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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45화 (145/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5화

“…….”

백문이 당지천의 손에 혈옥을 쥐여준 채 지긋이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백문을 지긋이 쳐다보는 당지천.

순간 자신이 뭘 들은 건지 반신반의했는지 백문에게 반문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먹으라고 했다.”

“이걸 말입니까?”

“그래, 그거.”

백문이 뭘 되묻냐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백문을 노려보는 당지천.

마치 원수라도 보는 듯 안광을 뿌리며 백문을 쳐다봤다.

“후…….”

한눈에 봐도 속에서부터 깊은 화가 우러나오는 모습.

상태를 보면 성을 낼 법도 하건만, 당지천은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백문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의도로 하시는지 알겠지만, 재미없는 시험은 여기까지 하시죠.”

협의를 추구하기 위해선 언제나 힘이 필요한 법.

매일같이 악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힘을 추구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그런 이들이 결국 흑도 무리의 방식을 익혀 잡아 먹히고는 하는데, 당지천은 지금 백문이 시험하는 게 그것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당가야말로 무림에서 가장 효율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왜? 고독도 만드는 것이 당가인데, 사람으로 만든 혈옥은 거부감이 느껴지는 게냐? 어차피 만류귀종. 소화해내고 나면 다 같은 기인데, 눈 딱 감고 먹어라.”

“재미없다고 했습니다.”

재차 먹으라고 권유하자 당지천은 아예 혈옥을 내팽개치며 백문을 노려봤다.

효율을 추구한다고 해도 정도는 지켜야 하는 법.

부작용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당지천은 과거에 한 번 크나큰 죄를 저질렀던 만큼 사람들을 갈아 넣어 만든 혈옥에 대한 거부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기에 백문의 이런 행동 자체가 불쾌하기 짝에 없었다.

하나, 백문은 그런 당지천을 보고도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당지천을 쳐다봤다.

“나는 이해할 수 없구나. 아까 말했듯이 만들어진 과정이 심히 끔찍하긴 하나, 이는 앞으로 큰 도움이 될 터.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

“무엇보다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필요한 게 너도 뭔지 알잖느냐? 아무리 허울 좋게 미화해 봤자, 무림은 강자존. 힘이 없으면 발언권도 없다.”

백문이 바닥에 떨궈진 혈옥을 집어 들고 호호 불더니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뭐, 정 그렇게 네가 싫다면야 내가 먹는 수밖에 없겠구나.”

“후…….”

그러자, 백문에게 은침을 던지며 행동을 막는 당지천.

계속되는 백문의 행동에 체념한 듯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저야말로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어울려 드리죠.”

“호오, 막상 내가 혈옥을 먹으려고 하니까 아까운 게냐?”

“아까는 사람들이 있어서 독을 못 썼습니다. 하나, 지금은 가능하니…….”

서슬 퍼런 눈을 한 당지천이 백문을 노려보며 독병을 비롯해 10개의 추혼비독파접을 꺼내 들었다.

“저도 좀 진심을 내보겠습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당지천의 손을 떠나는 열 마리의 나비.

이전에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것과 다르게 이번엔 눈으로 보기 힘든 속도로 백문을 향해 날아갔다.

“이건 아까 부서지던 추혼비접 아니더냐. 그렇다면 미리 부숴야겠구나!”

역시나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맞받아치려는 백문.

찰나에 가까운 시간에 단검을 꺼내 한 줄기 섬광을 남겼다.

“흡.”

그러자, 당지천은 재빨리 손을 모으듯 조절해 추혼비접을 띄웠고, 나비들은 일제히 저마다 검을 피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벌써 이 정도 경지라니! 제법이구나! 하나…….”

말끝을 흐린 백문 또한 검을 따라 움직여 4마리의 나비를 단칼에 베었다.

“아직 느리다!”

“상관없습니다.”

─딱!

당지천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튀기자, 공중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추혼비독파접들.

─팡!

폭죽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하고 큰 폭발로 한순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솜씨가 거의 예술에 가깝구나. 하나, 독무는 들이마시지 않으면 그만. 날려보내면 의미 없는 공격이다.”

하얀 독무 속에서 진각을 밟아 독무를 날려 버리려는 백문.

“날려 보내지 못하면 의미 있는 공격이고 말이죠.”

당지천 역시 맞받아치듯 천열운무보를 펼쳐 날아가려는 독무를 짓눌렀다.

“거, 재밌는 기술을 쓰는구나.”

“재미없게 구시는 어르신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날리려는 백문과 짓누르는 당지천.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누구라 할 것 없이 서로 진심 가득한 얼굴로 무기를 집어 들자, 갑자기 둘 사이로 천일염이 끼어들었다.

“그만.”

─쿵!

진각 한 번으로 독무를 완전히 날려버리는 천일염.

이어서 당지천을 돌아보며 조곤조곤 말했다.

“화가 난 것은 알지만 거기까지 하시죠. 공자님. 어르신이 어떤 의도로 그러셨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지금 그걸 쓰신다면 어르신께서 목숨이 경각에 이르실 거라는 것도 아시잖습니까.”

당지천 손에 들린 장침들을 눈으로 가리키는 천일염.

당지천은 독무를 짓누르는 와중에도 착실히 다음 수를 준비했고, 독을 장침에 발랐다.

무려, 천독림에서 가져온 독을 말이다.

“알지. 하지만 너도 내가 이러는 이유는 알 텐데?”

“예, 알죠. 명확히 헤아리진 못해도 공자님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사실만큼은 압니다. 그렇지만, 어르신께도 이유가 있으니 딱 한 번만 참아주시죠.”

“……네가 말하니 한 번만 참는 거다.”

불쾌한 얼굴 임에도 도로 장침을 집어넣는 당지천.

평소에 천일염에게 만큼은 친절히 대해줬던 당지천이 천일염을 보고도 저런 얼굴을 하는 걸 보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천일염은 그걸 잘 알기에 짧게 고개를 숙였다가 백문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필요한 과정이었다.”

“어르신께는 그러셨을지 모르죠. 그리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에 저도 한 번은 참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는 천일염.

그러면서도 경고를 잊지 않아 백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이런 짓을 벌이신다면…….”

─스릉.

스산한 소리와 함께 검을 빼 든 천일염이 백문을 노려보며 말했다.

“굳이 공자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

명백한 무력시위.

기세로 짓누르는 것도 모자라서 천일염의 손에 들린 백색 검신에는 형형색색의 기운이 한 번씩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그걸 보던 백문의 얼굴에는 경악이 깃들었다.

‘색유라니…… 벌써 그 단계까지 왔단 말이냐?’

신화문의 전대 문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백문.

절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걸 쓰기 위한 제약과 위력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에 곧장 자존심을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멋도 모르고 그런 아이를 시험하려 했구나. 정말 미안하게 됐다.”

“…….”

백문이 천일염에게.

또, 당지천에게 사과를 했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백문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당가의 아이라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시험해 본 거다. 구용이가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백문이 재차 사과함에도 무표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당지천.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기 짝에 없으나 속에서 들끓는 분노는 가히 화산을 연상시키게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사과는 됐습니다.”

하지만 천일염을 생각해서인지 당지천은 직접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백문은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구용이의 말을 들을 걸 그랬구나.’

옛부터 팽구용과 연이 깊었던 백문.

어느 날 대뜸 팽구용이 찾아와서 쓸 만한 협객을 찾았다고.

고금제일의 잠룡이 나타났다며 자신에게 말하길래 팽구용이 뭘 잘못 먹었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입이 마르고 닳을 때까지 칭찬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한번 직접 찾아와 봤는데 팽구용이 말한 것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녀석이다.

그리하여 감탄하다 못해 흥분해서 그런지 평소에는 안 할 이런 실수를 했다.

‘사과를 원치 않으니 보상만 주고 빨리 사라져 줘야겠구나.’

좋은 관계를 구축하려던 계획이 망가진 상황.

지금이라도 폐를 끼치진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 백문은 재차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재미없이 과거 이야기는 구태여 하지 않으마. 똑똑한 만큼 어떤 일이 있었을지는 너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구용이와 내 관계도 짐작하고 있겠지.”

“예, 어르신께선 팽 대협과 뜻을 같이하시는 분이겠죠. 그러니 제가 참는 겁니다. 그동안 쌓아온 세월에 뭔가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거 참 고맙구나.”

백문을 품을 뒤져 혈옥이 아닌 투명하기 짝에 없는 구슬을 내밀었다.

“일을 대신 처리해 준 보상 겸 사과의 의미다.”

“이게 뭡니까?”

나름 보상을 꺼내니 관심 가지는 당지천.

그래도 적개심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미움을 산 듯했다.

“혈교의 사술을 막아주는 물건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네가 무림에 나왔음이 알려졌을 거니 혈교에서 너를 노릴 거다. 그러니 조심하거라.”

“알겠습니다.”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좋은 물건은 챙겨야하는 법.

당지천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구슬을 받아들자, 백문은 지체없이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나이에 맞지 않는 네 실력 잘 봤다. 칠칠치 못한 이 노구는 이만 가 보마.”

“저, 잠깐만요. 어르신.”

백문이 냉큼 떠나려고 하자, 갑자기 불러세우는 흔유.

당지천도 아니고, 천일염도 아니고.

그저 옆에 서 있던 흔유가 백문을 불러세우자, 백문의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뭐냐?”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호오, 만문문의 문주인 내게 물음을 구한다라…… 어디 한번 해보아라.”

“감사합니다. 그럼…….”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흔유가 조금 무례하다고 싶을 만큼 찬찬히 백문 어르신을 뜯어보더니 이내 첫 물음을 던졌다.

“반로환동이라 보기 어렵고, 혹시 유아기 때 환골탈태하셨나요?”

“……뭐?”

도저히 맥락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

그런 질문에 백문을 비롯해 일행들이 눈을 뻐끔뻐끔 뜨고 있자, 흔유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제가 나름 이것저것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데, 어르신은 도저히 예상이 안 가서요. 처음엔 역용술을 쓴 게 아닐까 싶었는데, 문주님께서 본 모습이라고 하신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으니 이 기회에 알아보려고 했죠.”

“허 참.”

이런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하냐며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찬 백문은 천일염에게 말했다.

“부문주 놈이 무례하기 짝에 없길래 그게 누군가 했더니, 이 녀석이구나?”

“부문주님이 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제 탓은 아닌 듯한데요?”

“……아니, 맞는 거 같구나.”

실없는 흔유의 물음에 피식 미소를 지은 백문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당지천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팽가로 가기 전에 시간 좀 있으면 길현에 들르려무나. 거기에도 이놈 같은 무례한 녀석이 하나 있거든. 물론, 나한테 무례한 게 아니고, 너한테 무례한 녀석이다.”

무례한 녀석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지천.

혈교도나 악인도 아니고, 단순히 무례한 녀석이라고 표현할 만한 사람이 있나 싶어 생각해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들러보죠.”

“그래, 오늘 불쾌하게 해서 미안했다. 다음에는 화목하게. 좋은 모습으로 보자꾸나.”

인사를 마치곤 지하실을 떠나는 백문.

막무가내로 나선 거 치고는 쉽게 물러나자 흔유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당지천에게 물었다.

“이렇게 쉽게 물러 가실 거면 대체 왜 저러신 걸까요?”

당지천은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천장을 올려보다가 이내 한탄하듯 말했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몰라서 그랬든, 알아서 그랬든. 자신의 신념에 잡아먹히는 법이거든요.”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그런 게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할 생각은 없는지 흔유의 눈을 피하며 구슬을 챙겨 넣는 당지천.

이어서 백문의 뒤를 따르며 천일염을 보고 말했다.

“마무리하러 가자. 구한 사람들 용태를 살피고, 종남파랑 관리 나으리께선 뭐했는지 한번 알아보러 가자고.”

* * *

언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지하 공동.

곳곳에 혈교의 본교라는 걸 입증하듯 혈교와 관련된 장식물들이 가득했는데, 그것들의 정 가운데.

왠지 모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얼음이 있었다.

“……해서 서안지부는 완전히 와해. 혈옥도 천성문괴의 손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부복한 채 보고하는 여인.

그는 다름 아닌 3년 전 당가를 배반한 2장로.

천수나타 당소예였다.

“재밌네. 참 재밌어.”

당소예가 보고를 마치자, 얼음 속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이어서 아무것도 비추지 않던 얼음 속에서 당지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새로 벽을 부수고 나왔을 줄이야. 그래, 이런 맛도 있어야지. 그래서 지금 당지천은 어디 있어?”

“1사도의 예언으론 산서성 길현시로 향할 거랍니다. 한데…….”

잠시 말끝을 흐린 당소예는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듯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자, 얼음 속의 당지독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확실치 않은 정보라도 괜찮아. 편하게 말해.”

조직의 수장에 걸맞는 인자한 모습.

누구라도 모시고픈 주인의 모습이었지만, 당지독이 언제나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당소예는 괜히 해를 입을까 두려워 입술을 잘근잘근 물다가 이내 보고했다.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1사도의 보고 상으로…….”

잠시 말끝을 흐린 당소예가 숨을 한 번 내쉬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길현에 나타난 당지천이 두 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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