 녀석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녀석은 성격상 대기 기간에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테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 팽구용이 말하길 모용집은 2등.

후기지수에서 2번째로 강하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 녀석이 말하는 호적수는 1위.

일전에 용모파기를 볼 때 슬쩍 봤던 흐릿한 인상의 청년을 말하는 걸 거다.

“그러니 네놈부터 혼내주마.”

아까보다 화는 가라앉히고 정제된 투기만 남은 듯한 얼굴.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내 존재를 얕잡아 볼지언정 눈앞의 무인은 얕잡아 보지 않는 모용집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거야.”

이어서 몸에 달린 사출기들의 안전장치를 제거하며 말을 이었다.

“누가 위아래인지도 모르고 혼내준다고 하잖아.”

-피슝.

손목을 굽힘과 동시에 날아가는 암기 하나.

정확히 모용휘에 어깨 죽지를 노리고 날아가자, 자연스레 피한 모용휘는 튕기듯 객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허 참, 나름 네 명예를 생각해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끝내주려 했건만, 기어코 내 자비심마저 외면하게 만드는구나. 따라와라.”

퍽이나 자신 있는지 멀리 향하는 모용집.

싸움이 끝난 뒤 상태에 따라서 기습을 당할 수도 있고, 합공을 당할 수도 있는데 오직 내게 공개 망신을 주기 위해 거리에 나선 걸 보면 실력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자비심은 개뿔. 얻어맞다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지나 마라.”

“…….”

모용집의 수준에 맞춘 도발과 함께 객잔 밖으로 향하자, 입을 꾹 다문 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모용집.

“……우리 집 막내도 그런 도발은 하지 않는다.”

눈높이 도발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뭐야, 저거. 해천회검 아니야?”

“저기 저 옷은…… 백독멸악인가?”

“백독멸악? 그 사천당가의 셋째? 별호는 꽤 들어봤는데 그렇게 강하진 않잖아? 상대가 되긴 해?”

거리에 나오자 예상대로 쏠리는 눈길.

모용집과 나.

둘 다 남들이 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무복을 입었고, 또, 무림에서 자색 무복이 그리 흔한 게 아니었기에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으마. 왜 주머니를 가지지 않고, 넘긴 거냐? 비록, 내 패만 없을 뿐이지, 거기에 든 패는 지금 당장 1위는 물론이고, 순위권 안에 충분히 들 수 있을 만한 양이었다.”

“그거? 애들이 어련히 알아서 모아줄 텐데, 굳이 내 발로 뛰어다닐 필요는 없잖아.”

팽구용의 부탁은 1~3위를 쳐부수는 일.

당연히 그걸 하고 나면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1위는 확정이다.

그러니 굳이 애지중지하며 모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마지막에 수금할 거. 너 놀리는 데 쓰면 더 재밌을 거 같아서 말이야.”

“감히 이 몸을 놀린다라…….”

말끝을 늘인 모용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정말 싸가지가 없구나.”

“무림 최고의 싸가지인 너보다 없겠니. 잡설은 할 만큼 했잖아. 다들 기다리는 거 같은데 시작하자고.”

내가 먼저 기수식을 취하자, 묵묵히 나를 노려보던 모용집은 제자리에서 휘황찬란하게 검을 휘두르며 기수식을 취했다.

“오너라. 내 너에게 품위란 것을 가르쳐 주마.”

기품이 넘침과 동시에 그다지 약점이 보이지 않는 자세.

몇 개 보이는 약점 또한 모용세가 특유의 반격을 유도하는 함정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완성도 높은 기수식을 보니 가슴이 절로 뛰었다.

‘그래, 이게 진짜 후기지수지.’

과거 무협지를 볼 때마다 나오던 기재들.

명문가에서 영약을 때려 부으면서 키움과 동시에 고결한 무공까지 제대로 전수받은 이들.

백현 같은 무지렁이들과는 급이 다른 모습에 이제야 좀 싸움 같은 싸움을 하겠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올랐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간다.’

백현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것 자체가 모용집에 대한 무례.

인성적인 측면에서 하자가 있더라도 무인으로써의 예는 다해주기로 했다.

“그럼 사양 않고 가지.”

-탁.

가볍게 땅을 한 번 박차 단번에 모용집과의 거리를 좁혔다.

-쿵!

이어서 크게 진각을 밟으며 오직 파괴만을 위한.

“혈룡파천권…….”

진심이 가득 담긴 패도적인 용의 주먹을 뻗었다.

“투쇄!”

* * *

객잔들 사이사이에 있는 조그만 골목.

평소에도 인적이 드물고 대기 기간에는 개미 한 마리조차 찾기 힘든 이곳에 갑자기 사람 하나가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

“헤엑…… 헤엑…….”

얼마나 오래 달린 건지 덜덜 떨리는 다리.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는지 연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골목 깊은 곳으로 향했는데, 시간이 꽤 지남에도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벽에 기대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헤엑…… 헤엑…… 흐흐흐…….”

한참을 숨을 몰아쉬다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남자.

누가 이 모습을 본다면 필시 광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그런 것따윈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하하하하하!”

정말 감격스럽다는 듯 품을 뒤져 주머니를 하나 꺼내 끌어안는 남자.

그 주머니는 다름 아닌 당지천이 삼풍객잔의 참가자에게 던져줬던 수십의 합격패가 든 주머니였다.

“나도! 나도 이걸로 본선을! 어머니! 제가 해냈습니다! 제가 꼭 맹에서 한자리 차지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경사가 나자, 어머니부터 찾는 효심이 지극한 무인.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환호를 했는데, 혹시나 자신의 외침을 누가 듣지 않았을까 싶어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금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합격패 주머니를 끌어안았다.

“흐흐흐…….”

장밋빛 미래라도 생각하는지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방긋 웃고 있는 무인.

앞으로 행복한 일만 일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찾았다.”

무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 벽 위.

거기에 흐릿한 인상의 무인이 그를 노려보고 있단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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