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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53화 (153/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53화

-펑!

좌중을 가득 메우는 폭발 소리.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 공기를 찢는 소리에 몸을 웅크리자, 풍압에 밀려 저만치 날아갔다.

“크윽.”

그와 동시에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

뭔가가 등을 난도질하는 동시에 지져 버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바닥을 몇 번이나 굴렀다.

-후두둑.

등 뒤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재빨리 앞으로 한 바퀴 더 굴러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등 뒤를 돌아봤는데 충격적인 풍경에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게 뭐야…….”

폭격이라도 맞은 듯.

아니, 화경의 고수가 와서 깽판 치고 간 듯 바닥이 움푹움푹 파인 건 물론이요.

주변에 나무를 비롯해 지형지물들이 난잡하게 날아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옘병.”

3장로.

아니, 3장로였던 것이 곳곳에 조각조각 널려 있었다.

“허억…… 허억…….”

그 광경을 목도하자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만약 마지막에 3장로의 팔을 잘라내지 않았다면…… 죽었을 수도 있겠어.’

아까 전, 3장로가 옷자락을 잡았던 찰나의 순간.

심상치 않은 기류에 재빨리 3장로의 의수를 잘라내고, 미약하게나마 호신강기를 둘렀다.

그와 동시에 일염이의 실들이 3장로를 옭아맸기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고.”

혈교도들이 미친놈들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폭이라니.

혈교도에게 미친 거 아니냐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말이 절로 나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제자리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자, 다가와 용태를 살피는 일염이.

우리 일행 중에 가장 강한 게 일염이라 아무 피해 없을 줄 알았는데, 멀쩡한 옷 상태와 달리, 오른손 장갑에서 나온 실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 등 쪽에 생채기 좀 난 거 제외하면 괜찮아. 그거는 왜 그래?”

“생각보다 혈교도의 공격이 강해서 고장 났습니다. 실 자체가 망가진 건 아니라 그냥 쓸 수 있긴 하나,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회수 장치에 영향이 갔습니다.”

-끼릭, 끼릭.

뭔가를 돌리며 장갑을 조작하는 일염이.

아마도 회수 장치를 고치는 듯했는데, 예상대로 몇 번 돌리고 나니 촤라락 하고 실들이 원상 복귀했다.

“큰 고장은 아닌가 보네…… 그러고 보니 다른 인원들은?”

자폭한 건 3장로뿐만 아니라 혈교도 전원.

3장로와 달리, 자신의 의지는 아닌 듯했지만, 일단 자폭했기에 그 여파가 작지만은 않았을 거다.

“수호대는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중상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내 물음에 다가온 수호대주가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하길래 그쪽을 쳐다봤더니 부상을 입고 쓰러진 수호대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옘병.”

미약하지만 하얘지고 있는 수호대원들의 몸.

이는 명백히 플루오린화수소에 노출된 현상으로 혈교도들이 자폭할 때 독무가 같이 퍼진 듯했다.

“움직일 수 있는 이는 부상자를 챙겨서 물러나십시오!”

평소라면 모를까.

피부 밖도 아닌 상처를 통해서 불화수소가 침투한다면 신화문도들조차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수호대원들을 재빨리 뒤로 물리고, 제독부터 하기로 했다.

“흡.”

진각을 밟아 공기 중에 널린 불화수소를 모았고, 이어서 냉기를 피워올려 기체 상태의 불화수소를 액체 상태로 만들었다.

현대라면 상상도 못 할.

오직 무림인이기에 가능한 기예.

확산이 빠른 플루오린화수소의 특성상 제독하기 위해선 한세월이 걸리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오롯이 내가 무림인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콜록, 콜록…….”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왜냐면 나 또한 지금 드러누워 있는 신화문도들처럼 온전치 않은 상태이기에.

“끄응…….”

그래도 내가 뿌린 독은 내가 거둬야 하는 법.

인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독을 했다.

“공자님. 무리하지 마시죠. 손이 점점 창백해집니다. 저희야 그저 물러서면 됩니다.”

“난 내성 있어서 괜찮아.”

불화수소를 모으면 모을수록 창백해지는 손.

불화수소가 침투해 점점 몸을 망가뜨리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제독을 멈추진 않았다.

“그리고 여기 관도잖아. 이대로 놔두면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죽어 나간다고.”

당가의 사람이 싸웠던 곳에 민간인들이 픽픽 죽어 나간다?

그건 당가의 명예에 먹칠하는 짓이고, 그와 동시에 당가의 윤리관을 모욕하는 행위였다.

“독은 우리의 무기일지언정, 학살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되거든.”

“…….”

제독하는 와중에도 그렇게 이야기하자, 조용히 입을 다무는 수호대주.

주변에 있던 신화문도들 또한 침묵한 채 모두 나를 바라만 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됐다.”

왼손 전체가 창백해질 때쯤 공기 중에 퍼졌던 불화수소를 전부 정제해 낼 수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공자님.”

옆에서 조용히 철함을 받아 드는 일염이.

뒷일은 맡겨도 좋다는 듯 묵묵히 쳐다보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한 가지를 더 건네줬다.

“이거. 해독제야.”

칼슘 글루코네이트.

불산에 의한 사고에 주로 쓰이는 해독제로 만능은 아니지만, 무인들에겐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거다.

“나 기절할 거니까 뒷일은 부탁해.”

그렇게 나는 해독제를 건네주는 동시에 그대로 정신줄을 놓았다.

* * *

당지천이 건네준 해독제를 든 채 묵묵히 서 있는 천일염.

“…….”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여러 표정을 지으며 당지천을 보더니 문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인원들은 해독제를 복용하고, 상태가 괜찮은 인원들은 남은 게 없는지 살펴봐라.”

“알겠습니다.”

천일염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원들.

천일염은 그들 사이에서 당지천의 몸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창백해진 손과 이리저리 할퀴어진 듯 생채기가 나, 피가 줄줄 흐르는 등.

그리고 진탕이 된 속까지.

심각해 보이긴 하지만, 당지천 본인이 일어나서 운기를 한다면 금방 회복 가능한 수준의 상처였다.

허나, 천일염의 눈에는 단순히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지키지 못할 뻔했구나.’

근 3년간.

그간 쉬었던 만큼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치중했지만,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녹슬었다.

‘설마하니 틈이 있었을 줄이야.’

당지천이 3장로의 의수를 잘라 버렸을 때.

천일염은 천잠사로 3장로를 꽁꽁 싸매 자폭의 여파를 감당하려 했다.

그런데 천일염이 의식하지 못한 아주 미세한 틈이 있어서 당지천의 등에 생채기가 난 거다.

‘아무리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설마하니 자폭을 할 줄이야.

이건 정말 천일염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비겁한 변명일 뿐.

천설화를 잃었던 때도 했던 변명이었다.

그렇기에 천일염은 입술을 짓씹으며 한탄했다.

‘거기다, 사람을 녹여 버리는 독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가의 소가주씩이나 되니까. 그리고 다른 이라면 몰라도 응당 지천이라면 그런 독을 가졌을 거라 예상해야 했다.’

당가에서 오래 지냈던 만큼 여러 가지 독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는 천일염.

그러나 당지천은 천일염이 아는 것 이상으로 매번 기상천외한 독을 꺼내 쓰곤 했다.

그때는 순전히 당지천이 재능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참으로 멍청한 판단이었다.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그렇기에 뒤를 따르는 거다. 한데,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평소라면 수호대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는 정도.

저들을 데리고 다닌다면 대문파가 미쳐서 달려드는 게 아닌 이상에야 호위 대상의 몸에 생채기 하나 안 내고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후우…….”

천일염은 손에 들린 해독제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호는커녕 당지천의 독에 당해 해독제나 받는 판국이니…….

‘호위 대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라는 신화문의 방침이 우스워질 지경이다.

“앞으로의 호위는 힘들겠군.”

당지천의 등에 난 상처 이상으로 상처가 난 천일염의 가슴.

그 속에서는 화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혈교도에 대한 증오와.

자신과 문파에 대한 무능함에 대한 화가 말이다.

-쩡!

해독제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터져 나가는 해독제가 든 병.

병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짐에도 당지천에게만은 닿지 않게 한 천일염은 노기가 깃든 어조로 수호대주를 불렀다.

“수호대주.”

“하명하십시오.”

“길현으로 돌아가는 즉시. 수호대 전원은 복귀해라.”

“……복귀말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천일염의 명령에 조용히 되묻는 수호대주.

수호대는 오직 호위를 위해 만들어진 부대.

호위 대상을 따라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는 부대다.

그런데 복귀라니…….

이는 사실상 임무 배제와 다를 바 없는 소리였다.

“이해했나?”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천일염은 냉담하게 명령을 내렸고, 수호대주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또한, 임무는 암혈대와 교대한다.”

“……암혈대와 말입니까?”

또다시 되묻는 수호대주.

이번에 되묻는 이유는 항명이 아닌 순전히 우려에서 되묻는 거였다.

“공자님이 다른 곳도 아니고, 팽가로 향하시는 중입니다. 거기다. 차후 정파의 인원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큰 만큼 마공을 쓰는 암혈대는 지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자님의 명예에 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주와 부문주.

이 둘을 제외한다면 암혈대가 신화문에서 가장 강하긴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엄연히 마공을 쓰는 이들.

정파가 즐비한 곳으로 향할 당지천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이었다.

“이미 마교가 자취를 감춘 지 수백 년이 흘렀다. 마공을 알아보는 이들도 그만큼 찾기 힘들어졌고, 무엇보다 세상은 이미 난세지.”

하지만 이미 천일염은 계산이 끝난 듯 확고히 답했고, 잠시 당지천에 품에서 멀어진 천일염이 곳곳이 파인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예상보다 혈교도들의 저력이 상당하다. 저기 저 녀석도 고작 을급. 갑급에 해당하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지?”

천일염의 눈에 비치는 참혹한 광경.

차마 말로 담긴 어렵고, 누구라도 보자마자 헛구역질을 할 만한 광경을 봄에도.

천일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닥에 흩뿌려진 피들이 선명하게 봤다.

그리고 사방에 널브러진 혈교도들의 흔적들도 말이다.

“지천이의 명예는 가능한 한 지켜줄 것이다. 필요하다면 조작도 서슴지 않겠다.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천일염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더니 당지천이 잘라낸 3장로의 팔.

의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내가 두 번은. 두 번은 없을 거라 단언했다.”

주인 잃은 의수.

혈교의 사술을 이용해 만든 게 중요한 만큼 혈교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을 게 분명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천일염은 천천히 손아귀에 힘을 주더니.

이내 의수를 단번에 부숴 버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키겠다.”

흉흉한 기세가 그대로 드러나는 천일염의 두 눈.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할 만큼 비이성적이고 날 선 모습으로.

수호대주와 대원들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문주의 흉흉한 기세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하지만 천일염은 그런 문도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다시금 입술을 짓씹으며 선언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지킬 것이다.”

당지천이 혈교도들에게 상처 입고, 수호대가 짐 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날.

그날 천일염은 진정한 분노를.

자신의 적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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