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32화
사슬 낫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무기를 바꾸며 당지천을 상대하던 천일절.
가져온 무기를 전부 한 번씩 쓰며 당지천을 압박했다.
“일격괴산!”
천일절이 곡괭이를 든 채 당지천의 정수리를 노리자, 당지천은 최대한 고개를 기울이며 피해냈다.
그러자, 천일절은 미소를 띠며 당지천을 봤다.
‘막으려고 하면 충분히 막겠지만, 체력 낭비지. 무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러는 건 멍청한 짓이야.’
곡괭이는 내려치기임에도 무기적 특성으로 인해 ‘선’이 아닌 ‘점’에 힘이 집중되기에 위에서 내려오는 찌르기와 같았다.
당연히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발을 놀리며 피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고, 당지천은 적절한 판단을 했다.
“이번 거 판단되게 좋았어.”
당지천이 곡괭이를 막지 않고 피하자, 칭찬하는 천일절.
오랫동안 비무를 이어온 만큼 천일절도 완급 조절을 하는 중이었는데, 당지천이 충분히 막을 만한 공격임에도 체력 안배를 생각하는 걸 보고 흡족한 미소를 내비쳤다.
……살초를 쓰면서 말이다.
“적수벽석!”
천일절이 이번엔 조금 더 가벼운 연격을 퍼부었다.
아까 전 일격괴산이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걸 담은 무공이라면 적수벽석은 물방울들이 쌓여 돌을 쪼갠다는 말과 같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연격을 퍼부어 적의 방어를 깨버리는 절초였다.
‘체력 안배를 위해서 피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때로는 최선의 방어가 공격인 법.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위협적인 절초는 선수를 쳐야 해.’
이번에는 아까와 반대의 상황.
그렇기에 조금 더 깊게 생각해야 했는데, 당지천은 고민할 것 없이 당연하다는 듯 기합을 내뱉고는 진각을 밟았다.
“흡!”
그러고는 힘차게 권을 뻗었다.
-쾅!
연격이 퍼부어지는 도중 정확한 때, 정확한 곳을 때려 버리는 당지천.
체력 안배도 잊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곡괭이가 내려쳐지는 점에 기를 응축한 것도 칭찬할 만한 대목이었다.
‘진짜 난놈이야.’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눈앞의 당지천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헤매는 구간조차 없으니.
천일절은 가히 솜 뭉치에 물을 들이붓는 듯한 기분이었다.
“형님!”
곡괭이는 통과했다고 판단한 천일절이 쉴 틈도 없이 천일염을 부르자, 당지천이 긴장된 눈초리로 천일염을 예의 주시했다.
왜냐면 굳이 무공을 보지 않더라도, 무기에 따라서 특이한 방식의 운용법이 존재했기에 한시라도 빨리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더 없다.”
하지만 그런 당지천이 무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천일염.
짐이 아직 많긴 했지만, 천일절이 가져온 무기는 떨어졌는지 손을 털고 짐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당지천은 감복한 얼굴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드디어…….”
배우는 게 참 많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녹초가 된 상황.
워낙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더는 비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나른했고, 탈력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이제 쉰다는 생각에 당지천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으려고 하자, 천일절이 그런 당지천을 만류했다.
“무슨 소리야. 아직 안 끝났는데.”
“예?”
허나, 그런 당지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안 끝났다는 천일절.
순간 당지천은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한 번 후비적거리고는 재차 물었는데, 천일절은 그저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무기는 결국 손의 연장선. 무림에는 손 자체를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단다. 권법, 장법, 조법, 지법 등등. 당가에서도 몇 개나 쓰니까 잘 알지? 아 참, 삼촌이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외공도 좀 익혔거든? 금강문이라고 아니? 외공만 익혀서 벽을 넘은 문파인데, 삼촌이 거기 문주랑 많이 친하거든. 그래서 외공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좋지?”
“허…….”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지 허탈하게 웃는 당지천.
듣기만 해도 벌써 5개.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상황인데 최소 5개의 방법의 무공을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던 당지천은 이내 울상을 지으며 사정했다.
“제발 좀 쉬었다가 해요……. 이러다가 죽어요.”
“에이, 원래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야. 봐봐. 그 짧은 사이에 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너도 알 거 아니니.”
“예, 알죠. 그리고 삼촌이 이렇게 밀어붙이시는 게 완급 조절과 체력 안배하는 법을 터득시키시려고 하는 거 잘 압니다. 그러니 교육의 효율을 생각해서 쉬었다 하시죠.”
공손하기 짝이 없이 당지천의 절절한 부탁.
이러다 죽는다며 애걸복걸하며 천일절에게 부탁했지만, 천일절이 보기엔 아직 당지천은 싸울 여력이 남아도 한참 남았었다.
‘아직 독기를 품지 않았어.’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인간은 한계에 달했을 때 성장하는 법.
천일절은 당지천이 성장할 여력이 남았다고 생각해 다시금 주먹을 들어 올리며 선언했다.
“어림없지! 3차전! 바로 간다!”
당지천이 항변할 새도 없이 날아오는 천일절의 권을 받아내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옘병. 작작 좀 하시라고요!”
하지만 당지천이 화를 내자, 천일절은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더 신나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하하! 그거야! 그거!”
이번엔 뭔 초식인지도 외치지 않고, 쏟아내는 연격.
피할 건 피하고, 흘릴 건 흘리며 받아내던 당지천은 끝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폭발했다.
“아, 진짜! 어찌 돼도 전 모릅니다!”
* * *
3차전이라는 소리에 눈이 뒤집혀 삼촌과 드잡이질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분노라는 불길도 체력이라는 연료 없이 탈 수 없었기에 금방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그저 숨을 멍한 눈으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하아……. 하아…….”
비몽사몽 한 정신과 절로 감기는 눈.
한계에 몰아 붙여질 대로 몰아 붙여진 만큼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이젠 팔 하나 드는 것조차 힘들 만큼 지쳤다.
‘쉬고 싶다.’
피칠갑을 한 몸처럼 피폐해진 정신.
시간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끓어오르던 분노도 피곤에 짓눌려 이제는 쉬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들 정도로 축 처졌다.
“뭐야? 벌써 지쳤어?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간 거야! 아, 우리 조카 불쌍하게도 나이를 먹어가지고 체력이 후달리기 시작했구나? 저런…… 삼촌이 좋은 약이라도 하나 지어줄까? 아니면 영약이라도 구해줘? 아, 맞다. 내 건망증. 안 그래도 어머니께서 손주 가져다주라고 좋은 약 하나 만들어놓으셨는데, 그걸 챙긴다는 걸 까먹었네.”
그런데도 지칠 대로 지친 나와 달리 멀쩡해 보이는 삼촌.
사람은 사람인지라 어느 정도는 지친 거 같긴 한데, 나보다는 확연히 멀쩡한 모습으로 도발을 감행하는 중이었다.
“얄밉지? 한 대 때려주고 싶지? 코오오옥 쥐어박아 주고 싶지? 그럼 최선을 다해 쓰러뜨려 보라니까.”
이전까지와 달리 제자리에 선 채 오지 않는 삼촌.
몸으로 할 수 있는 기이한 건 죄다하더니 이제는 몸으로 하는 것 중 가장 자신 있다는 금강문의 반탄공을 시전한 채 뚫어보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뭐해? 안 움직여? 아이, 삼촌 여태껏 많이 움직였잖아. 그런데 또 움직이라고? 그건 좀 봐주지 않을래? 이게 사람이 나이가 들으면 여기 아프고, 저기 아프고, 막 아파서 오래 움직이기가 힘들어. 아, 생각해 보니 네가 그래서 안 움직이는 거구나? 너도 나이 들어서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거구나? 아이고, 젊은 나이에 참 안 됐다.”
삼촌이 원래의 주특기가 수다였던 만큼 숨도 안 쉬고 도발을 감행했다.
물론, 삼촌도 피곤한 탓에 창의적인 도발은 안 되는지, 그냥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썼는데, 웃기게도 거의 눈을 반쯤 감고 있는 탓에 별 영향은 없었다.
단지, 어떻게 뚫어야 할지 고민될 뿐.
‘아니, 뭔 외공이 이렇게 단단해. 하류잡배들이나 쓰는 거 아니었나? 거기다. 내 힘을 그대로 돌려주니 감당이 안 돼.’
지금 삼촌이 펼치는 반탄공은 삼촌이 잘 안다는 금강문의 무공.
솔직히 들어본 적도 없는 문파의 무공이었기에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나 싶었는데, 지친 상태로 공략하려 하니 이만큼 강력한 무공이 없었다.
‘원래 이런 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는데, 삼촌이 지치질 않으니…….’
경지의 우위도 의미가 없어진 상황.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체력 안배와 덩치에서 오는 맷집 차이인지, 이미 삼촌보다 내가 지쳐서 도저히 뚫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무인이어도 덩치가 중요한 건 마찬가지였구나…….”
피곤한 탓에 무심코 나온 속마음.
그걸 들은 삼촌은 잠깐 웃더니 내게 물었다.
“덩치가 중요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맷집 차이가 심해서 하는 소리예요. 저는 맞은 만큼 피해 입고 지치는데, 빙궁 사람들은 하나같이 크니까 맷집 면에서 유리하지 않나 싶어서요.”
“어…… 따지고 보면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도 우리 집안 사람이잖아. 그러니 상관없는 거 아니야?”
“저는 따뜻한 지방 사람이라 베르그만의 법칙에 영향 안 받습니다.”
“베르…… 뭐?”
“아…….”
넋이 나간 탓에 다시금 튀어나온 말.
애초에 베르그만의 법칙도 크기와 관련되어 있을 뿐, 맷집하고는 연관 없는 이야기였다.
“잠시 정신이 나가서 헛소리했으니 신경 쓰지 마시죠.”
헛소리를 했다고 하니 대충 넘어가는 삼촌.
뭔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인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고, 그저 나를 재촉하기만 했다.
“뭘 그렇게 헛소리할 정도로 고민해.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 그럼 그냥 단순히 네가 제일 잘하는 거 하면 돼. 원래 극한의 상황이 됐을 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거든. 그러니 한계에 달했을 때, 난공불락의 벽을 마주한다면 그저 네가 가장 잘하는 걸 하면 돼.”
내가 제일 잘하는 거?
그게 뭔데?
‘혈룡파천권을 말하는 건가?’
삼촌과 상대하면서 제일 자주.
효율적으로 쓴 게 혈룡파천권이다.
그래서 삼촌이 혈룡파천권을 이야기하나 싶었지만, 이내 그건 아니라고 느꼈다.
‘그건 아닐 거야. 분명 삼촌이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테니 그걸 알아야 하는데…….’
여태껏 삼촌의 이해가 가지 않던 행동도 실상 모두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다른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삼촌의 뜻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내가 잘하는 거라…… 나는 어떤 인간이지? 나의 본질은 무엇이지?’
나에게 묻는 물음.
머리가 안 돌아가는 상황에 묻기엔 다소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이었지만, 나는 고민할 것 없이 답을 낼 수 있었다.
‘나는 중원 유일의 화학자다.’
무인인 동시에 중원 유일의 화학자.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독을 알면서 알려지지 않은 독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
모두가 잘못된 상식에 속아 비웃음 지을 때도, 진실만을 고집하며 초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제가 잘하는 걸 하면 됐어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바로 알게 된 삼촌의 의도.
이젠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에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삼촌에게 다가가 아무 독이나 꺼내 흩뿌렸다.
“뿌립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행동에 제지할 만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고, 무방비하게 움직여 단번에 쳐낼 만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생각이 맞았는지 삼촌은 씨익 미소를 지을 뿐, 그저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
그러고는 이내 자세를 풀더니 기침하면서 어깨를 쳐줬다.
“콜록, 콜록, 정답이다.”
의도한 바를 명확히 짚었다는 삼촌의 말.
나는 그 말에 감사의 미소를 짓는 동시에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