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3화
내가 학한객잔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막아라! 이교도를 처단하라!
예상대로 평범하긴커녕 흉흉한 기세만 가득했던 객잔 내부.
일반적인 손님 없이 혈교도와 약에 취한 혈교도들만 가득한 걸 보고 멀쩡한 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독무를 뿌려 가볍게 정리하고 남은 한 놈도 암기로 처리한 뒤 지하실로 내려왔건만,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이쪽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멈춰라! 움직이면 여기를 통째로 날려 버리겠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대협!”
“이쪽입니다! 이쪽 먼저 구해주십시오!”
마치 포로수용소라도 되는 듯 철장 가득 갇혀 있는 사람들.
그 중앙에는 뭔가를 심어놓기라도 한 건지 손을 올린 채 대기하는 혈교도 하나와 그 다수의 인질을 잡은 혈교도들이 있었다.
“멈춰라! 비록, 우리가 너를 해할 순 없어도 이 혈진을 발동시키면 여기 있는 모두 한 줌의 피로 되돌릴 수 있다!”
“아, 안 됩니다! 제, 제발!”
“어, 엄마!”
“소협! 노부는 백가의 백모현이라고 하오! 노부를 구한다면 아들이 사례할 테니 제발 나 좀 구해주시오!”
혈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자, 아비규환에 빠져 버리는 내부.
삼도천에 발이라도 담근 양 저마다 한마디씩 살려달라 고함을 질러댔고, 그 모습을 본 혈교도들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러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진을 발동시키겠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라.
역시 제대로 된 무인이 아니라 말을 참 쉽게 하는 듯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한 순간에 죽을 텐데, 차라리 협박할 거였으면 생사와 연동되어 있다고 했어야지.’
수준 차이가 얼마나 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협박은 더 극단적이고,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뭐, 내가 협박에 대해 강의할 것도 아니고, 일부러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으니 확인해 봐야지.’
자고로 광신도들이란 자신의 생명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법.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에 조용히 일염이를 쳐다보자, 일염이가 말했다.
-진짜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이 우려하실 만한 일도 없습니다.
-그래?
적어도 혈교도들의 생사완 관련이 없다는 말.
그렇기에 마음 놓고, 혈교도들을 처리하려다가, 문득 바로 옆 철창 너머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으으…….”
무서운 상황임에도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중인 아이.
필사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건지, 아니면 지레 겁을 먹어 소리가 제대로 안 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양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든 방해되지 않게 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같은 철창에 갇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처리합니까?
혈교도들을 처리하냐고 묻는 일염이.
사실 물을 것도 없이 당연하게 처리해야 하기에 먼저 손을 썼겠지만, 순간 내 의중을 읽은 듯했다.
그래서 나는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움직이지 마시죠.”
“고, 공자님?”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음에도 움직이지 말라는 소리에 흔유는 왜 그러냐는 듯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눈으로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이 보고 있잖습니까.”
인질을 잡은 녀석들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것.
당연히 가능하다.
아니면 수면독을 풀어 전부 다 재워 버리는 것.
그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그러지 않는 건 그게 최선이 아니어서다.
‘어른이라면 모를까, 아이들은 수면독에 거부 반응이 있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아이의 반수치사량은 어른보다 낮다.
거기다, 몸무게조차도 어른들보다 훨씬 적기에 굳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조금 많이 섭취해도 위험해질 거다.
‘수면독을 배제하고 싸우자니 잔인하겠지.’
다가가서 속을 뒤흔들어 처리한다면 피 튀길 일 따윈 없다.
허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혈진을 작동시키려는 건 한 놈이지만, 인질을 잡은 건 여럿이다.
자연히 암기를 뿌리거나 신화문의 도움을 받아서 처리하게 되겠지만, 그러면 잔인한 풍경이 연출될 거다.
……아이들 기준에선 평생 잊기 힘들.
잔인한 풍경이 말이다.
‘그렇다면 무섭지 않게 가야지.’
단숨에 제압하는 게 최선이었다면 주저 없이 그랬을 거다.
정신적인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겐 다른 수가 있었다.
-일염아, 저것들 묶어줘. 되도록 피 안 나게.
일염이에게 전음을 보내자, 약지를 살짝 까딱이는 일염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적을 옭아맸다.
-묶었습니다.
-고마워.
자, 이로써 안전장치는 달았고…… 본격적으로 해볼까?
“우, 움직이지 말라고! 읍읍…….”
살짝 손을 들자, 뭐라 경고해 오는 혈교도들.
시끄럽고 위압적으로 굴자, 곧장 일염이의 손길에 입을 다물게 됐다.
“아…….”
그러자, 뭔가가 일어나는 걸 직감했을까.
약간의 안도가 담긴 단말마를 내뱉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도 아까보다 공포가 사라진 모습.
그래도 어른 자체가 무섭긴 했는지 나를 보고 무서워하길래 슬며시 미소를 지어주며 물었다.
“얘들아, 나비 좋아하니?”
“예? 예?”
뜬금없이 나비를 찾자 당황한 듯 되묻는 아이들.
그래도 심성이 착한 건지 애써 대답했다.
“조, 좋아해요.”
“그래? 그럼 재밌는 거 보여줄게.”
내가 지하실에서 왜 뜬금없이 나비를 찾았냐.
그 이유는 당연히 나비를 보여줄 거기 때문이다.
품을 뒤져서 나비 모양의 철편.
추혼비독파접을 여러 개 꺼내 들자, 말똥말똥한 눈으로 철편을 보는 아이들.
그 시선에 나는 마치 마술사가 된 양 과장된 몸짓으로 속에서 호리병을 꺼내 속밀독봉의 독밀을 손바닥에 부었다.
“지금부터 이 나비가 꿀을 물고 저 아저씨들을 혼내줄 거야.”
“나비가요?”
“그래, 나비들이.”
끈적한 꿀이 손바닥을 가득 메울 때쯤, 추혼비독파접을 흩뿌리자 공중에서 나풀나풀 날아다니며 주변을 맴도는 나비들.
이내 꿀 냄새에 이끌린 듯, 하나둘 독밀이 가득한 손바닥에 내려앉아 꿀을 빨았다.
……아니, 정확히는 빠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고, 공자님. 이건 또 무슨 기예인가요?”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자, 입을 떡 벌리고 보는 흔유.
어른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애들 보라고 하는 건데, 애들보다 자기가 더 놀란 모습이었다.
‘하긴, 당연한 건가.’
참으로 쉽게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도의 기예가 들어간 기술.
본디 어중간한 빠름보다 느리게 하는 게 어려운 건 무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는 걸 거다.
“제 독문무공 중 하나입니다.”
“이, 이렇게 대단한 무공이 말입니까? 대체 공자님은…….”
“일단 저들부터 처리하고 이야기하시죠.”
오른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나비를 조종하자, 꿀을 물고 나풀나풀 날아오르는 나비들.
미약한 기의 끈을 달고서 일반적인 추혼비접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바람을 타듯 선선히 날아서 혈교도들의 입에 하나씩 내려앉았다.
“으으읍…….”
철로 된 나비가 내려앉자 필사적으로 몸을 뒤트는 혈교도들.
뭔지 몰라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물건임을 직감한 듯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딱!
손가락 튕기자, 일시에 부서져 버리는 나비들.
-파사삭.
어딘가에 부딪혀서 터질 때와 달리, 작은 충격만을 받아 아주 작은 범위에서만 터졌다.
딱, 혈교도들의 코와 입을 막을 정도만 말이다.
“으으읍! 으으으읍!”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는지 혈교도들이 연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이 고수도 아니고,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을 리가 만무.
혈진과 인질로 협박한 게 허무할 만큼 깔끔하게 처리됐다.
“와…….”
혈교도 주변에만 하얀 가루가 휘날리자, 감탄을 내뱉는 사람들.
자신을 억압하던 혈교도들이 죽었으니 기뻐할 법도 하건만 그저 넋을 놓은 채.
황홀하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와, 대단해…….”
그리고 그중.
왠지 모르게 흔유가 제일 황홀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게 물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저 공자님. 인질들을 풀어줄까요?”
“아니요. 마무리도 해야죠.”
원래 인질들이 있으면 제독까지 깔끔하게 해야 하는 법.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혈교도들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섭물의 묘리를 펼쳤다.
-파스스.
그러자, 조금씩 뭉쳐지는 하얀 가루들.
혈교도들의 몸을 타고 올라 마치 꽃이 피듯 하나둘 하얀 나비가 피어났다.
-딱!
이어서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기자, 일제히 날아오른 하얀 나비들은 가루 하나 흘리지 않고, 천천히 내 손아귀로 돌아와 가루로 화했다.
“와아…….”
가히 예술이라고 불러도 모자란 광경.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혈교도를 제압하자 감복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짝짝짝짝.
손이 부서질 듯 박수를 쳐대는 사람들.
살았다는 감동으로 치는 건지, 예상을 아득히 넘는 기예를 봐서 놀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고 있으니까 꼭 마술사가 된 것 같다.
“세상에…… 공자님은 대체 얼마나 대단하신 겁니까? 아니,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게 독문무공이라니…… 이러니 부문주님이 꼭 물어 오라고 하시지!”
숨도 안 쉬고 감탄사를 내뱉는 흔유.
내가 봐도 좀 특이한 기예이긴 하나, 그렇다고 막 찬양받을 정도까진 아니라 생각했기에 애써 무시하고 주변부터 둘러봤다.
‘다친 사람은 없나?’
혈교도들은 없앴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목숨이 위험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일일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변을 발견했다.
‘저 아이는…….’
아이들이 갇혀 있던 철창.
분명 아까 훑어본 것 같은데, 아까와 달리 이번엔 한 번 봤던 얼굴이 있었다.
‘학한객잔으로 안내해 준 그 아이잖아?’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양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박수를 치는 아이.
“형! 정말 대단해요!”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눈을 씻고 봤지만, 되레 사실이라는 듯 칭찬이 돌아왔다.
‘뭐야? 원래부터 있었나? 아니야. 언뜻 보긴 했어도 분명 없었어. 그렇다면 내 감각뿐만 아니라 일염이도 속이고 들어왔다는 건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순간 경계심이 극에 달했지만, 조금 더 머리를 굴리자, 진정할 수 있었다.
‘일염이를 속일 정도면 어차피 우릴 단칼에 죽일 수 있었을 거야. 그러니 뭔가 목적을 가지고 나랑 접선하길 원해서 저러고 있거나, 혹은 일염이는 느꼈지만, 아직은 모른 척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죽일려면 진작에 죽일 수 있는 상황.
혹은 일염이가 알고도 묵인하는 상황이라는 건데, 어차피 양쪽 다 뭔가 목적이 있어서란 내게 접근했을 거기에 태연함을 가장하며 물었다.
“이거, 못 보던 얼굴이 늘어났는걸?”
“예? 형, 그게 무슨 소리세요?”
“시치미 떼지 말고.”
모르는 척하는 아이를 노려보며 말하자,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는 아이.
단번에 숨길 생각은 접었는지 잠겨 있던 철창문을 열며 나왔다.
“눈치가 참 좋아. 그리고 수상할 정도로 하얀 가루를 잘 날리고.”
“수상할 정도로 하얀 가루를 잘 날린다니.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말인데?”
“비꼰 게 아니라 칭찬이다. 눈치가 좋다는 것도 말이지. 그러니 여기서 문제.”
철창문을 열고 천천히 다가오는 아이.
나는 그동안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싸울 준비를 하자, 아이는 보란 듯이 작은 단도를 꺼내 물었다.
“나는 적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