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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26화 (126/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26화

당가주의 뒤를 따라 들어온 만독연 내의 독지.

당가에서 생산되는 대부분 독과 원료들이 이곳에서 생산되기에 방대하기 짝에 없는 광활함을 자랑했다.

“독지가 생각보다 많이 넓군요.”

가히 축구장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에 대단하다는 감탄을 내뱉자, 갑자기 멈춰 서는 당가주.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고는 근엄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다. 기록상 저기 저만한 밭 하나가 당가 내 독지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예?”

“지금 독지가, 그리고 당가가 이렇게 커진 건 어디까지나 선조들이 쌓아온 세월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걸 결코 잊지 말거라.”

“예…….”

심심하기 짝에 없는 감상평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설교를 늘어놓는 건 뭐지?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니 이해하긴 한다만, 옛날 옛적 남궁공자와 다닐 때가 생각나 간만에 당황했다.

“지금 가는 천독림 또한 그렇다. 안에 있는 독물들부터 들어가는 입구. 무엇보다 당가의 직계가 아니면 출입을 불허하는 진법은 14대 가주님이 위기에 처한 제갈세가를 구원해 주고 보답으로 설치한 거다.”

“제갈세가요?”

제갈세가가 머리 쓰는 느낌이 강하긴 하다만, 오대세가의 일원인 만큼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강자존인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머리 굴리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제갈세가가 위험에 빠지고, 그걸 당대 당가주가 구원했다고?

“이해가 잘 가지 않나 보구나.”

“예.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제갈세가가 위험에 처했다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렵네요. 마교한테라도 습격받은 겁니까? 그리고 그것보다 제갈세가가 있는 호북에는 무당파가 있는데 굳이 당가에서 도우러 가다니요?”

“그래,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하지만 지금 일일이 설명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테니 그저 한 가지만 알아두거라.”

다시금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당가주가 말을 이었다.

“모든 건 혈교 때문이었다.”

“혈교요?”

갑자기 튀어나온 혈교란 단어에 되물음에도 묵묵히 앞으로 향하는 당가주.

설명하려면 오래 걸린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굳이 지금 설명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쓰읍, 괜히 이야기 꺼내서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원래 사람을 화나게 하는 건 말을 하다가 마는 것.

당연히 나도 별 궁금하지 않았던 내용이지만, 약이 살살 올라서 자세히 묻고 싶긴 했다.

그렇지만 천독림으로 가던 도중인 걸 깨닫고, 괜히 시간 낭비하지 않게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당가주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우와…… 저게 다 만년한철이야?’

양옆에 벽도 없는데 키의 한 3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그것도.

전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새하얀 문이 말이다.

“이곳이 천독림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 오직 가주와 소가주에게만 허락된 당가 유일의 금지로 향하는 문이다. 손을 내밀어봐라.”

당가주의 말대로 문을 향해 손을 내밀자, 갑자기 문을 관통하는 손.

“어?”

뭐야? 환상이야?

분명 떡하니 문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관통하는 걸 보아하니 대충 환영 같은 거 같았다.

“허락받지 못한 이는 만지지도. 그렇다고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 천독림이다.”

“그럼 이 문을 통과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해봐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 너머로 뛰어 들어가니 보이는 건 아까와 같은 풍경.

그냥 평범한 독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요?”

“당연하다. 이 문은 만독연 내부 독지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 당연히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가문의 눈을 속이긴 불가능하니 함정 같은 게 없는 거다.”

“설령 뚫린다고 해도 천독림 자체가 함정보다 강하니 필요 없는 거고요?”

“잘 아는구나. 흠흠.”

당가주는 헛기침이라도 나는지 몇 번 목을 가다듬더니 품을 뒤져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걸 받거라.”

당가주가 건넨 주는 건 다름 아닌 당가주의 명패.

다른 이들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한 현무가 각인된 자색의 옥패였다.

“명패를 주시는 건 그만큼 위험해서 주시는 겁니까?”

누구나 알다시피 당가인의 명패는 그 자체로 성능 좋은 피독주였다.

자연히 가주가 가진 피독주의 성능은 당가제일.

가히 가진 것만으로도 만독불침에 가까워진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선뜻 빌려주는 건 천독림이 그만큼 위험해서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주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명패를 준 이유는 이렇게 피를 묻히면…….”

“읏, 따거.”

순식간에 작은 바늘을 꺼내 내 손가락을 따버린 당가주는 곧장 손가락에 맺힌 피를 명패에 치덕치덕 바르더니 이내 천독림으로 향하는 문을 향해 들이밀었다.

그러자…….

-스르륵.

만년한철로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밀리는 천독림의 문.

만약 문 자체가 새하얗지 않았다면 만년한철로 만들었다고 전혀 믿지 못했을 거다.

“이 문은 가주의 패에 피를 묻힌 뒤, 같이 열게 되면 다음부턴 아무 조치 없이 쓸 수 있다. 들어가자꾸나.”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설명을 마친 당가주가 명패를 쥐어준 채로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신화문도들은 잠시 여기서 대기해 주셨으면 하오. 아무리 지천이의 안전을 생각한다고 하나, 이 앞은 당가의 금지이며 동시에 신화문도들에겐 심히 위험한 곳이니 말이오.”

당가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어느샌가 내 옆에 서 있던 부문주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흐음……. 문주님께서도 동의하신 사안인가요? 저희야 이해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그만큼 위험하면 문주님이 따라가시는 게 낫지 않나 싶네요.”

“이는 형님께서도 동의하신 사안이오. 그리고 신화문의 호위는 인정하는 바이나, 내가 지천이의 아비요. 결코 지천이를 헛되이 다치게 하진 않을 테니 걱정 마시오.”

“뭐, 그러시다면야. 저희는 공자님 의견에 따르죠.”

전적으로 내 의견에 맞긴다는 듯 아예 자리에 주저앉는 부문주.

뭔가 할 일이 있기라도 한 건지 어느샌가 나타난 다른 2명의 문도에게 서류를 받아 처리했다.

“그럼 가자꾸나.”

신화문도 떼어놨으니 이제 진짜 들어가면 된다는 듯 문 속으로 사라지는 당기룡.

망설일 것 없이 나도 곧장 그 뒤를 따라 들어가자, 한순간에 풍경이 뒤집혔다.

그러고는 다시금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허…….”

우거진 나무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그 밑에 가지런히 만개한 꽃들과 그 사이를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들.

그 이외에도 형형색색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온갖 생물들이 가득한 곳.

마치 자연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뿐만으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극독을 가진 생물들?’

무엇보다 놀라온 건 이곳의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독물들이었다는 거였다.

그것도 극독을 가진 독물들 말이다.

‘예상하고 들어오길 바라긴 했지만, 규모가 진짜 어마어마한데.’

그냥 위험한 독물들이 박물관처럼 늘어서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아예 생태계가 구축된 천독림.

독물을 밀어 넣고, 독을 정제하는 거대한 고독을 보는 듯했다.

“놀랍더냐.”

“예, 놀랍습니다.”

“당연할 거다. 여기가 당가의 근원이자, 긍지인 곳이니. 하지만, 함부로 독물에 접근하거나 만지지는 말거라. 이곳에 있는 독은 전부 극독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실례일 만큼 강력한 독이 많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이동하자.”

당가주가 발걸음을 옮겨 숲 안으로 이동하자, 눈앞에 펼쳐지는 독림.

하나같이 독물학사전에서나 볼 법한 녀석들이 모여 있는 걸 보니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나비는 처음 보는 건데 말로만 듣던 혈반사접인가? 그리고 나무는 견혈봉후? 저건 전생에도 있던 거고, 독성은 그리 강하진 않았을 텐데?’

뭐가 어떤 특성인지는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신기하기 짝에 없는 숲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 갑자기 어디선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개굴. 개굴.

고개를 돌려보자 모여 있는 형형색색의 손가락만 한 개구리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 보호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개구리들을 보자마자 이름이 곧장 떠올랐다.

‘독화살개구리? 이게 왜 여깄어?’

독화살개구리.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정글에 사는 맹독성 개구리로 바트라코톡신이라는 신경독을 가진 녀석들.

주로 원주민들이 화살촉에 이 개구리의 독을 발라서 썼기에 독화살개구리란 이름이 붙었다.

‘바트라코톡신의 반수치사량이 2㎍/㎏일 정도로 독성이 높아서 천독림에 있을 법한 녀석이긴 한데, 애는 중원에 안 살 텐데?’

가장 강한 신경독은 아니지만,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녀석.

그런 녀석이 천독림에 있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중원에 살지는 않아서 의문스럽게 쳐다보고 있자, 당가주가 설명해 줬다.

“독시와(毒矢蛙)구나. 서역에서 넘어온 녀석들로 주로 화살촉에 발라 사냥할 때 쓰던 녀석들이라 했다.”

“서역이요? 이런 위험한 걸 가져오는 사람이 있어요?”

“원래 사람을 암살할 땐 언제나 해독제 없는 독을 원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가다 암시장에 이런 녀석들이 들어오곤 하더구나.”

“암시장…….”

역시 중원이고 서역이고 가릴 것 없이 상인이란 작자들은 돈만 되면 다 하는구나.

무서운 놈들이야.

“너도 알다시피 여러 장로나 원로도 사용할 순 있지만, 관리와 채취는 오직 가주와 태상가주. 그리고 소가주의 일이다. 얼마 안 가서 너도 하게 될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은 따라오너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다른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지 만지지 말라고 재촉한 당기룡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독물들이 우글거리는 천독림에서 신경독에 쓰러지면 인생에서 하직할 게 뻔했다.

애초에 일반적인 독화살개구리도 아닌, 천독림에 사는 독화살개구리가 단순히 2㎍/㎏의 낮은(?) 독성의 독을 가졌다고 단언할 순 없으니 만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예.”

뭐, 그래도 안전은 과해도 모자라니 짧게 대답하고 당기룡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가자마자 몰려오는 독기.

“큭…….”

분명 가주의 명패를 가졌는데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강한 독기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미안하다. 깜빡했구나.”

당가주가 내가 독기를 밀어내기 위해 용쓰는 걸 보더니 이내 앞을 막아서며 독기를 막아줬다.

“허억, 허억…….”

한순간 죽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했던 독기.

아무리 천독림이라고 해도 그렇지.

대체 뭐가 이렇게 독기를 뿜어내나 해서 당가주의 어깨 너머로 앞을 보자, 그제야 보게 된 자줏빛의 커다란 호수.

천독림인 만큼 주변에 무슨 독물이라도 근접할 법도 하건만, 내가 느낀 독기가 허상은 아니었는지 호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독한 호수인 듯했다.

“여기가 궁래심접호(窮來心接湖). 역대 가주들이 스스로 몸을 담가 만든 가장 치명적인 독호(毒湖)이며 그와 동시에 무형지독을 제외한, 아니, 때론 그보다도 더 강한 독의 원천이다.”

독공으로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그 자체가 독인이다.

따라서 당가의 역대 가주들도 독인이었을 텐데, 그들의 몸으로 만든 독호라니…… 정말 놀라웠다.

‘이러니 가까이 가기만 해도 독기가 이렇게 강하지.’

웬만한 독물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독인이 몇십 명이나 묻힌 곳이다.

당연히 독물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건 물론이었고, 나 또한 버틴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는 당가주가 아니고서야 접근할 수 없겠구나.’

어떤 생물이라도 다가가는 것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장소.

그야말로 금지에 어울리는 장소란 생각에 연신 감탄이 나왔다.

“오늘 천독림에 온 건 네가 소가주가 됐음을 알리러 온 거다. 예를 취하거라.”

“예.”

역대 가주들이 묻힌 곳.

가히 가주들의 무덤이라 부를 만한 곳에 왔으니 당가주의 말대로 절을 하려 무릎을 꿇던 그때.

-삐익! 삐익!

갑자기 품에서 삐익이가 튀어나왔다.

“야, 너 나가면 위험해!”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독기가 차다 못해 넘치는 곳.

산 자의 접근을 불허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재빨리 손을 뻗어 삐익이를 막으려고 했다.

-삐이이이익!

그러나 삐익이는 어림없다는 듯 손을 피해 빠져나가 호수를 향해 날아갔다.

“야, 너 위험하다니까!”

당가주 뒤에 있기에 안전한 거지, 나도 생사를 보장하기 힘든 곳이다.

그렇기에 삐익이가 호수로 날아가 버려도 차마 다가가지는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비잇, 비잇!

삐익이는 위험하기는커녕, 아예 호수로 다가가 부리를 처박았다.

그러고는…….

-찌르르르르!

힘차게 들이켰다.

“야야야야, 임마! 그걸 마시면 어떡해!”

무려 당가의 역사가 담긴.

역대 가주들이 묻힌 궁래심점호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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