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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60화 (160/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60화

잘 벼린 칼날 위를 걷듯 날이 선 분위기.

그 속에서 천일염은 무표정한 눈으로 남궁전유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나? 진실로?”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모르는 척하냐며 천일염이 남궁전유를 지긋이 쳐다봤다.

“모른다.”

그러나 고개를 젓는 남궁전유.

처음 당지천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니, 그보다 더 이전에 천일염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범상치 않은 존재인 건 알고 있었다.

단지, 본인의 실력이면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막을 수 있고,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깽판을 치진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순순히 들여보낸 건데…….

“내가 너 같은 걸 알 턱이 없잖느냐.”

이렇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지는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남궁전유는 불쾌함만을 내비칠 뿐, 전혀 모른다는 얼굴로 천일염에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내가 묻지 않았더냐? 네놈 12대 무정검이랑 대체 무슨 사이냐고.”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를 듯한 남궁전유의 태도.

사실 평소라면 진작에 휘둘렀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하필이면 천일염이 던진 게 자신의 명패였기에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천일염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다는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보에 오류가 있었군. 뇌의가 입이 무겁다고 한들, 태천검과는 작은 비밀조차 안 만들 줄 알았거늘. 말하지 않았나 보군.”

“뭬야?”

아무리 남궁전유가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군다고 한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부자지간에 비밀이 있다고 들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간을 좁히며 천일염을 노려봤는데, 천일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지천의 용태부터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대뜸 운을 뗐다.

“13대 신화문주이자, 13대 무정검 십칠호.”

“뭣?”

천일염이 나지막이 정체를 밝히자, 남궁전유와 팽구용의 두 눈은 반신반의하듯 화등잔만 해졌다.

그러자, 천일염은 쐐기를 박듯이 한마디 더 보탰다.

“12대 무정검께선 내 스승님 되신다.”

“……뭐?”

“뭐어어어?”

벙쪄서 나지막이 되묻는 남궁전유와 반대로 경악하는 팽구용.

남궁전유는 평소의 신화문주.

육십구호를 문주로 알고 있었기에 반문했고, 팽구용은 당지천이 신화문과 어떤 관계인지 잘 알기에 경악을 했다.

“그거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야?”

난데없이 정체를 밝히자 당황한 건 당지천도 매한가지.

당지천이 염려스럽게 바라보자, 천일염은 옅은 미소를 머금더니 당지천에게 답했다.

“필요하다면. 뭐든 할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하긴 했다만, 별 대수로운 건 아닌지라 상관없습니다. 뭐, 무슨 일 생기면 부문주가 알아서 할 겁니다.”

당지천이 걱정스럽게 쳐다봄에도 천일염이 정말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당지천은 잠시 천일염을 쳐다보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에휴, 그러다 부문주가 뛰쳐나가도 난 모른다.”

전적으로 천일염을 신뢰하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

방금까지 생명을 위협받던 상황인데, 대뜸 주저앉아 버리니 남궁전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당지천을 쳐다봤다.

반면에 팽구용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허 참, 듣자 하니 10년도 넘게 호위로 있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문주라고? 정말 까면 깔수록 괴담만 나오는 문파군. 도대체 뭐 하는 문파야?”

“그게 무슨 개소리냐? 13대 무정검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저놈이 무정검이라니?”

당지천이 그러는 것까지는 허장성세라고 칠 수 있었으나, 거슬리기 짝에 없는 팽구용의 반응.

아무리 팽구용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해도 저 순수한 감탄이 연기라고 볼 순 없었기에 결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뭐긴 뭐겠소. 말 그대로인 거지.”

“아니, 근거가 뭐더냐? 저 녀석이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믿는 건 이유가 있을 터, 네놈이 한 번…….”

남궁전유가 황당하다는 듯 팽구용을 보며 설명을 요구하는 상황.

괜히 말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은 천일염은 단번에 말을 자르며 한마디 했다.

“부정하지 마라. 백전일패의 투룡.”

“뭐어어? 백전일패의 투룡?”

-하하하하!

천일염의 말에 응접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 호탕하게 웃는 팽구용.

어지간히도 웃긴지 배를 잡고 한참을 웃어대다가 말을 이었다.

“하하하! 거 아주 재밌는 별호를 가지고 계셨잖소! 백전일패의 투룡? 저기 애들이 보는 서책에서 나올 법한 단어 아니오?”

팽구용이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남궁전유에게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비웃자, 남궁전유의 얼굴이 점점 벌게지더니 이내 검을 휘둘렀다.

“닥쳐라!”

“으힉!”

갑자기 날아온 날카로운 검에 팽구용은 당황한 채 몸을 던지듯 피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진 않았다.

“후…….”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얄미운 팽구용 때문에 더욱이 화가 나는 상황.

천일염이 언급한 백전일패의 투룡이란 말은 남궁전유에게 가히 역린과도 말이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일염이 13대 무정검이라고 말이다.

“네놈이 13대 무정검인 건 이해했다. 그런데 왜 나서는 거지? 남궁세가엔 목적이 있어서 들어온 거 아니었나?”

하지만 정체를 알았다고 해서 그 의도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되묻자, 천일염은 선문답하듯 말했다.

“그거 아나? 신화문은 태초부터 정보단체가 아니라 오직 한 명. 단 한 명을 호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문파였다. 그리고 그를 이루기 위해선 멸문할 각오도 서슴지 않는 그런 문파다.”

“……흥미가 가는 이야기이긴 하나, 그게 어쨌다는 거냐.”

갑자기 이야기가 산으로 가자, 뭐 어쩌라는 거냐며 천일염을 쳐다보는 남궁전유.

신화문의 이야기가 다소 흥미로운 주제이긴 했으나, 엄연히 지금 이야기와 관련 없다고 생각했기에 눈살을 찌푸리자, 천일염이 말했다.

“관련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천일염은 말을 마치자마자 남궁전유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삿갓을 벗어 앉아서 쉬고 있는 당지천의 머리에 씌워주며 말했다.

“현재 신화문의 호위 대상이 지천이니까 말이다.”

“…….”

천일염에 말에 황당함을 금치 못해 입을 다문 남궁전유.

예상외의 일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벌어지자, 생각할 게 많아진 탓에 조용히 천일염을 노려보고 있자, 천일염은 남궁전유에게 경고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 말아라.”

잠시 남궁전유를 흘겨본 천일염은 당지천을 보며 공손히 말했다.

“가시죠. 공자님. 인원들이 뇌의에게 안내할 겁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떨어지듯 나타나는 암혈대 인원들.

마교를 극히 싫어하는 남궁전유의 앞에 제 발로 나타나는 건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당지천의 주위에 빙 둘러섰다.

“그래, 그럼 가보겠습니다.”

암혈대 인원들까지 나온 걸 본 당지천이 남궁전유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떠남에도 남궁전유는 멍하니 당지천을 쳐다봤다.

그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얼얼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

“거, 얼굴 좀 펴소. 애 보기 부끄럽게 어른이 그래도 되오?”

그런 남궁전유를 보며 팽구용이 실실 쪼개자, 남궁전유는 다시금 검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죽여주랴?”

“으힉! 이러다 백전일패의 투룡에게 죽겠네!”

“저, 저…….”

행여나 남궁전유가 따라올세라 부리나케 도망치는 팽구용.

그간 당한 게 있어서 그런지 까불 수 있을 때 최대한으로 까부는 눈치였지만, 남궁전유는 경황이 없는 탓에 팽구용의 행동을 두고 보고만 있었다.

“후…….”

그렇게 당지천과 팽구용.

천일염이 떠난 응접실에 홀로 남은 남궁전유는 조심히 바닥에 떨어진 명패를 주워 들더니 이내 멍하니 손에 들린 명패를 쳐다봤다.

[투룡 남궁전유]

이제는 기억하는 이조차 많지 않은 과거의 별호.

누가 됐든 엇비슷해 보이면 싸움부터 걸고 봤던 애착 가득한 소싯적의 별호였다.

“썩을…… 내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리움이 반.

그리고 회한이 반쯤 서린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궁전유.

작금의 상황을 믿기 어려운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엄지로 명패를 쓰다듬었다.

“빌어먹을 마교 놈…… 그때 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것도 그거지만 대체 왜 예상치도 못한 놈이 들고 오는 거야?”

과거 남궁전유가 현재 신화문주 대리를 맡은 육십구호에게 명패의 존재에 대해 에둘러 물었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생각이 있으면 제자에게 물려줬을 거지만, 신화문이 좀 특이한 곳이었기에 반신반의하며 물었는데 웬걸, 모른다고 하는 게 아닌가?

육십구호는 명패는커녕, 자신이 12대 무정검과 싸운 것도 몰라서 남궁전유는 13대 무정검에게는 명패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게 튀어나왔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던 거다.

“거기다, 당지천을 건드릴 거면 전면전을 각오하라니 이게 뭔…….”

심지어 발본색원하려던 와중에 신화문과 싸울 게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어이가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그 당가가 신화문이랑 손을 잡았다라…….”

다른 이들의 평가는 몰라도 남궁전유의 안에서 당가는 요주의 가문.

무림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당가가 정보단체인 신화문과 한 몸이 되었으니 남궁전유가 보기엔 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최악이군. 하아.”

한숨을 푹 쉰 남궁전유는 상황이 왜 이렇게 치닫게 됐는지, 또 대비할 시간은 없었는지 복기하다가 이내 남궁공자를 떠올리곤 이를 갈았다.

“괘씸한 놈…… 아무리 출가했다고 한들, 남궁세가의 일원이면서 이런 걸 숨겨?”

출가했다고는 하나, 밥 먹듯이 당가에 다녀오던 남궁공자다.

다른 이도 아니고, 당가주와 가장 친한 사이인 만큼 이런 정보는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이런 걸 숨겼으니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화나는 건 화나는 거지만, 일단 대책을 마련하는 게 먼저다. 원로들을 소집해? 아니, 그러기엔 혼란만 가중될 거다. 애초에 마땅한 대책도 안 나올 테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며 머리를 암만 굴려도 마땅히 나오지 않는 수.

이래도 막히고.

저래도 막히니 남궁전유의 생각은 점점 단순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발본색원이 제일인데…….’

바로 무식하게 썰어버리는 것.

하지만 아무리 자유분방한 남궁전유라고 한들, 자신의 은원까지 무시해 가며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았기에 발본색원은 머리에서 지웠다.

‘그렇다면 남은 건 포용인데…… 아니, 그래도 당가는 아니다.’

갈팡질팡하는 남궁전유의 마음.

최선의 수를 생각해 냈음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터라 일단 판단을 보류하고,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게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이것 좀 독당에 가져가서 분석하라고 해. 아니, 직접 사람을 불러와라.”

“이건…….”

녹아내린 응접실의 바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하인.

바닥을 녹이는 독을 본 게 처음은 아니지만, 그걸 남궁전유 앞에서 썼다는 사실에 심히 놀란 상태였다.

“어, 언제까지 분석해 오라 하면 되겠습니까.”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 전에 가져오지 못하면 내가 직접 가서 뒤집어엎을 테니 그렇게 알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지천 그 녀석에 대한 정보 좀 모아봐.”

“방금 들어왔던 손님분 정보를 말입니까? 얼마 전에도 받아보셨잖습니까?”

“그래, 그러긴 했지. 하지만 꼭 필요해졌다.”

“하면 고급 정보로 다시 사 옵니까?”

“금액에 구애받지 말고 최대한 사 와. 그리고 신화문의 정보는…… 아니다. 거기 거도 사 와. 내게 어떤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아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남궁전유의 말이 끝나자, 부리나케 뛰어나가려던 하인은 문득 걸음을 멈춰 서서 남궁전유에게 물었다.

“저, 할아버지.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당가의 손님을 어쩌실 예정입니까?”

설마하니 죽이겠냐는 듯 묻는 손주.

그런 손주에게 남궁전유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쩌긴 두고 봐야지.”

“예?”

“아무리 그래도 당가랑 엮이는 건 좀 아니거든.”

“예에에?”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남궁전유의 말에 손주가 머리를 갸웃거리자, 녹아내린 바닥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남궁전유는 퍽이나 재밌다는 듯 말했다.

“대충 그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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