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41화
“큭……. 괜찮으십니까! 공자님!”
난데없이 날아온 검을 막고 미끄러지듯 두어 걸음 물러나는 흔유.
호위를 위해서 묵직한 검격을 곧이곧대로 받아 제대로 흘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안위를 걱정하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었다만…….
“저요? 저야 당연히 괜찮죠.”
내가 더 강한 시점에서 의미 없는 일이었다.
옛날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 와서 이런 기습을 당하기엔 내 수준이 너무 뛰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옛날이라고 해도 당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학한객잔으로 오던 길에 나던 냄새.
흔유가 느끼지 못할 만큼 옅긴 했어도 내겐 코를 틀어막게 하는 냄새가 진동했으니 말이다.
애초에 주변에 숨어 있는 수호대가 나서지 않은 건 또한, 여유로운 내 모습을 봐서일 거다.
그렇기에 나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습을 날린 이에게 물었다.
……바로 종남파의 무인에게 말이다.
“종남파가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를 공격한 겁니까? 그것도 비겁하게 기습을 하면서 말입니다.”
처음 기습이 날아올 때, 반사적으로 뒤를 보자, 놀랍게도 삿갓을 쓰고 종남파의 무복을 입은 이가 서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아무리 종남파가 당가와 연이 없고, 혈교와 연을 맺은 이들도 있다지만, 대놓고 드러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간 사칭이 아닌가 싶었지만, 눈앞의 무인이 휘두른 검을 보고 나니 9할 이상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은 여지없이 종남파의 무인이라고 말이다.
“원한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오. 어디까지나 인사 차원이지.”
미안하다는 어투도 아닌 담담하게 짝이 없는 종남파 무인의 말.
분명 나한테 말하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말을 허공을 맴도는 듯한 기분이었다.
‘몽유병 환자가 하는 혼잣말을 듣는 기분이야…… 그렇다면 설마?’
초점이 없는 목소리와 지독한 냄새.
거기다. 흔유가 말했던 정보로 인해 무인의 상태가 심히 의심되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눈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겠으나, 지금은 삿갓 너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확인해 보면 그만이지.’
불확실한 요소가 있다면 확인해 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앞을 막고 서 있는 흔유를 사뿐히 지나며 바람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제 인사도 받으시죠.”
찰나의 순간에 거리를 좁히자, 당황한 채 반격하려는 종남파의 무인.
하지만 일류 수준에 불과한 그가 내 손길을 막아낼 리가 만무.
삿갓은 여지없이 벗겨졌다.
“이런…… 이게 무슨 무례인가?”
그러자, 드러나는 무인의 두 눈.
총기를 잃고 흐릿하게 짝이 없는 그 두 눈을 본 난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이미 중독됐군.’
지금 종남파의 무인이 중독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례는 그쪽이 먼저 행했습니다만…… 뭐, 지금 잘잘못을 따지기엔 늦은 것 같군요.”
“왜지?”
“그쪽은 이미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하는 상태이니까요.”
“후우…… 후우…… 뭬야? 내가? 대 종남의 일대제자인 내가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한다고?”
총기를 잃은 눈.
분명 대화하고 있음에도 멍하고 초췌한 얼굴.
마지막으로 갑작스럽게 끓어오르듯 흥분하는 건 모두 내 확신을 뒷받침하는 근거.
그리고 이 은은하게 지독한 냄새까지 합한다면 답이 나왔다.
날 기습한 종남파의 무인은.
아편에 중독됐다는 답이 말이다.
“아편이라니. 아무리 말코 도사, 말코 도사라 하지만 이건 선을 확실하게 넘었잖습니까.”
“네놈?! 그걸 대체 어떻게?!”
아편을 입에 올리자, 놀라다 못해 끌어 오르는 무인.
누가 봐도 알 만큼 제대로 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말해드리긴 어려우나, 제정신 유지 못 하는 걸 보면 다섯 살짜리 꼬맹이도 피할 겁니다.”
“알아버렸구나…….”
다시금 식어 버리듯 조용해진 종남파의 무인.
언뜻 보면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는 듯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약에 취해 몽롱하게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건지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하는 무인.
처음에는 왜 기습을 했는지 이유라도 들어보려 했으나, 이런 약쟁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기에 원래 가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공자님. 그냥 두고 가시는 겁니까?”
“어, 학한객잔에 가보면 뭐든 알겠지. 얻어낼 게 있든 말든 상황파악이 우선이야. 괜히 일 벌이지 말자.”
먼저 공격받은 것도 나고, 눈앞의 도사는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 좋았다.
그러나 똥개라도 제 집 앞에선 먹고 들어가는 법.
괜히 다른 이가 봐서 종남파와 오해를 산다면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오해를 풀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할 거다.
‘누구 좋으라고 그런 일을 해. 언제나 혈교도를 잡는 게 우선이지.’
그렇기에 기습을 당했더라도, 일단 학한객잔의 일 먼저 해결하기 위해 무시하기로 했다.
……애초에 약에 찌든 건 약 문제를 해결하면 저절로 해소될 테니 말이다.
“학한객잔으로 간다고 했소?”
우리가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총기를 되찾은 무인의 눈.
이번엔 멍하지도.
그렇다고 흥분하지도 않은 눈으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학한객잔은 이쪽이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가려는 곳은…….”
“귀빈은 여기서 대우하오.”
“…….”
흔유가 대답하자, 단번에 말을 끊은 종남파의 무인.
갑자기 말이 끊긴 흔유가 눈을 찌푸리며 그냥 무시하려고 하자, 갑자기 또, 흥분해서 검을 치켜세웠다.
“귀빈관은 이곳이라고 했다!”
아까와 같이 검을 뿌리는 종남파의 도사.
무슨 세뇌라도 당한 건지 우리가 학한객잔으로 가지 못하게끔 하겠다는 듯 공격해 왔다.
“하아…… 귀찮게 구는 건 거기까지 하시죠. 기습당하긴 했어도 할 일도 많은 마당에 종남파의 안마당에서 날뛰고 싶진 않으니 말입니다.”
학한객잔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아니, 지금 눈앞의 종남파 도사를 보면 혈교도가 관련된 게 분명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여기서 드잡이질 할 시간은 없었다.
“격식에 맞는 곳으로 가거라!”
그러나 눈앞의 도사는 놔둘 생각이 없는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공자님! 제가 막겠습니다!”
도사가 대뜸 검을 휘둘러오자, 아까처럼 막아서는 흔유.
도사의 수준이 흔유와 엇비슷한 수준이기에 가능한 한 자신의 선에서 막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하아, 별 수 없나.”
웬만하면 힘을 쓰지 않으려 했건만, 이렇게 극성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다른 법.
앞으로 나서려는 흔유를 뒤로 잡아당기며 직접 검 앞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고, 공자님?”
“흡.”
짧은 기합과 함께 뱀처럼 뻗어 나가는 손.
빠르게 내려쳐지는 검의 투로를 읽고 따라간 뒤 감싸 부드럽게 힘을 상쇄시켰으며, 이어서 힘을 주자, 검이 공중에서 미동도 안 했다.
“어, 어떻게 우리의 검을? 천하삼십육검을 어떻게 읽은 것이냐!”
약에 찌들어 흥분과 멍함을 오간다고 해도 그도 일단 무인.
자신의 검이 투로가 읽히는 것을 넘어, 완전히 파훼된 걸 보고 큰 충격을 먹은 모습이었다.
“천하삼십육검을 읽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파훼한 건 제대로 된 천하삼십육검이 아니었다.
“본디 종남의 검은 무겁습니다. 팽가와 같이 패도적인 기세가 아닌, 근엄하고도 진중한 중검이죠. 근데…….”
손아귀에 힘을 주고 힘껏 당기자, 저항 없이 딸려오는 검.
무릇 무인이라면 제 무기를 뺏기는 일따우니 절대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사는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검을 내줬다.
“이 검은 가볍기 짝에 없군요.”
태앵.
검을 땅바닥에 던져버리자, 볼품없는 소리를 내는 검.
검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다행히 그걸 도사도 느꼈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덜덜 떨었고, 자연스레 일염이가 다가가 혈을 점해 재웠다.
“대, 대단하십니다. 공자님. 아무리 수준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종남의 검을 단번에 파훼해 버리시다니…….”
“아까 말했듯이 저 도사가 검을 제대로 못 다뤄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본디 어느 무공이나 그렇듯이 제대로 펼치면 막을 수가 없으니 말이죠.”
다른 문파도 그렇지만,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도 성취가 높으면 높을수록 무서운 무공.
사실 고수가 펼치는 검 중에 매섭지 않은 검이 있냐만은, 36방위를 단번에 공격하는 무공이 결코 약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별 힘도 안 들이고 파훼해 내신 거잖아요. 정말…… 부문주님께서 왜 그렇게 극찬을 하셨는지 이제 좀 알겠네요.”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도사가 시간을 벌려고 했던 걸 보면 뭔가 심상치 않네요. 혹시 지부에 있는 인원들 호출 가능합니까?”
“가능하긴 한데…….”
말하다가 만 흔유는 갑자기 뭔가 듣는 듯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공자님. 정보를 얻을 수 있게끔 수호대주님이 인원을 차출해서 직접 데려오겠다고 하십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한시 빨리 학한객잔으로 들어가죠. 귀빈관으로 들여보내려는 걸 보면 저희가 원하는 건 저쪽에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치고 객잔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흔유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만요. 공자님. 정보는 안 기다리십니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약에 취한 사람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기습했습니다. 단순히 지나가다가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저희를 귀빈관으로 이동시키려 했던 걸 보면 뭔가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더더욱 위험한 거 아닌가요? 시간 끌 목적으로 인원들을 내보냈다면 당연히 여러 명을 보내야 하는데, 저 도사밖에 안 나온 걸 보면 인원들을 객잔에 집중해서 공자님을 노릴 생각인 듯합니다. 물론, 다른 경우도 배제할 순 없긴 합니다만…… 만약 예상대로라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꼴입니다.”
“혈교들이 모여서 저를 노린다라…….”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이라며 만류하는 흔유.
최대한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으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 있었다.
“그럼 저야 좋죠.”
그건 바로 내가 바라던 일이라는 점이다.
“예? 공자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나야 좋다는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흔유.
그게 대체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미간이 좁히며 물었다.
“호랑이면 어떻고, 또 사람이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둘 다 독 앞에선 똑같이 무력한 존재입니다.”
일망타진.
한 번의 그물질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말.
주로 한 번의 시도로 여러 목표를 한 번 충족할 때 쓰는 말인데, 이는 당가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사자성어였다.
왜냐면…….
“원래 독은 독으로 잡는 거거든요.”
이전에 몇 번이나 언급했듯이.
독이야말로 대량살상에 최적화된.
가장 강한 무기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