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52화
“이크.”
독수를 뿌리자, 황급히 피하려는 3장로.
허나, 예전이라면 모를까.
수준 차이가 명백한 지금은 3장로가 회피하려 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치이이익.
3장로의 어깻죽지에 손이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3장로의 몸.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는 말치고는 참으로 손쉽게(?) 피해를 입었다.
“아닛?! 대체 무슨 짓을?!”
어깻죽지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자, 3장로의 얼굴에는 경악이 일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인지 어떻게든 독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뭐긴 뭐겠어, 독이지. 근데 너, 천독불침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하던데 잘만 통하네?”
-치이이익.
손이 닿는 걸 넘어서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줘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자, 더 큰 소음을 내며 녹아내리는 3장로의 어깨.
몇 번이나 죽어도 살아나는 혈교도임에도 살아날 몸 자체가 없게 되면 소생 불가능한 게 맞는지 3장로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위로의 말을 한마디 전해줬다.
“걱정 마. 녹인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이 독은 녹이는 데는 영 별로라 오래 걸릴 거야.”
‘산’에 대한 화학적 정의가 어쨌건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산’이라 함은 녹이는 물질.
현대인들은 염산.
무림인들은 화골산을 떠올릴 만큼 ‘녹인다’는 특성이 먼저 떠오르는 물질이다.
하지만 내가 꺼내든 플루오린화수소는 강산임에도 사람을 그다지 잘 녹이지 못한다.
아아아아주 예전에.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과거에 썼던 염산보다도 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굳이 플루오린화수소를 쓰는 이유는…….
“그래도 몸은 확실히 부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거 조금이면 몸 전체가 못쓰게 되거든.”
‘죽인다’가 아닌 ‘부순다’에 초점을 맞췄을 때.
내가 쓸 수 있는 독 중 가장 강한 독이어서다.
무려 그.
3대 강산으로 불리는 염산, 황산, 질산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말이다.
“뭐?”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반말.
3장로가 여유를 잃었는지 인상을 쓰며 되묻는 동시에 내부를 관조했다.
그리고 잠시 뒤.
3장로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제 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뭐를?”
3장로는 서서히 고개를 내리더니 점점 하얘지는 몸을 보고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상처를 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몸 전체에 독을 퍼뜨렸냐는 말입니다.”
“아, 그거? 너도 모름지기 장로인데 그거 못 하냐?”
“장난치지 마십시오. 제가 당가에 있을 때만 해도 이런 기술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게 있었다면 어떻게든 독을 주입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다시 묻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3장로가 여전히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압박하듯 묻기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줬다.
“아니, 죽여도 살아나는 건 강시잖아. 그치? 근데 사람도 아닌 게 사람인 척하니까 화가 나서 피부색 좀 바꿔주려고.”
지금 3장로의 몸이 하얘지는 이유.
그건 이곳에 있는 누구나 예상했을 듯이 플루오린화수소때문이다.
“이게 효과 빠른 미백제거든?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한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순백의 피부를 가지게 해주는 환상적인 독이야.”
피부에 플루오린화수소가 닿으면 수소결합을 통해 체내에 흡수된다.
이때, 접촉 부위의 색소가 파괴되며 온몸이 하얘지는 거다.
“그리고 나머지는 뭐,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맞으면서 배우는 게 어떨까?”
거기다 혈관을 타고 확산하는데, 혈액 속의 칼슘과 마그네슘과 반응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며 장기에 직접 도달해 작용, 파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플루오린화수소는 물과 잘 섞인다.
즉, 체내의 수분과 결합하면 몸 안에서 불산.
일전에 무력시위에 썼던 플루오린화수소산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몸이 성할 리가 있겠는가.
“하하하…… 그렇군요…… 소가주님께서는 제게 알려주실 생각이 없으신가 봐요. 하하하!”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재끼는 3장로.
뭐가 그렇게도 웃긴지 어깨가 녹는 와중에도.
아니, 몸이 망가지는 와중에도 배를 부여잡은 채 낄낄대며 웃어댔다.
‘이상하네……. 플루오린화수소가 몸 어디에 닿든 치명적이고, 발끝에 닿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극단적인 독이긴 해도 수은처럼 뇌에는 작용하지 않는데 왜 저래?’
완전히 맛이 가버린 3장로의 모습에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빙그레 미소를 짓는 3장로.
혈교도가 되려면 이중인격 시험이라도 봐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소가주님께서는 이걸로 저를 고문해서 저희의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신 거겠죠.”
3장로는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어깨에 묻은 독을 살짝 훔쳤다.
그러고는 그걸 입가로 가져가 핥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주실 생각이 없으시다면야. 제가 직접 알아내면 되지 않겠어요?!”
“미친놈.”
몸이 망가질 정도의 극독인 걸 뻔히 알면서 그걸 핥다니.
정말이지 혈교도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하긴, 제정신이었으면 혈교도가 되지도 않았겠지.’
3장로의 미친 짓거리에 잠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교도를 사냥하라!”
“사로잡을 필요 없다! 목을 노려!”
대화가 길었는지 어느샌가 따라온 혈교도들.
아까와는 다른 혈진을 펼치며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잔챙이들은 끼어들지 말고 빠져 있어!”
양도 많고 다소 귀찮은 상황.
기분이 확 나빠진 나는 삼매진화를 피어 올리며 플루오린화수소를 흩뿌렸다.
“커어어억…….”
그러자, 저마다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혈교도들.
플루오린화수소의 끓는점은 19.5℃.
삼매진화를 피어 올리자, 단번에 기체로 증발해 버렸고, 기체 상태에선 확산 속도가 빠르기에 삽시간에 혈교도들을 집어삼켰다.
“콜록, 콜록.”
플루오린화수소 기체를 흡입한 혈교도들은 당연하다는 듯 바닥에 드러누웠다.
“모두 숨을 멈추고 피독주를 꺼내라!”
“성물을 쓰기엔 독이 너무 강하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서 생긴 결과니 이교도를 바쳐 믿음을 증명하자!”
물론, 조금 닿은 거로도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플루오린화수소여도 모든 혈교도를 집어삼키진 못했다.
그렇기에 혈교도들은 빠르게 재정비했고, 그걸 보던 수호대주가 다가오려고 했다.
“공자님. 잔챙이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멈추십시오.”
-팅!
수호대주가 혈교도들에게 다가가려 하길래 재빨리 비수 하나를 수호대 앞에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손안에서 빠져나가려는 3장로를 재차 잡으며 수호대주에게 말했다.
“제가 이야기할 때까지 나서지 말아달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선 넘지 마십시오.”
“어째서입니까?”
혈교도들이 재차 진을 짜는 와중에도 제지하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수호대주.
딱히 기분 나쁜 물음이나, 염려가 담긴 물음이 아닌 순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물음이었다.
“아까와 달리, 혼자서도 혈교도들을 상대하실 수 있는 걸 확인했으니 더는 이들을 상대하는 건 의미가 없을 터. 저희가 처리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원하던 목표는 확인했으니 이제는 상관없지 않냐는 수호대주.
이편이 더 효율적이고, 내 의도에 부합한다는 듯 이야기했기에 반박하려 했지만, 굳이 내가 입을 열 것도 없이 일염이가 그 대답을 대신하듯 수호대주를 제지하며 말했다.
“낫지 않다. 방해니까.”
“방해…… 말입니까?”
“크윽…….”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수호대주가 되묻자, 때마침 갑자기 픽픽 쓰러지는 혈교도들.
“커어어억…….”
마치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조금의 시간 차를 두고 땅바닥에 얼굴을 꼬라박는 게 심히 볼썽사나웠다.
“이건…….”
명백히 독에 당한 모습.
수호대주는 혈교도들이 재빨리 방비하는 걸 분명히 봤음에도 독에 당해 쓰러지자, 굳은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말하마.”
그리고 그건 일염이도 마찬가지.
일염이 또한 혈교도들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 호위 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까다롭고 힘들 거다. 그러니 주의해라.”
잠시 말을 멈춘 일염이는 혈교도의 품에서 굴러 나온 피독주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도 잡아먹힐 테니 말이다.”
바로 플루오린화수소에 의해 제 역할을 못 한 채 녹아내리고 있는.
이제는 원래의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피독주를 보며 말이다.
“진을 축소해라!”
“은총을 받은 이들만 모여!”
거의 대다수가 단번에 궤멸하자, 삽시간에 몇 남지 않은 혈교도들.
그들뿐이라도 어떻게든 진을 구축하려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3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네요.”
뭔가를 포기한 듯한 미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해도 이런 미소를 짓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터.
긴장감을 끌어올린 채 3장로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공자님에게 정보를 알아낸다는 걸 포기했다는 의미입니다.”
-웅웅웅웅웅웅.
3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진동하는 공기.
기가 응집되면서 떨리는 이전에 몇 번이나 봐온.
혈교도들의 전매특허인 도망칠 때 쓰는 사술의 징조인 만큼 3장로의 몸에 아예 플루오린화수소를 부어버리려고 했다.
……이변을 느끼지 않았다면 말이다.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어?’
이전과는 뭔가가 다른 기의 응집.
보통 이전엔 공기가 떨릴 정도로.
이 정도 모이면 전이했다.
근데 지금은 그런 수준이 되어도 기의 응집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즉, 단순한 전이가 아니라는 것.
“네 녀석 설마 선천진기를…….”
“흐흐흐…… 소가주님. 저와 함께하시죠.”
내 생각이 맞다는 듯 끌어안으려고 하는 3장로.
선천진기를 끌어낸 만큼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과 속도로 따라붙길래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모이는 양이 심상치 않아. 아무리 나라도 저거에 맞으면 최소가 중상이야.’
식은땀이 절로 나는 상황.
기를 끌어올려 독룡진천보를 펼치는 동시에 최대한 3장로에게 멀어지자, 갑자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혈교도들에게서도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위, 위대하신 분이시여! 제,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아,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웅웅웅웅웅웅.
혈교도들은 뭔가에 조종당하는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천진기를 이끌어냈고, 이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서로 공명했다.
“옘병! 혈교도면 혈술이나 쓸 것이지 이게 뭔 개짓거리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눈이 있고, 머리가 있으면 예측 가능한 상황.
십중팔구 이건 자폭 공격이었다.
“도망가! 다들 도망가!”
“히이이익!!! 살려줘!!!!!”
신화문도들을 향해 손짓하자, 괴성을 내지르며 도망가는 사칭범.
그간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디서 튀어나와서 참으로 열심히 도망쳤다.
“아, 안 돼! 이건 계약 위반이야! 계약 위반이라고!”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하늘을 보며 두려움에 떠는 혈교도와 반대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쫓아오는 3장로.
“교주님의 명에 따라 이 한 몸 바치겠나이다!”
-웅웅웅웅웅웅.
기의 진동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 되자, 하늘을 날듯이 날아와…….
“옘병!”
내 옷자락을 잡으며 외쳤다.
“소가주님! 저와 하나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