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59화
응접실의 끝.
아니, 응접실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텅 빈 방 끝에 홀로 고고히 앉아 있는 남궁전유는 태평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당지천을 불렀다.
“뭐 하느냐? 얼른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오라는 말.
그러나 당지천은 응접실 내부에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중압감을 느꼈다.
팽가주에게 느꼈던 기세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강한 기세로 마치 직접 머리를 붙잡고 찍어 누르는 듯한 느낌에 당지천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가 가주란 족속들은 남 시험하는 게 기본인가?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러셨던 거 같은데?’
눈만 마주치면 기세를 뿜어내는 상황.
그래도 팽가주는 정도를 알았는데, 눈앞의 남궁전유는 아예 무릎 꿇릴 생각인지 상상 이상의 강도로 짓눌렀기에 당지천은 짜증이 솟구쳤다.
“후우…….”
물론, 짜증이 나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나름 강해졌다고 자신했는데, 버티면 버틸수록 덜덜 떨리는 몸.
비슷한 또래 중에서는 나름 열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 자부했지만, 확실히 천하제일인인 남궁전유와 당지천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 점이 당지천에게 있어서 짜증을 솟구치게 만드는 요소였다.
-삐익!
하지만 그런 당지천 달리, 태연하기 짝에 없는 삐익이.
여유롭다 못해 정신 차리라며 날개로 당지천의 볼을 때려대자, 효험이 있는지 당지천은 허탈하게 웃고는 정신을 차렸다.
‘이거 잘만 하면 이산화탄소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버리겠어.’
애완조도 버티는데 주인이 무너질 수 없는 법.
속으로 실없는 농담을 하며 버티고 있자, 남궁전유는 지긋이 당지천을 보다가 이내 흥미롭다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구나.”
남궁전유의 입에 호기심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당지천은 가주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막무가내로 시험하는 게 단순히 괴팍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이러는 가장 큰 이유는 당지천에 대한 기대 때문.
그간 남궁공자와 팽구용에게 귀가 닳도록 들은 게 있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물론, 괴팍한 성격 탓도 있었지만 말이다.
“뭐, 당연한 거지. 공자 녀석은 물론이고, 저 녀석도 입이 닳도록 칭찬했으니 이 정도도 못 버텼으면 실망이 컸을 거다.”
남궁전유가 허공에 손짓하자, 손에 이끌려 날아가는 바닥의 먼지들.
처음에 봤을 땐, 그저 청소가 덜 된 바닥으로 보였지만, 먼지가 날아가고 나니 가로선이 여럿 그려진 바닥이 드러났다.
위로 갈수록 수가 적어지는 가로선이 가득한 바닥이 말이다.
“이게 뭡니까?”
“보면 알잖느냐. 내가 여태껏 시험해 본 녀석들이 주저앉은 위치다.”
남궁전유가 이미 눈치챘으면서 뭘 되묻느냐며 면박을 주길래 바닥을 한 번 더 찬찬히 살펴보는 당지천.
가로선들의 대부분이 지금 밟고 있는 곳.
자신의 발 바로 밑에 있고, 그 위로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맨 위에 있는 선은 오직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상했어도 이렇게 환대받으면 누구나 한 번쯤 의심해 볼 겁니다.”
당지천이 짜증을 내듯 선을 짓누르며 발을 비비자, 남궁전유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마음에 들지 않느냐?”
여태껏 남궁전유가 이 시험을 강요했을 때, 불만을 표했던 건 대부분 제 앞가림 못 하는 멍청한 녀석이거나 승부욕이 강한 혈기왕성한 무림인들이었다.
그러나 그간 들은 바로는 당지천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가문의 객을 대하는데 무례하긴 하나, 무림의 법도엔 어긋나지 않잖습니까.”
“하하하! 거, 말 참 재밌게 하는구나.”
당지천의 말에 광오한 웃음을 터뜨리는 남궁전유.
언뜻 보면 강자존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객을 대하는데 무례하다고 돌려 까는 당지천의 언사가 썩 재밌었다.
“허나, 무례한 건 네 녀석도 매한가지 아니냐. 아니, 내가 보기엔 네놈이 더 무례했다. 그러니…….”
앉아 있던 남궁전유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입가의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특별히 너에겐 제대로 하마.”
점점 무심하게 변해가는 남궁전유의 얼굴.
입가의 걸린 미소가 지워지면 지워질수록 아까완 차원이 다른 기세가 흘러나왔다.
“쿨럭…….”
당지천이 몸을 덜덜 떨어가며 버틴 것조차 장난이었다는 듯 당지천을 짓이기는 기운.
-삐익! 삐익!
남궁전유와의 수준 차이를 증명하듯 당지천의 입가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삐익이는 탄광 안의 카나리아처럼 연신 울어댔다.
한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당지천은 절대 무릎 꿇지 않았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니까 나서지 마.”
사실 당지천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놀랐을 뿐, 충분히 버틸만 했다.
그렇기에 나서려는 천일염을 만류한 거다.
허나, 잠자코 지켜보던 팽구용은 도를 넘었다 생각했는지 당지천의 말에도 당지천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긴 뭐가 괜찮냐! 아니! 노망났다, 노망났다 하더니 드디어 미치셨소? 적당히 할 것이지 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죽이려 드소? 애 죽는 거 안 보이오!”
참으로 대수롭지 않게 막아서는 팽구용.
허나, 팽구용조차 여파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목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감추지 못했다.
-삐이익…….
그건 연신 울어대던 삐익이도 마찬가지로 양 날개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그야말로 격의 차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짓누른 남궁전유는 노기가 깃든 얼굴 그대로 천천히 검집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꼽더냐? 꼬우면 덤비거라.”
사파의 고수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남궁전유.
도무지 말이 통할 것같이 보이지 않자, 당지천은 팽구용에게 말했다.
“팽 대협. 전 괜찮으니까 물러나 주십시오.”
“괜찮겠느냐?”
“이게 다 경험 아니겠습니까. 힘들어지면 그때 도와주시죠.”
팽구용이 비키자, 한층 강해지는 강도.
그래도 아까처럼 대비도 못 한 채 갑자기 당한 건 아니었기에 당지천은 그럭저럭 버텼다.
“호오, 패기가 아주 없진 않구나.”
당지천이 별 망설임 없이 팽구용을 물리자, 흥미롭게 쳐다보는 남궁전유.
아무리 제 나이대 또래들과 비교해선 강한 당지천이지만, 남궁전유는 당지천의 수준에 맞춰서 짓누르고 있었다.
당연히 당지천도 그걸 느꼈을 테니 쉽지 않은 걸 알 텐데도, 미련 없이 팽구용을 치운 게 크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 네가 만약 여기까지 온다면 내 친히 작은 선물을 주도록 하마.”
검지를 치켜세운 채 가까운 바닥에 대고 긋는 시늉을 하는 남궁전유.
그러자,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손길을 따라 바닥에 선이 하나 그였다.
“물론, 그 전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하하.”
범인들은 따라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기예를 보인 남궁전유는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후…….”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 당지천은 천천히 발에 힘을 줘 걷기 시작했다.
“흡…….”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남궁전유의 기세.
당지천은 천장이 내려앉으며 짓누르는 듯한 착각에 휩싸일 정도로 강하게 찍어 눌렸지만, 양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쥔 채 앞으로 나아갔다.
‘천독림에서 했던 수련에 비하면 이건 별것도 아니야.’
고통스럽긴 했으나, 딱 그 정도.
천독림 내의 독호인 궁래심접호에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하면 별거 아니었기에 이를 악무는 선에서 나아갈 수 있었다.
‘거기다, 이런 압박 속에서 나아가는 법이라면 이미 배웠어.’
독을 쓰기 위해서 거리를 줄이는 건 기초 중의 기초.
당가주와 천독림에서 했던 수련에는 접근하기 힘든 적에게 다가가는 법도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전유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쉽게 앞으로 나아간 당지천은 순식간에 남궁전유가 그은 선에 도착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리 기재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앞까지 도달할 줄은 몰랐기에 남궁전유는 다소 놀랐다.
“아직입니다.”
허나, 당지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먼지가 걷히지 않은.
남궁전유가 그은 선 너머, 가장 앞에 발자국을 새기고는 이내 포권지례를 취했다.
“사천당가의 당지천이라고 합니다. 천하제일인을 두 눈으로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위태위태.
당장 무너질 듯 서 있으면서도 끝끝내 무릎 꿇지는 않는 당지천.
지긋이 그 모습을 보던 남궁전유는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되물었다.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만, 다소 억울한 상황일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영문을 모를 수도 있을 거고. 그런데 어째서 무릎 꿇지 않는 게냐?”
“제가 당가의 소가주이기 이전에 유일한 출타인입니다. 그 말인즉슨, 제가 당가의 얼굴이며, 그와 동시에 당가의 대표자라는 의미입니다.”
아직도 버티기 힘든지 덜덜 떨리는 당지천의 몸.
허나, 당지천은 그와 반대로 흔들림 없는 총기가 가득한 눈으로 남궁전유를 보며 답했다.
“한데, 어찌 다른 가문에 가 쉬이 무릎을 꿇겠습니까.”
당지천은 품에서 플루오린화수소를 꺼내 바닥에 흩뿌렸다.
-치이이익.
당연하게도 녹아내리는 바닥.
일순간이나마 떨림을 제어했는지 남궁전유가 그렸던 선 위로.
정확히 일직선으로 흩뿌려져 기존의 선을 지워 버렸다.
“그러니 이게 제 대답입니다.”
여기에 내가 꿇을 곳은 없다는 당지천의 의지 표명.
너무나도 당차고 패기 넘치는 대답에 남궁전유의 얼굴엔 감탄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왜 하필 이런 귀재가 우리 가문이 아닌 곳에. 그것도 하필이면 당가에 태어나다니…….’
언제나 가문에 손님이 오면 똑같은 무례를 반복하는 남궁전유.
사람들은 단순히 괴팍한 성격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그런 오해를 방패 삼아 인재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포용할 수 있다면 남궁세가와 친하게 지내게끔 손을 쓰고.
반대로 포용할 수 없다면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안타까워도 별수 없나.’
속으러 혀를 차는 남궁전유.
마음 같아선 당지천을 어떻게든 포용하고 싶었으나, 당지천은 명백한 후자.
포용할 수 없었기에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기개가 정말 남다르구나. 참으로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다는 말과 달리 감탄하던 남궁전유의 얼굴은 점점 무표정하게 번졌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에 안 드는구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앞뒤가 안 맞는 남궁전유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당지천이 긴장을 끌어올리며 묻자, 남궁전유는 나지막이 답했다.
“나는 네게 재능이 있어도 기개는 없기를 바랐다. 무재가 있어도 현명함은 없기를 바랐다. 왜인지 아느냐?”
당지천에게 물음을 던진 남궁전유는 서서히 일어서며 자문자답했다.
“이러면 죽일 수밖에 없거든.”
“무, 무슨…….”
다른 누구도 아닌 천하제일인인 남궁전유다.
근데 그런 사람이 나서서 직접 자신을 죽인다고.
심지어 그게 농담이 아닌 순도 10할의 진담임을 깨닫자, 당지천은 얼굴에 핏기가 가신 채 식은땀을 흘렸다.
“대, 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십니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에 사는 너는 모를 거다.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가 당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고…….”
남궁전유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당가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말이다.”
남궁전유가 천천히.
느릿한 손놀림으로 검 손잡이를 쥐자, 팽구용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당지천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대체 얘가 뭘 어떻게 잘못했다고! 뭐가 두렵다고 그러시오! 고작 애잖소!”
“비켜라. 내 아무리 막 나간다고 한들, 아들놈 친우까지 베고 싶진 않구나.”
“아니! 그럼 얘는! 얘는 공자 친구 아들이고! 거기다, 얘가 공자의 수제자이오! 그런데 죽이려 드오?!”
“…….”
팽구용의 악에 받친 외침에도 남궁전유가 대꾸 없이 검을 빼 들자, 팽구용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물었다.
“정말…… 정말 진심인 거요?”
“알겠으면 비켜라.”
반신반의하는 팽구용의 물음에 남궁전유가 단호히 대답하자, 팽구용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이미 마음을 굳힌 남궁전유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무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력으로 막을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젠장, 어떡하지?’
어떤 면에서 보든 전혀 해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
그런데 갑자기 천일염이 남궁전유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거기까지.”
“넌 또 뭐냐?”
난데없이 끼어든 훼방꾼에 남궁전유가 눈을 부릅떴지만, 천일염은 예의 무표정한 그 얼굴로 품에서 뭔가를 찾으며 답했다.
“네가 무례하다고 생각한 사람.”
“내가 정녕 몰라서 묻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
천일염의 대답에 눈썹이 움찔거리는 남궁전유.
원래 성질 같아선 검을 휘둘러도 백 번은 더 휘둘렀을 상황이나, 이상하게도 검을 휘두르길 망설이게 됐다.
왜냐면 천일염에게선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느꼈던.
익히 잘 아는 듯한 분위기가 흘러나왔기에.
“그래서? 무슨 유언을 남기려 내 앞에 선 게냐? 아니면, 용서라도 구하려고 하는 건가?”
“뭔가를 착각한 듯한데, 나는 유언 따위 남기지 않는다.”
천일염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남궁전유가 눈초리를 좁혔지만, 팽구용과 달리 눈 하나 깜짝 안 한 천일염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왜냐면…….”
천일염은 이제야 찾았다는 듯, 품에서 작고 넓적한 뭔가를 꺼내더니 남궁전유에게 던졌다.
-퉁, 퉁, 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어 번 튕기는 물건.
몇 번을 미끄러지듯 구르더니 이내 남궁전유의 발치에 도착하자, 천일염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지천이는 네게 무례해도 될 유일한 사람이니까.”
“…….”
남궁전유의 근처 발치에 떨어진 넓적하고 작은 물건.
그게 뭔지 자세히 들여다본 남궁전유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왜냐면…….
“……네놈. 12대 무정검이랑 대체 무슨 관계냐?”
[투룡 남궁전유]
남궁전유가 내려다보는 본인의 발치엔.
소싯적 남궁전유가 목숨과 맞바꾸고 내어줘야 했던.
남궁전유 본인의 명패가 떨어져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