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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38화 (13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38화

허드렛일할 사람을 거부하려 하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일염이.

사람에게 붙이기 이상한 단어를 쓰며 끼어들었다.

-모방 대상? 그게 뭔 소리야? 대체 뭘 베낀다는 건데?

-일전에 신화문이 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던 말 기억하십니까?

-어, 기억하지.

-본디 마공이란 성취가 빠른 대신 부작용이 따르는 법. 신화문의 무공은 익히면 익힐수록 감정을 잃습니다.

-아, 그래서 신화문도들이 그랬구나.

언제나 신화문을 방문할 때면 감정이 없어 보이던 신화문도들.

예전에는 그게 단순히 감정을 죽이는 훈련을 받아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일염이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그러면 문도들은 전부 감정을 잃은 상태인 거야?

-예, 양성 과정을 마쳤을 때까지 감정을 잃지 않은 아이는 아예 마공을 익히지 않은 아이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흔유를 제외하면 말이죠.

오직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감정을 잃어버리는 양성 과정.

저번에 보면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이 단순히 숫자로 불리던데, 그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유지할 정도면 여간 정신력은 아닌 듯했다.

-그럼 모방 대상이라는 건 부문주의 저런 성격이 흔유를 베껴서 나온 거고?

-맞습니다.

-허어…….

그 말인즉슨, 저렇게 활발해 보이는 부문주도.

이전부터 살갑게 굴던 부문주도 실상 감정 없는 사람이라는 것 아닌가.

-비단 부문주에게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정보원 일을 하다 보면 들킬 염려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인원들이 모방하는 게 흔유입니다.

-그래? 근데 행동거지만 모방하는 거면 아무나 데려와서 앉혀놔도 되는 거 아니야?

-예전에 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불가능했습니다. 가능한 건 오직 정규 양성 과정을 거쳤음에도 감정이 남아 있던 이들. 흔유와 비슷한 아이들뿐이었습니다.

-그럼 모방 대상은 흔유만 있는 거야?

-예, 역사적으로 보면 몇 명이나 있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오직 흔유뿐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무력은 별거 없지만, 신화문의 최중요 인물 중 하나라는 소리.

옛날 옛적에 흔유가 청성파에 흠씬 두들겨 맞고 오자, 부문주가 왜 그렇게 화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니, 사실 청성파에게 화를 낸 것도 결국 모방한 건가? 그렇다면 실제로는 화가 안 났다는 소리잖아?’

머리론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이 없어본 적이 없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어차피 그거 신경 써봤자, 내 머리만 아플 게 분명했기에 대충 넘기고 일염이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네. 근데 너는 흔유랑 성격이 다르잖아. 너는 다른 사람을 베낀 거야?

-저는…….

질문에 잠시 말끝을 흐리는 일염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멈춰서 있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는 말을 돌렸다.

-그건 나중에 알려 드리죠. 그것보다 제가 하고팠던 말은 흔유가 가진 바 실력에 비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에 관해선 지금 언급하고 싶진 않은 표정.

그렇기에 나는 굳이 캐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구나. 그래서 데려가 주길 원한다는 거야?

-예. 이 아이도 강호를 경험하긴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감정 없는 문도들과 가기보단 공자님과 갔으면 하는 겁니다.

감정 없는 놈들과 보낼 순 없으니 웬만하면 받아달라는 일염이의 말.

하긴, 일염이가 정체를 숨겼다면 모를까.

이미 드러낸 시점에서 허드렛일 따위를 시킬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나는 흔쾌히 수락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허드렛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데려가도록 하죠.”

“만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됐네요. 잘됐어요.”

“…….”

뭔가 큰 고비를 넘긴 듯 뛸 듯이 기뻐하는 둘.

누가 보면 장원급제라도 한 것처럼 부둥켜 끌어안는 걸 보니 이게 맞는 선택인가 싶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앞날이 험난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괜한 선택을 했나.’

부문주는 그래도 공과 사를 구분해 그림자 속에 녹아 있는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본판이 되는 흔유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시답잖은 생각에 몸서리치고 있자, 부문주가 다가와 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참, 공자님. 팽가에 당가가 개문한 소식을 알리자, 천괴도 대협께서 전서를 보냈습니다. 어서 읽어보시죠.”

부문주가 잊었을 리가 없음에도 잊었다는 양 주머니를 뒤적여 전서를 꺼내 건네주길래 바로 펼쳐봤다.

[당가가 개문한 소식은 들었다. 약속 지킨다고 팽가까지 급히 오지 말고, 오는 길에 서안에 있는 학한객잔에 들러 복건노주라도 사 와라.]

간단한 게 최고라고 했던가.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딱 용건만 적힌 전서.

급히 올 필요는 없으니 천천히 오라는 건 이해가 갔는데, 난데없이 나온 생소한 이름에 부문주에게 물었다.

“복건노주가 뭡니까?”

이름을 듣자 하니 대충 술인 거 같긴 한데, 전생에서도 술을 별로 즐기지 않았기에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복건성에서 만들어진 홍국주 중 하나입니다. 딱히 비싼 술도 아니고,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굳이 객잔 이름을 언급한 거 보면 그쪽 술이 입맛에 맞는 편인가 봅니다.”

비싸지 않으면서 술맛도 괜찮다는 말.

가성비가 좋다는 말에 문득, 남궁공자가 떠올랐다.

‘이왕 남궁세가에 찾아가는 건데, 빈손으로 가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괜히 비싼 술 가져다 드리면 불편해하시겠지.’

술 하나만큼 누구보다 좋아하는 주당.

숙취가 없으면 술이 아니라는 명언을 남긴 남궁공자에게 마땅히 건넬 만한 선물이 없었는데, 때마침 나온 복건노주라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빈손으로 가기 뭐하던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좀 넉넉히 사서 가져다 드려야겠어요.”

“뇌의님께 드리려고요? 아주 좋은 생각이시네요.”

비꼬는 것 없이 순순하게 칭찬하는 부문주.

남궁공자의 술 취향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부문주가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예상대로 괜찮은 술인 듯했다.

“이제 슬슬 가볼게요.”

팽구용의 전서를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떠날 채비를 하자, 에워싼 채로 대기하던 흑의인 열 명이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이전처럼 모습을 감췄다.

“수호대가 공자님과 함께할 겁니다. 물론, 일전과 같이 모습은 드러내지 않을 거고요.”

병 받고 약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흔유와 달리, 보기만 해도 든든한 이들.

신화문에서 제일가는 솜씨를 가진 이들이었기에 굉장히 믿음직스러워 절로 미소가 나왔다.

‘수호대랑 같이 가면 귀찮은 일은 어느 정도 면하겠지.’

일전에 한번 겪어봤던 거로는 단순히 솜씨뿐만이 아니라 눈치 하나도 끝내주게 좋았다.

내가 원하면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하는 수준이었기에 다시금 흡족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올 때 선물 사 오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선물 사 오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부문주.

출발할 때부터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볼 때마다 같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걸 보자 조금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왜냐면 부문주의 저 정 많아 보이는 행동이 실상 일말의 감정도 없는.

그저 명령받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 * *

“가버리셨네.”

당지천이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표정을 싹 지워 버린 부문주.

여전히 말투는 자체는 가벼웠지만, 그와 정반대로 무표정하기 짝에 없어진 눈을 보면 그 누구라도 이질감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곳에 남은 인원 중 이질감을 느끼는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서의 의도는 알아냈나요?”

“예, 예상대로 술 심부름은 핑계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혈교도의 흔적의 실마리를 잡았는지 공자님께 확인시키려는 심산인듯합니다.”

“그런가요.”

역시나 무표정한 눈으로 당지천이 사라진 자리를 보는 부문주.

당지천이 안에서 천일절에게 얼마나 설명을 들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충 보아하니 아직 무림이 어떤 꼴인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당연히 팽구용이 전서를 보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을 테고, 실제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팽구용이 공자님을 이용하려 들었군요. 공자님은 그것도 모르고, 서안으로 가는 거고.”

이유도 모른 채 이용당한다.

본디, 사람이라면 불쾌하기 짝에 없는 일이고 화낼 만한 일이지만, 굳이 설명할 수 있음에도 언급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

현 무림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혈교도를 상대해 보는 게 나아서였다.

“혹시 불쾌하십니까?”

“전혀요.”

문도 한 명의 물음에 고민할 가치도 없이 즉각 답하는 부문주.

호위 대상이 이용당하는 상황이면 신화문에서도 불쾌할 만도 했건만, 부문주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단지, 귀찮은 일에 얽히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

“미리 인원들 보내서 처리하죠. 팽구용의 의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쪽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잖아요?”

“외람되오나 부문주님. 문주님께서 놔두시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이유는요?”

“이유는 딱히 말씀이 없으셨지만, 앞으로 호위 대상의 행보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흠…….”

지켜야 함이 마땅한 호위 대상의 위협 대상을 제거하지 말라.

부문주로선 이해할 순 없는 명령에 천일염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문주는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그렇게 하죠.”

부문주는 대뜸 그러자고 했다.

왜냐면.

천일염이 어떤 명령을 내렸다고 한들, 어차피 자신이 이해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서안에 있는 혈교도에 대한 정보만 문주님게 전달하고, 사용 여부는 그쪽 판단에 맡기기로 하죠. 자료는 가져왔죠?”

“여기 있습니다.”

신화문도가 챙겨온 자료를 찬찬히 보던 부문주는 검토하듯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내 몇 번 서류를 읽고는 다시 신화문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사실 이것도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까 느꼈겠지만, 우리 호위 대상이 조금 많이 무서워졌거든요.”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마공을 익힌 것도, 그렇다고 사파의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장 속도로 눈앞에 나타났어요. 근데 심지어 만사빙귀의 혈통이기까지 해요.”

“확실히 성장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빠르게 나아가도 어느샌가 벽에 마주한 채 멈추는데, 호위 대상은 벽을 마주하기 무섭게 부수더라고요. 그래서 무서웠어요.”

잠시 말을 멈춘 부문주는 왠지 모르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호위 대상이 아니라면 진작에 제거했을 만큼 말이죠.”

“…….”

섬뜩하기 짝에 없는 말.

그걸 들은 신화문도가 입을 꾹 다문 채 부문주를 바라보고 있자, 부문주는 눈가의 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입을 뗐다.

“저도 모르게 문주님께서 들으셨으면 제거당할 소리를 했군요. 잘못했으면 색깔 놀이 당할 뻔했어요.”

“…….”

“자, 그럼. 이런 건 치워 버리고, 앞으로 공자님께 달릴 별호나 생각해 보죠. 이까짓 혈교도 공자님에겐 한주먹 거리도 안 될 테니까요.”

태연자약하게 넘어가려는 부문주.

그런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눈앞의 신화문도는 부문주의 속을 짐작할 수 없었기에.

아니, 정확히는 부문주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그저 조용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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