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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61화 (161/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1화

남궁전유가 있는 천무보에서 나와 겨우 한숨을 돌리자, 그제야 식겁함은 사라지고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미친 노인네. 손님을 진심으로 죽이려고 드는 게 말이 돼? 대체 뭐가 무섭다고 이래?”

까마득한 연배 차는 물론이고, 일단은 객이다.

내가 무슨 혈교도도 아닌데 앞마당에서 죽이려고 든단 말인가.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가능은 하겠구나. 음, 가능은 하겠어.”

화가 나긴 하지만, 남궁세가의 저력과 현 당가의 상황을 고려하면 조금 손해를 보는 선에서 정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긴 했다.

“그래도 나를 죽이는 데 그만한 손해를 볼 이유는 없을 텐데 왜 이러는 거야. 진짜.”

“태천검이 보기엔 그 정도 손해로 끝났다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뭐?”

도대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그 정도 손해가 이득이란 말인가?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일염이를 쳐다보자, 일염이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주며 말했다.

“당가의 세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태천검과 비슷한 연배의 인원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을 겁니다. 당가가 얼마나 강했고, 또, 얼마나 위협적인 곳이었는지 말입니다.”

“그래?”

일염이에게 손수건을 건네받아 얼굴을 닦아내며 말하자, 일염이는 처음 듣냐며 반문했다.

“천독림에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자기 문파와 관련된 거면 좀 과장됐다고 생각해서.”

자고로 사람이란 자신의 잘못은 미화하고, 잘한 일은 부풀리는 법.

당연히 무인들 또한 자기가 몸 담그고 있는 문파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거라 생각해 조금 걸러 들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럼 강호를 호령하다 못해 존재만으로 벌벌 떨게 했다는 게 사실이란 말이야?”

“맞습니다. 비록, 과거지만 말이죠.”

당가가 떵떵거리며 다녔단 이야기.

하지만 지금 와선 별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으면 뭐 하냐. 지금은 너 없으면 죽을 뻔했는데 말이야.”

“그 시절이 없었으면 죽을 뻔하지도 않았겠죠.”

“……뭐, 그건 당연한 거고. 근데 일염아, 문주인 거 밝힌 거는 그렇다 쳐도 명패는 어디서 난 거야? 여기 손수건.”

“아까 이야기했듯이 스승님께서 주신 겁니다.”

다 쓴 손수건을 건네주자, 품에 챙겨 넣은 일염이는 아까 쓰여준 삿갓까지 가져가 쓰고는 말을 이었다.

“남궁전유는 과거에 투룡이라는 별호를 가졌었다고 합니다만, 사실 투귀라는 별호가 더 어울리는 존재였답니다.”

“투귀?”

“예, 동년배는 물론이고, 누구라도 보이기만 하면 싸움을 걸고, 조금 이름난 무인을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 무패를 기록하고 있었죠.”

“……가끔 그런 사람들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태천검일 줄이야.”

“당연하게도 제 스승님께도 달려들었고, 스승님이 ‘난 생사결 이외에 싸우지 않는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생사결을 벌였고,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명패를 가져갔다는 이야기인 거지?”

“정확합니다.”

“와…….”

말만 들어도 감탄이 나오는 남궁전유의 막장력.

앞뒤 안 가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역대 무정검들 중 이립(30세)에 화경에 이른 사람이 가장 늦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뭔 깡으로 그랬대?”

“투룡이 투룡인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워낙 막 나가는 성격이라 가주직엔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주 자리를 꿰차길래 일부러 챙겨두신 겁니다.”

“하하하!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단 말이지?”

일염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튀어나오는 팽구용의 웃음소리.

천무보에서 언제 나왔는지 바로 뒤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언제 나오셨습니까?”

“너 나가고 얼마 안 가서 따라 나왔다. 놀리다가 쫓겨났거든.”

“놀린다니……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나시면 어쩌시려고…….”

“아무리 저 노괴가 앞뒤 안 가린다고 하지만, 옛날만큼은 아니다. 내가 순순히 당해주지 않기도 하나, 팽가와 당가는 입장이 다르잖느냐.”

“맞긴 하죠.”

팽구용의 말에 절로 씁쓸해지는 입가.

가뜩이나 약해진 세가 반으로 줄어버린 당가와 달리, 멀쩡하기만 한 팽가.

남궁세가의 저력이 약하지 않은 만큼 두 가문이 싸운다면 남궁세가 쪽이 이기긴 할 거다.

하나, 남궁세가도 궤멸적인 피해 입을 게 분명하기에 정말 어지간한 일로는 팽구용을 건드리지도 않을 거다.

“애초에 단순히 깝죽대는 거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사람…… 이긴 하다. 미안하구나.”

팽구용이 잠시 내 처지를 생각했는지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당가에 깊은 원한이라도 가지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죠. 물론, 저로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입니다.”

남궁전유는 이해 못 해도 팽구용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자, 고개를 끄덕인 팽구용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조금 기쁜 감이 없지 않아 있구나.”

“예?”

아니, 내가 죽을 뻔했는데, 기쁜 감이 없지 않아 있다니.

이 아저씨도 같이 미쳤나, 왜 이래?

“내가 오해할 만한 말을 했구나.”

힐난이 담긴 눈초리로 팽구용을 바라보자, 팽구용은 손사래 치며 변명했다.

“그게, 네가 저 노괴가 판단하길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판단한 게 아니냐.”

“그렇긴 하죠.”

“그래서 그런 거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진 않구나 싶어서…… 잠깐, 공자가 오는구나.”

팽구용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자, 멀리서 부리나케 뛰어오는 백의인 한 명.

얼마나 급한지 경공술을 극한으로 펼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지천아, 어디 다친 데 없느냐? 아버지께서 무슨 해코지라도 하진 않으셨느냐? 미안하다. 손님이 여간 몰려드는 게 아니라 네가 왔다는 이야기를 늦게 들었구나. 내가 먼저 나와서 같이 들어갔어야 했거늘…….”

오자마자 이 잡듯이 온몸을 샅샅이 훑는 남궁공자.

어디 외상은 없는지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이어서 진맥까지 하는 게 남궁전유의 괴팍한 성격은 남궁공자도 익히 아는 눈치였다.

“전 멀쩡합니다. 일단, 진정 좀 하시고 이야기하시죠.”

남궁전유의 일이 심히 불쾌하긴 했으나, 남궁공자의 잘못은 아닌 법.

난리법석을 떠는 남궁공자를 진정시키고 인사부터 하려 했건만, 팽구용이 냅다 기름을 들이부었다.

“멀쩡하긴 멀쩡해. 저 노괴가 죽이려 들긴 했는데, 알고 보니 호위가 목줄을 꽉 쥐고 있더라고. 아무리 막 나간다고 해도 명예만큼은 지키는 사람이니 이젠 걱정할 것 없어.”

“뭐?! 죽이려 들었다고?!”

남궁전유가 죽이려 들었다고 하자, 뒷목을 부여잡는 남궁공자.

가문의 태상 가주가 손님을 죽이려 했다고 하면, 농담으로 들을 만도 하건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로 믿는 듯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마치 자기가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남궁공자.

정말 과할 정도로 미안함이 뚝뚝 떨어지게 사과를 해대자, 오히려 이쪽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생각해 보니 죽을 뻔했는데 이게 맞는 건가?’

생각보다 이야기가 쉽게 끝나서 그런지 감흥이 덜하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긴 했다.

그걸 증명하듯 남궁공자의 눈에는 남궁전유에 대한 분노가 점점 차오를 정도였다.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일은 보상해 주마.”

이글이글 타오르는 남궁공자의 눈.

내 걱정도 내 걱정이지만, 안하무인한 남궁전유의 태도에 심히 분노한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보상은 기대해도 될 법도 했다.

“그러시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원래 한두 번 거절하는 게 서로 간의 예의고, 미덕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남궁공자가 큰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길래 나는 아예 요구 사항까지 더했다.

“이왕이면 짭짤하게 좀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설마하니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지 잠시 당황한 남궁공자.

하나, 내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게 전해졌는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섭섭하지 않을 만큼 챙겨줄 테니 나만 믿거라.”

가슴을 퉁퉁 치며 말하는 남궁공자.

믿음직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날 쳐다보는 두 눈에 여러 감정이 얽혀 있는 걸 보면 한동안 이 상태가 유지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팽구용을 보며 화두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참여하기로 한 용봉지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남궁세가에 도착해서 알려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안휘로 오는 길.

그간 팽구용에게 용봉지회에 대해서 묻자, 지금은 신경 쓸 거 없고, 일정에 대해선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했었다.

그래서 팽구용에게 물었는데, 갑자기 남궁공자가 끼어들었다.

“용봉지회? 그건 왜 묻는 거냐?”

“이번에 팽 대협께서 제게 용봉지회에 나가달라는 청을 하셨습니다.”

“용봉지회를?”

“예.”

“네가?”

“예.”

“하하…….”

남궁공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재밌음 반, 그리고 허탈함이 반 정도 깃든 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거진 어른이 어린아이 손목 비틀러 가는 게 아니더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예? 전 독도 금지당했습니다만?”

“아무렴. 독도 쓴다고 했으면 내가 만류했을 거다.”

독을 안 쓰는 게 당연하다는 남궁공자.

아무리 후기지수 애들한테 기대가 떨어져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강한 수준은 아닌 거 같은데, 가지고 놀 것처럼 이야기했다.

“일단 이번 용봉지회는 전회와 예선, 그리고 본선으로 나뉜다만, 전회는 솔직히 의미 없다. 최대한 많은 이들의 참가를 장려한 탓에 단순한 바위 부수기나 경공술의 경지를 보거나 온통 그런 것뿐인지라 참가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용봉지회에 참가하려면 가야 하지 않습니까?”

“적당한 애들은 그냥 문파나 가문에서 보증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가문에서 손꼽히는 기재 중에 그거 못하는 애들은 없고, 무엇보다 괜히 참가자들 기만 죽이니까 말이다.”

일전에 팽구용이 말하길 용봉지회를 여는 목적 중에 무림인들의 포섭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 버리면 전의를 상실하고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 그걸 염려한 듯했다.

“그러니 넌 갈 필요 없다.”

“그렇군요.”

“그거보다 예선이다.”

“아니지, 그 전에 있는 대기 기간이 먼저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팽구용의 말을 정정하는 남궁공자.

뭐가 그렇게도 신났는지 흥이 가득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전회를 통과한 인원들을 합격패와 함께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머물 객잔을 배정받게 된다. 그리고 다음 예선전까지 3일간 대기를 하는데, 여기서도 시험이 이뤄진다.”

“어떤 내용의 시험인가요?”

“합격패를 지키는 것.”

“간단하네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면 대기 기간 동안 지키기만 해도 좋지만, 합격패를 많이 모아온 상위 열 명에겐 예선전에서 특혜가 부여되니까 말이다.”

“특혜요?”

“그래, 상위 열 명은 예선전에선 단 한 번만 싸워 이겨도 본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난장판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예선전이 얼마나 많은 시합을 거쳐 올라갈지 몰라도 그간 체력 안배를 할 수 있으니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합격패를 많이 가져가는 게 유리했다.

자연히 이름 있는 후기지수들은 합격패를 모으려고 혈안이 될 거다.

즉, 팽구용의 부탁을 이뤄주기 좋은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자, 그럼 여기서 부탁이다.”

아니나 다를까.

팽구용은 나를 돌아보며 본론을 꺼냈다.

“대기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

잠시 말을 멈춘 팽구용은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지 비릿한 미소를 띄운 채 말을 이었다.

“상위 3명의 패를 전부 빼앗아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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