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27화
그만두라고 외치든가 말든가.
연신 음독하기 바쁜 삐익이.
-삐이이익!
남의 조상님(?)을 먹으면서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날개를 연신 퍼덕여 댔다.
“얌마! 그만 처먹으라니까!”
아무리 영물이라고 한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할 게 아닌가.
어떻게든 그만두게 하려고 암기를 하나 꺼내 집어 들자, 당가주가 만류했다.
“놔두거라.”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되묻자, 당가주가 다시금 말했다.
“놔두라고 했다.”
“아니, 아무리 독호라고 해도 일단은 조상님들 묘인데…….”
“조상님들이 바라시던 일이다. 만년혈독신조가 독을 먹고 정제해 내는 것을 너도 봤잖느냐.”
“예,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닌가 싶네요.”
“만년혈독신조는 마음껏 음독하고 내키는 만큼 독을 호수에 뱉어낸다. 그리고 매 가주가 스스로 독호에 몸을 담근다. 이 2가지로 인해 역대 가주들은 무형지독이 아님에도 강력하기 짝에 없는 독을 쓸 수 있는 거다. 그러니 내키는 대로 놔두거라.”
“예…….”
당가가 효율을 추구하는 건 잘 알고 나도 그런 점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거기다. 고아로 자랐기에 유교 사상도 남들보단 좀 덜한 편이었다.
허나, 그런데도 현대인의 감성을 버리진 못했는지 조금 거부감이 들긴 했다.
“무엇보다 만년혈독신조가 당가의 금지를 지키고 각 독물들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강한 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고, 애초에 그런 독이 없으면 만년혈독신조가 천독림에 머물지도 않을 거다.”
“공생하는 관계라는 이야기군요.”
“그렇다.”
“…….”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면 어쩔 수 없긴 하지.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본디 독물이란 주변의 독을 먹어서 독을 만드는 생물이 대다수였기에 좋은 독을 줄 필요가 있었다.
-비잇! 비잇!
맞다는 듯 날개를 퍼덕거리며 우는 삐익이.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참새구이가 먹고픈 생각이 들었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고 삐익이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새보다 약한 게 죄지. 나중에 강해지면 확 깃털을 다 뽑아버리든가 해야지.’
이제야 좀 강해졌다 싶더니 이제는 한낱 새한테도 밀리는 처지라니…….
안타까움에 눈물이 찔끔 났다.
“일단 올리다 만 예부터 마저 올리거라.”
“예.”
안타까움도 잠시.
당가주의 말에 눈물을 슬쩍 닦아내고, 궁래심점호를 향해 예를 올렸다.
“예를 올렸으면 이제 가자꾸나.”
예를 올리기 무섭게 어디론가 가자는 당가주.
안 그래도 약한 게 서러웠던 참인데, 이제 좀 강하게 만들어주나 싶어서 기대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제부터 천독림을 돌아보는 건가요?”
“아니, 잠시 밖에 나갔다 올 거다.”
하지만 당가주는 기대와 달리 천독림을 나갔다 오자고 말했다.
“예? 나가면 나가는 거지, 다시 온다니요?”
“궁래심점호에는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 잠시 인사드리러 온 거다.”
“본격적인 수련이라니 지금부터요?”
수련도 좋긴 하지만, 지금은 당가의 수복에 힘써야 할 때.
본격적인 수련은 내외의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해도 괜찮은 일이었기에 의문을 표하자, 당가주가 답했다.
“당가는 오늘부로 3년간 봉문에 들어갈 거다.”
“봉문이요?”
“그래.”
혈족으로 이뤄진 세가라고 해도 하나의 문파인 만큼 봉문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반 이상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고 복구에 시간이 걸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봉문한다고 하면 걱정되는 게 있었다.
“사업장을 다 포기하실 생각이세요?”
봉문은 말 그대로 문을 봉한다는 것.
아무도 가문을 드나들 수 없게끔 문을 막는다는 말이었으니 자연히 외부의 사업장은 모두 방치하겠다는 의미.
사천에 다른 문파가 없다면 모를까.
아미파와 청성파가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안 그래도 당지독네 세력이 멀쩡히 퇴각한 상황에서 봉문을 한다는 건 사업장은 다 내준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서 네 삼촌과 이야기를 나눴다.”
“신화문에서 봐준답니까?”
“그래, 가주전에서 네가 부문주에게 넘기는 걸 보고서 완전히 넘기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더구나.”
“……그걸 순순히 받아준다고 합니까?”
사업장을 넘기면 당가는 좋기야 하다.
하지만, 신화문은 굳이 사업장이 필요도 없는데, 관리 인력만 빠져나가는 꼴이 되니 굳이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당가의 사업장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기에 신화문에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대신 대가를 치르기로 했다.”
“무슨 대가요?”
“……알 것 없다.”
고개를 홱 돌리고는 답변하길 거부하는 당가주.
뭔가 말 못 할 거래라도 했는지 재빨리 화두를 돌렸다.
“그리하여 밖에 나가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너는 나와 함께 천독림에서 무공을 배울 거다.”
“여기서요?”
“그래.”
“아니, 왜 굳이 여기서…….”
천독림이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여긴 되게 위험한 장소였다.
일반적인 폐관도 아니고, 이런 금지에서 수련해도 되는 건가?
‘더군다나, 폐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강해지는 걸 싫어하는 무인은 없다.
하지만 당지혁의 선례를 보니 조금 무서워졌달까.
폐관을 마치고 나왔을 때 내게도 분노 조절 장애가 생길까 봐 살짝 두려워졌다.
물론, 그것보다는 가만히 있어도 독기를 버티기 힘든 곳에서 수련한다는 게 걱정됐지만 말이다.
“당가를 향한 위협이 없었다면 평범하게 가르쳤을 거다. 허나, 당지독의 세력을 멸하지도 못하고, 아직 제대로 된 정보조차 없는 상황이니 유일하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천독림에서 속성 교육을 할 예정이다.”
어차피 가주전까지 공격이 있던 이상 당가에 안전한 곳은 없다.
더군다나, 이상한 사술을 쓰는 당지독이니 방비를 해두었다고 해도 나타날 수 있으니 천독림이 제일 안전하다고 보는 듯했다.
거기다. 신화문에서 호위한다고 따라다니는 상황.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한들, 사제관계가 아닌 이상에야 무공을 낱낱이 보여줄 순 없었기에 호위를 받으면서도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곳은 천독림이 제격이긴 했다.
“그럼 봉문은 얼마나 하실 예정입니까?”
“3년.”
“3년밖에 안 하는 겁니까?”
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대게 문파가 어지간한 사안으로는 봉문하지 않는다는 걸 떠올려 보면 3년이란 시간은 거의 최소치.
정말 최소한의 봉문이었다.
“3년이면 충분하다. 만류귀원신공부터 수많은 암기 수법까지. 당가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기엔 충분한 시간이니까.”
“…….”
고작 3년이란 시간에 모든 걸 가르치겠다는 당가주.
평소에 빈말이나 농담을 전혀 안 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저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어제 막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무인이라도 알 거다.
‘작정하고 굴리겠다는 소리구나.’
아이고 난 죽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참고 당가주를 보자, 당가주가 재차 입을 열었다.
“지천이 너는 용독술만큼은 이미 장로들보다도 뛰어나다고 하더구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뛰어날지 모르겠지.”
“과찬이십니다.”
“아니, 그건 엄연히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너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마.”
“……혹시 그럼 연구할 시간도 안 주시겠다는 건가요?”
“당가의 근간이 독인데 어찌 용독술을 천시하겠느냐. 무공과 병행해 천독림 내부의 독물을 다루는 법도 배울 테니 기대해도 좋다. 물론, 무공 수련을 먼저 하겠지만 말이다.”
“…….”
이미 반 죽여놓고서 연구할 시간을 주면 대체 어떻게 연구를 한단 말인가.
분명 연구하다가 사고 날 게 뻔했다.
‘뭐, 그래도 강해지려면 해야지.’
소가주가 돼서 만류귀원신공을 익히고, 천하제일인이 되는 게 내 목표였다.
조금 힘들다고 해서 안 할 거였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좋습니다. 까짓것 한번 제대로 해보죠.”
“역시 마음가짐부터가 남다르구나. 좋다. 얼른 손님들부터 내보내고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자꾸나.”
흡족한 미소를 지은 당가주와 함께 빠르게 천독림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곧장 튀어오는 부문주.
“아니, 이게 뭡니까!!! 전부 떠넘긴다니요!!! 이건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끄아아아악!!!”
분명 천독림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한두 장에 불과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서류의 산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서류를 뿌려대며 당가주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미안하게 됐소.”
“미안한 건 당연한 거고!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하지만 형님과는 협의가 된 사안이오.”
“……아니, 지는 일 안 한다고, 거 참 너무하네!”
부문주가 들고 있던 서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내 손을 잡았다.
“공자님. 우리 공자님. 제발 이것 좀 어떻게 해주세요. 이러다 우리 애들 다 죽어요.”
최대한 불쌍하게.
눈물을 그렁그렁거리며 달라붙는 부문주.
한눈에 봐도 많아 보이는 서류 양이 문도들의 스트레스를 대변하는 것 같아 정말 불쌍하긴 했다만, 대안은 없는 일.
거기다. 이미 당가주와 일염이가 합의를 본 사안이니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단호히 거절했다.
“저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일염이에게 부탁해 보시죠.”
“그놈은 할 줄 아는 게 노름밖에 없어서 그냥 생각 없이 고갤 끄덕였을 거라니까요?”
“뭐가 어쩌고 어째?”
어느샌가 일염이가 나타나 부문주의 뒷덜미를 잡자, 깜짝 놀라는 부문주.
“히익!”
이상한 비명을 내며 단숨에 일염의 손에서 벗어나더니 인사할 틈도 없이 저 멀리 사라졌고, 주변에 있던 신화문도들도 서류를 챙겨 부랴부랴 그 뒤를 따라갔다.
“가버렸네…….”
봉문하면 얼굴도 못 보니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정말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팽구용에게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너도 떠날 준비를 마친 거야?”
“제가 왜 떠납니까. 공자님의 호위 무사가 전데.”
“…….”
호위 무사도 가문의 일원인 만큼 안에 있어도 되긴 하나, 엄연히 타 문파의 수장.
그래서 당가주가 불허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당가주도 묵인하는 눈치였다.
“뭐, 그래도 얼굴은 못 볼 겁니다. 당가가 봉문하면 저도 천독림 문 앞에서 녹슨 기량이나 끌어올릴 예정이니까요.”
봉문해도 천독림 문 앞을 지켜주겠다는 일염이.
그러니 맘 편히 수련하라는 말 같아서 옅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곧장 일염이를 대동한 채로 만독연에 있는 팽구용에게로 갔다.
“어, 왔냐. 뭐야, 너도 같이 왔네?”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당가는 금일부터 3년 동안 봉문한다. 그러니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라. 최대한 들어주마.”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 먼저 할 법도 한데, 바로 본론이냐? 하긴, 그러지 않으면 천하의 당기룡이 아니지.”
당가주의 인사에 인상을 찌푸렸던 팽구용은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도와주는 과정이 좀 많이 힘들긴 했는데, 보아하니 뜯어먹을 것도 없어 보이네.”
“그건 미안하다.”
“괜찮아. 다음에 받지. 뭐. 다른 문파라면 모를까. 당가 놈들이 은혜를 잊을 리 없으니 말이야.”
보상은 차후로 미루겠다는 팽구용.
이는 어중간한 보상을 받을 바에 공수표를 받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엄연히 당가의 편의를 봐준 거기도 하기에 당가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편의를 봐줘서 고맙다.”
“아, 그래도 일단 조건을 건다면…….”
잠시 말끝을 흐린 팽구용이 나를 보며 말했다.
“봉문이 끝나면 곧장 나부터 찾아와라.”
“저요?”
“그래, 너.”
딱 나를 집어서 말하는 팽구용.
내가 데려오기도 했고, 가문이 은혜를 입은 만큼 나 또한 선뜻 도와줄 생각이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팽구용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뭔가 찝찝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가요?”
“물론. 아주 중요한 일일 거다.”
더 짙어지는 팽구용의 웃음.
위험한 일을 맡길 사람이 아닌 건 알지만, 뭔가 골치 아픈 일을 맡길 거란 확신이 드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알겠습니다. 봉문이 끝나는 대로 팽가에 들르도록 하죠.”
“안 오면 내가 직접 데리러 올 테니 꼭 오거라.”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실실 웃는 팽구용.
이내 당가주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작별 인사도 없이 당가를 떠났다.
“그럼 손님들도 다 떠났으니…….”
좌중을 둘러본 당가주가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문을 봉해라!”
“잠깐!”
하지만 당가주가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들려오는 목소리.
모두가 의아한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자, 당지혁이 만독연 안에서 뛰어나왔다.
“아버지. 봉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 5년 동안 폐관에 들었는데, 나온 지 아직 다섯 시진도 안 됐습니다! 하다못해 제가 무림행에 나서고 나서 봉문해 주시면 안 됩니까!”
나한테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건 일단 뒷전인지 신경도 안 쓰고 당가주에게 매달리는 당지혁.
한창 창창한 나이에 5년이나 폐관에 들었는데, 다시금 3년이나 가문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한지 참으로 애타게 매달렸다.
그러자, 나지막이 당지혁을 내려다보는 당가주.
“당지혁.”
“예.”
“닥쳐라.”
얼마나 화가 났으면 평소에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 욕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윽.”
“못난 놈.”
당지혁이 뭔가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자, 곧장 당지혁을 기절시킨 당가주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금 외쳤다.
“문을 봉해라!”
그렇게 문은 굳게 닫혔고.
당가는 짧은 봉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