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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56화 (15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56화

당혹스러울 정도로 극렬한 환영에 놀라기도 잠시.

팽가의 가주전에 도착하자, 극렬한 환영 인파는 사그라들었다.

“드디어 왔나 보구나.”

“이제 좀 맘 편히 쉴 수 있겠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기는 분위기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까 받은 환영 인사가 지나치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기에 이 정도는 맘이 편해질 정도였다.

“가주님께서 속히 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주전에 도착하기 무섭게 활짝 열리는 문.

정문이 쉽게 열린 거야 그렇다 칠 수 있겠다만, 쉽게 열려선 안 될 가주전 문까지 활짝 열릴 정도였으니 필시 심상치 않은 문제임을 직감했다.

‘이 정도로 급히 반응할 만한 일이 뭐가 있지?’

잠시 뒤면 알게 되겠지만, 상당히 신경 쓰였다.

그래서 지레짐작에 불과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곧장 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중독인가 보군요. 용태는 어떻습니까?”

“예?”

“아닙니다. 팽가에도 독당은 있을 터. 그런데도 저를 반긴다는 건 독당에서도 못 알아보는 독 때문이겠죠. 얼른 갑시다.”

“예에…….”

다급한 마음에 앞장서서 안내원을 재촉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오는 안내원.

뭔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지만, 독은 한시가 급한 문제였기에 눈 한 번 까닥하지 않고 응접실까지 자리를 옮겼다.

“반갑구나. 네가 구용이가 그렇게 말하던 당지천이구나.”

응접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기다렸었는지 인사를 건네오는 팽가주.

팽가의 사람이긴 하나, 가주인 만큼 여타 행동이 계산적일 터인데 먼저 와 있었다는 건, 나를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정말, 정말 보고 싶었다.”

거기다, 숨김없이 드러내는 감정.

그래도 기선 제압을 하긴 하려는지 뿜어대는 기세나 위압감이 묵직하다 못해 장난 아니긴 했지만…….

‘약해.’

안타깝게도 팽가주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약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중독된 건 팽가주인가 보네.’

본연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당연지사.

다른 이도 아니고, 팽가주가 중독된 상황이면 이런 대처를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사천당가의 당지천이라고 합니다. 혹시 중독되신 게 가주님이 맞으십니까?”

“중독이라니?”

“환자이신 거 아닙니까?”

“환자는 맞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팽가주를 찬찬히 살펴보자, 멀쩡하기만 한 근육 덩어리의 몸.

드러난 이곳저곳 흉터가 가득하긴 했으나 지금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몸이었다.

“환부가 어딥니까?”

“내 마음.”

“예?”

“내 마음이 심하게 곪았다.”

“예?”

두 눈을 끔뻑거리며 팽가주를 쳐다보자,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은 팽가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머리깨나 굴린다고 들었는데, 이거 비합리적인 일에는 무용지물이구나.”

“그게 무슨…… 제가 오해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하지만 제가 팽가의 은인도 아니고, 이렇게 환대할 만한 이유는 없잖습니까?”

“그거야, 이제부터 될 거니까 하는 소리다.”

“예에?”

이제부터 은인이 될 거라니.

이건 또 뭔 알아먹지 못할 소린지.

“대충 그런 게 있고, 차차 알게 될 테니 지레짐작하지 말거라. 그것보다 이상한 인원들을 바리바리 데려왔구나. 희끄무레한 게 찾기도 힘든 사람들을 말이야.”

“아, 예.”

응접실까지 따라온 일염이와 따로 안내받은 사칭범과 흔유.

그들이 대외적인 내 일행의 전부였으나, 희끄무레하다는 걸 보면 팽가주는 가문 밖에 대기 중인 암혈대를 보고 말하는 걸 거다.

“제 호위들입니다만, 불편하시면 물리겠습니다.”

수호대와 달리 암혈대는 마공을 익힌 이들.

기운을 감추더라도 마기를 풀풀 뿌리고 다녔기에 내심 떨어뜨리고 올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팽가주.

“아니, 더 나아가 가문 내에 들여보내 줄 수도 있다.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들여보내 주겠다는 이야기까지 입에 올렸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만, 조건이라 하시면?”

“독. 무형지독은 아니어도 되니 천하십대고수를 죽일 정도의 극독을 내놓거라.”

“…….”

길현에 이어서 또다시 나온 독을 달라는 소리.

크나큰 결례는 물론이요, 사람을 자극하는 말이지만, 팽가의 가주씩이나 돼서 그걸 모르진 않을 터.

당연히 무슨 숨은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되물었다.

“……지금 독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독을 달라 했다. 천하십대고수를 죽일 정도의…… 저 빌어먹을 놈을 죽일 만큼 강한 독을 말이다.”

검지를 치켜세우며 내 뒤를 가리키는 팽가주.

그의 손가락을 따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 손끝에는…….

“아니, 형님. 애 앞에서 그게 무슨 험악한 말입니까.”

팽가제일의 고수이자, 나를 이곳으로 부른 장본인.

천괴도 팽구용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오는 동안 혈교도 때려잡느라 고생 많았다.”

“오랜만입니다만…… 대체 무슨 잘못을 하셨길래 형님분이 이러십니까?”

“아이고, 말도 말 거라. 저 무식한 놈은 혈교도를 잡는답시고 건물을 때려 부수는 건 기본이고, 지나가는 인원들 붙잡고 ‘이 수준으론 혈교도들을 상대해 일각도 채 못 버틸 거다’라면서 지옥 훈련을 시키지 않나. 또, ‘상대가 혈교도가 아니라 지천이 그 녀석이었으면 일각은커녕, 독무 하나 못 버티고 죽을 거다’ 이러면서 남의 찻잔에 독을 타고 다녀서 팽가에 원성이 자자해.”

“……아.”

묻자마자 둑이 무너진 듯 쏟아져 나오는 팽구용의 패악질.

그간 얼마나 시달렸으면 말하는 내내 팽가주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내가 환대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폭탄처리반이었구나…….’

이독제독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도움이 된다고 한들, 거의 괴롭힘 수준인 팽구용의 패악질에 팽가의 사람들은 고통받았을 거다.

그런데 그 상황에 당가의 소가주가 온다?

그것도 팽구용과 면식이 있는?

아마 팽가주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했긴 해도 가능하다면 독 좀 얻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보여줄 생각이었던 듯했다.

“아니, 형님. 제가 없는 소리 했습니까? 건물이야, 쬐에에끔 그렇다 쳐도, 훈련은 다 그 녀석들이 가르침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제가 손수. 공들여 가르친 겁니다. 칭찬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핍박하시니 어이가 없습니다.”

“하 참……, 구용아. 한 300번은 더 넘게 말하는 것 같다만, 사람을 쥐 잡듯이 패버리는 건 가르친다고 하지 않는다.”

“형님. 저도 300번쯤 말씀드리는 것 같지만, 고통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이 몸에. 이 머리에 직접 각인시키는 것만큼 효과 빠른 교육은 없습니다.”

“그래서 남들 밥 먹는 데 독을 탔느냐?”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혈교도 그놈들이 이제 곧 독을 쓸 거라니까요? 그래서 독 내성을 미리미리 기르게 하려고 그런 겁니다.”

“아이고 두야…….”

팽구용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하자, 팽가주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분명 사람 말을 써서, 사람과 대화하는데, 도대체 왜 벽을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지…… 끙.”

“아니, 제가 이렇게 명확한 사유를 대는데 이해 못 하는 건 형님 탓 아닙니까?”

“…….”

팽구용의 말에 기가 막히는지 아예 입을 다무는 팽가주.

분명 예전에 봤던 팽구용은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까진 아니었는데, 이건 마치 소 귀에 경 읽는 꼴이었다.

“그리고 혈교도들이 독을 쓸 거라는 이야기. 지천이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 가주님이 말씀하시는 건…….”

“보십시오. 맞다고 하잖습니까!”

“…….”

사람이 뇌가 있으면 팽가주가 말하는 게 교육 방법이 잘못됐다는 말인 걸 알 거다.

근데 팽구용이 이렇게 대응하는 건 알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진짜 가르치는 방법이 무식해서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알겠는 건.

마음이 병들었다는 팽가주의 농담이 9할쯤 진심이었다는 점이었다.

‘몇 년이나 이랬을지 모르겠지만, 팽가에 있어선 재앙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말도 안 통하지.

그렇다고 해서 무력은 더더욱 안 통하니 어마어마한 골칫덩이였을 거다.

그러니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날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걸 거다.

‘나도 딱히 방법이 없는데 말이야.’

뭐, 내가 통제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팽구용을 어떻게 통제한단 말인가.

애초에 빚 갚으러 온 처지인데 말이다.

“……해서 이게 다 내가 생각이 없어 보여도 어? 다 생각이 있어서…….”

“팽 대협.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시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저를 부르신 이유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어, 어? 내가 손님을 앞에 두고 안 좋은 모습을 보였구나.”

팽가주를 상대로 핏대를 세워가며 역설하는 팽구용에게 공손하게 말하자, 나름 자중하는 팽구용.

“오오…….”

그런 팽구용을 본 팽가주는 뭔가 가능성을 봤다는 얼굴로 부담스럽게 쳐다봤다.

참으로 낯간지럽게 말이다.

“크흠, 사실 너를 불렀던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는데, 목적이 변했다. 오면서 대충 파악했지? 지금 혈교도들이 어떤 놈들인지.”

“예, 어떤 놈들인지 대충 알겠더군요.”

“그래,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2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팽구용은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더없이 진중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말을 꺼냈다.

“첫째, 독곡에 대해 알아내면 최대한 협조하고 도맡아서 처리할 것.”

“독곡이라 하면?”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하면 혈교도들이 독곡을 집어삼켰다고 하더구나. 물론, 아직 확신하는 단계는 아니라, 정보를 통제하고 있긴하나, 나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예의 그 일도 있었으니 말이죠.”

“그래.”

혈교가 독을 원하는 이유는 대량 학살 때문.

비록, 당지독이 당가에서 일으킨 반란을 실패했지만, 무림에서 독을 수급할 곳은 당가뿐이 아니다.

사천당가 다음으로 독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 곳이 독곡인 만큼 혈교의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컸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 존재하는 독당의 인원들을 써도 되긴 하나, 그들의 지식은 너에게 미치지 않을뿐더러 수준도 너보다 떨어진다. 그러니 나는 독곡에 대한 문제는 네가 직접 해결해 줬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뭡니까?”

“다음은 아주 간단한 거다.”

이전과 같이 진지한 얼굴을 한 팽구용은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름 모를 이들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종이들을 말이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현 무림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들.”

“후기지수들이라…….”

흔히 용봉으로 불리는 다음 대 무림의 주인공들.

호기심에 용모파기를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선남선녀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었다.

“포섭하라고 보여주시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감시하고 정보를 캐 오라는 목적으로 주신 겁니까?”

“아니.”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얘들 좀 패라.”

“예?”

분명 후기지수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나보고 얘들을 패라고?

“아니, 대체 저게 뭘 바라시는 겁니까?”

황당하기 짝에 없는 팽구용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되묻자, 팽구용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 안 아픈 곳이 없도록 구석구석 쥐 잡듯이 패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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