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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9화 (119/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9화

─비잇, 비잇.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모이(?)를 먹는 새와 무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백호단주.

실제로는 처음 보는 만큼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지 무안하면서도 넋을 놓은 채 새를 바라봤다.

“분명 사람 손은 전혀 안 탄다고, 그렇게 배웠던 것 같은데…….”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 없음에도 계속 변명을 내뱉는 백호단주는 잘못된 사실을 말한 게 창피했는지 머리를 긁적여댔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부문주는 새가 모이를 쪼아먹는 모습을 넋 놓고 쳐다봤다.

“아이고, 잘 먹는다.”

원래는 사람 손 안 타든 말든.

백호단주가 잘못된 사실을 말했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새가 이렇게 귀여운데.

복슬복슬한 하얀색 털 뭉치가 열심히 가루를 쪼아대는 걸 보면 그런 하찮은 사실들은 전혀 중요치 않아졌다.

“혹시 만져봐도 되겠니?”

대화가 통할 리는 없지만 일단 손을 가까이 대며 양해를 구했다.

─비잇.

그러자, 새는 다가오는 손을 한 번 보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울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산화베릴륨을 쪼아댔다.

“고맙다.”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영물인 만큼 손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건 암묵적인 동의라는 뜻.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새를 쓰다듬자, 감탄이 절로 새어 나왔다.

“오…….”

따뜻하면서도 보드라운 느낌.

꼭 솜 뭉치를 만지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기에 연신 쓰다듬어 댔다.

그 모습을 본 백호단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봤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주는 독을 먹는 것도 모자라,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니……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없는 것 같군요.”

그간 대체 뭘 배웠길래 괴리가 이리 심한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진리를 제외하곤 확실한 건 없는 법.

실제로 본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잘못된 지식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백호단주는 크게 충격받은 것 같았다.

‘하긴 저런 성격이니까 요직에 앉은 거겠지.’

직계들을 제외하면 당가에서 손꼽히는 기재가 백호단주다.

다른 문파로 치면 만독연주나 흑룡대주보다 한 배분이 낮은데도 당기룡이 직접 키운다는 명목으로 백호단주 자리에 앉힌 거다.

그러니 아무래도 잘못된 정보에 민감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번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옛날엔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백호단주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니 이야기가 와전되어 내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뭐 동물과 큰 연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 싫어하는 동물을 어떻게 길들이겠는가.

아마도 만년혈독신조라는 영물에 대해서 잘못된 지식이 내려오는 게 맞을 거다.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마시죠.”

“삼 공자님…… 크흑.”

풀이 죽어 있는 백호단주를 위로해 주자, 감동한 얼굴로 쳐다보는 백호단주.

진짜 별거 아닌 일에 연연하고 감동하는 게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백호단주의 모습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기에 낯설게 느껴졌다.

‘이 양반이 왜 이래?’

어린 나이부터 요직에 앉았던 탓에 감정기복이 커졌나?

아니면, 당가주가 하도 갈궈대서 조금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하는 건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뻘쭘하게 서 있던 찰나.

─삐익!

어느샌가 손바닥에 있는 모이(?)를 싹싹 긁어먹은 만년혈독신조가 더 없냐는 듯 손바닥을 콩콩 찍어대고는 나를 쳐다봤다.

“알았어. 더 줄게.”

손바닥에 산화베릴륨을 더 부어주자, 다시금 허겁지겁 베릴륨을 쪼아대는 녀석.

배고픈 것도 배고픈 것 같지만, 산화베릴륨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듯했다.

하긴, 무형지독에 버금가는 독을 뿌리는 녀석인데, 밍밍한 약한 독이 아니라, 극독 정도 되면 먹을 만하긴 할 거다.

“만년혈독신조…… 일일이 부르기 귀찮은데 짧은 이름 하나 지어줄까?”

지금 당장 기를 것은 아니지만, 모이를 줄 정도면 적어도 친구는 아니겠는가.

매번 만년혈독신조라고 부르기엔 힘들 거 같아서 짧게 부를 만한 이름을 하나둘 떠올려봤다.

“혈혈이? 독독이? 똑똑한 것 같으니까 똑똑이라고 할까?”

“…….”

이름 후보를 읊어주자, 아까의 감동은 어디 간 듯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백호단주.

눈을 두어 번 끔뻑이더니 새를 한 번 쳐다보고는.

“…….”

다시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그러고는 환장하겠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는 이마를 부여잡는 게 무슨 소리 없는 슬랩스틱 개그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말로 하시죠.”

“…….”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하는데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젓는 백호단주.

도대체 뭔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답답했지만,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곧장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삐이익! 삐이익!

모이를 먹다가 갑자기 발광하듯 울어대는 녀석.

밥 잘 먹던 녀석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연신 따가울 정도로 손등을 쪼아댔다.

“왜 그래? 아,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삐익!

“그럼 뭐? 삐익이로 해줄까?”

─삐이이이익!

삐익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녀석은 아예 머리 위로 날아와 이마를 쪼아댔다.

“야, 야! 말로 해! 말로!”

─삐익! 삐이이익! 비잇, 삑!

말로 하라고 하자, 뭔가 열심히 울어대는 삐익이.

하지만 영물이라고 해도 말까진 못해서 그런지 뭔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삐익이는 싫고, 뭔가 멋진 이름이었으면 좋겠답니다.”

“예?”

그런데 웬걸.

갑자기 백호단주가 삐익이의 말을 번역하는 게 아닌가?

“……언제부터 새 말도 알아듣는 경지가 되신 겁니까?”

“제가 원래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동물은 잘 다루는 편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백호단주가 만지려고 손을 뻗자, 곧장 목표를 변경해 백호단주의 손을 쪼는 삐익이.

심지어 내 이마를 쫄 때와는 다르게 조금 힘을 줘서 쪼았다.

“저, 손에 구멍이 뚫렸는데요?”

“하하하…… 아프군요.”

분명 행동은 조금 힘을 줬을 뿐, 그냥 고개를 까닥이는 가벼운 행동이었다.

그런데 무슨 침이라도 꽂은 것처럼 손바닥에 아예 구멍을 내버리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겼어도 영물은 영물이구나.’

저게 진심으로 공격한 거라면 모를까.

순전히 거절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가볍게 툭 친 거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귀여운 외모와 달리, 정말 위험하기 짝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꼭 기르고 싶단 맘이 생겼다.

‘강한 영물이라…… 이건 못 놓치지.’

강한 동물일수록 제 아래에 두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인 법.

사실 처음에 봤을 때도 귀여운 모습 때문에 살살 달래서 기르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한데, 고갯짓 한 번에 고수의 손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니 더욱이 마음이 끌렸다.

“그래,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니. 나중에 차차 정하면 되니까 일단 뭐 더 줄까?”

자고로 호의를 사는 데는 음식이 최고인 법.

산화베릴륨 말고 만독연에서 가져온 독을 하나둘 꺼내 보여줬다.

─삐잇.

하지만 꺼내는 족족 날개로 쳐서 치워 버리는 삐익이.

녀석이 극독을 좋아하는 걸 파악했기에 먹을 만한 걸 꺼내줬는데 까탈스럽게 굴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뭐야? 마음에 안 들어?”

─삐이이잇.

“너무 먹어서 질린답니다.”

─비잇, 삐, 삐잇. 삐익!

“만독연에서 나오는 건 지겹게 먹었으니 아까처럼 못 먹어본 것을 달라고 합니다.”

백호단주가 말하기 무섭게 맞다는 듯 콩콩 머리를 두어 번 찧은 삐익이.

백호단주는 비록, 손바닥에 구멍이 뚫렸지만, 통역 하나만큼은 참으로 확실해 보였다.

─삐익.

“배고프니 빨리 내놓으랍니다.”

아니, 뭐 먹을 독을 맡겨놨나?

왜 이렇게 당당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쉬운 건 나였기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품에 손을 넣었다.

“기다려 봐.”

특이한 독을 원한다고 하지만, 나도 빙궁에서 독을 소진할 대로 소진하고 만독연만 들렀다 바로 가주전으로 온 상황.

당연히 전각에 들르지 않은 만큼 가진 게 별로 없었는데, 삐익이가 광물도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좋아할 만한 게 하나 있어서 곧장 꺼내 올려줬다.

“자, 이건 어때?”

그건 다름 아닌 피치블렌드.

지금 당장은 정제 및 추출하기 전이기에 불순물이 다소 끼어 있지만, 영물인데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아니면 다시 정제해서 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폴로늄이 든 피치블렌드를 손바닥에 올렸다.

그러자, 탐색하듯 피치블렌드를 두들겨 보는 삐익이.

─비잇?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이게 뭐냐고 묻습니다.”

“먹는 동안 네 깃털 다 빠져도 모를 만큼 맛있는 거. 근데 정제를 아직 안 해서 일단 먹어보고, 맛없으면 정제해서 한번 줘 볼게.”

─비잇, 비잇.

피치블렌드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자, 삐익이는 일단 먹어는 본다는 듯 냉큼 집어삼켰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익!!!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된 양 힘찬 포효를 터뜨리는 삐익이.

날개를 펼치고 좌우로 덩실덩실거리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든 듯했다.

“매우 기뻐하는 중입니다.”

“……그 정돈 보면 압니다.”

아예 전문 통역사라도 할 작정인지 삐익이가 뭔 말만 하면 통역하는 백호단주.

이러다 아예 단주직을 내려놓고 통역사로 전업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삐익! 삑! 비잇! 삑! 비비비잇!

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설명하는 삐익이.

피치블렌드의 맛에 놀라 뭔가 방언이 터져 나온 듯했다.

“불순물이 많이 끼어서 맛이 덜하긴 하지만, 온몸이 따뜻해지는 듯한 독은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답니다. 심지어 금지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독이라서 굉장히 맛있답니다. 이런 걸 내게 주다니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삐익! 삑!

“그러니 얼른 더 달랍니다.”

범상치 않은 통역 실력 덕에 정확히 전해진 삐익이의 의사.

그걸 듣고 있자니 곧장 괘씸한 마음이 생겼다.

‘어딜 감히 애완조 주제에 사람 머리 꼭대기 위에 놀려고 들어?’

빙궁에서 많이 채취해 온 만큼 양 자체가 모자라진 않았다.

하나, 처음부터 숙이고 들어가면 계속 숙여야 하는 법.

영물이고 뭐고 간에 기르려고 마음먹은 이상 일개 애완조에 불과했기에 감히 주인님에게 건방지게 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이거 귀한 거라서 함부로 줄 수가 없어.”

─삐이이익! 삐이이익!

“그딴 건 알 바 없고, 얼른 내놓으랍니다.”

“야, 잘 생각해 봐. 이거 금지에도 없던 독이잖아. 그런데 그런 독이 어디 널리고 널렸겠어? 당연히 내가 찾아낸 독이지. 당가는 물론이고, 중원에서 이거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

─삐이이이이이익!

“거짓말하지 말랍니다.”

“거짓말 같아? 그럼 어디 한번 직접 나가서 찾아보든가. 혹시 모르잖아? 중원에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이 한 명쯤 있을지.”

절대 내어줄 수 없다며 비웃듯 웃어주자, 삐익이는 화가 났는지 위협하듯 날아오르며 울어댔다.

─삑! 비잇, 비잇, 삐익!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어리석구나! 내 부리엔 눈이 없으니 조심해야 될 거다!……랍니다.”

옘병.

새 주제에 지가 무슨 녹림도인 줄 알아.

─삐이이이이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삐익이는 녹림도 따위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강한 영물.

본격적으로 가주전을 이리저리 날더니,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매섭게 내게로 달려들었다.

“어이쿠, 위험.”

하지만 내가 대책 없이 일을 벌였겠는가.

삐익이가 달려드는 걸 본 부문주는 냉큼 잡아채서 주먹에 쏙 가뒀다.

─삐잇! 삐잇! 삑!

“놔라, 네 이놈! 내가 지치지만 않아도 한 부리거리도 안되는 녀석 주제에 무슨 참견이냐!……라고 합니다.”

“그 말은 결국 지쳤다는 거네요? 이게 무슨 횡재람.”

─삐익! 삐익!

무슨 발광을 하든 말든 연신 눈웃음 짓는 부문주를 노려보는 삐익이.

한참을 그러고 눈싸움을 하더니 결국 뭔가 분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고는 아까와 다른 울음소리를 냈다.

─찌르르.

그러더니 갑자기 부문주 손에서 벗어나 내 손 위에서 뭔가를 뱉어내는 게 아닌가?

“뭐야 이건?”

모래 알갱이보다도 많이 작아 보이는 동글동글한 금속들.

미약하게 독기가 느껴지는 게 독이긴 한 것 같은데, 보는 것만으론 짐작이 안 갔다.

─비잇, 비잇, 삐익.

“아까 주신 독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 즉, 독성이 강한 부분만 걸러낸 거랍니다.”

뭐?

피치블렌드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부분이라니 설마…….

‘폴로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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