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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42화 (142/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2화

당지천이 귀빈관에 막 도착한 시간.

그 사이 학한객잔 내부는 난리가 났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교도가 귀빈관에 도착했다! 낌새를 눈치채는 순간 이쪽으로 올 테니 살려면 움직여!”

“교도들은 입교희망자들을 지하실로 옮겨라!”

“누, 누가 입교희망자라는 겐가! 이거 놓으시게!”

“가만있어!”

“커억…….”

평범한 객잔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풍경.

식사를 위해 준비된 식탁들은 입구를 막아서는 벽이 되고 있었고, 멀쩡하게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끌려갔다.

“히히히히…….”

“소저, 드디어 결정한 것이오? 잘했소. 정말 잘했소. 이제 이 용호만 믿으시오. 이날까지 한 고생을 모두 보상받을 터이니.”

거기다. 한구석에서는 연신 혼잣말을 지껄이는 사람들.

환상을 보는 듯 이지를 상실한 눈으로 벽이나 기둥에 몸을 비비는 걸 보면 결코 제정신은 아니었다.

“단주님! 수련교도들은 어찌합니까?”

“한시가 급하니 그냥 놔둬라! 그것보다 외부에 나갔던 교도들은 전부 소집했느냐?”

“연락은 돌렸지만, 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알았다! 교도들은 벽이 완성되는 대로 이교도를 상대할 준비를 해라!”

“예!”

고성과 분주한 발소리가 가득한.

그야말로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객잔 내부.

이리저리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속, 얼굴을 가리는 적색 피풍의를 입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웬 소란이냐.”

묵직하고 근엄하기 짝이 없는 말소리.

소란스러운 객잔 내부에서도 그 낮은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지자, 인원들은 일제히 할 일을 멈추고 무릎부터 꿇었다.

─쿵!

그러고는 이어서 양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지고하신…….”

“인사는 됐다. 그것보다 웬 소란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피풍의를 입은 이가 만류하자, 단주로 불린 이가 바람같이 뛰어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선지자님. 범상치 않은 이교도가 서안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물은 건 고작 그런 이교도 하나 때문에 이리 소란스럽게 구느냐는 말이었다.”

“오오오, 역시 선지자님이셔. 이교도가 오실 걸 예지하셨나 봐.”

“전지전능하신 선지자님. 부디 저희를 하늘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선지자의 말에 교도들이 절로 고개를 조아리자, 선지자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나, 선지자가 피풍의로 얼굴을 가린 탓에 아무도 그 미소를 볼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 이교도가 워낙 범상치 않았기에 당황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게, 자색의무복을 입은 이라면…….”

“그만. 네 두려움은 잘 안다. 그러니 말을 아껴도 좋다.”

“가, 감사합니다!”

선지자의 배려에 감복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는 단주.

바로 앞에서 무릎 꿇고 있으면 선지자의 얼굴에 언짢음이 가득한 걸 볼 법도 한데, 그걸 보지 못한 채 공손히 부탁했다.

“선지자님도 아시다시피 도저히 저희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둔한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을 주십시오.”””

단주가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자, 교도들도 따라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선지자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 턱을 괴더니 이내 단주를 보며 말했다.

“내 직접 나선다면 쉬이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서, 선지자님께서 직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지자가 직접 나선다고 하자, 절로 고개를 조아리는 교도들.

이제 살았다는 듯 환호를 질렀지만, 선지자는 곧장 말을 바꿨다.

“허나. 일이 그리 쉬워선 안 되는 법. 너희에게 시련을 부여하겠다.”

“예? 어떤 시련을 말입니까?”

“반각.”

잠시 말을 멈춘 선지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희가 저 이교도를 상대하여 반각을 버틴다면 친히 구원을 내려주마.”

“알겠습니다!”

“……반각이나 말입니까?”

의심 없이 힘차게 답하는 교도들과 달리, 힘없이 되묻는 단주.

상대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고,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교도들과 달리, 단주는 이교도가 입은 자색의 무복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막아선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행위인지 알기에 얼굴을 굳힌 건데, 선지자는 그런 단주를 보고 달래듯 전음을 보냈다.

-단주. 하찮은 미물조차도 존재의의를 나타내는 행동을 하네. 그러니 당연히 단주도 할 수 있겠지?

“허, 허나, 상대는…….”

-물론, 정말로 아무 도움도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닐세.

품에 손을 집어넣은 선지자는 동그란 구슬을 하나 꺼내줬다.

-본교에서 내려온 피독주네. 내 친히 단주를 위해 받아온 것이지.

“이, 이건 선지자님께서도 아끼시는 물건 아닙니까?”

-맞다. 본교에 내 공로를 인정받아 받은 명예로운 물건이지.

“이 귀하신 걸 저에게…….”

선지자가 입을 다물고 있자, 단주는 감복한 채 피독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에 넘치게도 선지자님의 위대한 성은을 받았으니 이 시련. 꼭 이겨내겠습니다.”

“좋은 대답이다. 한데, 이교도를 안내한 부단주는 어딨지?”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교도를 데려온 것은 부단주가 아닌 아이였습니다.”

“……나는 분명 부단주에게 안내하라 일렀거늘, 또 밑의 교도에게 시켰구나.”

“제, 제가 관리를 잘해야 했었는데…….”

“아니다. 너의 잘못이 아닌 건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니 괘념치 말아라.”

“감사합니다.”

“모두 기억해라. 반각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교도들의 힘찬 대답을 뒤로한 선지자는 천천히.

아주 여유롭게 자신이 나왔던 지하실 입구로 향했다.

“흠…….”

그리고 문 앞에서 잠시 뒤를 둘러보다가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타다다다닥.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부단주를 보낸 게 맞아. 그런데 아이가 안내하고 있다고?’

위엄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잔망스러운 발걸음.

근엄함은 어디에 던져 버렸는지 훨훨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실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다. 뭐? 당가의 직계가 와?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냐.’

안타까운 마음에 머리를 부여잡는 선지자.

다른 교도들이 봤다면 기겁을 하다못해 신앙심이 사라질 만한 광경이었지만, 이제 선지자는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끝났다. 여긴 가망이 없어.’

왜냐면 학한객잔은 오늘 사라질 것이기에.

‘내가 아무리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가는 결이 다르지.’

여태껏 선지자인 척.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양 교도들 앞에서 설파했지만, 실제는 그저 선동.

아편과 잔재주에 기대 교도들을 속였을 뿐이다.

‘승급이 이제 코앞이었는데 왜 하필 오늘이야.’

무림맹과의 연전으로 인해 잠시 물러난 혈교.

여태껏 하던 일이 본교의 인원들을 내보내 직접 사람들을 잡아 오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무림 곳곳에 산재한 고수들에게 비밀스레 접근해 회유했다.

그리고 지금 지하실을 힘껏 달리는 몽환야귀 적웅도 그런 부류였다.

‘내가 오늘을 위해서 쓴 약이 대체 몇 개고, 그걸 몇 날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몽환약을 다루는 게 적웅의 특기.

아편을 기반으로 한 몽환약으로 사람을 유혹해 교도들로 만들고, 입교하지 않는 자들은 본교에 인신공양했다.

무려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당연히 혈교에선 적웅을 눈여겨봤고, 적웅은 본교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편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와선 허사가 됐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냄새 때문에 걸리지 않으려고 약초 몇 개 섞느라 고생을 한참 했는데 그거도 다 무용이 됐잖아.’

위에 있는 교도들은 이교도가 조용히 귀빈관에 머물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적웅의 생각은 달랐다.

‘당가가 냄새를 못 맡을 리가 없어. 반각은커녕, 귀빈관에 발을 들이는 이곳으로 올 거야.’

다른 이들은 잘 몰라도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기로 유명한 게 당가다.

그런데 고작.

약초 몇 개 섞었다고 몽환약 냄새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도 직계라는 사람이?

만에 하나는커녕.

천만에 하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빈관이라도 교도가 아닌 이들로 채울 걸.’

원래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끼어들지 않는 게 당가.

허나, 누구라도 악취를 풀풀 뿌리는 이가 자신을 대접한다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겠는가?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전원이 그렇다면 말이다.

‘그래도 시간 벌이라도 해두라 했으니 다행이지.’

누군지 모를 당가의 직계에겐 한독거리도 안 되겠지만, 찰나의 순간이라도 벌어줄 수 있는 이들.

문득 위에서 무력하게 당할 단주의 얼굴이 떠오르자, 적웅은 절로 실소를 흘렸다.

‘가짜 피독주 좀 쥐었다고 좋아하는 거 봐. 진짜라고 해도 당가 놈들이 미쳤다고 암기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고 독만 쓰겠냐? 그러니까 네가 일류를 못 벗어나는 거야.’

속으로 단주를 씹던 적웅은 문득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재빨리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예상대로 모퉁이에서 교도 한 명이 튀어나왔다.

“지고하신…….”

“바쁜 상황에 인사는 됐다. 무슨 일로 날 찾았지?”

“본교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우매한 늑대가 가르침을 어기고 양들을 포식하러 올 테니 직접 권능을 행사하여 막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다. 그러겠노라 전해라.”

선지자를 연기하는 만큼 여유롭고 절도 있게 한 발씩 교도를 지나치는 적웅.

허나, 그런 적웅이 이상하다고 느낀 교도는 적웅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선지자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잠시 챙길 것이 있다.”

“예? 그런 거라면 제게 말씀하시면 직접 가져오겠습니다. 선지자님께서는…….”

“아, 시간 없는데 쫑알쫑알 귀찮아 죽겠네.”

“켁…….”

짜증스러운 눈을 한 적웅이 교도의 목을 낚아채더니 단번에 부러뜨렸다.

─우드득.

단말마의 비명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버린 교도.

그 시체를 보던 적웅은 괜히 발길질했다.

“안 그래도 보통 놈이 아닌 거 같은데 시간 끌고 있어.”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한 번 더 발길질한 적웅은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재차 발걸음 옮기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평소에 계시라고는 지들 요구사항만 말하던 놈들이 뭐? 막으라고? 딱 봐도 전력 비교용 말이 되라는 거잖아.”

별호에 몽환약이 들어가는 걸 보면 알겠지만, 적웅의 무력은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적웅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던 건 특유의 눈치 덕분이다.

그런데, 그런 적웅이 계시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는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뭐, 됐어. 어차피 난 혈옥만 챙겨서 나가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떠나면 다 상관없는 일.

적웅은 지하에서 만들던 혈옥만 가지고 떠날 생각으로 혈옥을 만드는 공동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그마한 지하 공동.

정중앙에 혈색의 구슬이 놓여 있고, 이지를 상실한 사람들이 겹겹이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들 밑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와 중앙에 있는 혈색의 구슬에 응집되는 중이었다.

“어어? 선지자님. 여긴 어쩌신 일로…….”

“잠시 상황을 보러 왔다. 지금 혈옥의 완성도는 얼마나 됐지.”

“대략 8할 정도 완성됐습니다.”

“8할…… 상당히 안타깝네.”

“최선을 다하곤 있습니다만 입교희망자가 줄어 속도가 더딘 듯합니다.”

“알았다.”

뒤에서 혈옥을 관리하던 교도가 뭐라 떠들든 관심 없다는 일축한 적웅.

이내 발걸음을 놀려 냉큼 혈옥을 잡아 챙겼다.

“서, 선지자님?! 가, 갑자기 그걸?”

“지금은 혈옥을 이렇게라도 옮겨야 하는 비상 상황이다. 너도 빨리 자료를 불태워라.”

“예? 예? 아, 예! 움직이겠습니다!”

적웅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혈옥을 지키던 교도가 권위적인 명령에 그런가 보다 하고 이동하려 하자, 적웅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맺혔다.

‘너도 여기 남아서 미끼를 해줘. 그래야 내가 도망칠 시간을 벌잖아?’

혈옥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필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터.

자신이 도망칠 시간을 좀 더 벌었다는 생각에 적웅은 미소를 지으며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쪽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단순히 겁에 질려 외치는 게 아닌, 명백히 누군가를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였다.

“어떻게 벌써?!”

산 사람이 있는 곳은 입교희망자를 모아놓는 수용소밖에 없으니 조금 떨어진 곳이긴 했다.

허나, 잠깐이라도 버틸 줄 알았던 교도들이 아무 소리 없이 당했고, 적이 멈추지도 않고 지하실로 내려왔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머리 굴리는 게 특기인 적웅조차 당황할 정도로 예상외의 속도.

그러나 적웅은 금방 평정을 되찾고, 살길을 찾았다.

‘사람이 살아 있단 건 결국 인질들까지 죽이진 않았다는 소리다.’

지금 들어온 게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일단은 인질의 목숨을 생각하는 놈이라는 판단이 서자, 적웅은 재빨리 옆에 있는 여인을 잡아채며 허공에 대고 외쳤다.

“움직이지 마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인다!”

날카롭게 변한 손톱을 여인의 목에 들이댄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적웅.

누가 보면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곤 오직 적웅 밖에 없는 곳에서 꿋꿋이 홀로 어둠과 대치하길 잠시.

적웅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어둠 속에서 사람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눈치가 정말 좋아. 그렇지 않아?”

무려 나이에 맞지 않는 언행을 구사하는 동시에.

꾀죄죄하면서 단장한 차림을 한 아이가 말이다.

“뭐, 뭐야? 얘잖아? 아니지, 네놈은 대체 누구냐!”

“궁금해? 그럼 여기서 문제.”

“뭐?”

적웅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아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겨누며 물었다.

“내가 처음에 눈치가 좋다고 한 쪽은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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