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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48화 (14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8화

“…….”

삽시간에 2개의 패를 들게 되자, 말도 안 하고 어버버버 하는 관병.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뇌가 직무유기를 해버렸는지 그냥 생각을 멈춘 모습이었다.

“…….”

그리고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병사 또한.

돌처럼 굳어 있다가 갑자기 힘차게 뛰어서…….

-쿵!

박력 넘치게 땅에 머리를 박았다.

‘어후, 장난 아니게 아프겠네…….’

무인이라고 해도 목이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행동.

허나, 관병은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를 박은 채 외쳤다.

“죄송합니다! 신분을 확인할 다른 수단을 통해 교차 검증을 실시했어야 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용모파기만 보고 은인인 줄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병사 생활 끝납니까? 제가 진짜 끝내 드리면 되겠습니까?”

연민이 드는 건 드는 거고, 내가 당한 건 당한 거.

노기를 띤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자, 병사는 오히려 괜찮다는 듯 크게 외쳤다.

“은인께서 원하신다면 직위뿐만 아니라 제 목이라도 내놓겠습니다! 다만, 이 친구는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뭘 잘 모릅니다! 전부 선임병인 제 잘못이니 부디 너그럽게 제 목만으로 노여움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

열불이 났지만, 빠르고 신속한 판단.

거기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선에서 끝내달라는 굳은 의지를 표출하는 모습에 들끓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까지 사과하신다면야…… 이 일은 적당히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 납득되지 않는 게 있군요. 대체 왜! 두꺼비처럼 생긴 저런 거랑! 저를 구분하지 못한 겁니까?”

비슷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얼굴.

심지어 꽤 생긴 내 얼굴과 달리, 그야말로 박살 난 얼굴이었는데, 용모파기를 보고 구분 못 하는 게 이상하기 짝에 없었다.

“이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눈만 달려 있으면 충분히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었잖습니까!”

“정말 죄송하지만!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봤을 땐 공자님하고 똑같이 생겼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봤을 때도…….”

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말하자, 한마디 거드는 병사.

뭐에 홀린 것 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어어? 맞습니다? 마아아아아아앚습니다아아아? 이거 완전히 멕일려고 작정한 건가?”

“아, 아니, 그, 그게 아니고…….”

반쯤은 진심으로 화를 내는 척을 하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병사.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또다시 몸이 굳어갔다.

그러자, 어딘가에 쭈그려 있던 흔유가 나타나서 한마디 거들었다.

“공자님. 제가 봤을 때도, 확실히 별 차이 없었어요.”

“……진짜로?”

“예.”

“흠…….”

사실 대충 짐작하긴 했다.

부패한 관병들도 존재하긴 하나, 따로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혈향이 나지도 않았기에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로 착각했다는 예상은 했다.

“역시 혈교도인가.”

혈교의 사술이 아니면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상황.

장난식으로 언급하긴 했으나, 진짜 혈교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정보부터 모아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일염아.

-사람을 붙입니까?

-어.

-상대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부대주를 보내겠습니다.

일염이가 뭐라뭐라 입을 달싹이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부대주의 기운.

상대가 뭘 숨겼는지 모르는 만큼 부대주 혼자 보내는 게 좀 꺼려지긴 했지만, 상대가 실력이 꽤 있는 만큼 이게 최선이었다.

“혈교도요? 에이, 그냥 생긴 것도 똑 닮고, 돈 밝히신다는 이야기도 똑같은 거 같았고 무엇보다 공자님보다 더 협객 같은…….”

“흔유, 너도 가서 대가리 박아.”

“옙.”

이번엔 자기 잘못인 걸 아는지 관병 옆에 가 머리를 박는 흔유.

쉴 새 없이 깝죽대는 게 부문주한테 화를 돋우는 비법이라도 배워온 듯했다.

“아, 아…….”

그러자, 혼자 서 있던 관병이 이상한 눈으로 흔유를 쳐다보더니.

이내 눈치껏 옆에 가서 머리를 박았다.

“……갑자기 왜?”

얼떨결에 관병 둘을 머리 박게 만든 상황.

아무리 무슨 사연이 있다 해도 무림인이 이러는 건 좀 보기 안 좋았다.

그래서 일으키려는 찰나.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아…….”

갑자기 안에서 나타나는 관리로 보이는 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나라의 녹을 먹는 듯한 그는 다름 아닌 현령이었다.

“관무불가침이라 하였거늘, 그쪽은 황군이 두렵지도 않소!”

노기를 잔뜩 머금은 외침.

이미 오해를 살 만큼 샀는지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고.

“하아…….”

나는 오해를 풀 생각에 한숨부터 쉬었다.

* * *

거의 끌려오듯 안내받아, 도착한 접견실.

잔뜩 분노한 현령을 달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현령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못 믿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쪽이 진짜고, 이전에 들어온 이가 가짜다?”

“맞습니다. 어쩌면 혈교도일지도 모르는 자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소? 그쪽의 일방적인 주장 아닌가?”

“제가 패를 2개나 보여 드렸잖습니까.”

무려 다른 이도 아니고, 포정사가 줬던 패.

포정사가 종 2품.

현령이 종 7품임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개기기는커녕, 바짝 기어야 하는 차이였지만, 일이 그렇게 또 쉽지만은 않았다.

-쿵!

“아니, 겨우 그걸 보고 믿으라는 겐가? 사람 얼굴도 위조한다면서 한낱 옥패를 위조하지 못하겠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무림인들은 황군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화난 듯 탁자를 내려치는 현령.

편의상 현령이라 부르는.

지현이라고 불리는 이 자리는 현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다.

당연히 정치 감각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자리.

현령이 지금 내게 이러는 것도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사과하는 게 맞지만, 그러면 잘못을 시인하는 꼴이야. 하지만, 우리 쪽에서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고, 이해할 만한 이유였다고 납득을 시켜야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받는다는 생각이겠지.’

관리 나으리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행동.

허나, 현령의 행동은 무림인에게 하기엔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럴까? 황군은 멀고, 무림인은 가까운 법. 내 수준이 얼마나 될 줄 알고 이래.’

대외적으로 아직 절정의 경지로 알려진 게 내 실력.

그렇기에 황군으로 협박하면 압박받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지만, 이미 나는 벽을 뛰어넘었다.

당연히 황군에 쫓기는 일이 생겨도 작심하고 도망치면 절대 체포당하지 않으니 협박 거리도 되지 못했다.

물론, 귀찮은 상황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협객으로 소문나서 그러는 거야? 뭐야?’

보통 협객 노릇 하는 이들은 심성이 착하다.

아마도 내게 이러는 이유도 위와 같을 터.

협객이라 소문난 명성 때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

초반에 기선 제압하며 찍어누르고, 나중에 오해를 푼다며 적은 보상을 해주고 끝낼 생각인 듯했다.

‘내가 협객 노릇 한다고 했지, 언제 호구 노릇 한다고 했던가? 한 번만 더 해봐라. 본때를 보여주마.’

전형적인 강약약강.

남의 착한 심성을 이용하는 건 정말.

정말 불쾌한 행위였기에 딱 마지막 기회를 주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주머니에서 삐익이가 튀어나왔다.

-삐익!

오랜만이라는 듯 날개를 파닥이는 삐익이, 자연스레 날아올라 머리 위에 내려앉았는데, 이전보다 묵직한 게 확실히 뭔가 변화가 있는 듯했다.

“뭐야, 맨날 잠만 자더니 일어났네? 근데 뭔가 커진 거 같다, 너?”

-삐익!

“커졌다네요?”

“뭐야, 너도 알아들어?”

“아유, 그럼요. 공자님. 제가 동물하고 엄청 친하거든요.”

일전에 부문주를 연상시키듯 방실방실 웃는 흔유.

현령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건 또 뭔가?”

“아, 얘는…….”

현령에게 삐익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던 찰나.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무력시위에는 무력시위가 답이지.’

황군은 멀고, 무림인은 가깝다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면 체감하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거기다, 당가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독이니, 독으로 무력 시위를 하기로 했다.

“자, 삐익아, 일어났으니 맘마 먹자, 맘마.”

삐익이에게 줄만 하면서도, 무력시위할 만한 마땅한 독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지자, 갑자기 혀를 내미는 삐익이.

-비이잇…….

“역겨우니까 평소대로 하라네요. 히히.”

좀 애완조답게 대해주니 역겹다는 듯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래, 이 썩을 놈아. 그냥 밥이나 먹어라.”

오랜만에 봐서 좋게좋게 대해주려 했건만, 무슨 새 주제에 여전히 독불장군이냐.

정말 왠지 모르게 수석원로가 보고픈 마음을 달래며 주머니에서 찾던 철함을 꺼냈다.

-삐익! 삐이이익!

“‘호오…… 오랜만에 별미. 이런 걸 또 진상한다면 내가 안 받아줄 수 없구나’라네요. 근데 그게 뭔가요?”

“내가 만든 독. 이름은 아직 안 정했어.”

내가 꺼낸 독은 플루오린화수소산.

일전에 비밀창고에서 가져온 초강산인 물질로, 무력시위하기엔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왜냐면…….

“자, 밥 먹자. 찻잔에 부어줄 테니까 조금씩 먹어.”

-치이이익.

플루오린화수소산은 찻잔에 들이붓자, 찻잔은 물론이고 아예 탁자째로 녹여 버리는.

중원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당가의 독에 부합하는 물건이었기에.

“자, 잠깐! 대, 대체 뭘 꺼낸 건가!”

-치이이익.

찻잔과 탁자가 녹아내리자, 아연실색하는 현령.

말하는 도중에도 탁자에 난 구멍이 점점 커지자,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했는지 손을 달달달 떨었다.

“예? 뭘 말씀입니까? 아, 삐익이 먹이를 말하시는 겁니까?”

-치이이익.

-삐익! 삐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는 탁자와 그걸 마시는 새.

그리고 태연하게 모이(?)를 주는 내 모습이 현령의 눈동자에 비치자, 현령은 이젠 아예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그, 그걸 말하는 걸세. 위, 위험하잖은가!”

“위험하다니요. 애완조도 잘 먹는 물건이잖습니까? 저도 이렇게 먹을 수 있고요.”

“히이익…….”

보란 듯이 손가락으로 플루오린화수소산을 찍어 먹자, 겁에 질린 현령.

“아, 맛이 궁금하셨나 보군요. 제가 조금 내어 드리겠습니다.”

-치이이익.

아예 먹으라고 찻잔에 조금.

딱, 찻잔이 녹아버릴 만큼 플루오린화수소산을 부어주자, 현령은 이제는 빌기 시작했다.

“내, 내, 내가 잘못했네. 소, 소협이 당가의 소가주인 걸 이제는 알겠네. 제발 좀 그것 좀 집어넣어 주게.”

“뭐, 그렇게까지 부탁하신다면야…….”

현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함을 바로 앞.

탁자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부분에 올려놓았다.

“왜 안 집어넣는 겐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새 모이라서요. 자다 일어났는데, 밥은 먹게 해줘야지.”

-비잇, 비잇.

맞다는 듯 울어재끼는 삐익이.

새도.

사람도.

이걸 치울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일까.

현령은 곧장 노선을 바꿔 고개를 숙였다.

“어쭙잖은 기싸움 하려 해서 미안하네. 내 사죄하겠소.”

“알면 됐습니다. 이제 좀 대화가 되겠군요.”

이제야 좀 그럴듯한 자세를 보이는 현령.

역시 시위하면 무력시위.

다 이유가 있었다니까.

“자,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 사칭범이 혈교도일지도 모르는 거 아십니까?”

“혀, 혈교도?”

“설마 이것도 예상 못 하셨습니까?”

“험험, 길현에는 혈교도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지라 몰랐소.”

“……한 번도 안 나타났다고요?”

“그렇소.”

3년간 중원이 혈교도에 뒤덮였었다.

그런데 여기만 나타난 적이 없다고?

‘뭔가가 있나 본데…….’

아직 뭔지 모르지만, 뭔가가 있을 법한 상황.

대체 뭐가 숨겨져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현령은 당황한 채 말했다.

“혈교도가 숨어들었다니 군을 움직여서라도 빨리 제압해야…….”

“아니요. 현령님이 해주실 일은 가만히. 그저 가만히 계시는 겁니다.”

“혈교도일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습니다만, 제가 인원을 붙였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당 소협의 사칭범이 해시에 방문하기로 했소. 만약 그가 혈교도라면 이쪽에선 막을 방법이…….”

사칭범이 해코지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현령.

나는 그런 현령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사칭범은 저희가 맞이할 테니 안심하시죠.”

“당 소협,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안심하라 해도 얼굴을 굳히는 현령.

상당히 눈치가 없는 사람인 듯하여 안심할 수 있게끔 다시금 말해줬다.

“염려 마시라 했습니다.”

이어서 웃는 미소를 그대로 유지한 채 플루오린화수소산에 손을 담그며 말했다.

“어디 바닥에 대고 문지른 얼굴이던데, 아예 매끈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 염려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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