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20화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삐이익!
삐익이가 폴로늄을 정제해 냈다는 소리에 놀라서 자빠질 뻔했다.
폴로늄이 대체 어떤 물건이던가.
동귀어진용으로 채취해 온 독이라 독성이 강하기 짝에 없었고, 정제하기가 까다롭다 못해 난해한 물건이었다.
시약이 온전히 갖춰졌다고 한들, 추출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 어려운 독.
그런데 삐익이가 그런 폴로늄을 단번에 정제해 냈다고 하니 어찌 안 놀라겠는가.
‘이게 가능하다면 굳이 일일이 번거롭게 정제를 안 해도 되잖아.’
심히 힘들고 귀찮은 과정을 쉽게 넘길 수 있단 소식에 순간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바닥에 올려진 양을 유심히 보다 보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 아무리 영물이라도 이 정도 양은 아니지.’
1톤에서 100㎎을 겨우 채취해 내는 폴로늄이다.
그런데 고작 몇 g 될까 말까 한 피치블렌드에서 몇 g이나 될 법한 폴로늄을 추출해 낸다?
초등학교 산수만 떼도 이게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인지 알 거다.
“거짓말하지 마. 이게 이 정도 양이 나올 수가 없거든?”
-비잇. 비잇.
“그건 당연한 거랍니다. 워낙 양이 적어서 이전에 먹은 녹주석과 혼합해서 내놓은 거랍니다.”
“……그러면 또 인정이긴 하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에 어지럽혀지는 머리.
반신반의한 마음에 손바닥 위의 독들을 계속 이리저리 굴려봤다.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원래 독성이 강한 독일수록 강한 독기가 느껴지는 게 대부분인데, 이상리만치 삐익이가 뱉은 물건엔 독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아무리 폴로늄이 피부에 닿아도 안전하고, 계속해서 쥐고 있어도 별문제 없는 물건이라고 해도 녹주석이 섞여 있다면 느껴지는 게 정상.
지금 독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 좀 이상했다.
‘그렇다고 먹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피독주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폴로늄은 ng 단위로 사람을 죽인다.
내가 아무리 당가의 사람이고, 피독주를 가졌다고 한들, 이 모래 알갱이 같은 거 한 개만 먹어도 골로 갈 수 있기에 먹는 건 위험했다.
애초에 동귀어진용으로 쓰려던 게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겠는가.
‘아버지 상태가 괜찮았으면 한 번 시험해 달라고 했을 텐데 아깝네.’
자고로 먹어서 판별해야 하는 극독이 있다면 제일 강한 사람이 먹는 게 맞는 법.
좋은 독(?)이 있으면 어른께 양보하는 게 당가의 예의였기에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주전에 들이닥치는 시점에 이미 가부좌를 틀고 있었기에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회복 못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으니 나중에 시험해 달라고 하면 되겠지.’
들어올 때부터 가부좌를 틀고 있던 건 한창 당지독과 싸우던 시점부터 가부좌를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
적을 목전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있던 걸 보면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던 듯했다.
하지만 당지독이 사라지자마자 일염이가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말없이 기막을 펼쳐서 보호하고 있는 걸 보고서 그렇게 심각하지만은 않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뭐, 어쨌든.
그래서 일염이 덕에 이렇게 맘 편히 떠들고 있지만, 결국 시험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흐음…….”
지금 눈앞에 있는 게 폴로늄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었기에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자, 삐익이가 짜증 내듯 울었다.
-비잇! 비잇!
“설명해 줬는데도 못 믿겠으면 시험해 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거 독성이 강한 거라 알갱이 하나만 잘못 집어삼켜도 골로 가서 구분을 못 해.”
-비비빗! 삐익!
“더럽게 약한 주제에 그렇게 뻗댄 거냐고 비웃습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독을 조합해 줄 수 있으니 일단 속는 셈 치고 달랍니다.”
“…….”
거, 적당히 순화해서 번역할 만도 하건만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정직하게 번역하는 백호단주.
악의라도 있으면 뭐라 하겠는데,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는 듯 진지한 눈빛 때문에 뭐라 하지도 못 하겠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네 능력을 의심하진 않으니까 일단 주긴 할게.”
먹어보진 않아서 삐익이의 능력이 다소 의심되는 상황.
허나, 독을 정제하는 능력 자체는 영물만 가진 귀한 능력까진 아니었기에 속는 셈 치고 믿을 만하긴 했다.
‘독을 정제하는 건 어떤 독물이든 다 가능한 일이니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가 흔히들 아는 독사나 복어.
이런 종류의 독물 같은 경우 주변의 독을 먹음으로써 자신만의 독을 만들어내, 방어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데 일반 독물도 아니고, 영물인 삐익이가 그걸 못 하겠는가.
당연히 어떤 독이든 조합해서 돌려주겠다는 삐익이의 말은 거짓말이 아닐 거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대신 이거 먹으면 한동안 나랑 같이 다니는 거다?”
본디 독이란 미리 만들고 준비해 놔야 제한된 종류와 제한된 양만 쓸 수 있는 물건.
헌데, 당지독이 남긴 저 주머니에 독을 쌓아놓고, 삐익이를 통해 그때그때 조합한다면?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보급소.
과장 좀 보태서 당가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거다.
“지금은 없지만, 내 전각에 가면 특이한 독들이 진짜 많거든? 하는 거 봐서 내가 충분히 챙겨줄게. 그러니 같이 가자.”
사실 굳이 독 조합이 아니어도 이미 마음이 동한 상황.
거기에 독 조합기라는 능력까지 있었으니 무조건 데려가고 싶었다.
-…….
동행할 것을 제안하자, 조용히 피치블렌드를 쳐다보던 삐익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작게 울었다.
-삐익. 삑.
“하루에 적어도 5개는 달랍니다.”
“5개? 그 정도는 줄 수 있어.”
-비잇, 삑.
“그리고 중간중간 별미도 내놓으랍니다.”
“어유 그럼. 간식 시간마다 잘 챙겨줄게.”
-삐익!
“받아들이겠답니다.”
삐익이가 손바닥에 있던 독들을 도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날아와 어깨에 앉더니 나를 올려보며 울었다.
-비잇, 비잇, 빗. 비잇. 삑.
“자기는 지쳤으니 이제 그만 쉬겠답니다. 약속했던 물건은 일어나서 먹을 테니 절대 잊지 말라고 합니다.”
경고를 남긴 삐익이는 푸드득 하고 날아올라 내 주변을 잠시 맴돌더니.
이내 품에 있는 빈 주머니 하나를 골라서 그 속으로 쏙 들어갔다.
‘캬.’
심히 감동적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삐익이, 넌 내 거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내가 생전 영물을 기르게 될 줄이야.’
연비가 조금 많이 나쁜 편이지만, 원래 귀한 장비일수록 유지비가 많이 드는 건 당연지사.
독을 뿜고, 독을 조합하면서 본신의 무력도 강한데, 귀엽기까지 하니 실상 유지비로 뭘 주더라도 아깝지 않았다.
“크흠, 크흠.”
삐익이를 얻은 건 앞으로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기에 기쁨이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체통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자, 나보다 백호단주가 더 감탄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만년혈독신조를 길들이시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게 다 단주님께서 통역해 주신 덕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통역은 통역일 뿐 길들인 건 삼 공자님이시잖습니까. 저는 손만 가져다 대도 구멍이 뚫릴 정도였는데, 삼 공자님 앞에서는 가히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따르는 걸 보니 감복할 지경입니다.”
“예?”
잘 따르긴 개뿔.
피치블렌드를 안 준다니까 녹림도에 빙의한 것처럼 아주 작정하고 달려들면서 위협하던데…….
심지어 길들였다는 말도 좀 어폐가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상생하자고 설득해서 같이 다니자고 한 것뿐이니 말이다.
“이게 다 삼 공자님이 뛰어나신 걸 알아보고 그런 걸 겁니다.”
하지만 백호단주가 보기엔 그게 아니었는지 감동한 얼굴로 나를 봤다.
그리고 그건 백호단원들도 마찬가지.
“…….”
다들 당지독이 물러났을 때, 뒤도 안 보고 일단 주저앉을 정도로 많이 지쳐 있었다.
당장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존경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 올려보는 게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시원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예, 제가 좀 많이 뛰어나긴 합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원스럽게 인정해 버리자, 옆에서 지긋이 쳐다보는 부문주.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나지막이 딴지를 걸었다.
“백호단주님이 많이라고까지는 안 하신 것 같은데요? 이거 완전히…….”
아주 재밌다는 듯 살살 눈웃음을 짓는 부문주가 조리돌림을 하려 하자, 바로 끊어버리는 백호단주.
“아닙니다. 삼 공자님은 정말 많이 뛰어나시죠. 이렇게 신화문주님도 모셔 올 정도이시잖습니까.”
오히려 부문주를 가리키며 내 편을 들어주는 게 아주 충성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모셔왔는지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쉴 시간을 벌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백호단주가 포권을 취해 인사를 전하고는 곧장 품을 매만지며 전투준비를 했다.
“전원 기상.”
이어서 백호단원들을 일으키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니,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가주전의 안전은 확보되었고, 가주님도 무사하시니 내부의 잔당을 처리하러 가려 합니다.”
“이 상태로 말입니까?”
단원들이 주저앉아 있을 땐 몰랐지만, 일어나서 걷는 걸 보니 거의 시체.
부상이 없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해 보이는 인원도 있었다.
“다시 전투를 치를 만큼은 쉬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죠.”
허나, 백호단주는 단호히 말했고, 백호단원들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 공자님께서는 가주님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듯, 하나둘 모여드는 백호단원들.
성치 않은 몸임에도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며 지붕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문 앞에 집결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백호단주가 마지막 출정을 하는 장수처럼 장엄하게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나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문을 열려는 백호단주의 손을 막았다.
“……어째서입니까?”
충성스럽던 아까의 모습과 달리 가히 산과 같은 기개를 보이는 백호단주.
사람이 사람인 만큼 적의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저력이 어떻게 남아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용맹한 기세를 뿌려댔다.
그렇기에 나는 백호단주를 자극하지 않게끔 조용히 얘기했다.
“지금쯤 정리가 끝났을 거거든요.”
-똑, 똑.
말 끝나기 무섭게 들려오는 문을 두들기는 소리.
“뒤로 물러나시죠. 공자님.”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백호단원들은 반사적으로 저마다 기수식을 취했고, 백호단주는 나를 대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백호단주를 만류하며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괜찮습니다.”
“위험……!”
채 말릴 새도 없이 문을 열자, 수비 태세를 취하는 인원들.
허나, 그들의 걱정과 달리, 문 너머에선 어떠한 공격도 없이 오직 흑의인 한 명만 걸어 들어와 목례를 취할 뿐이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호위 대상 주변 및 가문 내의 위협요소를 제거. 5장로를 포함해 총 7명을 포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5장로라…… 2장로는 확인하지 못했나요?”
“예, 가주전 진입 당시 사라진 이후로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그건 좀 아쉽네요. 다치신 분은 없으신가요?”
“제거 임무를 수행한 30명. 전원 이상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벙찐 얼굴로 나를 보는 백호단주.
그 뒤에 도열해 있던 백호단원들의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백호단주가 도무지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 연신 눈을 비벼대며 물었다.
하지만 단시간에 설명할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저도 잘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