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 당가의 막둥이 되다 117화
-후두둑.
천일염의 손끝에서 이어진 5개의 선.
거미줄처럼 사방을 옭아맸던 선에 흑색 기운이 흐르자,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무인들이 부서져 내렸다.
“…….”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부서져 내리는 모습.
도무지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을 본 인원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왜냐면…….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적들을 단번에 도륙한 게 익히 아는 얼굴.
다름 아닌 삼 공자의 호위 천일염이었기에.
-스스스.
마치 뱀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일염의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실들.
조용히 그걸 보던 당기룡은 나지막이 물음을 던졌다.
“어째서…….”
늦게 왔음을 원망하는 게 아닌.
온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물음.
허나, 그런 당기룡의 물음에 천일염은 무심하게 작은 목함을 던져주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먹어라.”
-텅.
어정쩡하게 서 있는 당기룡의 발 앞에 떨어진 목함.
당기룡은 선천진기를 끌어냈음에도 제대로 기를 쓰지 않아 진동하듯 덜덜 떨리는 팔로 목함을 주웠다.
그리고 곧장 목함을 열어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실제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익히 아는 물건.
자고로 무인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귀에 익을 때까지 들어봤을 법한 물건.
그건 바로…….
“대환단?”
소림의 대환단이었기에.
자연에서 나는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영약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영약.
어떤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도.
설령 마공을 익힌 마인일지라도 손실 없이 최고의 공력을 선사하기에 신묘하다 못해 최고로 꼽히는 영약.
복용자가 내상을 입었으면 입은 대로.
단전이 깨져 나갔으면 깨져 나간 대로.
하다못해 선천진기를 썼다고 해도 효과를 발휘하는 만큼 무림에서 이 정도 명성을 가진 영약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
물론, 내상을 입은 것과 별개로 단전이 깨지거나 선천진기를 끌어다 쓴 건 급이 다른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대환단을 먹는다고 해서 원래의 공력을 전부 얻진 못할 거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대환단을 복용한다면 원래의 상태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걸 천일염이 툭 하고 내줬으니…….
당기룡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천만 냥이다.”
당기룡이 놀라거나 말거나 여전히 무심하게 값을 부르는 천일염.
금 천만 냥이라는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지만, 당기룡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대환단은 천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고.
타 문파 사람에게 쉬이 넘길 수 있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일염이 대환단을 건네는 이유를 알기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의지는 잘 봤다. 허나, 지천이에게는 아직 네가 필요할 것 같으니 죽지 마라.”
무심하듯 신경 써주는 천일염의 말.
어떻게 보면 미움 섞인 애증이 담긴 말 같지만, 실상은 정이 아닌 필요성.
당지천에게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 나온 거다.
아마도 당지천을 위해.
당가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었다면 구해주기는커녕. 주저 없이 직접 당기룡의 목을 쳤을 거다.
……그편이 당지천에게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기룡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늦게 구해줬으면 어떻고.
여차하면 목을 치려 했다는 게 대체 어쨌다는 건가.
이 모든 게 천일염이 당지천을 생각함에서 나온 것인데.
“감사합니다. 형님.”
다 끊어졌다고 생각한 끈이 단단히 매듭지어져 돌아온 상황.
그렇기에 당기룡은 더는 볼 것 없다는 듯 곧장 대환단을 복용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와, 이건 정말 예상 못 했는데?”
당기룡이 대환단을 복용하기 무섭게 들려오는 당지독의 목소리.
-뚝, 뚝, 뚝.
이어서 당지독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말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숨겼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하니 당가주보다 강할 줄이야. 이거 완전히…… 켁.”
“조용.”
하지만 몇 마디 내뱉었을까.
당지독은 다시금 천일염의 실에 온몸이 묶여 말을 삼켜야 했다.
“네가 죽여도 죽지 않는 건 봐서 안다.”
천일염은 실을 점점 죄며 고통을 주되, 죽지 않게끔 잘 조절했다.
“켁케에엑…….”
당연히 목이 막힌 당지독을 숨이 막혀 고통스러운 듯 켁켁거렸다.
“몸이 몇 조각 나든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이것도 복구 가능한지 한번 해봐라.”
천일염이 손을 휘두르며 실에 검을 올리자, 이리저리 꼬이며 당지독을 옭아매는 실들.
기존의 옭아매던 실들만 해도 당지독을 터질 듯이 부풀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배 이상이 얹어지니 당지독은 미약한 신음도 흘리지 못했다.
……아니, 못했었다.
“흐흐흐…….”
불현듯 웃음을 흘리는 당지독.
분명 목을 완전히 죄고 있음에도.
소리가 날 틈새가 없음에도 뚜렷한 웃음을 흘리더니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차피 선천진기를 끌어다 쓴 이상 잘 수습한다고 해도 예전의 실력은 못 찾을 테니 한 놈은 끝. 그리고 나머지 한 놈은…….”
순식간에 당지독의 몸이 연기로 화하더니 천일염의 속박에서 벗어나 날아가듯 움직이더니 천일염의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천일염이 채 반응도 하기 전에 목을 노리는 당지독.
연기에서 나옴과 동시에 어느샌가 작은 바늘을 들어 천일염의 목에 꽂으려고 했다.
그렇게 바늘이 목이 닿기 일보 직전.
-챙!
천일염이 빛살 같은 속도로 간신히 쳐냈다.
“후우.”
천일염이 작게 숨을 몰아쉴 정도로 위험했던 공격.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 감각에 전혀 잡히지 않았기에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공격이었다.
“쓰읍…….”
공격이 실패하자, 뒤로 물러난 당지독은 퉁퉁 부어버린 오른손을 붙잡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쓰기엔 아직 일렀나. 아직은 힘이 많이 약하네…….”
뭔지 모르지만, 매우 불만족스럽다는 듯 볼을 뾰루퉁하게 부풀리는 당지독.
실패하긴 했으나 이번에야말로 성공시키겠다는 듯 다시금 공격 태세를 취했으나, 이내 당지독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수십 명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어?”
무언가 충격적인 일이라도 일어났는지 당지독이 놀라기도 잠시.
갑자기 인격이 뒤바뀌기라도 한 듯 서슬 퍼런 눈으로 천일염을 봤다.
“너, 혼자가 아니었군.”
“…….”
“심지어 약한 놈도 아니고 강한 놈을 데려왔어.”
“…….”
“넌 대체 누구지? 뭐 하는 놈인데 내 계획을 계속 방해하는 거지?”
당지독의 계속되는 물음.
허나, 천일염은 그 무엇 하나 답해주지 않은 채 조용히 검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결국, 이번 계획은 실패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엔 또 갑자기 풀이 죽는 당지독.
도통 속내를 예상하기 힘들 만큼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천일염조차도 선뜻 공격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긴, 변수도 많고, 성숙도도 낮았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하아.”
한숨을 푹 내쉰 당지독이 갑자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만하자, 우리 애들도 거의 다 죽은 것 같고. 나도 이제 슬슬 무서워지려고 그래. 나도 널 못 죽이고, 너도 날 못 죽이는데 이런 싸움이 의미가 있을까? 그냥 서로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제는 무의미해진 천일염과의 싸움.
당가를 집어삼키기는커녕, 전력을 줄이는 것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렇기에 당지독은 십몇 년을 넘게 준비한 대계임에도 일을 그르쳤다고 판단.
인원들이라도 보존하겠다는 생각으로 물러나려고 했다.
“멈춰라.”
그러나 도망치려 하자 곧장 조여오는 실로 만든 감옥.
당지독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연기로 화해서 천일염의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이제 지천이도 오는데, 이런 모습 보여줄 거야? 우리 깔끔하게 그만하자니까.”
“상관없다.”
“상관없다고?”
당지독이 놀라는 사이 천일염이 검을 휘둘렀다.
“어우씨.”
그러자, 이번엔 땅바닥을 구르듯 피하는 당지독.
나려타곤한 게 무색하게 천일염의 검격을 피할 수는 없었기에 옆구리가 완전히 베였다.
“무섭네……. 그럼 난 빨리 도망쳐야겠다.”
그렇지만 당지독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옆구리에 달린 주머니를 뒤져 이상한 돌조각을 꺼내 들었다.
-우우우웅.
당지독이 돌조각을 집어 들기 무섭게 진동하는 주변의 공기.
그와 동시에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빛이 쏟아졌기에 백호단주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가주님을 보호하라!”
백호단주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백호단원들.
아까 당기룡이 했던 거에 비하면 미약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듯했기에 다들 당기룡의 앞에서 바쁘게 준비 태세를 갖췄다.
……이전에 한 번 겪어봤던 천일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멈춰라.”
진동 소리가 울리자마자 쏜살같이 뛰쳐나간 천일염이 기가 넘실거리는 검으로 연신 당지독을 공격했다.
절대 곱게 보내지는 않겠다는 듯 패도적인 기세가 담긴 검.
허나, 그럼에도 천일염의 검은 통하지 않았다.
“바보. 어차피 안 통하는데.”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천일염을 비웃는 당지독.
마치 연기를 베듯이 당지독의 몸에 검이 닿을 때면 연기만 넘실거렸기에 당지독은 매우 여유롭게 서 있었다.
“다음엔 꼭 죽여줄게. 안녕.”
그렇게 당지독이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들며 빛으로 사라지려는 찰나.
갑자기 가주전에 당지천이 난입했다.
“거기서라!”
신화문주를 대동한 채 나타난 당지천이 빛에 휩싸이는 당지독의 모습을 보고는 곧장 암기부터 꺼내 던졌다.
-휘리릭.
얼마나 힘껏 던졌는지 기가 맺힌 채로 바람 가르는 소리를 선명하게 내는 표창.
하지만, 당지독에겐 심히 가소로울 뿐이었다.
‘이 상태면 제대로 맞지도 않는데 애쓰기는.’
당지천보다 실력이 아득히 뛰어난 당기룡과 천일염의 공격조차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당지천의 공격이 통하겠는가.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에 당지독은 이왕 이렇게 된 거 골려주려고 과장된 몸짓으로 암기를 피했다.
“어이쿠, 지천이 네 암기는 격이 다르구나. 피해야겠는걸?”
누가 봐도 사람을 골린다는 것을 알 만큼 과장된 표정과 과장된 몸짓.
거기에 당지독은 신난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서걱.
모두의 예상과 달리.
당지천의 표창이 비수로 변하더니 당지독의 허리에 매진 주머니의 끈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끈이 잘려 공중에서 낙하하는 주머니.
당지독은 재빨리 손을 뻗어 주머니를 잡아채려고 노력했지만.
그보다 진동이 끝나는 게 더 빨랐다.
-우우우웅.
진동이 끝남과 동시에 가주전을 뒤덮는 하얀 빛무리.
그 빛무리가 가주전에서 증발하듯 사라지자, 당지독 또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이게 웬 주머니야?”
당지독이 서 있던 자리엔 덩그러니 주머니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