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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51화 (151/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51화

얼기설기 꿰맸다.

이걸 사람 얼굴에 써도 되는 표현인지 심히 고심되긴 했으나, 지금 눈앞의 3장로를 보면 그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안 본 사이에 얼굴이 갈기갈기 찢겼나 봐? 겨우 꿰맨 걸 보니 마음이 아프네.”

대면하고 있는 3장로의 얼굴이 천 쪼가리를 엮어놓은 듯 엉망이었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심히 불쾌하기도 해.”

“저런…… 소가주님을 불쾌하게 만들다니 이거 완전 장로 실격 아닌가요? 장로직을 내려놔야겠어요.”

소감을 말하자 다른 사람 이야기라도 되는 양, 태연하게 말하는 3장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싱글벙글.

기괴한 얼굴을 들이대는 게 심히 역겨웠기에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서. 혈교도들이 여긴 어쩐 일이지?”

“무슨 일이긴요. 당연히 우리 소가주님이 계신다길래 뵈러 온 것 아니겠어요? 무엇보다…….”

“히, 히익!”

“겸사겸사 도둑놈 하나도 잡고 말이죠.”

3장로가 사칭범을 지긋이 쳐다보자, 엉덩방아를 찧는 사칭범.

별호가 있을 정도면 근방에서는 나름 이름깨나 날리고 다녔을 텐데, 왜 이렇게 겁이 많은지 모르겠다.

‘도대체 뭔 일을 겪었길래 저리되는 거지?’

본디 무인이 벽을 부수고 나면 자만에 빠지는 경우는 많았다.

그도 그럴 게.

나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자만하지 않는 걸 넘어서 반대로 의기소침해지는 사람은 처음 봤다.

‘뭐, 사정이 어찌 됐든 한심한 건 한심한 거지.’

어떤 안타까운 사정이 숨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잘못한 건 잘못한 것.

남 사칭이나 하고 다니는 건 결코 좋게 해석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면 저런 놈한테 도둑맞는 거냐? 천하를 호령한다는 놈들치고는 수준 미달인데?”

“이야, 아무래도 저희가 점조직이다 보니까, 보고가 제대로 안 되면 잘 모르거든요. 거기다. 길현에 있던 분이 남 뒤통수칠 분은 아니라서 말이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혈교의 조직에 대해 숨길 생각이 없는지 실실 웃으며 술술 읊는 3장로.

누가 보면 일부러 정보를 넘기는 듯했지만, 나는 안다.

지금 3장로가 이러는 건 도발.

일부러 알 만한 정보만 불면서 ‘혹시 정보를 더 캐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애타게 만들 속셈이었다.

“재미없는 장난은 거기까지 하자.”

“재미없는 장난이라니요? 소가주님은 저희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관심이야 많지. 은혜는 갑절로, 원한은 곱절로 갚는 게 당가인데, 관심이 없을 수가 있겠어?”

협의를 운운하기 전에 당가에서 반란을 일으킨 녀석들이다.

그런데 그런 혈교도들이 눈을 버젓이 뜨고 다니는데, 관심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근데 네 신뢰도가 바닥이라서 말이야.”

하나, 바보도 아니고.

3장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자고로 제대로 된 정보는 쉽게 얻는 법이 없었으니, 손목에 달린 사출기에 독을 바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건 나중에 천천히 알아볼게!”

─피슝!

손목을 굽히자,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발사되는 철침.

뒤이어서 표창을 몇 개 흩뿌렸다.

“인사가 되게 과격하시네요.”

하나하나 날카롭긴 했으나, 장로급에겐 해당 되지 않는 이야기.

가벼운 인사에 불과했기에 암기를 잡아챌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3장로는 오른팔을 내밀어 막았다.

─깡! 깡! 깡!

요란한 소리와 함께 3장로의 팔에 틀어박히는 표창들.

도무지 사람 몸에 박혔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금속음이 났다.

그래서 안력을 돋아 3장로의 오른팔을 보자, 예상 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그런가…… 그래도 팔이 금속인 건 예상 못 했어.’

어쭙잖은 공격으로 인사를 건넨 이유.

그건 바로 3장로가 예전에 봤을 때보다 약해졌기 때문.

‘단순히 내 실력이 올라서 3장로의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약해졌을 줄이야.’

무인도 사람이었기에 금분세수를 하고 나면 실력이 녹슬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금분세수한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

한창 무림에서 활개 치던 혈교도의 간부인 3장로의 실력이 녹슬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거기다. 설마하니 의수를 달고 있을 줄이야.’

3장로가 표창을 손으로 잡아채지 않고 오른팔로 막은 거도 놀라운데, 자세히 보니 오른팔 전체가 의수.

조각난 얼굴처럼 몸도 여기저기 꿰맸을 거란 생각과 달리, 아예 철로 된 의수를 달은 상태였다.

“……예상하고 계셨군요. 맞아요. 제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지 실력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이미 들통나서 그런지 한숨을 푹 쉬는 3장로.

그러면서 의수에 박힌 철침을 빼내 입가에 가져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독에 대한 내성까지 약해지진 않았답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더 강해진 거죠.”

할짝.

3장로는 철침에 묻은 독을 사탕이라도 되는지 보란 듯이 핥아 먹고는 철침을 던져버렸다.

“보세요. 멀쩡하죠? 제가 약해지긴 했어도 이런 점은 참 좋다니까요? 이제 어디 가서 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거든요.”

“시끄러워. 어차피 극독도 아니었어.”

3장로의 말을 자르고, 다시금 전투태세를 취하자, 3장로는 이러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나름 장로인데 어떻게 소가주님과 드잡이질을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예의 그분도 있을 텐데 함부로 달려들긴 싫네요. 그러니…….”

3장로가 손짓하자, 하나둘 앞으로 나서는 혈교도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다들 핏빛으로 된 투박한 가면을 쓴 채 3장로 앞에 도열하듯 늘어섰다.

“저희 애들이 대신 상대해 드릴 겁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간격을 맞춰 서 있는 혈교도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에 혹시 강시가 아닌가 싶었지만,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걸 보면 강시 같은 건 아닌 듯했다.

강시는 만드는 과정에서 부패를 막기 위해 온갖 약품을 끌어다 썼으니 말이다.

“부디 좋은 시간 되시길.”

3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교도들이 달려들려고 하자, 수호대가 호위를 위해서 앞을 막아섰다.

“공자님. 잔챙이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자고로 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선뜻 도와주겠다는 수호대주의 말에 감사함이 들었지만, 나는 그들을 만류했다.

“아니요. 별도의 이야기가 있을 때까지 나서지 마십시오.”

“……진심이십니까?”

무뚝뚝한 얼굴로 되묻는 수호대주.

평소에 어지간하면 말하지도.

되묻지도 않던 수호대주였는데, 나서지 말라는 말이 의외였는지 인원들을 제지하며 되물었다.

“분명 녀석은 사도급이 아니라 했습니다. 겨우 이 녀석조차. 그리고 이 정도 수조차 혼자 이겨낼 수 없다면 앞으로 혈교도와 싸우는 건 요원한 일이죠. 무엇보다…….”

일부러 몸 곳곳에 달린 사출기에 잠금장치를 걸며 말을 이었다.

“혈교도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듯 달려드는 혈교도들.

대화를 듣고 눈치껏 피하는 건지.

아니면 맹목적으로 3장로의 명령에 따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수호대를 무시한 채 내게 달려들었다.

“약심혈진을 펼쳐라.”

뭔가 검진 비스무리한 걸 펼치는지 포위하듯 나를 둘러싸는 혈교도들.

그와 동시에 팔방에서 저마다의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 녀석들…… 아무리 혈교가 이곳저곳에 세를 벋고 있다고 해도 뭐 이리 난잡해?’

본디 어느 집단이든 간에 주로 내세우는 무공이 있고, 소속원들이 주로 익히는 무공이 있다.

그런데 웬걸.

지금 사방에서 날 공격하는 혈교도들은 각기 다른 무공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파, 사파 가라지 않고 쓰는 것도 모자라 이름 모를 무공까지 섞어서 쓰네.’

꽤나 눈에 익은 무공들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수준이 낮아서 다행이다.’

마치 탐색이라도 하는 듯 별다른 힘이 실리지 않은 혈교도들의 공격.

내 약점이나 상성상 우위를 점하는 무공을 찾는 중인지 초창부터 절초를 쓰진 않았는데, 그 수준이 이상하리만치 낮아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더는 볼 필요 없겠어.’

이들의 출신성분이나 무공을 누구에게 배웠는지.

또, 혈교의 무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지만, 굳이 이들이 아니어도 됐다.

‘말단이 알아봤자, 거기서 거기지. 우두머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녀석들과 드잡이할 필요는 없어.’

그렇기에 왼쪽에서 날아오는 검을 단번에 잡아채며 혈교도의 명치에 권을 날려줬다.

그런데…….

“크윽.”

생각보다 얕은 감.

고통스러워하는 혈교도의 신음과 달리, 풍선을 때린 듯 손에 타격감이 거의 남지 않았다.

“세상에. 방금 그건 투로를 읽은 건가요? 소가주님이 영특한 건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만, 설마하니 그런 것도 할 줄 아실 줄이야.”

짝짝짝.

혈교도가 얻어맞자 재밌다는 박수를 치는 3장로.

수준이 낮아진 것과 별개로 보는 눈은 변하지 않았는지 단박에 무슨 짓을 한 지 알아본 듯한 눈치였다.

“그런데 개개인이 약하다고 저희 애들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신가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우리 애들이라고 안 그러겠습니까.”

3장로의 말에 반응하듯 내 손목을 잡아채는 혈교도.

계속 고통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단단히 손목을 잡은 채 서 있는 걸 보면 어떤 사술을 써서 제 몸을 통제하는 듯했다.

“그래? 그럼 찍어 누르면 그만이지.”

우드득.

손목을 잡아챈 혈교도의 손을 붙잡고, 단번에 힘으로 찍어 눌렀다.

“끄아아악!”

혈교도의 비명을 신호로 하나둘 달려드는 혈교도들.

이전과 달리, 하나하나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며 달려들었으나 한 번쯤 봤던 무공을 쓰는 이상 무서울 것 없었다.

“잔챙이들은 비켜!”

여유로운 말과 달리, 혈진을 부수며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몸.

이전에 혈교도들은 언제나 기이한 사술을 쓰며 도망쳤다.

이번 역시 일이 잘못됐다 판단하면 3장로가 도망칠 게 분명했기에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3장로부터 잡아챘다.

“놀랍군요! 설마하니 이렇게 강해지셨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대공자님이 아니라 삼 공자님을 지지할 걸 그랬군요.”

“말이 많네. 일단 죽고 시작하자.”

잡소리가 뭐 이리 많아.

3장로가 사람 기분 나쁘게 계속 떠들어 대길래 혈룡파천권을 써서 일격에 단전을 부숴줬다.

“커…… 억…….”

그러자, 허무하리만치 쉽게 죽어버린 3장로.

고개를 떨군 채 미동도 안 하고, 맥조차 안 잡히는 걸 보면 완전히 생명신호가 사라진 듯했다.

‘어차피 이 녀석도 도로 살아날 게 분명해.’

녀석은 분명 대가 없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무인이 자기 실력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걸 얻었을 테고, 혈교에서 그럴 만한 건 소생 능력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3장로.

내가 대뜸 3장로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다시 살아날 거란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거다.

그런데 만약 3장로가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제 발로 기어 들어온 정보 덩어리를 발로 차버리는 격이지.’

“설마 진짜 죽은 건 아니지?”

혹시나 3장로가 정말로 가버린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묻자, 다행히(?) 그런 징후가 무색하게 3장로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3장로의 입이 열렸다.

“너무하시네요. 제가 일평생 당가에 바친 세월이 얼마인데, 이렇게 모질게 대하시다니…… 정말 서운해요.”

일전에 한 번 봤던 모습.

3년 전 가주전에서 싸우던 당지독처럼 죽여도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다행이네. 난 또 죽은 줄 알았잖아.”

“예에?”

3장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길래 웃으며 꺼내 드는 예의 철상자.

이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꺼낸 철함은 색이 유난히 탁했다는 점이었다.

“그 거적때기 같은 몸을 없애려고 내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말이야. 너 때문에 준비한 거 제대로 못 쓸 뻔했다고. 반성해.”

“그게 무슨 말이시죠?”

“자고로 되살아나는 게 문제면, 되살아날 몸을 없애 버리면 되는 일 아니겠어?”

음흉한 미소와 달리, 조심스러운 손길로 철함을 열었다.

지금은 웬만한 극독도 잘 다루게 된 나지만, 이 철함만큼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왜냐면.

지금 이 철함에 든 건 흔히 불산이라 불리는 플루오린화수소의 수용액.

일전에 꺼낸 플루오린화수소‘산’이 아닌.

그 원재료.

웬만한 고수라도 산 채로 녹여 버릴 수 있는.

진짜배기 초강산인 플루오린화수소가 들었으니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 꼴 보기 싫은 얼굴부터 차근차근 녹여줄게.”

불산을 만질 때와 달리, 손끝에 옅은 냉기를 응집시키며 플루오린화수소를 묻혔다.

그러고는 3장로를 향해 빙그레 웃고, 독수를 뿌리며 말했다.

“그러니 어디 한번 마음껏 살아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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