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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118화 (118/200)

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8화

중원 어딘가에 위치한 거대한 지하 공동.

옛날 옛적 사라진 혈교의 유적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생겼을까 싶을 정도로 흉흉한 장식과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 곳.

그 중앙 광장에는 새빨간 의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천을 쓴 수백 명의 사람이 미동도 없이 대기 중이었다.

-우우우웅.

거대한 공동을 울리듯 나는 진동음.

뒤이어서 환한 빛무리가 터지더니 그 속에서 당지독이 나타났다.

-쿵.

“““천하의 중심을 뵙습니다.”””

당지독이 나타나자마자 대기하던 인원들이 단체로 부복하며 인사를 건넸다.

허나, 그러한 인사에도 당지독은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기만 했다.

“흐흐흐흐…….”

어이가 없다는 듯 터져 나오는 자조적인 웃음.

그걸 쉴 새 없이 흘리던 당지독은 이내 실성한 듯 광증에 걸린 사람처럼 공동이 울리게 크게 웃어댔다.

“하하하하!”

그렇게 얼마나 홀로 웃었을까.

갑자기 돌변하듯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 버린 당지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인파 사이로 급히 뛰어들었다.

“그걸 어떻게 구한 건데 이렇게 허무하게…… 안 돼. 어떻게든 되찾아와야 해…….”

-퍽.

미동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듯 어깨로 밀어버리며 움직이던 당지독은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건축물로 뛰어갔다.

“나 왔어! 나왔다고!”

건물에 채 발을 들이기도 전에 당지독이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그러자, 저절로 열리는 건물의 문.

당지독이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들이자 문이 닫히고 거대한 거울이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엔…….

-또 사고를 쳤더구나.

당지독과는 다른.

또 다른 당지독이 있었다.

“사고라니! 너도 봤을 거 아니야! 당지천 그 녀석, 이상한 힘을 쓴다니까!”

-그저 네가 못 피한 게 아니고?

“아니, 아무리 내가 힘이 약해도 그걸 못 피할 거 같아! 아니거든!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주머니 안에 뭐가 들었었는 줄 알아?”

-알다마다. 그러니 단순히 새 하나 잃은 것 가지고 호들갑 떨지 말아라.

“단순한 새? 단순한 새애애애?”

자신의 얼굴을 마치 반죽하듯 이리저리 만져대던 당지독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거울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단순한 새가 아니야! 가장 강한 독을 만드는 영물이라고! 녀석의 독을 분석하든가, 해부하기만 하면 당가도 독곡도 다 필요 없어지는 거 너도 알잖아!”

-알지.

“근데 왜!!!”

-쾅!

당지독이 거울을 깨버릴 듯 머리를 처박았지만, 미동도 없는 거울.

무엇에 보호되고 있는지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당가는 집어삼키지 못했어도 독곡은 거의 다 넘어왔다. 그러니 그깟 새 하나에 연연할 시간이 있으면 독곡에 신경을 쏟는 게 더 맞는 행동이다.

“새뿐만이 아니야. 당가의 비전 독들도 많이 들어 있었다고…….”

-어차피 이번 일로 당가는 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나중에 힘을 키워서 새로 가져오면 그만이다.

“…….”

잠시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짧았던 대화.

그사이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전혀 통하지 않자, 얼굴을 붉힌 당지독은 결국 화난 얼굴로 뛰쳐나갔다.

“나 갈래!”

간다고 말하고는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당지독.

그런 당지독을 보던 거울 속 당지독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성숙해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긴, 태동한 지 고작 10년 넘었으니 아직 어릴 시기이긴 하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심히 멋대로인 행동.

제 딴에는 성숙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정신이 불안정한 걸 보면 도저히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힘을 되찾는 것도, 숙원을 이루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구나. 이게 다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

자신의 능력 부족임을 인정한 거울 속 당지독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더니 시선을 옮겨 주머니가 있던 자리를 내려봤다.

-그나저나 주머니를 잃어버린 건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그 능력이 당지천에게 있다라…….

이어서 주머니가 있던 자리를 톡톡 치며 잠시 감상에 잠겼던 거울 속 당지독은 이내 낭패를 봤다는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구나.

거울 속 당지독이 안 그래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더 짜증 나는 일이 있는 듯 얼굴을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당지천을 죽여 버리고 싶지만…….

거울 속 당지독은 갑갑하다는 듯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막혀서 나아가지 않는 손.

마치 거울의 반대편을 짚듯 탁 막혀 버리자, 거울 속 당지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숙원을 이루기엔 아직 이른가 보구나.

* * *

옛말에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당지독은 죽지도 않았는데 웬 주머니 하나를 떨구고 갔다.

‘아니, 무슨 게임도 아니고, 드랍템을 내놓고 가네.’

당지독이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손바닥만 한 주머니 하나.

게임처럼 사냥한 것도 아니라, 단순히 주머니가 매달린 끈을 끊으면서 떨군 거겠지만, 뭔가 상황이 기묘한 탓에 시답잖은 생각이 자꾸 샘솟았다.

‘생각은 나중에. 일단은 루팅이 먼저지.’

보스몹의 막타를 쳤으면…….

아니, 뭔가 중요해 보이는 주머니가 떨어졌으면 당연히 집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행여나 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까 봐 조심히 다가가 주머니를 들어 올려봤다.

‘일단 겉으로는 평범하네.’

어디에나 으레 있을 법한 생김새의 주머니.

외관상으론 아주 평범한 손바닥만 한 작은 주머니였다.

‘대체 안에 뭐가 들었길래 그런 거지?’

하지만 당지독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손을 뻗어 잡아채려고 했다.

단순히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일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를 중요한 게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조심히 주머니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뭐야? 왜 아무것도 안 보여?”

마치 먹물이라도 칠한 것처럼 검은색 공간만 존재하는 주머니.

안이 보이기는커녕, 우주라고 부를 만한 이질적인 공간만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자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설마 아공간 주머니?’

분명 만독연 앞에서 봤던 적들에게 독과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내가 도착한 3일째가 됐을 땐 거의 다 떨어진 듯했지만, 엄연히 그 전까지는 썼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따로 보급을 받았든가, 아니면 어디 대량으로 꿍쳐놨다는 소리였다.

자, 그렇다면 문제.

지금 당지독이 남기고 간 건?

“에이 설마…….”

반신반의하면서 주머니에 안에 손을 넣으려고 하자, 부문주가 대뜸 손을 낚아챘다.

“잠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주머니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줄 예상할 수 없기에 일리가 있긴 한 말.

하지만 내 예상은 이미 반신반의를 넘어서 확신에 다다르고 있었기에 그냥 손에 피독수를 끼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제가 보기에 이거면 충분할 거예요.”

피독수를 낀 손을 집어넣자 쑥 빨려 들어가는 손.

손바닥만 한 작은 주머니였기에 손 하나 들어가면 다행인 정도였는데, 아예 팔꿈치 아래까지 들어가는 걸 보면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아니, 진짜 보스몹이었네. 어째 이런 걸 다 주고 가냐?’

아공간 주머니.

으레 판타지에서 볼 법한 공간 왜곡 마법이 걸린 주머니로 보이는 것의 몇 배.

혹은 몇십 배나 되는 양을 집어넣을 수 있는 주머니를 말한다.

‘이건 주술로 만든 건가? 대체 어디서 구했대?’

다들 아공간 주머니 하면 판타지를 먼저 떠올리긴 하는데, 사실 무협지에서도 주술이나 도술이란 방법으로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실존하는 것도 못 봤고, 다른 사람들도 전혀 못 본 눈치였다.

하지만 원래 주술과 관련된 것은 귀하디귀한 법.

당가 사람들이 전부 본 적 없다고 한들,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심지어 상등품이야.’

찾아보기 힘든 주술인 만큼 고작 몇 배 크기의 주머니라고 해도 감지덕지.

그런데 이 주머니에 걸린 주술이 예사로운 것이 아닌지 이미 팔꿈치 넘게 넣어서 이리저리 휘적이고 있음에도 뭐 하나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진짜 개쩐다.’

독과 암기가 부족해지면 전투력이 급감하는 건 당가의 큰 약점이다.

나만 해도 살수들에게 습격당했을 때 독이 많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상황이었다.

헌데, 만약 쉴 새 없이 독과 암기가 쏟아져 나오는 주머니가 있었다면?

거기다, 연구실에 있는 독을 싸그리 들고 다녀서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을 거다.

“캬.”

그렇기에 희희낙락하며 좋아하고 있던 찰나.

“앗, 따거.”

갑자기 뭐에 찔리는 감각에 놀라 황급히 손을 뺐고, 어느샌가 다가온 부문주가 다가와 손을 잡아채서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피독수를 벗기자 보이는 콩알만 한 상처.

피독수가 단단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맨손으로 만졌다가 손바닥 자체가 뚫렸을 거다.

“오우씨, 괜찮아. 근데 안에 뭐가 들었기에 피독수가 뚫려 버리냐?”

“확인해 보죠.”

부문주가 곧장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이리저리 휘두르더니 이내 뭔가를 잡아서 꺼냈다.

그리고 그 뭔가는…….

-삐, 삐익.

“웬 새?”

다름 아닌 벌새…… 같이 생겼는데 몸 전체가 흰색인 새였다.

“아니, 당지독이 주머니에 새를 넣고 다니는 고상한 취미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빙궁에 떠나기 전에 나랑 대화한 걸 보면 좀 감성적인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던 것 같긴 했다.

그러나, 그게 대체 새를 키우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삐익! 삐익!

당지독의 이름을 거론하자, 마치 화났다는 듯 날개 털며 부리를 앞뒤로 터는 새.

생긴 건 귀여워도 부리로 쪼는 힘이 여간 센 게 아니었기에 놀라서 물러나자, 백호단주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당지독을 물리친 게 여기 계신 당지천 공자님이십니다.”

“…….”

갑자기 끼어들어서 제 몸은커녕, 주먹만 해 보이는 새한테 공손하게 말하는 백호단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말 못 하는 짐승과 대화를 시도하나 싶었는데…….

-삑!

웬걸.

작은 새는 놀랐다는 행동과 함께 부문주의 손에서 벗어나 내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뭐야, 말이 통하네? 얘는 무슨 영물이라도 됩니까?”

“저도 실제로는 처음 보는 거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제 생각이 맞다면 만년혈독신조로 보입니다.”

“만년혈독신조? 그게 뭡니까?”

“공자님도 아마 아실 겁니다만, 만독연 안에는 금지가 존재합니다.”

금지.

으레 어느 문파에나 존재하는 곳으로 극히 일부, 혹은 전부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

옛 당가엔 5대 금지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만독연 안의 한 곳만 금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금지 안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마음껏 독을 먹는 새가 만년혈독신조입니다.”

“자유로이 돌아다닌다니 따로 기르지는 않는 겁니까?”

“옛부터 기르려고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만, 전부 실패했다고 합니다. 워낙 날쌔기도 날쌔고, 강하기도 강한지라.”

“얘가요?”

원래 영물의 힘은 크기로 따지지 않는 법이라는 걸 알지만, 워낙 작았기에 의문이 절로 들었다.

“만년혈독신조는 독물 중에서 가장 강한 독을 내뿜습니다. 그 유명한 인면지주조차도 단번에 녹여 버릴 정도니 말 다 한 것 아니겠습니까.”

인면지주까지?

그 정도면 아예 무형지독을 뿜는 수준이 아닌가?

“무엇보다 사육당하는 걸 싫어하는지 인간이 내미는 독은 전혀 먹지 않습니다.”

“오…….”

원래 안된다고 하면 해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

나는 곧장 만독연에서 가져온 산화베릴륨을 오른손에 꺼내 들었다.

그러자…….

-삐익. 삐익.

거짓말처럼 만년혈독신조는 손바닥에 내려앉아 산화베릴륨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잘만 먹는데요?”

꺼리기는 개뿔.

사람이 아니어도 한눈에 봐도 배가 고팠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만년혈독신조는 허겁지겁 베릴륨을 먹어댔다.

“…….”

그러자, 백호단주는 벙찐 얼굴로 산화베릴륨을 쪼아먹는 만년혈독신조를 한참 동안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크흠……. 뭐, 아닐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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