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63화 (163/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3화

당지천이 들어오자마자 객잔 내부를 울리는 말소리.

“건방지기 짝에 없군.”

예의 바른 평소의 언사와 달리, 객잔 내의 모두를 깔보는 듯한 당치전의 언사에 객잔 내부에 있던 인원들이 불쾌한 얼굴을 하며 당지천을 내려봤다.

“하 참, 지금 기 싸움 하자는 거요?”

“주제를 모르고 너무 나대는데?”

당지천이 보기엔 어중이떠중이 불과한 이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는 감독관에게서 미리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용봉지회에 독은 사용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독도 못 쓰는 반푼이가 뭐가 그리 자신 있다고 나대는지 모르겠군.”

“뭐, 지금 보니 겨우 독이 문제가 아니었네.”

2층에서 점잖은 척하며 내려다보는 참가자와 잡배처럼 구는 참가자 등.

서로 다른 삼풍객잔의 참가자들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당지천을 찬찬히 뜯어보듯 훑어봤다.

“어중간한 실력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지. 그게 독에 의존하는 놈들이라면 더더욱.”

자신들보다 약간 윗줄의 실력.

양쪽 다 전력을 다한다면 이기기는 요원해 보일 정도로 꽤 끗발이 있어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양쪽 다 전력을 다했을 때의 이야기다.

당지천은 독이라는 가장 큰 무기를 잃었고, 참가자들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생각했다.

“당가 제일의 기재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게 되니 당가 수준도 알 만하군. 쯧쯧.”

점잖은 척하는 참가자가 혀를 차며 자신의 찻잔을 들자, 당지천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턱.

당지천이 자연스레 손을 들자, 갑자기 멈추는 점잖은 척하는 참가자의 손.

“뭣…….”

1층도 아니고, 2층에 있던 자신의 손이 의지와 달리 멈춰 버리자, 심히 당황한 눈치였다.

“설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리 해도?”

당지천이 허공에서 손을 오므리자, 참가자의 손에 들린 찻잔이 부드럽게 날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당지천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는 객잔 안.

찻잔을 뺏긴 당사자는 물론이고, 당지천을 헐뜯기 바쁘던 다른 10명의 인원도 입을 떡 벌린 채 당지천의 손에 들린 찻잔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 애타게들 쳐다보지 마. 돌려줄 테니까.”

당지천은 그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다시금 찻잔을 공중에 띄워 2층으로 올려보냈다.

찻잔의 주인인 점잖은 참가자의 앞이 아닌.

일부러 잡배처럼 굴던 참가자의 앞에 말이다.

-탁.

“젠장…….”

찻잔이 식탁에 놓이는 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능공섭물이 어떤 기예던가.

기의 수발이 자유로워야만 가능한 기예로 하는 일에 비해 내공 소모가 극심한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의 기예다.

더군다나, 차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움직이는 건 보통 솜씨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당지천이 2번씩이나 보여줬으니…….

참가자들로선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용한 일이었다.

“분명 듣기로는 일류 수준이라고 했는데, 능공섭물이 웬 말이야.”

“반푼이는 개뿔…… 암기 하나 던지면 끝날 판이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찻잔을 옮기면서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거야?”

당지천이 자신감은 물론이고 실력으로도 압도적으로 우위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자, 저들끼리 소란스러워지는 참가자들.

처음 의도했던 대로 기선 제압을 하긴커녕, 당지천에게 확실하게 기선 제압을 당한 모습이었다.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가만히라도 있을걸.”

“나, 난 잘못 없으니 이만 들어가 보겠네. 자네들끼리 잘 해결해 보게나.”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는 참가자 몇 명.

이들은 실력에 그리 자신이 있지 않아서 당지천을 노려보지 않았던 이들인데, 웃기게도 그 덕에 당지천에게 찍히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방으로 참가자 한 명이 사라지자, 나머지 인원 몇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나도 이후 일정을 위해 들어가 봐야겠네. 잘들 있겠나.”

이래저래 이유를 대긴 했어도 명백히 자리를 피하기 위한 핑계.

이 상황에 얽히지 않기 위해서 도망치려고 한 건데, 안타깝게도 당지천은 앞서 도망친 참가자와 달리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동작 그만.”

-퉁!

방으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발 바로 앞에 암기들이 박혔다.

“흐읍…….”

잘못하면 발목이 날아갈 뻔한 상황에 얼굴이 오싹해진 참가자는 인내심을 발휘해 가까스로 무심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허나, 뒤이어지는 당지천의 말에 안색이 파리해졌다.

“물어뜯을 듯 노려볼 땐 언제고, 꽁지를 말고 도망가는 거지?”

“…….”

혼란을 틈타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가자.

그걸 잡아낸 당지천과 슬쩍 눈이 마주치자, 그 즉시 눈을 내리깔며 땅바닥을 쳐다봤다.

보통 용봉지회 참가자의 실력은 일류 수준이다.

즉, 지금 여기서 당지천을 도발한 이들 또한, 대개 일류 수준이라는 이야기.

당지천에게는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이었고, 참가자들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찍히지 않게끔 눈을 피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뿐이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비싼 정보를 사보는 건데…….”

참가자들이 당지천을 보고 자신이 있게 굴었던 건 어디까지나 잘못된 정보 덕.

제대로 된 고급 정보를 샀거나, 이전에 서안과 길현에서 활약한 당지천의 소식을 들었다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거다.

“거지 놈들이 예상보다 싸게 부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눈을 내리깐 참가자는 열심히 중얼거리며 정보를 팔았던 누군가를 씹어댔다.

하지만 이들이 알기나 할까.

이들이 대문파 출신 후기지수들의 정보를 산 건 전회가 시작하기도 전.

당지천이 막 서안에 있던 시점이었다.

거기다, 내용이 빼곡히 적힌 다른 후기지수들과 달리, 당가가 봉문에 들고, 정보가 은폐되었던 탓에 당지천에 대한 정보라곤 옛날 정보가 전부였으니…….

비싼 돈을 줬다고 한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리 만무했다.

“뭘 그리 궁시렁대는지 모르겠지만, 칼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지. 함부로 도망쳐서 쓰나?”

마치 호랑이가 먹잇감을 보는 듯한 눈빛.

분명 2층에서 내려다보는 게 참가자 쪽인데, 참가자는 되레 당지천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미안하오. 당 소협. 보는 눈이 없어 결례를 범했소.”

호기롭게 대들기엔 이미 자신과 당지천의 차이를 깨달은 뒤였다.

그래서 지목당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삼풍객잔 내부의 참가자 대다수가 당지천을 두려워하며 일부러 눈을 피했다.

물론, 그런 당지천을 보고도 자신만만하게 구는 이가 없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결례는 무슨. 호랑이가 없는 동산엔 토끼가 선생 노릇 한다 하더니만, 지금이 딱 그 꼴이군.”

“누, 누구?”

누군지 모를 이가 난데없이 끼어들어 당지천을 자극하기에 당황한 참가자가 냉큼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를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청색 무복의 무인이 보였다.

“누구긴 누구겠어. 토끼가 선생 노릇 하는 산의 진짜 주인이지.”

말 끝나기 무섭게 당지천이 있는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청의인.

한순간에 이목을 끈 그가 아주 여유롭게 1층에 내려와 발을 딛자, 객잔 내 사람들은 그제야 그게 누군지 떠올리고 그의 이름 외쳤다.

“차, 창호일검 백현!”

“뭐?! 청성파의 백현이라고?!”

그는 바로 구파일방에 드는 청성파의 최고 기재.

창호일검 백현이었다.

“오랜만이군. 당지천.”

“…….”

“왜, 예상치 못한 적수를 다시 만나니 몸이 굳어버렸나?”

“…….”

백현이 말을 건네자, 입을 다문 채 백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당지천.

분명 자신은 이런 놈을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와서 아는 척을 하길래 아는 사이인가 싶어서 조금 오래 쳐다봤다.

허나,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누군지 모르겠어서 백현에게 물었다.

“누구지?”

무시하는 것이 아닌, 진짜로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치.

그걸 본 백현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고 생각해 당지천을 보고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라 잊었나 보지?”

네가 모를 리 없다는 명백한 도발.

하지만 그런 백현의 물음에도 당지천이 진짜 모르겠다는 눈으로 백현을 쳐다보자, 백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청성파의 백현이다. 8년 전, 네 명예를 더럽히면서까지 이겼던 그 무인이란 말이다.”

“명예를 더렵혔다라…….”

백현에 말에 뭔가 생각났는지 당지천은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그때 그 덜떨어진 녀석 말인가? 그 삼 초도 못 버티고 쓰러진 녀석 말이지?”

“삼 초라니! 이게 다 네놈이 반칙을 써서 그런 게 아니더냐!”

“반칙 같은 소리 하긴. 그냥 약해서 진 거 가지고 핑계 대지 마라.”

“뭬야?”

백현이 잠시 흥분한 듯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금방 화를 가라앉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는 비장한 얼굴로 당지천을 쳐다봤다.

“언젠가 네놈을 볼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 오늘이었을 줄이야…… 원시천존님께서 날 도우셨구나.”

-스릉.

이어서 검을 빼 든 백현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당지천을 보며 말했다.

“8년 전에 내가 겪었던 수모. 되갚아주마.”

“……원시천존님이 널 도우셨다고?”

다짜고짜 훅 들어오는 결투 신청에 잠시 백현을 지긋이 쳐다본 당지천.

원래라면 쓸데없는 싸움은 지양하는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하던 때.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품에서 비수를 몇 개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땐 밉보여서 혼내주라고 보내주신 거 같은데?”

“뭐 이 호로 자식아?”

반칙을 써서 이긴 거면서 자신을 아래로 보는 당지천의 행태에 열 받은 백현이 냉큼 검을 휘두르려던 그때.

“멈춰. 지금까지의 애교는 봐줬지만, 거기서 더 한다면 둘 다 실격 처리하마.”

갑자기 주방에서 식칼을 든 감독관이 밖으로 나와 둘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

여태껏 어디 숨어 있다가 왜 이 중요한 순간에 막는지 이해가 안 간 백현이 재수 없는 얼굴로 감독관을 쳐다보자, 감독관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아, 이놈 싸가지 봐라. 어따 눈을 부라려? 이래서 요즘 애들이 안 된다니까. 선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그렇다고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지…….”

백문이 쏘아보듯 자신을 쳐다보자, 감독관은 들으라는 듯 면전에 대고 험담을 늘어놨다.

그러다가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당지천을 한번 슬쩍 보더니 갑자기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을 줄였다.

“어쨌든, 한나절만 기다리면 누가 말리긴커녕,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테니까 그때 가서 죽든지 말든지 해라. 훠이, 훠이.”

감독관이 이만 가보라는 듯 백현에서 손짓하자, 백현이 심히 불쾌한 얼굴로 감독관을 쳐다봤다.

“…….”

하지만 감독관을 향한 적대 행위도 실격 사유였기에 입술을 한 번 짓씹더니 밥맛만 버렸다는 듯 검을 집어넣으며 당지천을 보고 경고했다.

“쟁탈전이 시작되면 네놈부터 찾아가겠다. 그러니 한나절의 여유를 만끽해라.”

무슨 목을 따러 가는 것도 아닌데 백현이 악역이 할 법한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그러자, 당지천은 차마 참지 못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무섭다고 어디 도망가지 말고 꼭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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