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30화
쓰라린 어깨.
빠르게 피하긴 했으나, 설마하니 살초를 쓸 줄은 몰랐기에 얕고 넓게 베여 옷에 피가 배어 나왔다.
“대체 왜 이러세요!”
영문 모를 상황.
기껏 3년 만에 처음 봐서 한다는 일이 살초를.
그것도 진심을 듬뿍 담아 날리는 일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글쎄. 내가 왜 이럴까?”
허나, 의문에 답해줄 생각이 없는지 삼촌은 여유로운 얼굴로 다음 검격을 날렸다.
-팡!
여전히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
이번에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주먹을 들어 막아냈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건 막지 못했다.
‘삼촌이 조금만 강했다면 아예 목이 날아갔을 거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 가득한 살초.
한기를 풀풀 뿜어대며 날아온 검격은 마치 눈사태를 보듯 빠르고 묵직했다.
그렇기에 제대로 반응했음에도 손에 충격이 좀 남을 정도였는데, 이걸 막을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삼촌과 나의 실력 차이 덕분이지, 삼촌이 봐줘서가 아니었다.
‘절정 이상. 그것도 벽에 근접한 상황.’
빙궁에 막 갔을 땐 삼촌의 수준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순히 절정 고수.
대장장이였던 만큼 녹슨 실력일 거라 생각했다.
허나, 지금 삼촌의 본 실력은 보니 그게 얼마나 허황된 추측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챙! 챙! 챙!
다시금 날아오는 검격.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사뿐 이어지는 연격은 검술이 아닌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기에 재빨리 단검을 꺼내 막았다.
‘큭……. 분명 실력은 나보다 아래인데, 왜 이렇게 막기가 벅차지?’
못 막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신묘하기 짝에 없는 검술은 내가 알고 반응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반응 속도로 따라잡는 것에 불과하기에 정말 막기 급급한 수준이었다.
‘일단 장소를 옮긴다.’
근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면 모를까.
그게 안 되면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기에 재빨리 응접실을 나와 가주전 밖으로 향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랑 일염이도 뭔가 아는 눈치인 듯한데 이유를 모르겠네.’
도무지 짐작 가지 않는 이유.
수다스럽긴 해도 다정다감한 듯한 삼촌이 이렇게 작정하고 죽이려 든다는 건 가히 상상도 못 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삼촌도 예상했을까.
삼촌이 큰 짐 보따리를 들고 가주전 밖으로 따라 나오면서 내게 물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지?”
“예, 좀 당황스럽네요.”
“그럼 좀 더 당황해. 이럴 생각이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니까.”
-쿵.
말 끝나기가 무섭게 짐 보따리를 떨구고 달려드는 삼촌.
여전히 이번 검격도 날카롭긴 했지만, 이번에도 넋 놓고 당할 생각은 없었기에 곧장 암기를 날려 보냈다.
“암기도 굉장히 잘 다루는구나. 그런데 그거 아니?”
가소롭다는 듯 운을 뗀 삼촌은 보법을 펼치며 슬쩍 암기를 피했다.
그것도 무려.
“추뢰신보?!”
당가의 추뢰신보를 펼치면서 말이다.
“암기를 피하는 데 당가의 추뢰신보만 한 게 없거든.”
낯설기 짝에 없는 빙궁의 검과 어우러지는 추뢰신보.
서로 연관 없는 무공을 합친 만큼 불협화음이 일어날 법도 하건만, 삼촌은 궤를 같이하는 무공을 쓰는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지.”
-팅!
아까와 비슷한 투로로 오는 검을 막아내자,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단검.
검에 실린 힘 자체는 아까와 비슷했으나, 이번엔 내 움직임이 읽히면서 검에 실린 힘을 제대로 흘리지 못했다.
“쓰읍…….”
얼얼한 손바닥.
그보다 더 얼얼한 건 이해하기 어려운 작금의 상황이었다.
‘추뢰신보를 쓰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어. 과거에 당가를 배신한 어중이떠중이들이 추뢰신보 같은 하위 무공을 전수하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과거부터 이곳저곳에서 견제를 많이 받던 당가고, 회유를 당한 이들도 있었다.
비록, 그들의 실력이 높지 않고, 당가에서 적극적으로 척살하러 다녔다고 한들, 한 번 퍼진 이상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그러니 삼촌이 추뢰신보를 쓰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간결하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격은 대체 뭐냐고!’
정녕 이해할 수 없는 건 삼촌이 서로 결이 다른 무공을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사실 추뢰신보가 빙궁의 무공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걸까?”
여유롭게 생각 좀 하려 했더니 다시금 검을 휘둘러 오는 삼촌.
여전히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살초를 날려왔기에 이제는 나도 본심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의문은 나중에. 지금부터는 나도 본심을 낸다.’
추뢰신보가 읽힌다면 보법을 바꾸면 그만.
추뢰신보를 펼치던 발에 힘을 주고, 무게 중심을 틀어 크게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기를 끌어올리며 가벼웠던 기세를 무겁게 바꿨다.
‘독룡진천보.’
가볍고 읽기 쉬웠던 움직임이 순식간에 저돌적으로 변해 버리자, 삼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주먹에 기를 불어넣어 검을 후려쳤다.
-텅!
뭐에 박기라도 한 듯 굉음을 내며 뒤로 크게 젖혀지는 검.
단순히 힘과 힘의 싸움이 아닌,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삼촌의 움직임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혈룡파천권 투쇄.’
한순간 텅 비어버린 삼촌의 명치.
당연하게도 한 방 먹일 절호의 기회였기에 놓치지 않고, 혈룡파천권의 초식으로 삼촌에게 주먹을 날렸다.
-퍽!
‘얕았다.’
채 피할 틈도 없이 맞고 날아가는 삼촌.
꽤 멀찍이 날아가는 걸 보면 정통으로 직격한 것 같았지만, 막상 소리도 그렇고, 손에 남은 감각도 얼마 없는 걸 보면 정통으로 맞춘 건 아니었다.
“아이고, 몇 합 겨루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심을 내보일 줄이야. 역시 우리 조카님이네. 진도가 참 빨라.”
그걸 증명하듯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착지하는 삼촌.
참 태평하게 말하는 걸 보면 별 영향이 없긴 했나 보다.
“그럼 이제 내가 이러는 이유도 알 것 같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네요.”
처음에 영문도 모르고 공격받아 당황했는데 지금 삼촌을 상대하다 보니 하나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곧 있으면 제가 무림에 나가기 때문이잖아요. 경지가 낮더라도 경험에서 밀릴 수 있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한들,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배신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러시는 거 같은데요?”
“정답. 역시 똑똑하니 바로 아네.”
예상을 말하자 곧장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삼촌.
방금까지만 해도 살초를 날리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장하다는 얼굴을 보였다.
“의도는 이해했습니다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이유가 있지.”
꼭 이래야만 했다는 듯 단언한 삼촌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네 또래애들보다 너무 강해졌어. 그러니 오만하지 않게끔 느끼게 해줘야지.”
“제가요?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리 제가 강해진다고 한들, 자만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네가 평범하게 무림에 나간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협객이잖니?”
한순간 삼촌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더니 삼촌은 슬픈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본디 위험이 있다면 피해 가는 것이 사람인데, 협객이란 족속들은 오히려 위험에 자신을 던지지. 네가 지금 형님께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한들, 그렇게 계속 죽을 자리를 찾아가면 결국 못 지키는 상황이 올 거다. 무림은 드넓고, 다양한 이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지금은 난세거든.”
삼촌이 옆에 있던 짐 더미로 다가가 주머니를 하나 꺼내 던져주길래 받아서 자세히 살펴보자, 주머니 안에는 하나같이 해골 모양의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해골?”
“그게 혈교의 상징이다. 당가는 봉문에 들었기에 모르겠지만, 지금 무림 전역에서는 혈교도가 날뛰는 중이다. 비록, 지금은 잠시간 힘을 비축하기 위해 소강상태에 접어들긴 했으나 엄연히 그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야.”
“아, 그래서…….”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정사파 가릴 것 없이 어디에나 혈교도가 많이 침투해 있다고 하더구나.”
“무림을 잘 모르는 제게는 위험하겠군요.”
“맞아. 지금의 너는 경험 부족이야.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경험만 있으면 완전무결해진다는 소리지.”
“그래서 삼촌은 제게 경험 부족을 깨우치게 하려고 오신 거군요.”
“아니.”
하지만 예상과 다르다는 듯 삼촌을 고개를 젓더니 이해 못 할 말을 했다.
“난 네게 부족한 경험을 주려고 온 거다.”
“예, 경험을 채워주신다니요?”
비무를 통해 얻는 게 많다고 한들, 한 명만 상대해서 경험을 쌓긴 어렵다.
왜냐면 사람 한 명에게 얻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
왜, 은거기인들의 제자들도 처음에 경험이 부족해 고생하지 않는가.
그게 다 무공마다 대처법이나 상성이 달라서 그런 거다.
그런데 그걸 한 사람이 다 가르쳐 준다는 건 말 그대로 무림에 있는 무공을 거의 다 안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겠는가?
당연히 말이 안 돼서 의문을 표하니 삼촌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 그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검만 치켜세울 뿐이었다.
“네가 진도를 빨리 나간 만큼 나도 진도를 빨리 빼야겠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갈 테니 한번 제대로 와봐.”
다시금 아까의 기세를 내비치는 삼촌.
정확한 설명은 없었지만, 일단 삼촌하고 싸우는 것도 도움이 될 건 확실했기에 나도 기도를 가다듬으며 달려들려고 할 때 삼촌이 갑자기 왼손을 들며 말했다.
“아, 잠깐. 참고로 저 짐 속에 내가 근 1년간. 너만을 위해 만든 암기들이 있어. 그리고 저번에 뭐였지? 이름 모를 광석도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캐 왔어. 어머니 말씀으로는 혈교주의 주술이 걸린 주머니를 주웠다지? 적어도 무림에 나가서 암기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만들어 왔으니까, 이기면 내줄게.”
“그럼 지면 안 내주시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정확해.”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야죠.”
수련은 할 만큼 했다.
앞으로는 무림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데, 암기가 없으면 무림을 오래 돌아다닐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필히 삼촌을 이겨서 암기를 받아내야 했다.
“갑니다.”
이제는 인정사정 볼 것 없기에 초장부터 승부수를 띄우려고 했다.
“재밌네. 그럼 나도 갈게.”
그러자, 삼촌은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검을 살짝 공중에 띄우더니 파지법을 달리하며 읊조렸다.
“매화(梅花).”
이어서 아까 봤던 빙궁의 보법도 아닌.
그렇다고 추뢰신보도 아닌 또 다른 보법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만개(滿開).”
삼촌이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검 주변에 맺히는 수많은 매화의 형상.
실제로는 매화가 아닌 냉기로 이루어진 눈꽃이 피었다.
“아니! 이거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 아닙니까?!”
아니, 아무리 전반부 초식이라고 한들.
화산파하고는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빙궁 사람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쓰는 게 말이 되는가?
애초에 관련 있어도 안 알려줄 텐데?
-쏴아아.
하지만 의문을 표하거나 말거나.
매섭게 쏟아지는 눈꽃의 폭풍.
처음 보는 난해한 검술에 차마 다 막지도 못한 채, 급소만 막아서 온몸에 생채기가 나는 건 막지 못했다.
‘이거 걸레짝이 되겠네.’
혈도와 급소는 피했지만, 옷가지는 완전히 상한 상황.
쏟아지는 화우 속에서도 빈틈을 찾아보려 했지만, 처음 보는 검술이라 막기 급급했기에 반격은 하지도 못했다.
“후…….”
그래도 얼마간 버티니 멎는 폭풍.
처음 만나보는 제대로 된 검에 식은땀을 흘리며 작은 숨을 뱉자, 그와 동시에 삼촌은 잠시 검을 거두더니 이내 발도하듯 검을 뻗었다.
“일수초현(日輸初現).”
“큭…….”
빛살처럼 날아들어 옆구리를 깊게 베어버리는 삼촌의 검.
분명 내가 더 경지는 위고, 감각도 좋을 텐데 매화만개와 달리, 반응했을 땐 이미 몸을 뒤트는 게 내 최선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야? 빠르기로 승부 보는 건 점창파의 사일검법이잖아. 방금까지 화산파 걸 쓰는 거 아니었어?’
예상을 벗어나도 단단히 벗어난 상황.
당황해도 일단 다음 공격을 방어할 준비부터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삼촌의 검은 변했다.
“창궁약연(蒼穹躍鳶).”
-깡!
도무지 읽을 수 없는 투로에 있는 힘껏 주먹에 기를 불어넣어 막자, 비등한 힘.
분명 삼촌보다 몇 배나 많은 힘을 쓴 거 같은데, 겨우 제대로 막는 게 한계였다.
“아니, 삼촌은 대체 뭐 하시던 분이에요? 이 검술들은 다 뭐고요?”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부터.
점창파의 사일검법.
이번엔 무려 남궁세가의 직계만 배운다는 창궁무애검법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무협지에서 표현하던 그대로 펼쳐지는 검법을 보고 넋이 나갈 뻔했다.
……아니, 이미 반쯤 나간 듯했다.
“만사빙귀(萬寫氷鬼) 천일절.”
“예?”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대뜸 끼어드는 아버지.
순간 멍한 상태라 못 들어서 되묻자, 아버지는 다시금 말하셨다.
“모든 걸 베끼는 빙궁의 귀신. 만사빙귀(萬寫氷鬼) 천일절. 그게 네 삼촌이 온 무림을 뒤집고 다닐 때 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