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28화 (12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28화

북경에 있는 하북팽가.

호쾌하고 패도적인 팽가 특유의 분위기 덕에 언제나 소란스럽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소란스러웠다.

왜냐면 오늘은 팽가 내의 혈교도를 색출하는 날이었기에.

-타다다닥.

“잡아라! 한 놈도 살려둬선 안 된다!”

보법을 밟으며 도망치기 바쁜 세 명의 인원과 그 뒤를 쫓는 수십의 인원들.

단순히 장원을 가로지르는 게 아닌 건물들을 이리저리 드나들며 최대한 추적을 방해하려 했지만,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난다면 모를까.

오히려 뒤처졌기에 도망치는 혈교도 무리는 전혀 거리를 벌리지 못했다.

그렇기에 결국.

이름 모를 건물에 포위되었다.

“젠장! 가문 안에서는커녕, 밖에서도 꼬리 하나 드러내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안 거냐!”

“네놈들의 악행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우리라고 모르겠느냐!”

“감히 팽가의 이름을 달고서 혈교에 투신해? 네놈들은 순순히 죽을 거라 기대하지 말아라!”

분개하며 저마다 달려드는 팽가의 인원들.

언뜻 보면 오합지졸마냥 저마다 따로 노는 걸로 보였지만, 실상 자세히 보면 그것마저도 하나의 검진이었기에 혈교도들은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걸 쓰자! 준비해!”

절체절명의 위기.

당장 이기지도.

그렇다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 최후의 수를 쓰기 위해 혈교도들이 품에 손을 넣는 순간.

-쾅!

“너희의 행동 방식은 이미 간파한 지 오래다!”

갑작스럽게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팽구용이 나타났다.

“켁!”

당연하게도 혈교도들은 비명 하나 제대로 못 내지르고 단칼에 썰렸고, 팽가가 소란스러운 게 무색할 정도로 쉽게 상황이 정리됐다.

……약간의 피해를 남기고 말이다.

“거, 건물을 무너뜨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검진의 맨 앞.

선두에서 혈교도를 몰던 인원 하나가 팽구용의 귓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애들이 건물에 피해 안 주려고 이렇게 개고생을 한 건데! 다짜고짜 와서 무너뜨리면 우리 애들이 뭐가 됩니까아아아아!!!”

“아니, 집법원장. 말을 해야지 알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분명 가주님이 방에 틀어박혀 나오시지 말라 명하셨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혈교도를 색출하는 일인데 내가 참고만 있어야 해?”

“예!!! 이럴까 봐 그런 거니까 좀 참아주십시오!!!”

답답하다는 듯 연신 가슴을 치는 팽가의 집법원장.

집법원장이라고 이들을 못 잡아서 쫓아다닌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문에 피해가 없이.

돈 쓸 일 없이 잡으려고 이렇게 쫓아다닌 건데 팽구용이 손해를 줄이기는커녕.

필요 이상으로 부숴서 거의 발광하듯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러자, 팽구용은 대수롭지 않게 손사래 치며 말했다.

“에이, 겨우 건물 하나 가지고 뭔 성을 그리 내. 애초에 호쾌함이야말로 우리 팽가를 대표하는 것 아니겠어. 쩨쩨하게 굴지 말고 그냥 형님께 달아.”

“그 형님이 작작 하라고 했다고 이 화상아!!! 으아아아아악!!! 돈이 얼마야!!!”

분노가 풀리지 않는지 소리를 질러대는 집법원장.

그래도 팽구용에게 달려들어 봤자, 어차피 자신이 질 걸 알기에 연신 소리를 질러댈 뿐, 달려들지는 않았다.

“원장님, 체통을 지키시죠. 들으시겠습니다.”

“들으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뭔 일만 있으면 나타나서 때려 부수고! 피해 복구는 우리만 뒤집어쓰고! 그래서 예산은 우리 것만 나가고! 후우후우…… 윽…….”

“워, 원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원장님!”

집법원장이 제 분을 못 이기고 뒷목을 잡고 쓰러지자, 황급히 집법원장을 들어 옮기는 집법원 인원들.

팽구용이 사고 치는 건 하루 이틀 있던 일이 아니기에 당황하지 않았었지만, 집법원장이 뒷목 잡고 쓰러질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몇을 제외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잘 해결돼서 다행이군.”

“…….”

그걸 쳐다보던 팽구용이 일이 잘 끝났다는 생각에 도를 집어넣으며 말하자, 벙찌는 인원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 해결됐냐고 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실제로 내뱉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벌써 그로부터 3년인가.”

다른 인원들이 그러든 말든 발밑에 쓰러진 혈교도들을 보고 읊조리는 팽구용.

예전부터 준비하던, 가문 내의 혈교도를 색출하는 작전에 성공하니 새삼스레 시간을 체감했다.

‘이놈들이 튀어나온 지 3년밖에 안 됐다니 참 웃긴 일이야.’

당가가 대공자인 당지독을 위시한 의문의 세력에게 습격받은 게 벌써 3년 전.

우연찮게 하북에서 합류한 당지천을 도와 당가를 도운 것도.

그리고 당가가 봉문을 선언한 지도 대략 그쯤 됐다.

‘그때는 단순히 당가에서 일어난 반란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그놈들이 혈교도들이었을 줄이야.’

그 당시 당가를 도왔던 팽구용은 그냥 이상한 조직하고 손을 잡았을 뿐, 평범한 반란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순한 혈교도였다면 그냥 해치우고 말았을 텐데, 이렇게 중원 전역에 퍼져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지.’

갑자기 무림 전역에서 하나둘 나오는 혈교의 흔적들.

어떻게 이만큼 세를 불렸는데도 흔적 하나 없던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혈교의 흔적이 튀어나왔다.

‘무림맹에서도 비상이 걸릴 정도였으니…….’

사람 하나둘 사라지는 건 예삿일이요.

심하면 마을 하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기에 무림맹도 한바탕 뒤집어져 부랴부랴 대응했다.

하지만 평화가 너무 길었던 탓일까.

본디 비슷한 임무를 하던 조직들 몇을 제외하고, 막 소집된 경험 없고, 경직된 조직들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심지어 잡으라는 혈교도는 안 잡고, 이권 다툼이나 자존심 싸움에 심력을 소모하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 다 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당연하게도 혈교는 더 기승을 부렸다.

‘그땐 참 아찔했는데 말이야. 다행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어서 다행이야.’

그렇기에 발바닥에 땀띠가 나도록 뛰어다닌 팽구용.

양민들을 학살하는 혈교도를 막아내느라 인맥을 총동원하고 참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다행히 그런 팽구용의 노력이 빛을 발했을까.

무능하던 인원들도 점차 경험이 쌓여 혈교를 몰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그래서 그런지 혈교는 잠시 힘을 비축하려는지 몸을 감췄다.

무림맹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상황.

그간 괴롭히던 혈교가 사라졌음에 다들 축배를 들었고, 서로의 공로를 치하하기 바빴지만, 팽구용은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혈교가 물러난 게 자신들의 실력인 줄 안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혈교가 물러난 건 자신을 비롯한 몇몇 고수 때문.

그것도 무림맹과 움직인 이들보다는 개개인이 협의를 위해 움직인 이들 덕이었다.

한데, 무림맹의 높은 이들이 그 공을 집어삼키려 정치적인 행동을 보이자, 그것에 속아 혈교가 물러난 건 오직 자신들 덕분이라고.

뛰어난 자신의 실력 덕이라며 자신의 강함에 취한 녀석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건 특히나 젊은 고수들.

용봉으로 칭해지는 후기지수들 대다수에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게 엄연히 아이들의 탓은 아니지만, 고쳐야 해.’

혈교와의 싸움이 단기전이 된다면 팽구용으로서는 더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만한 준비를 했는데 단기전으로 끝날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후대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으니 혈교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거만한 아이들의 코를 찍어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섭외해 비무를 시킨다든가 해서 말이다.

‘고인물은 결국 썩는 법. 그러니 정파도 사파도 아니면서 기존의 아이들을 전부 찍어 누를 만큼 강한 녀석이 필요해…… 예를 들면 지천이 같은 아이가 말이야.’

고작 17살의 나이에 벽을 넘은 당지천.

남한테 알려지기도 전에 당가가 봉문했기에 아무도 모르지만, 이 정도 성취는 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번 일로 소가주가 됐고, 봉문한 기간 동안 수련까지 할 테니.

아마 당가에서 나올 때쯤이면 같은 나이 또래에는 호적수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부른 건 아니었지만, 참으로 잘됐어.’

3년 전.

당가에 은혜를 입히고 당지천을 부른 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부른 거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팽구용의 입장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길다고 생각했건만, 이제 금방 보겠구나.”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당지천의 얼굴을 떠올린 팽구용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벽을 한 번 더 부수고 나타났으면 좋겠구나.”

* * *

팽구용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각.

당가의 천독림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흡!”

기합과 함께 암기를 출수하는 당지천.

옛날 같았으면 매서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을 암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매섭고 은밀하게 당기룡에게 날아들었다.

“다시!”

하지만 단번에 잡아채는 당기룡.

투로를 정확히 읽어 암기를 잡아채더니 이내 당지천에게 되돌리듯 뿌려줬다.

“후우…….”

숨을 몰아쉰 당지천은 물 흐르듯 파공음 없는 암기를 피해내고, 곧장 주머니에서 3개의 비수를 꺼내 출수했다.

-슉.

짧은 파공음을 내는 비수.

일부러 시선을 끌듯 날아간 3개의 암기 중 한 개만 왼쪽으로 날아가며 소리를 냈고, 나머지는 오른쪽으로 일렬로 날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암기 중 뒤에 날아가던 비수는 갑자기 분리가 되더니 눈으로 세기 힘들 만큼 많고, 그러면서도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만큼의 기운을 가진 장침으로 한꺼번에 변했다.

“흠…….”

누구를 세워놓더라도 당황하며 맞을 만한 상황.

기를 잔뜩 머금은 수많은 장침의 세례에 누구라도 단번에 고슴도치가 될 듯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허나, 마무리가 아쉽구나.”

하지만 당기룡은 심심한 감상을 내뱉고 소매를 걷더니, 일시에 장침들을 모아서 땅바닥에 흩뿌렸다.

“후…… 그렇게 연습했는데 무리네요.”

그걸 보고는 숨을 몰아쉬며 답하는 당지천.

그간 천독림에서 얼마나 오래 지냈는지를 알려주듯 옷이 거적때기에 가까워져 있었고, 얼마나 열심히 움직였는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아니, 오히려 자신해도 좋다. 이건 당가에서도 고작 열 몇만 쓸 수 있는 기술. 너와 같은 나이에 익히기 시작한 사람은 당가 역사를 통틀어도 세 명도 안 될 거다. 하물며 너는 네 독문암기와도 결합해서 사용하니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긴 한데, 아쉬운 건 아쉬운 거죠. 이왕이면 나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완성하고 싶었으니까요.”

“허어,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 막 벽을 넘었던 네가 고작 3년 만에 다시 벽을 넘을 줄이야…… 아마 내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무뚝뚝하기 짝에 없는 얼굴로 감동을 표하는 당기룡.

그러나 3년이나 같이 지낸 만큼 당기룡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표정 변화를 쉽게 읽어낸 당지천이 부담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말 들으면 벌써 백 번은 더 되는 것 같네요. 이게 어떻게 다 제가 잘나서 그렇겠어요. 좋은 스승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스승이 있어도 좋은 제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려 약관(20살)에 내 바로 밑이라니. 아마 네가 나가게 된다면 온 무림이 뒤집힐 거다.”

“되게 어디 은거기인 같은 말을 하시네요. 나갈 때가 돼서 그런가…….”

“하지만 너도 느끼잖느냐. 네가 얼마나 강해졌고, 또, 독공은 얼마나 발전했으며, 무엇보다 가뜩이나 뛰어났던 네 용독술이 가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걸 말이다.”

“……맞긴 한데, 좀 부담스럽네요.”

당기룡이 숨도 안 쉬고 칭찬을 내뿜자, 당지천이 머쓱한 표정으로 땀을 닦았다.

옛날엔 당기룡이 칭찬 한마디 하면 어디 아픈가 걱정할 정도로 놀라긴 했는데, 이제 와서는 거의 습관처럼 듣는 말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제 하산해도 좋을 듯하구나.”

진짜 은거기인이라도 되는 듯 당기룡이 하산을 명하자, 부랴부랴 널브러진 암기를 정리하는 당지천.

비록, 탈진할 만큼 지쳤긴 했어도 드디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그러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삐익이가 날아와 당지천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삐이이익!

“너도 얼른 나가고 싶어?”

-삐익, 삐익.

“알았어. 빨리할게.”

삐익이의 재촉에 한결 빨라진 당지천의 손놀림.

이전에 급하게 천독림에 들어왔던 탓에 삐익이랑 했던 약속을 제대로 못 지켰는데, 다행히 삐익이가 이해해 줘서 수련을 방해받지 않았던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전부 회수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금방 깨끗해진 천독림 내부.

암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독지를 본 당기룡은 당지천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럼 한바탕 뒤집으러 가자꾸나.”

“……언제부터 그렇게 농을 잘 건네셨는지 나갈 때가 되니까 정말 새삼스럽게 느껴지네요.”

“하하하.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다.”

“뭐가 그런 건데요?”

“그런 게 있다.”

“뭐가 그런 게 있냐니까요?”

“그런 게 있다.”

“……예예, 그러시겠죠.”

이전과 달리, 천독림을 나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

이제는 당지천과 허물없이 지내는 당기룡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눴고, 금방 만독연으로 가는 문 앞에 섰다.

“…….”

문 앞에 멈춰서자, 감회가 새로워지는지 입을 다무는 당기룡.

천천히 천독림을 나가는 문에 손을 올리더니 이내 힘차게 밀며 말했다.

“가자. 온 무림에 당가가 건재함을 지천에 널리 알려주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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